[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여러분은 일을 즐기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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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래머> 에서는 기업들이 열정이라는 명목으로 특근/야근을 어떻게 강요하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많이 관심을 가지고 읽었는데요. 현재 다니는 회사로 이직하고 약 1년 동안 저녁 9시~10시 전에 들어가 본 기억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던 적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 때의 경험으로 업무에 있어 많은 경험을 해볼 수 있었고 도움이 되었지만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을 정도로 괴로웠던 기간이기도 했거든요. 너무 지쳤어서 그만둬야겠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로 시달렸기에 현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정시 퇴근을 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 아르파넷 개발 당시 참여한 프로그래머들의 평균 근무시간이 하루 16시간이었다는 내용은 충격적이네요. 물론 일터에서 숙식까지 해결하기에 가능했겠지만 쉬는 시간, 생존을 위해 최소한으로 필요한 식사와 수면의 시간이 일과 완벽하게 분리되지도 않았을테니 이들은 사실상 아르파넷에 종속되어 있던 셈이겠죠. 아르파넷을 개발하며 생기는 여러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에서 게임이나 이메일의 개념이 도입되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고요. 에니악, 아르파넷으로 대표되는 컴퓨터/IT산업 초기의 열정은 이후 IT 업계에 강요되는 장시간 근무의 신화와 구분할 수 없게 되었고 사실상 이 둘이 동일시 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직원이 프로젝트에 몰두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파생 작품을 통해 개발자는 다시 업무에 몰입하는 구조가 이어지죠. 그 결과 업무와 놀이 또는 업무공간과 사생활의 구분도 모호해졌고요. IT기업들은 개발자들이 노조를 결성하여 연대하도록 놔두기 보다는, 직원들에게 타 업계 대비 업무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놀이화'라는 당근을 제공했다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보수적이고 강압적인 분위기가 있는 제조업이나 금융업과 달리 오히려 유순해보이고 직원을 배려하고 신경쓰는 듯한 회사 가치관과 사내문화를 강조하죠. 게임과 컴퓨터에 익숙해진 80년대 이후의 직원들에게 이런 문화는 매력적인 요소였겠지만 결국 이 또한 궁극적으로는 직원을 생각하는 '당근'이 아니라 경영진의 또 다른 '관리방안'이었죠. 앞의 <판매직>에서 잠시 나온 월마트의 사례가 다시 생각나더라고요. 기독교적 가치, 남에게 봉사하고 그런 감정을 느끼는 걸 좋아하는 여성 집단의 가치관을 역으로 이용해 직장에 장시간 머무르게 하고 봉사/헌신을 '문화적으로' 강제하는 수단과 닮아 보입니다. 겉으로 강압적인 야근이나 성과달성 압박을 하기보다 직접 눈에 드러나지 않는 직업 가치관과 사내문화로 직원을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전혀 다른 분야지만 마치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보다 현실적인 방법론으로 다가온다면 이런 것이겠구나 싶네요. 눈에 보이는 추악함과 폭력성보다 드러나지 않는 유혹과 안락함으로 포장된 마비가 더 치명적이니까요. 전 항상 신생 벤처기업이나 IT회사들이 채용공고나 홈페이지에서 내세우는 '수평적인 분위기'라는 말이 늘 공감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직장에 다녀본 주변인들의 평가를 통해 '수평적'이라는 말이 누구의 입장에서 말하느냐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지극히 주관적인 개념이라는 것도 어렴풋이 알게 되었고요. 기업의 구조 자체가 수직적 계층구조와 관료제로 운영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수평적이라는 말은 개인적으로 말장난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사나 경영진들은 '불필요한 야근을 줄이자'며 온갖 캠페인과 사내 교육이나 지시를 통해 강조하지만 정말로 야근을 하지 않고 정시퇴근을 하면 좋아하는 임원들을 본 기억이 없네요. 오후 시간 또는 목요일이나 금요일이 다 되어서 급하게 업무를 지시하고 결과를 다음날까지 요구하는 의사결정 구조와 임원들의 통제욕은 근본부터 야근/특근을 강제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회사도 경영진도 겉으로만 '야근을 강요하지 않는 바람직한 일자리'로서 구직자들에게 매혹적인 장소로 보이고 싶어할 뿐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걸 다시 한 번 책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단지 각 회사마다 그걸 좀 더 조악하고 엉성하게 흉내내느냐, 아니면 보다 완벽하고 교묘하게 통제하느냐의 차이만 있겠지요. 야근택시비나 특근식비를 경비로 지원하거나 특근수당을 제공하고, 배달음식과 간식을 제공하는 모든 행위들 하나하나에서 이 말이 다시 머리에 떠오르네요. 공짜 점심은 없다.
<프로그래머> 부분에서 나오는 '메커니컬 터크'에 대해 찾아봤습니다. 메커니컬 터크 또는 터키인 기계는 1770년부터 1854년까지 유럽과 미국 각지를 돌며 사람들의 주목과 관심을 모았던 기계장치로, 체스를 자동으로 둘 수 있는 기계였다고 합니다. 거대한 목제 상자는 앞뒤로 서랍과 여닫이 문이 있고, 뒤에는 사람과 같은 크기의 두상과 흉상이 달린 터키인 모양의 인형이 있어 한 손으로 체스 말을 옮기며 게임을 했다네요. 상자의 앞과 뒤에는 문이 달려 있어 열어보면 상자 내부를 구성하는 태엽과 레버들을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장치는 사실 사기극으로 안에 사람이 들어가 말판을 확인하며 체스를 두었습니다. 우선 열고 닫을 수 있는 각종 문과 서랍으로 보이는 장치의 내부는 실제 깊이의 1/3까지만 볼 수 있었고 안에는 더 공간이 있었다고 합니다. 공간 안에 있는 사람은 밖에서 여는 문에 따라 몸을 가릴 수 있는 별도의 미닫이 문이 있어 꽁꽁 몸을 숨겼다고 하고요. 체스판이 접한 상자의 안쪽 면에는 가로세로로 줄을 매달고 체스 칸 배열에 맞게 자석을 실에 고정시켰고요. 체스말의 바닥면에도 자석이 붙어있어 체스말이 이동하면 어디에 말이 놓였고 어디로 움직이는지를 안의 사람이 알 수 있었습니다. 터키인 인형의 왼팔은 줄과 레버로 상자 안 쪽까지 이어져 있어 상자 안의 조종수가 체스 칸의 격자에 맞춰 팔을 이동하고 손을 쥐었다 폈다 하는 조작이 가능했다고 하고요. 사람들의 의심을 없애고자 상자의 문들을 활짝 열어 안을 보여줬고(물론 사람이 밑에 숨어있었지만), 터키인 인형의 팔이 움직일 때마다 맞춰 태엽이 돌아가고 소리를 냈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관객들은 의심을 못했다고 하네요. 이후 쇼의 인기가 사그라들며 창고에 처박혀 있다 1854년에 화재로 창고와 함께 기계도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857년에 기계를 소유했던 소유주의 아들 '실라스 미첼'이 더이상 사업상의 기밀을 간직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체스 잡지에 기계의 작동원리를 설명하는 기사를 실으면서 터키인 기계의 비밀도 밝혀집니다.
책에서는 터키인 기계를 AI가 수행하고 결과물을 내놓는 무언가가 사실 사람이었던 사기극을 뜻하는데 얼마 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죠. 영국의 한 스타트업 업체가 AI를 통해 원하는 조건과 결과물을 입력하면 그에 맞는 어플을 제작해주는 시스템을 수익모델로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인도에 기반을 둔 700여명의 프로그래머들이 수작업으로 개발해온 사기극이었죠. 이 회사에 사업을 의뢰하거나 투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차피 결과물이 사람이 한 것인지, AI가 한 것인지 밝혀낼 길이 없고 또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겠죠. 책의 주제와는 약간 결이 다르지만 전 이게 현재 AI산업이 가고 있는 어두운 면을 모두 담아낸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챗GPT나 다른 AI를 통해 대화를 하며 위로 받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지만 과연 AI와의 '텍스트 교환'이 대화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람에게 기대었다가 오히려 무관심이나 냉소 또는 비난을 당할 바에는 무한긍정 또는 경청하는 AI에게 기대고 싶은 심리를 이용하는 서비스이죠. 하지만 늘 그렇듯 AI는 아직까지 어떤 감정이나 의식이 없습니다. 벽에 대고 이야기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나 단지 차이라면, 이 벽은 내가 던진 단어를 다시 반대로 내게 던진다는 점이죠. 몇 개의 로고와 텍스트 형태로 근사하게 갖춰져 있고, 눈에 보이기 때문에 실체가 있다고 믿고 싶은 무언가. 실체보다도 실체를 둘러싼 불분명한 장막이 둘러싸고 있는 게 현재의 AI산업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실체를 보여주기 보다는 사람들에게 '보고 싶어하는 무언가만을 선별적으로 보여주는' 환상의 영역이 위험하게 걸쳐 있다고 봅니다. 마치 환상이나 마술쇼처럼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수익을 벌어 들이는 것만이 목적이었던 터키인 기계처럼요. 또한 위의 사례는 앞으로 AI가 경제와 직업의 역학구조를 어떻게 바꿔놓을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리처드 서스킨드의 <전문직의 미래>에서는 앞으로 AI가 속도와 시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변호사/회계사/의사/간호사/교육자/언론인 같은 여러 전문적 직군을 다 대체할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전문 서비스들이 '작업과 업무'의 형태와 중요도에 따라 일부는 AI가 대체하겠지만 중요성이 덜한 단순 업무들은 AI 도입보다 더 저렴한 제3세계의 프로그래머/개발자 공장에 외주화 될 거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단순 업무 종사자들은 이제 제3세계의 공장형 개발업체들과 무한 단가경쟁에 내몰리게 될 테고요. 변호사나 회계사라고 하여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이 다 중요한 일만 있지는 않죠. 전문직조차도 시간과 노력은 많이 걸리는데 수익성은 낮은 단순반복 작업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법무법인이나 회계법인 또는 개인사무소의 행정인력이 대신해주거나 또는 저연차 후배들이 수습의 명목으로 대신 해왔죠. 리처드 서스킨드는 앞으로 AI시대에는 이런 단순작업들이 AI로 완전대체가 되거나, 아니면 훨씬 낮은 용역비로 대행해 줄 의향이 있는 국가로 위탁될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 미래에서는 결국 점점 현재의 사무직이나 행정직, 심지어는 저연차의 수습인원들마저도 고용안정성에서 안전할 수 없겠죠. 산업혁명 때 증기기관이 나타났다고 해서, 컴퓨터의 등장과 함께 정보통신 시대가 도래했다고 해서 인간의 업무와 노동의 부담이 줄어든 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어떤 산업과 어떤 종류의 업무가 더 지배적이냐의 세부적인 사항만 다를 뿐이죠. 시대의 전환기에는 흐름을 파악하여 신분상승을 이루는 개인들이 분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어 왔어도 자본에 의한 지배라는 거대한 틀이 변한 적은 없었죠. 그리고 새로운 기술은 노동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주기 보다는 그 기술을 익히지 못하면 낙오된다는 협박과 경쟁의 압박을 매번 제시해왔던 걸 생각해보면 AI시대라고 하여 과연 다를 것인지 의구심이 들게 됩니다. https://www.autodaily.co.kr/news/articleView.html?idxno=531829
하지만 스포츠는 스포츠 전문화에 대한 시도 초기부터 지금까지 세계자본주의와 긴밀히 얽혀 있었다. '아마추어 정신'으로 대충 얼버무려졌지만, 초창기 올림픽은 무역 박람회와 상업 전시회 같은 것으로, 국제무역이 번성하던 당시 친선 경기로 구경거리를 만들면 돈을 벌 수 있겠다 싶었던 상업적 목적이 묻어 있었다.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413,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복싱으로든 축구로든 야구로든 공장 조립라인에서 해방만 할 수 있다면 뭐든 안 할 이유도 없었다. 생업에만 매달려서는 열심히 노력해도 사회적 신분상승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고, 혹시, 아주 혹시, 그 노력을 어느 한 스포츠 종목을 정말 잘하는데 쏟는다면 성공할 수도 있었다. 1980년 최초의 흑인 헤비급 챔피언이 된 잭 존슨 같은 복싱선수들이나, 1800년대 후반 경주마 위에서 부와 명성을 이뤄낸 아이작 머피는 고역의 삶 너머에 있는 열망의 대상이었다.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414~415,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TV는 스포츠를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 라디오 방송을 청취하며 열광했던 문화는 거실에서 편안히 소파에 앉아 경기를 볼 수 있게 되면서 시들어갔다. 처음에는 스포츠계 거물들이 경기장 매표 수익 때문에 방송을 제한하려고 했다. 하지만 1950년대 TV가 급속히 보급되면서, 특히 미식축구가 TV 방송으로 인기를 얻고 미국에서 스포츠계의 서열이 뒤집혔다. 미국 프로 미식축구(NFL)가 방송사와의 수익분배 구조 덕택에 대형 산업이 되었고 개개인 선수들은 기업 후원, 광고 등으로 추가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418~419,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아마추어 정신은 착취의 구실일 뿐인 경우가 많았다. 상업적 이해관계는 오랫동안 대중 스포츠의 일부였다. 그런데 자본주의에 신자유주의가 가미되고 여러 가지 이념적 대립이 뒤따르며 새로운 대중 스포츠가 출현했다. 기업의 선수 후원, 간접광고, 수백만 달러의 경기지원 계약 등 스포츠의 모든 측면은 민영화되고 브랜드화 되어 반짝이는 상품처럼 판매됐다. 그리고 이 책 곳곳에서 봤듯이 일을 성취감을 느낄 기회로 여기라는 주문이 노동 현장 전반에 퍼져 있는 사실처럼, 스포츠계도 그 주문에 깊게 홀려 있다.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426~427,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스포츠든 사회 전반에서든 모든 경쟁은 결국 우울증으로 이어진다. 우울증이 경쟁 수위가 치열한 스포츠를 하는 선수들에게 더 높게 나타남이 많은 연구에서 밝혀졌다. 특히 미래가 전적으로 스포츠의 결과에 달려 있다면 더 그럴 것이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이유는 뻔하다. 농구계 마이클 조던이나 축구의 데이비드 베컴처럼 크게 성공한 사례가 있기 때문에 노력할 이유가 분명히 있지만, 실패하면 모두 자신의 탓으로 돌려진다.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428~429,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불평등의 극치는 도미니카 공화국의 야구 학교처럼 메이저리그가 운영하는 팜 시스템이다. 마이너리그 선수의 몸값 혹은 심지어 LA 유소년 야구팀 지원금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구단들은 부와 명성을 원하는 배고프고 어린 야구선수 지망생들을 마음껏 뽑아갈 수 있다. 게다가 이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노동법도 흉측하게 휘어져 있다. 구단들은 선수가 16세가 되면 아직 세상 교육도 부족한 그들과 계약을 맺을 수 있고, 의료보험이나 다른 복지혜택을 제공하지 않아도 된다. (중략) 데이비드 오르티스 같은 수백 명의 연습생들이 결코 도미니카를 벗어나지 못한다.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430~431,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한편 이러한 과중한 압박 문화로 선수들은 자신의 몸값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올리려고 하게 되고, 결국 약물에 의존하는 선수들이 빈번히 생겨난다.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431,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위원회는 SNS 사용 제한, 운동시간, 주거 형태 등 코치들이 선수들 삶에 행사하는 광범위한 통제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며 이 정도의 통제는 교사와 학생 간이라기보다 고용주와 근로자 간에 이루어지는 수준이라고 결론지었다.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435,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운동선수>는 이제까지 읽은 부분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낯설지만 그렇기 때문에 선수들의 세계가 어떤지를 알 수 있어 유익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스포츠 경기를 보는 취미가 없기도 하거니와 주변에도 운동을 업으로 삼는 분이 없기에 이 분야에 대해서는 정말로 아는 게 없거든요. 운동선수들이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는지, 어떤 고용관계를 맺고 있는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기에 모든 내용 하나하나가 신선했습니다. 운동은 고대에는 체력단련으로서 전투 대비 목적의 성격이 강했고 근대에는 국제무역에 따른 친선교류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동떨어진 개념이었습니다. 남성들은 자본주의 노동 앞에서 전력을 다하느라 운동을 할 체력이 남아있지 않았고, 여성들은 조신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가치관이 지배적이었고요. 상류층들의 취향과 문화는 운동과 분리되어 있었기에 운동은 오히려 하층민의 과격한 문화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운동을 통해 체력을 증진하고 경쟁심이나 꾸준함의 가치를 노동자들이 배울 수 있다고 사회운동가들이 주장하면서 이런 주장이 확산되죠. 결과적으로 운동을 통해 체력이 오르면 노동자들은 더 오래 일할 수 있었고, 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꾸고 싶었던 개혁가와 노동자를 더 오래 활용하기를 원하는 고용주의 이해관계가 서로 맞아떨어진 것 같습니다. 또한 정치인들은 바람직한 국가에 어울리는 국민상으로서 체력적으로 건강한 국민 개념을 자주 언급하고 이는 운동에 대한 인식 확산의 배경이 되었고요. 라디오의 등장, 언론을 통한 국가 간 경기를 통해 스포츠는 경쟁과 선전의 수단으로서 급격히 대중화가 되고 생활 곳곳에 퍼집니다. 운동선수를 통해 대변되는 국가는 곧 운동선수와 국가와 시청자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는 효과가 있었고, 승리나 패배를 떠나 국민들을 단결하고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또한 노동만으로는 신분상승을 할 수 없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성공한 운동선수들이 선망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편 미국에서는 명문대학을 중심으로 미식축구 경기가 펼쳐지면서 상류층으로 가기 위한 진입 과정, 중간단계로서 스포츠의 개념이 형성됩니다. 굳이 생계로서 뛰어들지 않고도 자기 계발, 수양의 목적으로 한다는 아마추어 정신이 이때부터 생겨났다는 게 의외였습니다. 저는 아마추어 정신이라는 말이 오히려 일반인들의 생활체육, 생활운동의 보급 과정에서 등장했을 거라고 짐작했는데 상류층의 여가 문화에서 파생되었다니... 스포츠의 계급화, 신분으로서의 상징도 이때와 맞물리면서 상류층과 일반 다수 중산층이 즐기는 운동의 종류가 나뉜 계기도 이때였겠죠. 1970~80년대로 진입하며 스포츠도 신자유주의와 맞물려 '경쟁과 기업화'의 방향으로 이동합니다. 운동을 통한 육체와 정신의 단련 또는 스포츠 정신보다는 구단이나 기업체를 운영하고 인기있는 스타 선수를 배출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홍보 수단이 되죠. 간판 스타라는 개념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일부 선수들 위주로 계약과 혜택과 언론의 관심이 편중되며, 그 와중에 아마추어 정신을 역으로 이용해 다수의 스포츠산업 종사자들에게 좋아서 하는 운동이라는 명분으로 착취와 차별을 정당화합니다. 스포츠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경쟁의 성격은 이제 단순히 운동에만 국한되지 않고, 개인의 생계와 경력에까지 확장되면서 경쟁에 대한 압박감도 비례해서 커집니다. 그리고 경쟁의 압박감이 선수 개인이 심리적으로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버리면 우울증과 약물 복용이라는 부작용의 형태로 표출되고요. 인기 스포츠 스타 몇 명을 배출하기 위해 다수의 운동선수와 종사자들이 열정 또는 경쟁의 논리로 현재의 불합리한 보상체계가 정당화되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수익 대부분은 기업과 구단이 가져가는 계급화의 시대는 인간의 원초적 육체활동에마저 스며들었습니다. 승리와 노력, 경쟁과 영광이라는 강렬한 헤드라이트를 사방에서 비추며 어디에도 그림자가 발 붙일 수 없도록 스포츠 기업들은 오늘도 이벤트 경기를 홍보하고 스포츠 용품을 광고하고 그런 물건을 쓰면 시청자도 선수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계속 판매합니다. 하지만 빛이 강렬하면 할수록 어둠은 더 짙어지는 법이죠. 우리가 TV 디스플레이와 조명에 환호하는 순간을 위해 어디선가는 스포츠산업 종사자들이 '더 열심히 하지 않은 네 책임이다'는 채찍질을 당하고 있다는 책의 지적이 결코 빠지지 않는 돌부리처럼 마음에 계속 남을 것 같습니다.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찾기 위해 일을 그저 일이라고 부르고 싶다. ―실비아 페데리치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446,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나는 일터에서 어떻게든 비참해지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이다. 행복, 즐거움, 소통을 느낄 기회가 있다면 최대한 그 기회를 잡아야 한다. 하지만 일에서 행복을 느끼고 싶은 욕구를 스스로를 위해 다져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욕구를 만들어준 세상이 발밑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다. 조금씩 우리는 다른 세상을 생각할 수밖에 없고 그럼 그 다른 세상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됐다.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447,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사랑의 노동이라는 신화에 금이 가고 있는 이유는 노동 자체가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보수가 예전 같지 않다. 어느 직장이나 삭감이 이루어지고 있고 대학 졸업장이 더 이상 중산층 직업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448,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자본주의 모델은 소수의 이득을 위해 지구를 망쳤고 신자유주의는 그 과정에 속도를 붙였을 뿐이다.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449,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는 노동이란 시민 활동에 참여할 수 없던 노예들이나 육체노동자들을 경멸조로 통칭했던 바나우소이banausoi 계층, 혹은 노동계급 등 다른 누군가가 해주는 것이라는 개념에 기초했다. 반면 시민들의 일은 능동적 활동, 이론이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praxis이었다. 경제학자이자 작가인 가이 스탠딩은 이를 "그 자체가 즐거워서, 대인관계를 강화하기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오늘날 우리가 사회적 재생산이라 부르는 일이고, 공동체 생활을 만들어가는 일이었다.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451,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로봇이 우리의 일자리를 곧 빼앗을 것이다’라고 위협처럼 말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 모두를 위한 더 많은 자유시간이 만들어지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누가 로봇이나 알고리즘을 만들고, 디자인하고 소유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하지만 기술에 집착하면 본질을 놓친다. 우리는 인간 대 기계의 결투장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생산에 그 어느 때보다 인간 노동력이 덜 필요함에도 살아남으려면 일해야 하는 생산방식 안에 갇혀 있다.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452,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우리는 일에서 사랑을 돌려받지 못한다. 일에서 즐거움을 얻는 운 좋은 소수의 사람이 있더라도,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을 일해야 하는 사회에서 절대로 행복할 수 없다. (중략) “일터에 우리의 욕구를 채워주는 활동들과 관계들을 심어놓았고, 그것이 우리 삶을 목 조르고 있다.”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452,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아직까지 자본주의 외의 세상이 없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자본주의 너머의 세상을 순간순간 마주칠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마크 피셔가 말했듯, 우리가 가진 욕구들은 아직 대개 이름이 없다. “자본주의가 펼쳐놓은 무한한 반복에서 탈출한 미래를 보는 것이 우리의 욕구이다. 그 탈출은 새로운 인식, 욕구, 자각이 가능한 그런 미래에 달려 있다.” 지금 삶의 모든 면에서 그런 욕구들은 성취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그 욕구들이 우리가 무언가 새로운 것을 키워나갈 토대이기도 하다.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461,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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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피악'의 인문학적 성찰이 담긴 작품들
[그믐연뮤클럽] 8. 우리 지난한 삶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여정, 단테의 "신곡"[그믐연뮤클럽] 4. 다시 찾아온 도박사의 세계 x 진실한 사랑과 구원의 "백치"[그믐연뮤클럽의 서막 & 도박사 번외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반과 스메르자코프"
같이 읽고 싶은 이야기_텍스티의 네버엔딩 스토리
김준녕, 오컬트도 잘합니다. [다문화 혐오]를 다루는 오컬트 호러『제』같이 읽어요🌽[텍스티] 텍스티의 히든카드🔥 『당신의 잘린, 손』같이 읽어요🫴[텍스티] 소름 돋게 생생한 오피스 스릴러 『난기류』 같이 읽어요✈️[책증정] 텍스티의 첫 코믹 추적 활극 『추리의 민족』 함께 읽어요🏍️
나는 너의 연애가 궁금해
[📚수북플러스] 6. 우리의 연애는 모두의 관심사_수림문학상 작가와 함께 읽어요[장르적 장르읽기] 5. <로맨스 도파민>으로 연애 세포 깨워보기[북다] 《나의 사내연애 이야기(달달북다02)》 함께 읽어요! [북다/책 나눔] 《하트 세이버(달달북다10)》 함께 읽어요!
각양각색! 앤솔로지의 매력!
[그믐앤솔러지클럽] 1. [책증정] 무모하고 맹렬한 처음 이야기, 『처음이라는 도파민』[그믐미술클럽 혹은 앤솔러지클럽_베타 버전] [책증정] 마티스와 스릴러의 결합이라니?![책나눔]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을 때, 시간을 걷는 도시 《소설 목포》 함께 읽어요. [장르적 장르읽기] 5. <로맨스 도파민>으로 연애 세포 깨워보기[박소해의 장르살롱] 20. <고딕X호러X제주>로 혼저 옵서예[그믐앤솔러지클럽] 2. [책증정] 6인 6색 신개념 고전 호러 『귀신새 우는 소리』
과학의 언어로 인간의 마음을 탐구하는 작가, 김초엽
[라비북클럽] 김초엽작가의 최신 소설집 양면의 조개껍데기 같이 한번 읽어보아요[다정한 책방] '한국작가들' 함께 읽기5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_김초엽[문풍북클럽] 뒷BOOK읽기 : 8월의 책 <지구끝의 온실>, 김초엽, 자이언트북스방금 떠나온 세계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레슨!
[도서 증정] 『안정감 수업』 함께 읽으며 마음을 나눠요!🥰지금보다 나은 존재가 될 가능성을 믿은 인류의 역사, 《자기계발 수업》 온라인 독서모임
한국의 마키아벨리, 그의 서평 모음!
AI의 역사한국의 미래릴케의 로댕최소한의 지리도둑 신부 1
🎬 우리가 사랑한 영화 감독들
[책나눔] <고양이를 부탁해><말하는 건축가> 정재은 감독 에세이『같이 그리는 초상화처럼』메가박스 왕가위 감독 기획전 기념... 왕가위 감독 수다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 함께 이야기 나눠요
저항의 문장가, 윌리엄 해즐릿!
[아티초크/책증정] 윌리엄 해즐릿 신간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와 함께해요![아티초크/책증정] 윌리엄 해즐릿 신간 『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 서평단&북클럽 모집[아티초크/책증정] 장강명 작가 추천! 해즐릿의 『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와 함께해요.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축하합니다!
[밀리의 서재로 📙 읽기] 31. 사탄탱고[이 계절의 소설_봄]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함께 읽기(신간읽기클럽 )1. 세계는 계속된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공룡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기로!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7. <경이로운 생존자들>[밀리의 서재로 📙 읽기] 10. 공룡의 이동경로💀《화석맨》 가제본 함께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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