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빙 고프먼,《자아 연출의 사회학》일일 일장 읽기

D-29
영역(region)은 지각(perception)을 가로막는 울타리가 쳐진 장소라고 정의할 수 있다. 물론, 영역은 크기가 다르고 의사소통 매체에 따라 차단하는 종류도 다르다. 방송통제실의 두꺼운 유리판은 청각을 차단하고 사무실의 칸막이는 시각을 차단한다. 실내 생활이 위주인 미국 사회에서, 공연은 지극히 제한된 영역에서 대개 정해진 시간대에 이루어진다. 인상을 조성하고 소통하는 공연으로 가득 찬 시공간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공연을 지켜보고 공연이 조성하는 상황 정의에 따를 수밖에 없다.
자아 연출의 사회학 - 일상이라는 무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연기하는가 p.139, 3장 영역과 영역 행동, 어빙 고프먼 지음, 진수미 옮김
무대 위에서 하는 개인의 공연은, 영역을 지키고 특정 기준을 실행하는 겉모습을 보여주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기준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관객과 대화를 나누거나 대화에 준하는 몸짓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관객을 대우하는 방식에 관한 기준이다. 이른바 '존대 예절'이라고도 한다. 다른 하나는 관객과 대화를 나누지는 않지만 관객이 보고 들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있을 때 공연자가 취할 태도와 관련된 기준이다. 이는 '처신 예절'이라 할 수 있다.
자아 연출의 사회학 - 일상이라는 무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연기하는가 p.140, 3장 영역과 영역 행동, 어빙 고프먼 지음, 진수미 옮김
우리는 교회처럼 성스러운 조직에서 통하는 처신 예절의 규칙은 일터의 규칙과는 아주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성스러운 조직의 규칙이 일터의 규칙보다 더 많고 더욱 엄격할 것이라고 가정해선 안 된다. 여자는 교회에서는 앉아도 되고 백일몽을 꾸거나 졸아도 된다. 반면에 옷가게에서 일하는 여점원은 항상 정신을 바짝 차리고 서 있어야 하고, 껌을 씹지 말아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 없어도 얼굴에는 미소를 띠고 있어야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옷도 입어야 한다. 사회 조직에서 처신 예절의 한 형태로 '일하는 척하기'에 대해 연구가 이뤄졌다. 많은 조직에서 노동자들은 업무 지시에 따라 일정 기간 안에 정해진 생산량을 맞추어야 함은 물론, 이와 더불어 열심히 일한다는 인상을 연출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한 조선소의 예를 보자. 현장감독이 선체 안 작업장에 있다거나, 회사 본부 감독관이 온다는 말이 들리면, 갑자기 작업장 분위기가 바뀌는 모습이 재미있다. 반장과 조장들이 노동자들에게 달려와 눈에 띄는 작업을 하라고 부추겼다. "앉아서 쉬는 모습을 들키지 말라"는 경고를 거듭하며 멀쩡한 파이프를 구부리거나 끼우고 이미 제자리에 잘 조여 있는 나사를 더 세게 조이면서 바삐 일하는 척하라는 것이다. 이는 작업 현장의 순찰에 나선 감독관에게 노동자들이 일사불란하게 바치는 공식 헌정이자 오성장군의 사열만큼이나 그들에게 익숙한 관행이었다. 거짓되고 공허한 공연의 세부 사항을 한 가지라도 빠뜨린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불경의 표지로 해석되곤 했다.
자아 연출의 사회학 - 일상이라는 무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연기하는가 p.142-143, 3장 영역과 영역 행동, 어빙 고프먼 지음, 진수미 옮김
이 부분을 읽으며 알바라는 것을 처음으로 했던 대학교 1학년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최초의 돈을 버는 사회생활이었던 시급 1600원짜리 초밥집 알바를 하며, 서빙을 마치고 손님들이 식사를 하는 짬에 책을 읽곤 했는데, 사장님에게서 네가 책을 보고 있으면 손님들이 추가 주문이나 요청을 하기 불편하지 않겠느냐며 책을 읽지 말라는 지적을 들었다. 그때는 뿌루퉁했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하면 참 개념 없고 물정 모르는 천둥벌거숭이였었구나 싶다. 쎄미 이불킥 기억 중 하나;
화제로 지정된 대화
8월14일, 다섯째 날. 5장 '배역에서 벗어난 의사소통' 완독. 여러가지로 처리해야 했던 일들과 꼭 해야 하지만 다 하지 못한 일들,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닥치고 만 속상한 일 때문에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하루였지만 읽기로 한 부분을 읽어냈다. 스스로에 대한 실망이 주는 쓴맛이 얼마나 역겨운지 알기 때문이다. 어려운 책은 아니지만 의외로 잘 안 읽히는 책이다. 알겠고 걸맞은 사례도 떠오르는데도... 왜일까? 사례들이 다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이를 굳이 잘게 초점을 나누어 분류하고 있어서일까? 각각의 장이 말하는 내용이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 느낌이다. 물론 내 이해력과 집중력의 한계 때문일 가능성이 더 높다.. ㅠ
팀 개념을 적용하면 한 사람 이상이 하는 공연과 기타 사례도 다룰 수 있다. 앞서 나는 공연자가 자기 연기에 몰입해 인상을 조성하는 순간을 유일한 실체로 믿는다고 지적했다. 그럴 경우 공연자는 스스로의 관객이 된다. 공연자인 동시에 관찰자가 되는 셈이다. 아마도 공연자는 다른 사람들 앞에 있을 때 자기가 유지하려고 애쓰는 기준을 내면화해 통합할 것이고 그리하여 사회적으로 적절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양심의 요구를 받을 것이다. 공연자로서 알 수밖에 없었던 불미스러운 공연 관련 사실을 관객인 자기에게 숨기는 능력이 필요할 것이다. 일상 용어로 말하자면, 사람에게는 이미 알고 있었거나 알게 된, 그러나 자신에게조차 인정할 수 없는 일들이 있는 법이다. 이렇듯 복잡한 자기기만은 항상 일어난다. 이에 관한 뛰어난 임상 자료를 정신분석학자들은 억압과 분열이라는 이름을 붙여 제공해왔다. 자기기만이 바로 자기 자신을 낯설게 느끼는 '자기 소원(self-distantiation)'의 원천인 셈이다.
자아 연출의 사회학 - 일상이라는 무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연기하는가 pp.108-109, 2장 팀, 어빙 고프먼 지음, 진수미 옮김
결국 나는 '나'라는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나를 속이며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종이책의 문장을 수집하는 일은 정말 '일'이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8월15~16일, 여서일곱째 날. 6, 7장,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추천사 완독. 여러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결국 모두 읽어낸 스스로를 칭찬합니다. ㅠㅠ 하지만 앞으로는 이렇게 짧은 기간을 목표로 삼지는 않기로... 수집하고 싶은 문장들이 많은데, 전자책이었다면 좀 더 수월했겠지만 종이책의 문장을 수집하는 일은 '노동'이었고, 그 사이에 여러가지 생각들을 남기기에는 숨 가쁜 일정이었다. 혼자 읽기보다 함께 읽는 것이 보다 수월하고 알차게 책을 읽는 방법인 듯하다. 함께 문장을 수집하고 다양한 생각을 나누면서 이해와 생각이 깊어질 수 있겠고, 특히 문장수집은 분업이 필요하다. ㅠㅠ 아무튼 누군가 만든 모임에 참여했다가 생활에 밀려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혼자일지언정 스스로 모임을 만들고 계획을 공포하니 약간의 변칙은 있었지만 어떻게든 목표를 이루어낸 듯해 뿌듯하다. 다음에는 함께 읽어요!!
이 책에서 나는 암묵적으로 개인을 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하나는 지극히 인간적인 과제를 수행하면서 인상을 조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공연자로서의 개인이고, 다른 하나는 공연을 통해 자신의 정신, 능력, 탁월한 자질을 환기시키려고 고안된 인물로서의 개인이다. 공연자로서의 자질과 인물로서의 자질은 근본적으로 성격이 매우 다르지만, 공연의 연속이라는 점에서는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먼저 인물을 보자. 우리 사회는 대체로 인물을 연기하는 사람과 그 사람의 자아를 어느 정도 동일시하고, 인물로서의 자아를 보통 그 사람의 몸, 특히 상체의 생리심리학적 인성에 뿌리박고 있는 요소로 본다. 나는 이런 관점이 우리 모두가 연출하려고 애쓰는 부분을 함축하고는 있지만 잘못된 분석을 하게 만든다고 본다. 공연된 자아란, 개인이 그럴듯하게 연출하여 남들로 하여금 그를 그가 연기한 인물로 보게 만드는 일종의 이미지다. 이 이미지가 사람들의 관심을 촉발하고 연출된 자아를 개인의 자아로 여기게 만들지만, 자아는 그 개인에게서 비롯되기보다 개인의 활동 무대 전반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과 목격자들의 해석에서 비롯된다. 제대로 꾸민 무대에서 공연을 잘하면 관객은 그 인물을 공연자의 자아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이때의 자아는 공연의 결과물이지 원인이 아니다. 그러니까 공연된 자아란 태어나고 성장하고 죽어갈 운명을 지닌 유기체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연출된 무대에서 실현되는 극적 효과에 속한다. 문제의 핵심이자 결정적 중요성은 연출된 자아 이미지가 신뢰를 받는지 불신을 당하는지에 있다.
자아 연출의 사회학 - 일상이라는 무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연기하는가 pp.315-316, 7장 결론, 어빙 고프먼 지음, 진수미 옮김
결국 결론은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있다"는 부처의 가르침이다. '나'는 실체가 아니라, '너'와의 사이에서 만들어진 하나의 효과이자 현상일 뿐인 것이다.
글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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