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와 나이프

D-29
히가시노 게이고는 글을 아주 깔끔하게 잘쓴다. 역시 관록이 있는 추리소설가이다. 그의 작품을 단편으로 한 번 만나보자. 거의 주로 예쁜 여자가 이상형으로 나오기도 하고 아주 천박한 속물로 나오기도 한다. 이상형은 대개 안 죽고 속물은 죽는다. 대개는 인과응보다.
자기만의 공간 자기만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 직장에서도 스트레스가 쌓일 때 거기서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실컷 욕하면서 울화를 털어내기도 하고 기쁜 마음을 가라앉혀 진정시키기도 한다. 화나고 흥분된 마음을 평정심으로 돌리는 곳이다. 본래의 자기, 페이스(Pace)대로 만들어 주는 곳이다. 자기만 아는 아지트나 짱박혀 있을 곳이 있어야 한다. 그곳은 자기를 포근히 감싸면서 위안을 주고 거기서 기(氣)를 회복해 몸과 마음이 충만해지는 것이다. 동시에 자기와 동고동락(同苦同樂)하는 곳이고 자기와 찰떡궁합 안성맞춤 영역이다. 주부(主婦)는 그곳이 부엌이다. 친정이나 명절에 시댁에 다녀와서 정신 사납다가 자기 자리를 비로소 찾는 곳이 자기만의 왕국인 부엌이다. 거기 도착해야만 뭔가 자리 잡히고 일이 손에 잡혀 일단락된 기분이 든다. 도착하기 전까진 뭔가 완성(마무리)이 덜 된 듯한 느낌이 계속 자신을 괴롭힌다. 빨리 자기 왕궁(王宮)으로 돌아가 케어(Care)받고 자기를 힐링해야 한다. 다른 곳에선 자신이 조연이었지만 이곳만은 자신이 주인공이고 여왕이다. 자유롭고 뭐든 다 되는 곳이다. 부엌은 내가 있어야만 비로소 왕궁으로서의 면모를 갖춘다. 여왕이 없는 왕궁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곳의 모든 것은, 내 명령에 따라 좌지우지된다. 즐거움도 노여움도 설거지를 하면서 맛보거나 풀고 뭔가 공상(空想)할 게 있으면 불도 켜지 않은 채 식탁에 우두커니 앉아 멍하니 한 곳을 응시(凝視)한다. 그 모습을 본다면 주위에 감도는 오싹한 기운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은 마음이 정리되고 걱정도 좀 가시는 듯하다. 부엌은 자기만의 왕실이기 때문에, 누가 흩으러 놓으면 상당히 기분이 안 좋다. 그릇은 다 있을 곳-자기 자리-에 있어야 한다. 제 자리가 아니면 분명 남의 손을 탄 것이다. 그럼 바로 원래 대로 옮겨놓는다. 주부의 망설임 없는 손놀림이 가볍고 경쾌하다. 여기선 무엇이든 즐겁다. 자기 피난처(Shelter)이고 안식처이기 때문이다. 남자도 전부터 자기만의 공간이 있었다. 여자의 안방에 해당하는 사랑방이다. 거기서 글을 소리 내어 읽는다. 곰방대로 담배를 피우며 담배 연기가 사방으로 흔적 없이 흩어지듯이 인생무상과 세월의 무정함을 음미(吟味)한다. 그는 그곳에서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구양수(歐陽修)의 독서와 사색과 집필(執筆), 이 삼다(三多)를 충실히 이행한다. 남의 글을 대하면서 많은 인간과 인생을 간접 경험하고 그것에 대해 반추하면서 나름대로 자기 생각을 도출한다. 그러면서 그걸 배출해야 하는데, 집필이 그 역할을 한다. 글과 생각과 글쓰기가 섞여, 자기만의 주장(主張)이 창출되는 순간이다. 지금은 무거운 공기가 밑으로 가라앉은 적막한 서재(書齋)지만, 그게 없다면 책상만 있는 학생 때의 공부방도 좋다. 거기엔 PC와 노트북이 자리하고 있다. 거기서 게임도 하고 공부도 하고 침대에서 옆으로 누워 핸드폰도 보고 야동도 본다. 여긴 금녀(禁女)의 차폐(遮蔽)된 공간이고 뭐든 상상하고 문 걸어 잠근 채 비밀의 짓도 가능한 공간이다. 가장 편하면서 유쾌한 장소다. 여기서 인생을 배운다. 누구나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을 같이하는 자기만의 은밀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거기서 나가서도 잘할 수 있다. 그곳은 외부에서 방전된 자신을 충전하고 재무장하는, 안정감을 되찾는 유일한 자기만의 공간이다.
반대말이 비슷한 뜻으로 쓰일 때가 있다. 안절부절이다.
글을 계속 쓰는 작가는 등장인물이 거듭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주로 악인은 악인으로만 나온다. 아마 이름이 그래서 그런 것 같다.
팔려간 여자가 남자 늙어 힘이 없어 따로 젊은 애인을 두는 경우가 많다.
몸이 안 좋고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악몽도 꾼다.
자가만의 기질이 있다. 급할 때 허둥거리는 사람이 있고 안 그런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이 안 그런 사람처럼 하면 더 큰 사고가 난다. 그냥 허둥거리는 게 낫다.
나는 혼자하는 걸 좋아하고 그나마 잘해서 혼자만 하는 글이 내게 딱 맞는 것 같다.
여자가 발목이 마른 건 몸이 가벼워 굵어 지탱할 필요가 없어 그런 게 아니라 몸 전체가 말라 그냥 같이 마른 것이다.
지금까지 개고깃집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왔는데 이제 손님도 없고, 애완견을 너무 많이 길러 그런 것이다. 하긴 그 개고짓집도 개는 안 기르고 고양이만 기르는 것을 보면 안다. 그러나 가서 맛있게 먹어주면 그들은 기쁜 것이다. 나름대로 자기들의 정성과 애정이 배서 그런 것이다.
인생, 뭐 있어? “인생, 뭐 있어?” 젊어 이 말을 들었을 땐, 그렇게 듣기 거북했는데 이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 말이 그렇게 듣기 싫은 것을 넘어 이젠 이해가 가고 어느 정도 그 말이 내게 다가와 내게도 해당한다는 걸 실감하게 되었다는 말을 지인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나도 철모를 땐 어른들이 ‘인생, 뭐 있어?’ 하며 힘들게 산에 올라와 막걸리 주고받으며 시끄럽게 떠들며 놀고먹는 것에 대해 자길 합리화하고 뭔가 천박한 속물 같아 보였고 사람의 인생을 저렇게 가볍게 봐서 앞으로 어떤 자세로 인생을 살아가려나 하는 염려가 앞선 것도 사실이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걸까? 같은 말을 젊을 때 들은 것하고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들은 것하고, 받아들이는 게 달라 그런 것 같다. 인생 경험이 짧으냐 기냐에서 오는 것 같다. 인생을 보는 자기 관점(Perspective)이 변한 것이다. 뭔가 젊을 때는 혈기 왕성해 뭐든 해낼 것 같고 그리고 자신도 인생은 다른 동물의 존재와 다르게 더 고상하고 인간의 생은 뭔가 더 있을 것 같다는 것으로 기울었지만 이젠 많이 살다 보니 역시 옛말이 틀린 경우는 많지 않다며 누가 굳이 안 가르쳐 줘도 스스로 그 말의 진의(眞義)를 몸소 실감하기에 이른 것이다. 인생의 황금기인 젊음은 빨리 지나가고 어차피 살아 보니 인생 별것 없다는 것이다. 생로병사(生老病死), 너나 나나 별수 없이 이 코스를 밟는다. 그러면서 마음만은 젊음 그대로인데 몸은 예전 같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까지 내가 원하던 것도 이뤄지는 법이 잘 없고 그냥 어영부영하다 보니 세월은 나와 아랑곳없이 가고 이렇게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도 않게 늙어버렸다는 것이니 지금을 만끽해야 한다는 것을 나이 들어 깨달은 것이다. 그런 소릴 젊은 사람들이 듣기엔 뭔가 인생 다 산 것 같고 허무와 덧없음, 염세주의가 감돌아 자기 앞날은 아직 창창한데 듣기 싫다는 것이다. 아직은 ‘인생, 뭐 있어?’가 자기와는 다른 세계의 인간들이나 하는 신세 한탄, 넋두리로밖에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시간은 유수(流水)와 같이 흐르는 거고 20대가 엊그저께 같은데 벌써 60이 훌쩍 넘어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그냥 흐지부지 살다가 이젠 늙어버린 것이다. 뭐 뾰족한 수가 없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도 모르겠고 안다고 해도 그걸 거의 완벽히 이뤄 대만족하는 순간이 있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한 것이다. 오늘도 또 다른 걱정거리를 붙들고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좀 더 확고해져 고민 같은 것도 사라지고 안정된 생활을 향유(享有)할 것 같았는데 막상 닥치니 또 다른 문제, 걱정과 씨름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건 실은 ‘인생, 뭐 있어?’처럼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나를 엄습하는 것이다. 근심과 걱정, 불안이 평생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그러니 ‘인생, 뭐 있어?’ 가 상징(象徵)하듯이 지금 내 감정에 충실하고 일단 지금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마음이 이끄는 대로-그게 가능하면-하는 게 좋고 현재를, 소홀함 없이 살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인생 뭐 있어? ● 처음엔 생각 없이 막사는 것 같아 위화감이 들었다. ● 싸구려 트로트 가사처럼 들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같이 싸잡아 천박하게 봤다. ● 20대 청춘이 엊그제 같았는데 나도 벌써 60이 훌쩍 넘어버렸다. ● 알고 보니 인생은, 그렇게 고상하지도 않고 결국 별 의미 없이 덧없는 것 같이 느껴져 저 말이 이젠 너무나 공감 가고 실감하기에 이르렀다. ● 현재 주어진 인생의 소중함을 알고 지금 끌리는 것에 소홀히 하지 말고 자신이 향하는 곳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고 말았다.
글은 지금의 자길 속이지 않고 솔직하게 써야 잘 쓴 것 같고 자기 스스로도 만족한다.
글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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