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특이한 점은 작가의 서문이 네 개라는 것입니다.
첫 출간이던 1993년부터 한국어판이 출간된 1996년, 한국어 개정판이 나온 2007년, 그리고 새로운 한국어 개정판이 출간된 2023년에 씌여진 서문입니다. 서문만 12쪽이라 오늘은 이것만 정리하려 하는데, 귀하디 귀한 문장들 뿐이라 맘에 드는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는 게.... 서문의 대부분 문장들이 퍼렇게 멍이 들었습니다. 그 중, 가장 마음에 닿은 문장 몇 개만 옮겨 적습니다.
- .....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익숙한 것이 가장 좋은 거라 느끼곤 한다. 익숙함이란 자신의 습관과 생각에 따라 진행되고, 익숙지 않은 것은 자신의 생각과 습관과 부딪히기 때문이다.
(2023년 8월 9일)
- 모든 독자는 문학작품에서 자기가 일상에서 느껴온 것들을 찾고 싶어 한다. 작가나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자기가 느껴온 것 말이다. 문학의 신비로운 힘은 여기서 나온다. 모든 작품은 누군가가 읽기 전까지는 단지 하나의 작품일 뿐이지만, 천 명이 읽으면 천 개의 작품이 된다. 만 명이 읽으면 만 개의 작품이 되고, 백만 명 혹은 그 이상이 읽는다면 백만 개 혹은 그 이상의 작품이 된다.
(2007년 5월 5일)
> 작가의 작품에 대한 가치를 이보다 더 멋지게 표현할 수가 있을까요.
- 이 작품의 원제 '살아간다는 것 活着(Huózhe)'은 매우 힘이 넘치는 말이다. 그 힘은 절규나 공격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인내, 즉 생명이 우리에게 부여한 책임과 현실이 우리에게 준 행복과 고통, 무료함과 평범함을 견뎌내는 데서 나온다.
(1996년 10월 17일)
- 성공하지 못한 작가들도 현실을 묘사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들의 붓끝에서 나오는 현실이 폭로하는 것은 단지 하나의 환경, 즉 단단히 굳거나 죽어버린 현실일 뿐이다. 그들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또 어떻게 살아갈지를 제대로 볼 줄 모른다..... ...... 이런 작가는 있는 그대로의 실제를 묘사할 뿐, 현실을 묘사하는 작품을 쓰고 있는 게 아니다.
> 달리 표현하면, 성공하지 못한 작가들의 작품은 취재를 끝낸 기사거리일 뿐 '현실을 묘사한 작품'이 아니라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 작가의 사명은 발설이나 고발 혹은 폭로가 아니다. 작가는 독자에게 고상함을 보여줘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고상함이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일체의 사물을 이해한 뒤에 오는 초연함, 선과 악을 차별하지 않는 마음, 그리고 동정의 눈으로 세상을 대하는 태도다.
(1993년 7월 27일)
> 기자와 작가의 차이점을 아주 명확하게 알려주는 문장입니다.
기자의 역할은 순간을 기술하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작가의 역할은 과거와 현재 또는 미래까지도 세련되고 우아한 방법으로 서술하는 것입니다. 한 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가 왜 노벨상을 받을 만큼 대단한 작품인지 알 수 있는 문장이기도 합니다.
위화의 [인생]
D-29

Nina

Nina
p19
- 10년 전에 나는 한가하게 놀고먹기 좋은 직업을 얻었다. 그것은 바로 촌에 가서 민요를 수집하는 일이었다. 그해 여름 내내 나는 어지러이 노니는 참새처럼, 시끄러운 매미 소리와 햇빛 가득한 시골 마을 들녘에서 빈둥거렸다.
> 소설의 첫 구절을 읽으며 화자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한적하고 여유와 게으름이 공존하며 모양새를 갖춘 시골 마을과 잔잔히 흐르는 시내에서 튜브를 타고 눈을 감은 채 물살에 몸을 맡기듯 그 분위기를 즐기는 화자의 모습 말입니다. 그리고 잠깐 부러웠습니다.
P22
- 내가 푸구이라는 노인을 만난 건 여름이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P23
- "소는 밭을 갈아야 하고, 개는 집을 지켜야 하며, 중을 탁발을 해야 하고, 닭은 새벽을 알려야 하며, 여자라면 베를 짜야 하는 법. 그런데 너는 어째서 소 주제에 밭을 안 갈겠다는 거야? 이건 예부터 전해온 도리라고. 가자, 가자."
> 밭을 갈지 않으려 고집을 부리는 소에게 하는 푸구이의 말은 틀리지도 웃기지도 않습니다만 그 후에 이어지는 푸구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박장대소가 나오는 내용입니다.
P24
-"얼시! 유칭! 게으름 피워선 안 돼. 자전! 펑샤! 잘하는구나. 쿠건! 너도 잘한다."
소 한 마리에 이렇게 이름이 많다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밭께로 가서 노인에게 물었다.
...... 그러자 노인이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소가 자기만 밭을 가는 줄 알까 봐 이름을 여러 개 불러서 속이는 거지. 다른 소도 밭을 갈고 있는 줄 알면 기분이 좋을 테니 밭도 신나게 갈지 않겠소?"
>과연 소 뿐일까요. 회사에 불만이 많은 직장인들도 출근과 퇴근길에 마주하고 함께 걷는 그 많은 사람들을 보며 나만 이리 고생하는 게 아니다, 다들 그렇게 견디며 사는 거지..... 스스로를 위로하고 자기최면을 걸며 지내지 않나 싶습니다.
* 한국에서 일을 하는 동안 일반적으로 불리는 출근이나 퇴근 시간대에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본 경험이 없는 제가 이번 여름 딱 한 번 지옥철을 경험했습니다. 5박6일의 방콕 일정을 끝내고 아침 비행기로 도착해 공항철도로 숙소가 있는 상암동까지 가는 길이었습니다.
공항버스는 터미널2를 출발해 제가 타려는 터미널1에 도착했을 뿐인데 좌석은 물론 서 있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기내 가방과 크기 않은 개인 가방을 소지한 까닭에 기둥 옆에 섰는데 운서, 영종, 청라를 거치며 출근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말 그대로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지하철 내부는 가득 찼습니다. 45도쯤 기울어진 제 몸은 가방을 놓치지 않기 위해 어찌나 손잡이를 꼭 쥐고 있었던지 나중에 보니 멍이 들었더군요. 그렇게 차곡차곡 채워지기만 하던 승객들은 다행히도 김포공항과 마곡나루를 거치며 절반쯤 빠져나갔고 저는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큰 무리 없이 내릴 수 있었습니다.
광장공포증까지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을 지극히 피하는 저로서는 불편과 불안과 공포가 지속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매일 이런 상황을 견디며 출근과 퇴근을 한다는 친구의 말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는데 문득, 영등포에서 광화문까지 등하교를 했던 어릴 적 생각이 났습니다.
숨이 막히도록 사람들로 가득한 버스를 타기 싫어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등교 준비를 하고 하교 후엔 삼십 분쯤 새문안 교회 앞 정류장 주변을 서성이며 학생들이 사라지길 기다리던 시절이 제게 있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한국은 학생도 어른도 견디는 사회이지 싶습니다.
> 아직 1장을 끝내지 않았습니다만 이제껏 읽은 내용을 살펴 보면, 푸구이는 나름 갑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그의 아버지대부터 시작된, 재산 낭비의 원인이 된, 노름과 여자와 술로 결국 푸구이 대에서 모든 전답을 노름으로 날려버리는 과정이 적혀 있습니다. 그래서 P23에 나오는 푸구이가 소에게 꾸짖는 말이 우습기 그지 없습니다. 집안의 장남이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푸구이가 한 일이라고는 노름과 술과 여자와 방탕한 짓거리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Nina
p54
그는 아주 어렸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우리 할아버지가 집으로 데려오셨는데 끝까지 결혼을 못 했어. 그날 창건은 나처럼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맨살이 그대로 드러난 다리로 걸어가다가 내가 쭈그리고 앉아 있는 걸 보고는 놀라서 소리쳤지.
"도련님."
나도 그에게 소리를 질렀다네.
"도련님이라 부르지 말고 짐승이라고 불러."
그러나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어.
"빌어먹어도 황제는 황제고, 돈이 없어도 도련님은 도련님인 걸요."
그 말을 들으니 방금 닦아낸 얼굴에 또다시 눈물이 흘러내리더군. 창건도 내 곁에 쭈그리고 앉아 얼굴을 무릎에 묻고 울었지. 둘 다 한바탕 울고 난 뒤에 내가 말했다네.
"날이 곧 저물 텐데, 자네 집으로 돌아가게."
그러자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한 걸음 한 걸음 멀어져가며 웅얼거리더군.
"그 집 말고 나한테 집이 또 어디 있다고."
나는 창건의 가슴에 한 번 더 못을 박았던 거야. 그가 혈혈단신 살아온 걸 뻔히 봐왔으면서도 말이지. 가슴이 어찌나 저리던지. 창건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에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갔다네. 날은 이미 저문 뒤였지.
> 전답은 물론 집까지 저당을 잡히며 빚을 갚는데 온 재산을 써버린 푸구이가 모르는 게 있었습니다. 하룻밤 비를 피하고 밥을 먹기 위해 매일 부지런히 머슴일을 하며 살아온 창건의 삶 말입니다. 하긴, 머슴살이에서 벗어나도 갈 데는 커녕 끼니 때울 곳도 없는 이의 황망함을 노름과 술에 취해 살던 푸구이가 알았을 리 만무합니다. 그래도 그 말을 해놓고 '가슴이 어찌나 저리던지'라고 말하는 걸 보면 안하무인격 모진 사람은 아니구나 싶습니다.
p67
그는 과거의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이었고, 자기가 젊었을 때 살았던 방식뿐만 아니라 어떻게 늙어가는지도 정확하게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 그는 과거를 회상하기 좋아했고, 자기 이야기 하는 걸 좋아했다. 마치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한 번, 또 한 번 그 삶을 다시 살아보는 것 같았다.
> 이제 1장을 읽은 저로서는 아직 푸구이가 어떤 이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과거에 대해 '정확히' 서술할 수 있다고 해서 과연 그가 자신의 삶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걸까요. 잘못했던 과거를 여러 번 되새김질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요. 어제 혹은 오늘과 다른 내일을 만들기 위해서는 과거를 돌이켜보는 것에 그쳐서는 안됩니다. 아직은 그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 수 없어 저는 화자의 의견에 동의할 수도, 아니라 부정할 수도 없습니다.

Nina
p76
- 내가 도박으로 가산을 날린 후에 가장 고통을 받은 사람은 창건이었다네. 창건은 한쳥생 우리 집 일을 했으니, 관례에 따르자면 나이든 후에는 우리 집에서 그를 부양해야 했거든. 그런데 우리 집이 망해버렸으니 그는 나가서 밥을 빌어먹는 수밖에 없었지.
> 평생 주인집에서 살며 고생한 나이든 노비는 주인집에서 부양할 의무가 있다는 푸구이의 생각에서 사람다움이 느껴집니다만 구글 검색으로 보면 대부분 나이든 노비는 다른 곳에 팔거나 집에서 내보낸다고 합니다. 이는 중국도 한국도 매한가지라고 검색이 됩니다. 집에서 쫓겨난 노비는 소설 속 창건처럼 떠돌며 빌어먹는 경우가 많았다고도 합니다. 초가집에서 하루하루 끼니를 연명하는 주인집에 한시도 폐를 끼치기 싫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떠나는 창건의 모습에 마음이 짠해집니다.
p113
- 어쨌든 나는 집에 돌아왔다네. 그날 밤엔 도무지 잠이 오지 않더구만. 나와 자전, 그리고 두 아이가 나란히 누워 있는데, 바람이 지붕 위의 띠를 흔드는 소리가 들리고 환한 달빛이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게 보였지. 그에 따라 내 마음도 편안해지고, 또 따뜻해졌다네. 나는 잠시 자전을 쓰다듬다가, 또 두 아이를 쓰다듬고는 나 자신에게 말했어.
"나는 집에 돌아온 거야."
> 어머니가 쓰러져 성내로 의원을 부르러 나갔다가 강제 징집되어 이 년을 전쟁터로 끌려 다니던 푸구이가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 날입니다. 푸구이는 징집 당하기 이전에도 그러했지만 이 후로 더욱 뼈를 갈아가며 밭일을 해 가족을 부양합니다.
p116
- "저는 복 같은 거 바라지 않아요. 해마다 당신한테 새 신발을 지어줄 수만 있다면 그걸로 됐어요."
> 자전의 이 대답에는 모든 게 들어 있습니다. 복은 바라지 않지만 건강하여 새 신발이 필요한 남편이 곁에 있으면 된다는.... 아내의 소박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문장입니다.
2장을 끝냈습니다. 이제 1/3 정도를 읽은 셈입니다.
2장을 사자성어로 정리하면 [새옹지마]입니다. 푸구이는 노름으로 전재산을 날리고 가난뱅이가 되었다가 전쟁터에까지 끌려 갔습니다. 국공내전은 공산당의 승리로 끝나고 푸구이의 모든 재산을 빼앗아 갑부가 되어 떵떵거리던 룽얼은 인민정부로부터 악덕지주로 지명되어 총살을 당했습니다.
저는,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저를 봐도 그러합니다. 그런 까닭에 푸구이가 이리도 다른 인격의 사람이 되었다는 게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만 누구나 또 어디나 예외는 있겠지요.

Nina
p175
- 여자란 사람들은, 한번 화가 나면 못 하는 일도 없고 못 하는 말도 없다네. 내가 일을 못 하게 하니까 자기를 내치는 거라 생각한 모양이야.
> 자전은 구루병에 걸려 밭일을 할 수 없었는데, 욕심을 내어 일을 하려다가는 넘어져 다치기 일쑤였습니다. 그런 자전을 말리는 푸구이에게 얌전하고 차분한 자전이 화를 냈던 기억을 떠올리며 화자에게 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과연, 여자만 그럴까요?
p180
- 그 시절에는 밥 한 그릇과 목숨을 바꾸라고 하면 나서는 사람이 있었을 거야.
- 그 시절에 쌀 한 자루면 산해진미라고 할 수 있었지.
- 모든 식구가 집으로 돌아온 뒤 나는 문을 닫고 빗장을 걸었지.
- 내 평생 그렇게 향기로운 죽은 처음이었어.
> 공산당이 중국을 차지하고 난 후 토지를 포함한 농민들의 모든 재산은 당에 귀속되고 공동체 농장에서의 공동 노동을 통해 임금을 받게 됩니다. 농민들의 소와 양과 돼지는 농민들을 위한 식량 배급으로 얼마 되지 않아 사라지고 처참하기 그지 없는 보릿고개를 겪게 되는 과정이 3장 전반에 걸쳐 적혀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한국 상황이 겹쳐 떠올려지며 먹먹함을 느낍니다.
이번에 읽은 내용 중 가장 마음에 들어온 구절은 이것입니다.
p170
- 우리 식구는 한두 달 동안 배불리 먹어본 적이 없었지만, 양은 여전히 살이 토실토실 올라 있었다네. 매일같이 양 우리에서 메 하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는데, 그건 다 유칭의 공이었지. 그 녀석은 자기는 배가 고파서 종일 어지럽다고 하면서도, 양한테 풀을 적게 가져다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네. 자기 양을 어찌나 아끼던지 자전이 그 애를 애지중지하는 거랑 꼭 닮았더군.
> 양을 위하는 유칭의 모습을 읽으며 '유칭은 엄마구나.'라고 생각했는데 푸구이도 그랬던 모양입니다. 사랑은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낭만과 욕정이 동반되는 Eros, 믿음과 우정의 Philia, 요즘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소유보다는 유희를 추구하는 Ludus, 친구같은 편안한 Storge, 소유와 집착의 Mania, 효율성을 우선하는 Pragma, 이타적인 Agape 가 그것입니다. 유청처럼 어린 아이도 느끼는 감정..... 인류에게서 맨처음 시작된 사랑의 감정은 자식을 위하는 어머니의 사랑, 모성이 아닐까 생각되는 대목입니다.

Nina
p187
- "펑샤는 다 컸어요. 그 아이한테 혼처를 찾아줄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텐데. 유칭은 아직 어리고 철이 없어요. 자꾸 때리지 마세요. 그냥 겁만 줘도 된다구요."
자전이 뒷일을 부탁하는 걸 들으니 마음이 어찌나 쓰리고 아팠는지 모르네.
"이치대로라면 나는 옛날에 죽었어야 해. 전쟁 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유독 나만 안 죽었잖소. 그건 바로 내가 매일같이 살아서 집에 돌아가 가족들을 만나야 한다고 속으로 주문을 건 덕분이지. 그런데 당신은 우리를 이렇게 쉽게 버리겠다는 거야?"
내 말이 아주 쓸모없지는 않았는지, 다음날 눈을 떠보니 자전이 나를 찬찬히 바라보고 있다가 가녀린 목소리로 말하더군.
"푸구이, 나 죽고 싶지 않아요. 당신이랑 애들 얼굴 매일 보고 싶어요."
p199
- "유칭이 곧 그리로 갈 테니 잘 대해주세요. 저는 그 애가 살아 있을 때 잘해주지 못했어요. 두 분이 저 대신 그 애를 아껴주세요."
구덩이 속에 누워 있는 유칭은 보면 볼수록 작아 보였다네. 13년이나 산 아이라기보다는 자전이 이제 막 낳은 아이 같았어. 손으로 흙을 퍼서 그 위를 덮고 작은 돌멩이들을 골라냈지. 행여 그것들이 유칭의 몸을 아프게 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거든.
p202, 203
- "밤마다 당신이 마을 서쪽에서 돌아오는 소리를 듣고 유칭이 죽었다는 걸 알았어요."
유칭의 무덤 앞에 이르자 자전은 등에서 내려달라고 하더니, 무덤 위에 그대로 엎어졌다네.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고, 무덤 위에 놓은 두 손은 꼭 유칭을 쓰다듬는 듯했지. 하지만 기력이 없어 손가락 몇 개를 꼼지락거릴 뿐이었어. 그런 모습을 보니 괴로워서 숨이 턱 막혀버릴 것 같더구먼. 그렇게 몰래 묻어서 자전이 마지막으로 아들 녀석 얼굴 한번 못 보게 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 ....... 자전은 마을 어귀에 좀 다시 가보자고 하더군. 그곳에 다다랐을 때 내 옷은 흠뻑 젖어 있었지. 자전이 울면서 말했다네.
"유칭은 이제 이 길을 달라올 수 없겠군요."
난 구불구불 성안으로 난 작은 길을 바라보았지. 내 아들이 벗은 발로 뛰어오는 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네. 달빛만 처연하게 길을 비추는데, 마치 그 길 가득 하얀 소금을 흩뿌려놓은 것 같았어.
>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나면 떠난 이와 함께 했던 기억과 추억은 더욱 짙어져 문득문득 아쉽고 서럽습니다. 이제 겨우 세상을 알아가는 열세 살 자식이라면 더 그러했겠구나 싶어 마음이 아립니다.
p208
- 처음에는 꺽꺽거리며 울다가 한바탕 실컷 울고 나서는 까마득한 옛일을 떠올렸지. 생각하면 할수록 또 눈물이 나더구먼. 세월은 정말 빨리도 흘러갔어. 자전은 나한테 시집온 다음부터 단 하루도 편히 지낸 날이 없었다네. 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떠나야 할 때가 오고 만 거야. 그렇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중에는 그저 울기만 하고, 괴로워만 하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 일이 이렇게 된 이상 현실적인 일들을 생각해야 했다네. 자전의 뒷일은 남부끄럽지 않게 해주고 싶었으니까. ..... ..... 형편이 아무리 어려워도 자전한테는 관을 짜주고 싶었다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양심에 꺼려서 살 수가 없을 것 같았거든. ...... ...... 나는 마을에 있는 집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돈을 빌렸다네. 내가 어떻게 되기라도 한 건지, 자전한테 관을 짜줄 거라는 말만 꺼냈다 하면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어.
> 자전의 몸상태는 점점 나빠지고 진료를 끝낸 의사로부터 자전이 이제 얼마 못 살 거라는 말을 듣고 푸구이는 관에 넣어 묻어주고 싶은 마음이 너무도 간절해 없는 살림에 주변 이웃들에게 돈을 빌려 관을 짭니다. 관이 짜여지는 동안 자전은 기운을 차리고 펑샤의 결혼은 물론 임신해서 아이를 낳는 순간까지 행복하게 삽니다.
p279
- 저녁이 되면 우리 두 사람은 문간에 앉아 해가 뉘엿뉘엿 지면서 들판을 온통 붉게 물들이는 모습을 바라보곤 했어. 또 마을 사람들이 왁자하게 떠드는 소리를 듣기도 했고. 그럴 때면 집에서 기르는 암탉 두 마리가 우리 앞을 오락가락했다네. 쿠건과 나는 아주 친해서 함께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지.
> 저는 이 대목을 읽고, 푸구이의 인생에서 어쩌면 전쟁터에 끌려 나갔다가 이 년 만에 집으로 돌아와 가족을 만난 그 날보다 훨씬 찬란하고 행복한 순간들이 아니었을까 생각했습니다. 사랑하는 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노을을 지켜 보거나 흙길을 걸으며 작은 새들과 다람쥐들의 부지런한 움직임을 살펴 본다거나 가던 걸음을 멈추고 다리 밑을 지나는 물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는, 그런 경험이 없다면 공감할 수 없는 인생에서의 가장 풍족하고 아름다운 순간입니다.
p283
- 나는 여전히 그 타령이야. 허리도 자주 쑤시고 눈도 침침하지만 귀는 아직 쓸 만하지. 마을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보지 않고도 누가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라니까. 이 생각 저 생각 하다 보면, 때로는 마음이 아프지만 때로는 아주 안심이 돼. 우리 식구들 전부 내가 장례를 치러주고, 내 손으로 직접 묻어주지 않았나. 언젠가 내가 다리 뻗고 죽는 날이 와도 누구를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말일세.
p284
- 사람은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게 좋은 거야. 아옹다옹해봐야 자기 목숨이나 내놓게 될 뿐이라네.
> 위화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과연 '평범'이란 무엇일까요.

Nina
이번에 읽은 작품 [인생]은 원작의 제목인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920년 즈음에 부잣집 도련님으로 태어나 열대여섯 살쯤 결혼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여자와 노름에 빠져 스무 살 즈음에 전재산을 말아 먹고 강제 징집되었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대약진운동으로 인한 기근과 노동으로 고생 고생하던 중 질병과 의료 사고, 기근 등으로 아들, 딸, 아내와 사위는 물론 하나 뿐인 손자까지 모두 잃고 늙은 소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푸구이의 이야기를 청자로서 들려줍니다.
부농의 자식이 노름에 빠졌던 이유를 푸구이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도박은 완전히 달랐어. 통쾌하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하고, 특히 그 긴장감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편안함을 줬지. 그 이전엔 중이 되면 종을 치듯이, 그날그날 되는 대로 살았거든.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하루를 또 어떻게 보내나 하는 생각이 머리가 지끈지끈했어.'
두 번의 국공내전과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된 이후 자행된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의 시기를 한 사람의 삶의 과정을 통해 차근차근 그려낸 작품입니다.

Nina
살다 보니 운이라는 것의 영향력이 참 큽니다.
그래서 푸구이의 운은 과연 어떠했나 되짚어 봅니다.
푸구이는 태어날 때 '금수저'였습니다. 즉, 재물운을 갖고 났습니다.
아버지는 한량이었지만 가정폭력이나 체벌이 심하지 않았고 어머니 또한 아들을 귀히 여기는 까닭에 푸구이의 부모복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아내 지전은 외모 뿐 아니라 성심을 다해 자녀를 돌보고 남편을 아끼는 현모양처입니다. 그러니 처복도 타고난 모양입니다.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두었고 사위와 손자까지 뒀으니 자식복도 있지 싶지만 결국 자식 둘은 물론 사위와 어린 손자도 앞세워 저세상으로 보냈으니 꼭 그렇다고만 볼 수는 없겠습니다. 군에 강제 징집되어 전쟁터에서 이 년을 보냈지만 살아 돌아왔으니 수명복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귀가 밝고 건강하니 건강복도 있구요.
재물복은 노름으로 사라지고 부모는 급사와 질병으로 사망했는데 어머니의 사망은 지켜보지도 못했습니다. 기근에도 푸구이와 열심히 일하며 자식을 돌보던 아내는 구루병에 걸려 시름시름 힘을 잃다가 아들 유칭의 사망을 겪은 후에도 겨우 견디나 싶었는데 결국 딸의 사망 소식에 더이상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세상을 떠납니다. 모든 복이 떠난 듯하지만 푸구이는 건강하게 혼자 늙어갑니다.
푸구이가 살면서 잘못한 것은 무엇인가도 떠올려 봅니다.
전재산을 노름으로 날려 버린 일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데 사실 그 일 외에는(몇 년쯤 저지른 잘못이기에 가볍게 여길 수는 없지만) 딱히 없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공산당 집권 후에는 그 덕분(?)에 악덕지주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강제 징집도 말 그대로 의원을 만나러 성내에 들어갔다가 붙잡혀 끌려갔고 고향에 돌아와서는 몸이 부서져라 뼈가 부러져라 가족을 위해 정말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아내와 아들과 딸과 사위와 손자를 차례로 잃었습니다.
어쩌면, 시대가 그에게 불행을 안겨준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문화대혁명으로 인한 교육 환경의 부재, 누구를 위하는지도 모르는 전쟁, 제대로 자리잡지 않은 의료 제도, 공산당 집권으로 발생한 식자재 고갈과 임금 갈등...... 기울이는 노력과 수고와는 상관 없이 그저 쳇바퀴를 도는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녕 시대를 잘 타고나야 하나 싶은 생각이 문득 듭니다.
과연, 위화 작가는 푸구이의 삶을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곰곰히 생각을 해 봅니다.
'삶이란 이렇게 물 흐르듯 사는 거야.'
'아웅다웅 혹은 땀 삐질거리며 살아봤자 나이 들어서 뒤돌아보면 다 별게 아닌 거야. 그냥 사는 거지.'
'삶은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거야. 그러다 사라지는 거고.'
1960년생 위화 작가는 주변에서 그 격정의 시대를 살아온 삶들이 저무는 모습을 지켜보며 살아왔을 겁니다. 이 책이 쓰여진 1993년에도 여전히 그들은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사회 제도와 환경에서 버텨낼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시간을 보며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합니다.
검색을 해보면 사실 지금의 중국도 1950년대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도시와 농촌 간 빈부의 격차는 이제 정부에서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크게 벌어졌고 고등학교 진학률 또한 80%인 도시에 비해 농촌은 11% 정도로 교육에서의 격차도 큽니다. 국영기업들의 부정부패는 물론 공무원들의 사리사욕도 눈 뜨면 드러나는 현실이니 그 넓은 땅에서 가난한 사람은 계속 가난할 뿐입니다.

Nina
위화 작가의 [인생]은 겉으로 읽으면 한 금수저의 몰락과 전쟁을 치른 후에 겪는 가난하고 불운한 삶의 이야기입니다. 그럼, 속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요.
저는 이 책을 한 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곁에 두고 싶습니다. 큰 잘못 어쩌면 아무 잘못 없이 시대의 제도의 국가의 횡포와 강요와 억지에 눈 뜨고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국민들 시민들 농부들 학생들 아이들.....
제가 아는 중국의 역사는 그저 시험 문제에 나오는 것들 뿐입니다. 중일전쟁 전후에 벌어진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대약진 운동으로 인한 아사자 오천만 명, 문화대혁명으로 인한 문화 파괴..... 등.
[인생]은 역사적으로 커다란 획이 그어지던 사십 년 남짓의 중국 땅에서 벌어진 참혹하고 잔인한 일들이 한 가정의 가장의 삶 아니 한 평범하기 그지 없는 누군가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섬세한 필체로 보여 줍니다. 마치 [소년이 온다]처럼 말입니다. 다시는 있어서는 안될, 국가가 자행한 횡포와 인재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기근으로 인한 그 많은 생명들의 희생을 늙은 소를 몰며 혼잣말을 하는 푸구이의 목소리를 통해 들려 줍니다.
"사람은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게 좋은 거야. 아옹다옹해봐야 자기 목숨이나 내놓게 될 뿐이라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위화 작가도 푸구이도 알지 않을까요. 내 이웃이 평온하게 살기 바라는 마음, 내 가족이 편안한 하루를 맞이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정의를 위해 공정을 위해 평등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사람들이 있고 또 그런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한국은 오랜 일제강점기를 거쳤지만 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거룩한 희생으로 다시 세워진 자주 독립 국가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오늘도 날카로운 감각과 지성으로 많은 이들이 애쓰고 있는 중입니다.
겨울에 아주 짧은 일정으로 한국에 들어가는데 시간을 내 서점에 들러야겠습니다.
위화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합니다.
위화 작가의 [인생]을 출간할 당시의 서문을 다시 옮깁니다.
- 성공하지 못한 작가들도 현실을 묘사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들의 붓끝에서 나오는 현실이 폭로하는 것은 단지 하나의 환경, 즉 단단히 굳거나 죽어버린 현실일 뿐이다. 그들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또 어떻게 살아갈지를 제대로 볼 줄 모른다. 그런 작가들이 시시콜콜 따지기 좋아하는 인물을 묘사할 때, 우리는 작가 본인이 바로 그렇게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이란 걸 알 수 있다. 이런 작가는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묘사할 뿐, 현실을 묘사하는 작품을 쓰고 있는 게 아니다..... ..... 나는 진정한 작가가 찾으려는 것은 진리, 즉 도덕적인 판단을 배격하는 진리라는 걸 깨달았다. 작가의 사명은 발설이나 고발 혹은 폭로가 아니다. 작가는 독자에게 고상함을 보여줘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고상함이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일체의 사물을 이해한 뒤에 오는 초연함, 선과 악을 차별하지 않는 마음, 그리고 동정의 눈으로 세상을 대하는 태도다. ...... ...... 이 소설에서 나는 사람이 고통을 감내하는 능력과 세상에 대한 낙관적인 태도에 관해 썼다.

Nina
이제 [인생]은 제 책꽂이에 꽂힙니다.
주말에 집에 가면 이번 여행에서 가져온 책들을 살펴봐야겠습니다.
게으른 제게 꾸준히 책 읽을 기회를 주는 '그믐'에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덕분입니다.
중간에 참여할 수 없는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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