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클래식 2025] 9월, 제 2의 성

D-29
그러나 대개 그런 경험은 처녀 시절의 한 단계에 불과하다. 그런 경험은 너무 쉽기 때문에 오래가지 않는다. 손위 여자에게 바치는 사랑 속에서 젊은 처녀는 자신의 미래를 갈망한다. 그녀는 자기 우상과 일체가 되고 싶어 한다. 예외적으로 뛰어나지 않는 한, 우상은 곧 그 오라를 잃어버린다.
제2의 성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이정순 옮김
손아래 여자가 자기를 확립하기 시작하면, 손위의 여자를 평가하고 비교한다. 마침 자기와 닮았고 두렵게 하지 않기 때문에 선택된 그 타자는 오랫동안 경외심을 갖게 할 정도로 아주 다르지는 않다. 남성 신들은 아득히 먼 그들의 하늘에 있으므로 그보다 더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젊은 처녀의 호기심과 관능은 그녀에게 더욱 거친 포옹을 욕망하도록 부추긴다. 그녀들은 대부분 처음부터 동성애의 모험을 과도기적 단계나 통과의례나 대기 상태 정도로밖에 고려하지 않았다.
제2의 성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이정순 옮김
즉, 젊은 처녀의 나르시시즘과 그녀의 섹슈얼리티가 원하는 경험 사이에는 갈등이 있다. 여자는 자기 포기 한가운데서 자기를 본질로써 되찾는 조건에서만 자기를 비본질로써 수락한다. 자기를 객체로 만들면서 그녀는 우상이 되어 그 속에서 득의양양하게 자기를 인정한다. 그러나 그녀에게 비본질로 돌아갈 것을 촉구하는 가차 없는 변증법을 거부한다.
제2의 성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이정순 옮김
그녀는 자기 매력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매력을 자유로이 행사하는 것처럼 보이는 한에서 승리감에 도취한다. 그러나 자기의 용모, 태도, 육체가 남에게 알려져 수모를 당한다고 생각하면 이런 것들을 탐내는 타인의 낯설고 무례한 자유로부터 감추려고 한다. 그것이 이 본원적 수치심의 깊은 의미이며, 이 수치심은 가장 무모한 교태와 뜻하지 않게 충돌한다.
제2의 성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이정순 옮김
사춘기 소녀에게서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는 항의 형태 중 하나가 조롱이다. 여고생들이나 여점원들은 감상적이거나 외설적인 이야기를 나눌 때, 자기의 가벼운 연애 이야기를 하거나 길에서 남자들을 마주칠 때, 연인들이 키스하는 것을 목격할 때 ‘웃음을 터트린다.’
제2의 성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이정순 옮김
이러한 태도는 이런 나이에 아주 빈번한 자해에서 훨씬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젊은 처녀는 면도칼로 넓적다리에 상처를 내고, 자기 몸을 담뱃불로 지지고 칼로 베고, 살갗을 벗기기도 한다.
제2의 성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이정순 옮김
10대 여성의 자해는 보부아르 시대에도 드문 일은 아니었군요. 아시아 문화권에서도 그랬을지 궁금합니다.
상당히 많은 수의 젊은 처녀가 도벽 환자다. 이런 도벽은 대단히 모호한 성질의 ‘성적 승화’이다. 법을 어기고 금기를 위반하고자 하는 의지나, 금지된 행동에 현혹되어 느끼는 짜릿함은 도벽이 있는 여자에게는 분명 본질적이다.
제2의 성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이정순 옮김
그러나 거기에는 양면성이 있다. 권리도 없이 물건을 훔치는 것은 오만하게 자기의 자주성을 주장하는 것이고, 훔친 물건과 절도를 벌하는 사회 앞에서 주체로 자처하는 것이며, 기성질서를 거부하고 그 옹호자들에게 도전하는 것이다.
제2의 성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이정순 옮김
남자는 성적으로 흥분한 뒤에 반드시 쾌락이 수반되는 완전한 해방을 얻는다. 물론 쾌락만이 목적은 아니었다. 쾌락에는 종종 환멸이 뒤따른다. 욕구가 채워졌다기보다 그저 사라졌기 때문이다. 아무튼 정해진 행위는 이행되었고, 남자는 다시 온전한 몸이 된다. 그가 종種에게 한 봉사는 자신의 향락과 통합되었다.
제2의 성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이정순 옮김
여자의 에로티시즘은 여자가 처한 상황의 복잡성을 반영하기에 훨씬 더 복잡하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암컷은 종으로서의 힘을 자기의 개별적인 생활에 통합시키는 대신, 그 개별적 목적과 분리된 이해관계를 가진 종에 시달리고 있다.
제2의 성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이정순 옮김
사디즘적 마조히즘의 기벽에는 하나의 거부를 통해 여자로서의 미래를 수락하는 것이다. 우선 그녀가 자기를 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증오심을 품고 자기의 몸을 훼손하지는 않을 것이다. 난폭함의 폭발조차도 체념의 토대 위에서 일어난다. 젊은 처녀에게는 자기주장과 자기를 내세우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그녀의 가슴에 그토록 많은 반항심을 불어넣는 원인이 바로 거기에 있다. 그녀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도, 그곳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도 희망하지 않는다.
제2의 성 491면,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이정순 옮김
그녀는 자신이 결박된 것을 알고 있거나 적어도 그렇다고 믿고 있으며, 그리고 어쩌면 결박되어 있기를 원하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파괴뿐이다. 그녀의 격심한 고통, 격노, 격분 속에는 절망이 있다. 화가 치미는 파티가 열리는 동안에 그녀는 유리잔을 깨뜨리고 유리창을 부수고 화병을 깨뜨린다. 하지만 그것은 상징적인 저항에 불과하다. 젊은 처녀는 현재의 무기력을 통해 미래의 자기 복종에 반항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헛된 분노 폭발은 구속을 더욱 조일 뿐이다.
제2의 성 492면,,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이정순 옮김
강한 기질의 여성에게 자신이 바라는 것을 취하고 소유하려는 경향이 남아 있으면, 르네 비비앙처럼 동성애로 기울게 된다. 아니면 그녀가 여자로 취급할 수 있는 남자들만 사랑하게 될 것이다.
제2의 성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이정순 옮김
그러나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대다수 여자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수동적인 섹슈얼리티 역시 발달했다. 즉, 여자는 안기고 애무받는 것을 좋아하며, 특히 사춘기 이후부터는 한 남자의 품 안에서 육체가 되기를 희망한다. 주체의 역할은 보통 남자에게 돌아온다.
제2의 성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이정순 옮김
여자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남자는 아름다울 필요가 없다”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어왔다. 그녀는 남자에게서 객체의 무기력한 특징이 아닌 남성적 힘과 정력을 찾아야 한다. 그리하여 자기 내부에서 양분된다. 즉, 그녀는 몸을 떠는 물체로 자신을 변신시키는 강건한 포옹을 청한다.
제2의 성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이정순 옮김
더욱이 남자가 공손하고 정중하다 할지라도 최초의 삽입은 언제나 겁탈이다. 왜냐하면 여자는 입술, 유방을 애무해 주기를 바라고, 어쩌면 허벅지 사이에서 이미 알고 있거나 혹은 예감하고 있는 쾌락을 갈망하고 있는데, 이제 남자의 성기가 젊은 처녀를 찢고 초대받지 않은 곳에 침입하기 때문이다. 남편이나 애인의 품 안에서 마침내 자기의 관능적인 꿈이 성취된다고 믿는 순간, 성기의 은밀한 부분에 예기치 않은 통증을 느끼며 멍해진 처녀의 고통스러운 놀라움은 그동안 많이 묘사되었다. 꿈은 자취를 감추고 흥분은 사라진 자리에 사랑이 외과적 수술의 모습을 띤다.
제2의 성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이정순 옮김
물론 남자의 성기는 그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가로무늬 근육이 아니다. 그것은 쟁기도 검도 아닌 살덩이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남자는 그 살덩이에 임의의 운동을 부여한다. 남자는 가고 오고, 멈췄다가 다시 움직이는 데 반해, 여자는 그 임의의 운동을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인다. 사랑의 체위를 선택하고 성교의 시간과 횟수를 결정하는 것은 - 특히 여자가 무경험자면 – 남자다. 그녀는 자기를 도구로 느낀다. 자유가 전적으로 상대에게 있기 때문이다.
제2의 성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이정순 옮김
여자는 객체가 될 것을 요구받는 존재다. 주체로서의 그녀는 남자의 육체 위에서는 충족되지 못하는 공격적인 관능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서 그녀의 에로티시즘이 극복해야만 하는 충돌이 생겨난다. 그녀를 한 남자에게 먹이로 넘겨 주고 그녀의 품에 아이를 안겨줌으로써 여자의 주권을 회복시키는 체제를 세상 사람들은 정상적이라고 간주한다. 그러나 이 ‘자연주의’는 그럭저럭 이해된 사회적 이해관계에 의해 지배된다.
제2의 성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이정순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 <제2의 성> 4주차 ■■■■ ●함께 읽기 기간: 9월 22일(월) ~ 9월 28일(일) 안녕하세요, 그믐 클럽지기입니다! 벌써 마지막 주입니다. 『제2의 성』의 방대한 여정을 함께해주신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2부 '체험'의 남은 부분, 특히 '독립한 여자'와 책의 결론에 집중해서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보부아르가 제시하는 진정한 해방과 미래에 대한 비전은 무엇인지 함께 탐구해 봅시다. 한 달간의 긴 여정을 마무리하며, 이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 여러분의 생각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각자의 솔직한 감상을 자유롭게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번 달도 완독을 목표로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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