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도상이란 무엇일까? 이미지를 바라보는 방법론

D-29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짧지 않습니다! 제가 한 권의 책을 붙잡고 2주 이상 생각한 적이 과거에 있었나 생각 중입니다. 새로운 경험입니다. 지난주부터 말 그대로 찜통처럼 더워졌는데요, 우리 모임이 끝날 즈음엔 더위가 잦아들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책에는 잘 등장하지 않지만, 바르부르크의 작업은 「므네모시네 아틀라스」로 불린 프로젝트로 유명합니다. 검은 패널에 사진과 도판 등을 나열해 ‘이미지 인류학’을 구성하는 작업인데, 그가 1929년 사망하면서 미완으로 남았습니다(https://artlecture.com/article/2001). 그리스 알렉산드리아 대왕 시기부터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까지, 서구 고대의 원형적 상징과 이미지가 어떻게 해서 계속 오늘날까지 떠오르는지 보여주는 「고대의 사후세계(afterlife of antiquity)」를 구축하는 작업이었습니다. 해당 작업의 주요 소재는 르네상스, 렘브란트, 뒤러, 바로크, 중세 아랍, 고대 우주론 등으로 분류됩니다. 코넬대 바르부르크도서관에 들어가면 해당 도판을 웹에서 볼 수 있네요. 확대해 보면 그림마다 번호와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https://live-warburglibrarycornelledu.pantheonsite.io/panel/b).
아비 바르부르크의 개인적 삶도 흥미로운데,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590850 재밌습니다. 약간 비트겐슈타인이나 하워드 휴즈처럼 정신나간 귀공자의 삶이더군요
아비 바르부르크의 논의는 알라이다 아스만(Aleida Assmann)의 『기억의 공간: 문화적 기억의 형식과 변천』(서울: 그린비출판사, 2011)에서도 언급됩니다. 아스만에 따르면, 바르부르크는 그림의 특정한 정형이 있어서 드러날 때마다 그림이 어떤 에너지원처럼 작용한다고 봤는데, 그것을 파토스정형(Pathosformel)이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마치 인류의 전기 스위치처럼 에너지를 충전해 두거나 전환할 수 있는 무언가로 이미지를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또한 프리츠 작슬은 바르부르크의 논의에 더해, 인간의 원형이 담긴 조형예술의 모방정신, 모방(몸짓과 흉내)을 통한 원주민들의 사유, 인간 문화의 초기 단계 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읽는 『뱀 의식』은 이론적 배경에 대한 설명이 친절하지는 않아서, 한꺼풀 두꺼풀 벗겨낸다는 느낌으로 경유해서 바르부르크의 목소리에 접근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문화적 전승이 비단 의식적인 전통 형성을 거쳐서만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미로처럼 분열되고 접근할 수 없는 공동(空洞)을 형성하는 더 깊숙한 곳에 빠지기도 한다는 생각은 이미 바르부르크나 바흐오펜이 등장하기 전부터 낭만주의자들을 강하게 매혹했다. 이런 생각은 우리가 핵심적 문화 저장 매체이자 전통의 담지자인 텍스트에서 그림으로 넘어가 보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은 텍스트와는 아주 다른 전승의 역동성을 발전시킨다.”(307쪽)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코로나가 재유행된다는 소식도 있고, 폭우와 폭염이 번갈아가면서 한반도를 강타하는 한 주가 될 듯하네요. 이번 주는 3주차에 예정되어 있던 [북아메리카 푸에블로 인디언 구역의 여행 기억]을 마무리하면서, 마지막 주는 프리츠 작슬의 [바르부르크의 뉴멕시코 여행]으로 넘어갈까 합니다. (저희 모임은 7월 18일까지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해당 파트를 다른 참여자분들께서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유럽 가톨릭의 영향을 바르부르크가 반복적으로 지적하는 부분이 일단 눈에 들어왔습니다. 책의 구성이 강연문을 준비하는 과정이나 초안이 함께 실려 있어서, 일부 내용은 반복되기도 하는데요. 바르부르크는 ‘공식 가톨릭의 직접적인 영향 아래 있는 인디언을 관찰하고 싶었’(104)다고 말하거나, 인디언들이 걸어둔 인형에서 가톨릭 성인 인형의 모습을 발견(98)하죠. 이에 대해서 바르부르크는 설명하길, 이러한 원시적인 조형물이 ‘원시인의 도착적 창조물이자 민족 관념인가, 아니면 아메리카 남부의 근원적 관념에 유럽의 자취가 섞여 만들어진 혼합물인가?’(158) 하는 물음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동시에 근대적인 백인들의 교육기관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당시 원주민들의 삶을 생각하면, 근대화 과정에 놓여 있던 아메리카 원주민의 이미지는, 통하지 않는 언어 문제까지 겹쳐져, ‘가장 사유하기 힘든 오염된’ 대상이라고 말합니다.
한편 160쪽에는 그가 아픈 어머니를 방문한 전후의 매우 이상한 상황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는 어머니를 치료하던 가톨릭 수도원의 냄새를 기억하고 있다면서 충격에 대한 반응으로 고급 식료품에서 소시지를 먹을 수 있었다거나 도서관에서 인디언 소설에 빠져들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참가자분들께서 읽다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나 의문이 있으시면,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편히 공유해 주시면 저희가 함께 고민해 봐도 좋겠습니다. 사실 저는 미학책을 접한 지 오래간만이라 내용이 쉬이 들어오지 않았는데, 강연원고 형식이긴 합니다만 난이도가 대체로 어떻게 느껴지셨는지도 궁금하네요.
남은 모임 기간에는 마지막 챕터, 프리츠 작슬의 해설을 읽어 보며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바르부르크의 뉴멕시코 여행] 챕터입니다. 작슬은 1890년 생으로 1948년 사망한 인물입니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2장은 건너뛰고 3장만 봤는데, 도판도 많고 재밌네요. 뱀하면 역시 일루미나티가 생각납니다. 그 진위 여부와 관계없이, 뱀 이미지가 가진 힘은 지금도 여전한 것 같습니다.. 이번에 3장을 보면서 든 생각인데, 바르부르크의 얘기가 흥미로운 것도, 어떻게 보면 음모론의 흥미로움과 비슷한 이유에서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인류학이나 미학에 관해 아는 건 없지만, 바르부르크의 강연은 학술적, 이론적 엄격함보다는 중간단계가 뭉텅뭉텅 빠져있는 데도 냅다 지르는 힘에 더 많이 기대고 있다는 느낌이었거든요. 물론 이 강연이 병원의 청중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 그런 것도 있겠고요. 그 점이 한편으론 강연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강연자인 바르부르크와 그의 캐릭터에 더 관심이 가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읽다보면 무지, 신화, 원시성,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힘에 대한 바르부르크의 노스탤지어나 갈망 같은 것들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조금 억지를 보태자면 과거의 도상들에 나타나는 정념정형을 관찰하고 수집하는 바르부르크의 노력은 연구자의 작업처럼 보이기보다는, 그런 힘의 복원을 소망하는 정치가나 예술가, 혹은 광인 예언자의 기획처럼 보이기도 하구요. 물론 실제로 광인이기도 했고.. 당시의 연구방법론이란 건 지금과는 많이 달랐겠지만... 그런 시차를 감안하더라도 저는 그런 면들이 재미있었네요.
저 또한 1900년대 초반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일부 해석은 다소 억지스러울 정도로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바르부르크의 다른 작업은 어떤지 찾아보고 싶습니다. 이론적으로 중요한 기여를 남긴 학자이다 보니 모든 작업이 이렇게 인상비평적으로 진행되진 않았을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혹은 당시의 학문적 풍토가 아직 미국식 실증주의, 양적 방법론이 본격화되기 이전이라, 상세한 자료와 증명보다는 (아마도 독일, 프랑스처럼 유럽식의) 이미지와 논평을 통해서도 학문적 아이디어를 인정해 주는 분위기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해당 강연 내용을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차례 수정했다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에른스트 융어도 <강철 폭풍 속으로>를 오랜 기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수정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삶의 어느 시점, 혹은 장소나 사건으로 광적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의 얘기는 늘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면 최근에 누가 네이트판에 '개구리 소년' 사건에 관해 글을 올리면서 이런저런 얘기가 돌았던 일도 생각나네요..
듣고 보니깐 그렇습니다. 삶의 특정한 순간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예술가라든지. 혹은 끊임없이 그때를 사례로 사용하는 분석가라든지. 강박적인 트라우마라든지. 어찌 보면 지난번 모임에서 봤던 <자연인>에 등장한 전쟁 경험 속에 평생을 살고 있는 할아버지도 그렇고요. 그런 인물들에겐 지금의 풍경도 마치 게임에서 스킨을 씌우듯, 과거의 경험이 맵핑되어 있는 것처럼 보일 것 같습니다.
일루미나티며 네이트판이며.. 속된 얘기만 한 것 같아 송구스럽습니다..
모임 날짜가 하루 남았습니다! 릴레이 식으로 규칙을 정하고 책을 이어나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슬은 해설에서 바르부르크의 뱀 이미지와 번개를 함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원주민들이 번개를 보고 두려움에 떨다가, 그것을 설명 가능한, 표상 가능한 개념을 끌어당기면서 뱀이라는 상징을 떠올린다는 것인데요. 이 둘을 동일시함으로써 파악 불가능한 것을 파악할 수 있게(176) 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설명 방식은 신화의 기능에 대한 오늘날의 해석과 매우 유사해 보입니다. 알 수 없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지식과 개념을 만들어 내고, 이러저러한 이유를 만들어 내고, 그것이 문화적으로 전승되고... 그것이 하나의 이야기나 학문이 되기도 하고요.
쉽지 않은 책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인류세, 식인, 원주민, 생태계 연구 등이 활발해지면서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등장하는데요. 아메리카 원주민의 삶이나, 태평양 군도 원주민의 삶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중세의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들도 생각나고요. 처음이라 어색함이 많았으나 아무쪼록 생각을 말랑말랑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셨길, 재미난 시간이 되셨길 바랍니다. 저희는 다음 주에 또 다른 기획과 도서로 찾아뵐까 합니다! 이번에는 한국의 2010년대를 다룹니다. 하실 말씀도 더 많을 것 같습니다. 바르부르크의 거대한 사유를 느껴보는 데 함께해주신 참석자 여러분께 모두 감사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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