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에서 끊임 없이 대두되는 쟁점이다. 각종 범죄, 혹은 한국에서는 친일 행적 등이 확인된 '작가'가 만들어낸 '작품'은 어떻게 다루어져야 하는가? 개인적으로 분리할 수 없다는 입장은 명확하지만, 복잡한 문화예술 감상과 소비 등의 실타래를 어떻게 풀 수 있을지는 항상 고민이어서 집어들었다.
독서기록용_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
D-29

청명하다모임지기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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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자배급사, 출판사, 미술관, 비평가 등 작품 창작자와 관객, 독자, 청중 사이를 매개하며 창작물과 창작자의 경제적, 상징적 가치 생산에 참여하는 문화 매개자들이 논란을 앞에 두고 창작자나 소비자 뒤로 물러나서는 안 된다. ”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 p.15, 지젤 사피로 지음, 원은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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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화 매개자의 자리 중 하나로서 책임감을 느끼는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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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행정상 이름과 다른 '작가명'을 사용한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 p.37, 지젤 사피로 지음, 원은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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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작가'라는 정체성의 구성과 작품과의 관계를 이론적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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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전집 출간이 저자의 공인과 정전화의 과정에서 중대한 단계를 구성하는 이유이다.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 p.41, 지젤 사피로 지음, 원은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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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세계 중 작품은 일부라는 관점에 대한 뒷받침과 그 인식의 빈틈을 모두 다룬다. 뒤에 나오듯 작가의 사후에 모든 저작들이 공개되었을 때서야 '전체'라고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생전에는 저자가 스타일을 바꿀 경우, 자신임을 숨길 경우, 비공개 저작이 있을 경우 등의 변수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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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은 모두의 것이라는 원칙으로 인해, 그 재산권은 작품의 내용이 아닌 형식의 독자성에 국한되었다. 즉 형식이 저자라는 사람에게 귀속하는 것이다.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 p.58, 지젤 사피로 지음, 원은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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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작품 간의 관계는 재산권을 비롯해 문학과 관련된 재판 과정에서 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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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베르가 괴테에서 영감을 받아 프랑스에 들여온 저자, 화자 인물 구별은 근대 문학에 관례가 되었다.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 p.61, 지젤 사피로 지음, 원은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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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부르디외의 지도를 받은 프랑스 기반의 사회학자라 예시도 유럽권 주로 프랑스이다. 그래서 (노벨 수상자이자 논란이 많은) 피터 한트케, (역시 노벨 수상자, 자전적 소설) 아니 에르노의 이름이 등장하며, 작품을 알면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겠다.

관객모독실험적 글쓰기의 대가 페터 한트케의 초기 희곡. 1966년 초연 때부터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고 오늘날까지도 널리 공연되고 있다. 한트케는 <관객모독>을 통해 완전히 새롭고 독창적인 문학의 가능성을 보여 줌으로써 명성을 얻었다.

여자아이 기억2022년 노벨상 수상 작가 아니 에르노의 2016년 작품, 『여자아이 기억』이 소설가 백수린의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자신의 삶을 이용해 보편적인 이야기로 만든다고 강조해온 작가의 작품 세계 속에서도 ‘기억 속 사건’으로만 남아 있던, 마지막 한 조각 퍼즐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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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작품과 작가의 유사성은 정도가 다양하지만 다소 투명하고 가정된 형태를 주로 취하며, 작품 외재적 요소를 활용해야만 결정할 수 있는 해석의 공간을 연다.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 p.73, 지젤 사피로 지음, 원은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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