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6. <조지 오웰 뒤에서>

D-29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여러 이야기가 오간 걸 주말에 찬찬히 읽었는데요. 밥심님 말씀에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저는 오랫동안 존경했던 혹은 좋아했던 예술가(나 지식인 등)에게 실망하게 되는 지점이 이 지점이 아닐까 싶거든요. 본인이 그토록 주장하던 삶의 진리와 실제 살아온 삶이 전혀 다른 경우의 괴리감이랄까. 이때는 실망을 넘어 배신감이 생기기 때문에... 예를 들어 '세상에서 가족이 가장 소중하다' 말하던 사람이 알고 봤더니 가정에서 폭력을 행사하거나 배우자와 자녀들을 함부로 대한다는 걸 알게 되면 '아니, 어떻게 저럴 수가!'라고 생각하겠지만 애초에 그런 부분(가족은 소중하다)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는 것 같... 기는커녕 그냥 사람이 별로다 싶네요. 에휴, 여전히 어려워요.
그죠... 내 좋아했던 작품인데 갑자기 그 사람의 사생활로 인해 그 작품까지 싫어진다면, 그걸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어요. 그 작품을 좋아한 것인가? 그 사람을 좋아한 것인가? 내가 진짜 좋아한 것은 무엇이지? 작품을 작가의 창작물이고 그 창작물은 작가의 철학과 사상이 반영된 것이라면 그것을 온전하게 분리할 수 있는지. 분리할 수 없다면 그것은 내가 작품을 잘못 이해한 것인지(처음에 좋아졌다가 후에 싫어지는 경우).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지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롱기누스 많은 독자가 그 둘을 사실 구분하지 않고 있죠. 예를 들어, 오랫동안 팟 캐스트 진행하면서 다양한 반응을 보곤 하는데. 특히 흥미로운(?) 반응은 작품이 좋다고 작가에게도 아주 강한 애착을 느끼는 모습이었어요. 사실, 그 청취자는 그 작가와는 일면식도 없거나 있더라도 북 토크 콘서트 같은 행사에서 사회 자아를 본 게 다일 텐데 말이죠. 가끔, 제가 작가와 이메일도 몇 차례 주고받고 심지어 술자리도 같이 한 적이 있는 경우에도 그래요. 그런 저에게도 '네가 그 작가에 대해서 뭘 알기에 이렇게 얘기해?' 같은 반응을 자주 보곤 해요. 그럴 때마다 아, 작가와 작품을 구분하는 일은 쉽지 않구나. 이런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독자가 작가와 작품을 구분하는 데에 공을 들이는 경우는 그 작가에게 변명하지 못할 추문이 생기는 때인 것 같아요. 이런 역설을 앞에서 언급한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이음)에서 집요하게 따져 묻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부르디외의 사회학 개념을 토대로 쓴 일종의 예술 사회학 연구서이기도 해서 읽을 때 공을 많이 들여야 합니다. 혹시 손에 들었다가 당혹스러우실 듯해서.
@YG 독자들이 작가와 작품을 구분하는데 애쓰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구분하신 기준에 대해 공감합니다. 일반적으로 작가들의 추문이 자신의 정체성 또는 철학과 불일치 할 경우 자신의 인지부조화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하는 것 같더라구요...
저도 최대한 작가와 작품을 분리해서 보려고 하는데, 사생활이 어느정도의 혐오감을 주는지, 그게 한 번의 실수인지 지속적인 행동인지에 따라서도 제가 가지는 느낌이나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거 같아요
그렇다면, 작품이 문제가 될 때마다 그 작품과 그것의 창작자인 작가를 문학사에서 지워버리는 방향은 어떨까요? 사피로는 이런 접근에 단호하게 반대합니다. 과거의 작품 가운데는 여성을 비하하고, 장애인을 비하하고, 노골적으로 인종 차별을 언급하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런 폭력을 예민하게 포착하고 그 작품에서 그런 표현을 순화하거나, 아니면 그것이 과할 때는 아예 작품이나 작가를 문학사에서 지워버리려는 대응이 있을 수 있죠. 사피로는 그런 시도야말로 그 작품의 폭력성을 은폐하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지적합니다. 대신, 그는 해당 작품의 그런 요소를 적극적으로 분석하고 폭로해서 드러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죠. 하이데거 같은 철학자가 실제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제3제국과 나치의 이념에 동조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검열하고 삭제해서 그의 철학과의 접속을 ‘취소’해야 할까요? 사피로는 그런 하이데거의 개인사가 그의 철학에 노골적으로 혹은 은밀하게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밝히는 일이야말로 훨씬 생산적이고 필요한 일이라고 여깁니다.
물론, 저자도 선을 긋는 대목이 있습니다. 증거가 명백한 노골적인 성폭력을 저지른 작가의 작품에 상을 주는 일은 어떨까요? 사회학적으로 예술 영역(부르디외의 용어로는 ‘예술 장’)을 분석하는 연구자로서 저자는 그 영역이 지탱하도록 돕는 제도적 행위자(에이전트, 편집자, 출판사, 제작자, 박물관과 시상식 관계자 등)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합니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이런 제도적 행위자가 훨씬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어떻습니까? 물론, 이런 사피로의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저는 글머리에 언급한 그 작가의 책은 읽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그의 밑바닥을 보여주는 그 일을 폭로하고 싶습니다. 어떤 눈 밝은 독자는 분명히 그 밑바닥의 실체가 그의 작품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세심하게 살필 테니까요.
젊었을 때 거의 모든 작품을 재밌게 읽었던 이문열 작가, 매년 발표되는 평론가들이 뽑는 우수 국내영화에 항상 작품을 탑랭크에 올려놓는 홍상수 감독. 저의 경우는 이 두 분이 생각나네요. 각기 다른 이유로 지금은 많은 비난을 받고 있어서 말이죠.
@그러믄요 @YG 두 분의 책즐 바로 관심책으로 수집하고 도서관 목록 검색하려고요
지금 읽고있는 타이거 우즈에 대한 책도 그의 사생활의 파편적인 면들과 그의 골프에 끼친 거대한 업적을 과연 골프팬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잘 묘사해요. 스포츠인들도 예술가처럼 영향을 끼치는 시대니까요.
타이거 우즈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했던 저자들은 이 책의 탄생을 위해 타이거 우즈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책을 20권 넘게 정독했으며, 3년에 걸쳐 타이거 우즈와 인연이 있었던 250명이 넘는 인물들과 400여 차례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렇게 해서 세상에 알려진 타이거의 이야기이다.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 저도 막 추천하려고 했던 도서입니다. 7월 기획 토론에 참여해서 이야기 나눴던 작품이라 기억에 남습니다.
책이 이제 준비되었어요. 시작해보겠습니다
물론 조지에게 폐질환이 있다는 건 아일린도 알고 있었지만, 그가 그 병을 그런 식으로 이용할 줄은 몰랐다. 그런 건 예상하지 못했다.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서퍽 1936년 11월, 27p.,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책의 앞 부분을 읽었을 뿐인데, 초반부터 조지오웰에 대한 이미지가 와장창 깨졌어요. ㅜㅜ 미래에 대한 상상력과 날카로운 비판력이 돋보였던 작품만 보다가 ‘결혼 일주일때부터 지독하게 불평만 늘어놓는’ 이기적인 모습과 문란한 행태를 보니 도대체 청혼은 왜 한 것이며, 아일린의 이야기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 지 마음이 아립니다.
@도롱 저는 처음에는 정희진 선생님 추천사를 읽고서 뭘 또 이렇게까지 세게, 했는데 그냥 그대로더라고요. 함께 읽으면서 많은 이야기 나누면 좋겠네요.
장편소설을 쓰는 건 이제 불가능했다. 그 소설은 편지들을 '소재'로 삼아 삼켜버리고, 내 목소리를 아일린의 목소리보다 우위에 두어버릴 테니까. 게다가 아일린의 목소리는 짜릿하다. 나는 아일린을 되살리고 싶었다. 동시에 그를 지워버린,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악한 마술의 속임수를 드러내고 싶었다. 나는 이 작업을 '포용하는 소설'을 쓰는 작업이라고 여겼다. 48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초반부를 읽는 동안 좀 헷갈렸습니다. 실재하는 편지를 인용하면서 상황을 묘사하는 작가적 상상력이 뒤섞여 있어서 소설의 느낌이 강했거든요. 여러 해 전에 재밌게 읽었던 조선희 작가의 ‘세 여자’도 떠올랐구요. 그런데 읽다 보니 저자가 애초 소설을 쓰려다가 그보다는 아일린을 되살리고 싶은 마음에 지금과 같은 서술방식을 택했다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바로 다음 장에는 이 글을 쓰며 정해두었던 자신의 원칙을 기술하는데 저자에 대한 신뢰감이 생겼어요. ‘이 이야기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아일린이다’라는 단문이 마음에 쏙 들었구요. 이러한 원칙을 처음부터 기술하지 않고 아리송한 마음으로 몇 장 읽다가 아하! 하게 만드는 구성도 좋았습니다.
두세 쪽 만에 하! 조지 오웰도! 하게 되었는데 두 사람이 처음 만났다는 파티 장면과 주변인들의 조지 오웰에 대한 첫 인상 부분에서는 너무 웃겨서 깔깔 웃었어요. ㅋㅋㅋ 앞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에 오만 감정이 다 들겠지만 웃기는 포인트도 있을 것 같아서 기대됩니다. 아님 어쩔 수 없지만.
박원순 시장의 성폭력 가해 사건 이후 소위 진보 남성들에 대한 어떤 기대감은 내려놓은 지 오래입니다. 며칠 전 조국혁신당 사건에서도 가해자 중 한 명이 한겨레 출신 김보협 기자라는 사실을 접하고 많이 씁쓸했어요. 이 즈음에 이 책을 읽게 된 것도 시대와의 흥미로운 공명인데 더는 없었으면 싶은 마음도 들고. 저자가 미투 운동의 흐름 속에 성장하는 자신의 10대 딸을 언급하는 장면이, 아이가 없는 입장에서도 많이 공감이 됐습니다. (암묵적으로라도 구체적인 인물명 같은 거 언급하지 않는 분위기라면 알려주세요, 삭제하겠습니다~)
@알마 설마요. 자유롭게 토론하는 곳이니 자기 검열의 걱정 내려놓으시고 마음껏 쓰셔도 됩니다. 그러게, 저도 괜히 이 즈음에 이런 모임을 시작하게 된 게 참 "시대와의 흥미로운 공명"이다 이런 생각을 잠시 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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