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6. <조지 오웰 뒤에서>

D-29
@stella15 하루키 사모님은 전생에 나라를 한 세 번쯤 구하시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들 커플도 왜 분통 터지는 일이 없겠습니까마는, 그래도 겉보기에는 '아이 없이'(작은 동거인 미안!) 백년해로하고 있고, 술은 조금 마시는 듯하지만 방탕하지 않은 남편에, 무엇보다도 계속해서 전 세계에서 들어오는 인세와 그림 같은 곳만 찾아다니면서 지내는 삶. :) 더구나 하루키는 소설이라도 써야 하는데 사모님은 그런 의무도 없잖아요? :)
혹시 로맹 가리도 그런가 싶어 오래 전에 사 놓고 읽지 않은 책을 펼쳐 들었는데, 어째 느낌이 쎄한 게 예외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ㅋ 그래도 로맹 가리는 진 세버그를 사랑하다 정식 이혼하고 어쨌든 질질거리지는 않은 것 같아 비교적 깨끗한 것 같은데... 근데 이책 문장이 꽤 좋으네요. 놀라고 있는 중! 그렇죠. 하루키 부인은 복도 많죠. 조지는 그렇게 살 것 같으면 와이프한테 경제적으로 좀 안정되게 살게 해 주던가. ㅠ 여자는 경제적으로 안정되게 살게 해 주면 자식하고 살긴 사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옛날 여자들은. 대신 손톱과 이를 갈죠. 내 언젠가 저것을 해치우고 말리라! 그러면서. 그때가 되면 자식들은 커서 자기를 키워준 모친을 배반할 수 없고, 또 남편은 발톱 빠진 늙은 호랑이라 쓸모가 없어지거든요. 복수하기 딱 좋은. 그냥 서사가 그렇다는 거죠. 때를 기다리는 지혜라고나 할까? 하하.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숨 가쁜 사랑뛰어난 작가와 세기의 미모를 자랑하는 여배우, 24년의 나이 차와 사회적 비난을 무릅쓰고 끝내 자살로 진정성을 피력한 두 사람의 격정적인 사랑, 이것이 우리가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를 함께 떠올릴 때 사용하기 쉬운 수식어다. 이 책은 그간 호사가들과 대중의 판타지로 변질된, 또는 사회 관습과 외면으로 처량하게 유린된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삶 그리고 사랑을 진실하게 접사한 첫 책이다.
책걸상 1박 2일 워크숍이라니 너무 좋은데요. 서울은 토요일 오전까지만 비가 내리고 그 뒤로는 꽤 화창했는데, 부여의 날씨도 선선한 가을향이 가득했기를 바라게 됩니다. 올려주신 신동엽 시인과 인병선 여사의 이야기도 잘 읽었어요. 궁금해서 이것저것 찾다가 '짚풀생활사박물관'이라는 곳도 알게 되었고요(조만간 가보려합니다). 근데 신좌섭 교수님은 작년에 별세하셨네요... 올려주신 이야기가 조지 오웰과 아일린의 이야기와 닮아 있어 신기합니다. YG님의 여행(?) 시기가 어쩜 이렇게 딱 겹친 것인지! 다른 여성에게 보낸 편지를 문학 사료로서의 가치가 있겠다 싶어, 없애려다 구석에 치워뒀다는 말씀에 놀랐습니다. 이건 어떤 마음이면 가능한 것인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예술가들의 삶 뒤에는 아내들의 감내가 많았네요. 왜 그분들의 삶은 조명되지 않는 건지, 안타깝고 속상합니다. 아일린의 이야기를 이제라도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저는 추석에 조지 오웰의 두 작품을 완독하려 했는데, 고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을지 살짝 걱정되기도 합니다(하, 하하...).
아일린이 스페인에서 보냈던 시간을 퍼즐처럼 맞춰 본 뒤에도 나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나는 《카탈로니아 찬가》를 두 번이나 읽고도 아일린이 거기 있다는 걸 깨닫지 못했던 걸까? 아일린은 정당 본부에서 일했고, 전선으로 오웰을 찾아갔고, 부상 당한 그를 돌봤고, 그의 원고를 맥네어에게 건네줌으로써 그것을 지켜냈고, 여권들을 지켜냈고, 호텔에서 체포될 게 거의 확실했던 오웰을 구해냈으며, 어떻게든 비자를 받아 그들 모두를 구해냈다. 그러고도 아일린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책의 전자책 텍스트를 훑어보았다. 오웰은 ‘내 아내’라는 표현을 37회 사용한다. 나는 그제야 깨닫는다. 아일린의 이름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이름 없이는 어떤 인물도 살아날 수가 없다. 하지만 ‘아내’라는 직함에서는 이름이 얼마든지 박탈되어도 무방하다.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보이는 존재>,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찌찌뽕 저랑 같은 문장 수집 하... 정말 안타까워요
우리나라 옛날 같은 상황이라면 문제삼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여자는 결혼하는 순간 이름이 없어져버렸잖아요. 부모 자체가 딸한테는 그리 이름에 신경도 안 썼고. 서양은 그렇지 않다고 학교에서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근데 아일린의 활약상은 정말 빛났네요. 근데 조지는 그것밖에 못하다니. 찌질하네요. ㅉ
그 상황에서는 사랑하는 친구의 병든 남편과 키스하는 것이 그것을 거부하는 것보다 어째선지 더 쉬인 일이 되어버린다. 그 키스가 아일린에 대한 배신일 뿐 아니라 어쩌면 죽음을 부르는 키스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렇다.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283,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와 정말!" 문병온 아내 친구에게?,,,, 다음장에 나오는 저자의 경허 유사/관점/버섯들을 읽으면서도 ... "와 정말!",, 이 말만 나오네요
안그래도 이 부분을 읽으면서.. 유럽에 살면서 나름 선진국인데도 sexism이나 sexual harrassment가 많은 것을 느꼈어요. 오죽하면 2019년에 힛트쳤던 노래 중 Angele의 프랑스식 미투운동을 노래한 Balance ton quoi에서 No means no라는 걸 교육해야하는 장면이 뮤비에 나올까요..;; https://youtu.be/Hi7Rx3En7-k?si=7X_Cy0g7etl6TS9L
어떻게 나는 《카탈로니아 찬가》를 두 번이나 읽고도 아일린이 거기 있다는 걸 깨닫지 못했던 걸까? 아일린은 정당 본부에서 일했고, 전선으로 오웰을 찾아갔고, 부상 당한 그를 돌봤고, 그의 원고를 맥네어에게 건네줌으로써 그것을 지켜냈고, 여권들을 지켜냈고, 호텔에서 체포될 게 거의 확실했던 오웰을 구해냈으며, 어떻게든 비자를 받아 그들 모두를 구해냈다.83 그러고도 아일린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책의 전자책 텍스트를 훑어보았다. 오웰은 ‘내 아내’라는 표현을 37회 사용한다. 나는 그제야 깨닫는다. 아일린의 이름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이름 없이는 어떤 인물도 살아날 수가 없다. 하지만 ‘아내’라는 직함에서는 이름이 얼마든지 박탈되어도 무방하다.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오웰은 아내의 용기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하지 않는다. 사실, 우리는 파멸을 피할 수 없었을 거라고 말함으로써 그 용기를 가려버리기까지 한다. 위험에 직면했던 건 아일린인데도 말이다. 오웰에게 이 일화의 주인공은 온통 남자들이다.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p.250,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프랑스식 미투 운동이 Balance ton porc (돼지를 고발하라)라고 불리고 male chauvinist pig이란 말이 있듯이 돼지는 약간 욕망 (식욕이든 성욕이든)과 연관이 많이 있는 이미지인데요.. 아일린의 별명이 pig이라는 게 재미있습니다. (도대체 왜? 몸도 여리여리하다는데;;) 동물농장에서도 돼지들이 좀 욕망을 추구하는 집단으로 나오는데요.. 안그래도 조지오웰의 에세이나 다른 소설과도 동물농장은 스타일이 완전 달라서 오웰이 이런 책을 쓴 걸 알고 놀랐는데.. 알고보니 아일린의 영향이 컸을 수 있겠네요! 동물이나 아이들, 그리고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신경 쓰는 모습을 보면 주변 사람에 별 관심이 없는 오웰과 글에서도 차이가 느껴질 수밖에 없겠네요.
저도 이해가 안 가는데 그것도 조지가 그렇게 붙인 거겠지 누가 붙였겠습니까? 원래 별명은 놀리는 의미에서 안 좋은 걸 쓰긴하는데 그러고보면 조지는 아일린이 꽤 못 마땅했나 봅니다. 노골적으로 대놓고 싸울 순 없고. 비열하네요.
아일린이 왜 돼지라고 했는지 의하했는데, 설명들으니 좀 이해가 가는듯 합니다. 숨겨진 의미가 많네요.
예전에 센과 치히로에서 부모님이 식탐으로 돼지로 변하는 장면에서 놀래서 울었다는 제 친구 아들 얘기를 듣고 웃었는데.. 오딧세이의 모티프겠죠. 근데 아일린은 오히려 돼지가 된 탐욕스러운 자들이 아니라 돼지를 키우고 오디세우스 곁에 있던 키르케나 나중에 오디세우스의 충직한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가 생각나네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 9월 16일 화요일은 3부 '보이지 않는 노동자'로 들어갑니다. 3부 '월링턴 1938년 1월 1일'부터 '모로코'까지 읽습니다. 한국어판 종이책 기준 267쪽부터 299쪽까지입니다. 일상으로 돌아온 오웰과 아일린. 그리고 미리 읽으신 분이 얘기했듯이 리디아에게 추근대는 오웰. 모로코로 요양 여행을 간 두 부부의 얘기가 나옵니다. 모로코에서도;
우리한텐 푸들 강아지도 한 마리 있어. 마르크스라고 이름 붙여주었는데, 우리가 마르크스를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는 걸 상기하기 위해서였어. 우린 이제야 마르크스를 조금 읽었는데, 그 사람을 개인적으로 너무 싫어하게 되어버려서 그 강아지한테 말을 걸 때면 얼굴을 쳐다볼 수도 없지 뭐야.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274쪽,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아일린의 유머 감각이 돋보이는 대목이라서 저는 메모해 뒀어요. :)
키스는, 특히 첫 키스는 그저 키스만이 아니다. 그건 여성이 헤쳐 나가야 하는 하나의 상황이 된다. 여성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내숭 떠는 여자 아니면 걸레, 혹은 유머 감각 없는 년 아니면 공범이다. 그 둘을 나누는 경계선은 여성이 자신의 욕망을 발견하고 나아가 충족시키기에는 너무나도 비좁은 공간이다.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283쪽,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저도 이 부분에 밑줄 쳤어요. 여성에 대한 이중사고(doublethink)는 너무 좁은 범위, 즉 이렇게 성녀-창녀 이분법적 기준으로밖에 나타나지 못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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