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6. <조지 오웰 뒤에서>

D-29
내가 생각하기에 한 사람은 그의 작품이 아니라 그저 작품이 나온 근원일 뿐이다. 그 두 가지가 일치하기를 바라고, 그렇지 않다면 ‘취소’라는 처벌을 가하는 것은 새로운 종류의 압제다. 그 압제에서는 어떤 예술도 탄생할 수가 없다.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322쪽,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오웰이 쓰는 모든 책은 불멸에 대한 착수금이 된다. 오웰은 유명한 작가가 되겠다는 목표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그는 아일린이 필요하다. 인생이라는 끊임없이 흐르는 혼돈으로부터 원인과 결과를, 인물들과 그들의 운명을 풀어내는 이야기꾼으로서 아일린이 지닌 재능이 필요하다. 삶을 변화시킬 수 없을 때는 아이러니로, 조각난 삶을 다시 한데 엮어내고 싶을 때는 은유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아일린의 재능이 필요하다.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1940년 여름>,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아일린은 오웰에게 쾌락은 섹스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찾는 과정에 있음을 이해하고 있고, 이 정복의 과정이 끝나기를 바란다. 어쩌면 아일린은 이렇게 생각하는 건지도 모른다. 두 사람이 섹스를 하면 오웰이 더는 브렌다와의 섹스를 원하지 않게 되거나, 브렌다가 (실제로 지금은 원한다면) 더는 오웰과의 섹스를 원하지 않게 될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오웰은 아일린의 말들을 브렌다에게 마치 허락의 말들처럼 교묘하게 재현한다. 사실 그 말들은 “그냥 해버리고 입을 닥쳐요”에 가까운데도 말이다. 나한테 와서 ‘허락’을 받으려고 하지 말아요. 내 고통을 당신 쾌락의 일부로 만들지 말라고요.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선물>,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중요한 건 그 사람의 미래에 당신에 대한 생각을 심어 놓는 일이다. 만약 그 사람이 이틀 뒤 이 편지를 받고 당신을 떠올린다면, 당신은 그 생각 속에서 (비이성적인 마법의 작동 원리에 따라) 여전히 이곳에 존재하게 될 것이다. 아일린은 이 마법이 반대 방향으로도 작동하기를, 그래서 노라도 이 편지를 받기 위해 지금 그곳에 아직 존재하기를 바란다.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영국 대공습>,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저는 이 문장들이 정말 좋았습니다.
이 문장을 읽으며, 제가 좋아하는 이 문장이 떠오르기도 했어요.
나 역시 이것을 위안으로 삼는다. 어딘가에 나의 메아리가 있다. 내가 혼자라고 해도, 나의 시간에 동반하는 당신의 시간이 있다. 우리는 같은 영원 속에 산다.
시와 산책 한정원 지음
시와 산책시를 읽는다는 건 무엇일까? 그럼, 산책을 한다는 건? '말들의 흐름' 시리즈의 네 번째 책 <시와 산책>은 작가 한정원이 시를 읽고, 산책을 하고, 과연 산다는 건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해온 시간들을 담아낸 맑고 단정한 산문집이다.
저도 참 좋아하는 책인데 반갑네요^^
배우자에 대한 신의란 기묘한 약속이다. 어떤 사람들에게 그것은 삶의 기본적인 약속이다. 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에게 그것은 그저 말뿐인 약속, “묻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아야 할” 문제일 뿐이다. 나 자신의 삶을 돌아봐도, 나 역시 타인의 혼외 연애란 정확히 그런 거라고 제법 강렬하게 느낀다. 그건 그들의 문제지 내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라고 말이다. 하지만 만약 내 남편이 병원과 공원에서, 그리고 파티가 끝난 뒤에 다른 여자들을 덮치고, 팬들과 은밀히 만날 약속을 잡고,성매매 업소에 다니고, “육감적인, 마치 루벤스의 그림에서 빠져나온 듯한 소니아를 우연히 만나려고” 애를 쓰면서 출판사 사무실을 어슬렁거린다면, 내 생각은 달라질 것이다. 나는 그 모든 일이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준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신의와 사랑에는 여자 한 명당 한 번씩 커다란 균열이 생길 것이고, 그 폐허가 내 존재의 조건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분리하기>,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나는 다시 검은 상자의 문 앞에 서 있다. 누군가의 ‘사적인’ 삶을 샅샅이 뒤지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을 품은 채로. 하지만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저 상자 안이 아일린이 살았던 곳이다. 그곳을 들여다보지 않는 것은 가부장제의 본질을 모른 척하는 일이 될 것이다. 오웰은 수년 동안 돈을 주고든 공짜로든 섹스를 할 수 있다. 그 섹스는 합의된 것일 때도 있고, ‘우연히 마주치는’ 누구든 ‘덮치는’ 것일 때도 있다. 그럼에도 아무도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역사는 그가 고상한 사람으로 남는 것 역시 허용할 것이다.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분리하기>,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리디아는 아일린이 전쟁으로 인해 삶이 뒤흔들리는 것을 거의 반기는 듯 보였다. 그 애에게 그건 새롭고 극적인 경험이었다고 여긴다. 그뿐 아니라, 리디아가 보기에 아일린에게는 자기 목숨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어 하는 무의식적인 소망까지 있었다. 이것이 일종의 체념이었던, 혹은 모험을 향한 필사적인 갈망이었든, 나는 그것이 아일린과 오웰이 공유한 것이었다고 믿는다.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p.346,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도스토옙스키인데, 사실 그분은 극우 꼴통 사상가잖아? 그런데도 도선생을 계속 나의 최애작가 자리에 두는 게 맞나? 근데 난 도선생 소설이 너무 좋은걸? 귄터 그라스는 나치였다며? 키플링이나 대니얼 디포의 작품은 읽을 가치가 있나? 친일 작가들의 작품은 교과서에서 퇴출시키는 게 맞나? 과거에 월북 작가들을 싸그리 삭제했던 것처럼? 클래식 음악계에서 내로라 했던 지휘자들은 또 어떻고? 지금 내 cd장 속에도 나치 부역자들이 있어!’ 물론 이런 생각을 오래 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몇 분 동안 물음표만 잔뜩 띄우다 집어치우죠. 제 머리통으로는 별다른 결론이 안 나오기도 하고…
그러니까요. 작가와 작품은 분리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오, @향팔 님 최애 작가가 도스토옙스키군요! 저는 도스토옙스키 작품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만 읽어봤습니다. 그는 극우 꼴통 사상가군요(죄송합니다, 향팔님의 표현을 그대로 빌려보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죄와 벌』, 『악령』은 꼭 읽어보고 싶어요. '작가와 작품을 분리하는 법'을 이번 벽돌 책 모임에서 나름대로(?) 배워가는 것 같아서요(음, 일단 이론상으로는...?). 여담이지만 조지 오웰은 제 최애 작가님의 최애 작가라 조심스럽습니다(하하하).
<악령>은 꼭 추천합니다. 도스토옙스키 소설 중에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고품격 범죄소설 <죄와 벌>도 그 못지 않지요. 악령보단 역시 이 책을 먼저 읽는 게 좋을 듯해요. 스릴(?)과 서스펜스가 넘쳐나 병렬독서도 못하고 잔뜩 몰입해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려서 처음 읽을 때랑 나이 들어서 두번째 읽을 때가 많이 다르기도 했고요. 도선생님은 읽는 이를 미치게 만드는 최고의 통속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도(스또옙스)끼 전도사로서, 숨겨진 명작 두 편만 더 추천드릴게요. 예전에 가끔 주변에서 도끼 책 중에 좀더 만만하게 접근할 만한 책이 없냐 물으면 추천하곤 했답니다.(요즘은 그런거 묻는 사람도 없음.) 보통은 많이 안 읽으시는 <상처받은 사람들>과 <노름꾼>인데요. 죄와 벌보다 읽기 쉬워요. 연해님은 까라마조프도 읽으셨으니 이 책들은 식은죽 먹기일 듯 싶네요. <상처받은 사람들>은 읽을 때마다 그냥 눈물이 쏟아지는 소설이에요(제 기준). 통속 작가로서 도끼 선생의 면모를 느낄 수 있습니다. <노름꾼>은 도끼 선생이 노름빚에 시달려가며 27일 만에 써낸 작품이라고 해요. 분량도 짧습니다. 작가 본인 경험에 의거해서 쓴 책이라 그런지 노름판 묘사가 아주 리얼하지요. 읽다보면 저 자신이 룰렛 판때기 앞에 앉아 있는 것처럼 쫄리더군요.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도대체 무슨 맘을 먹고 있는 건지 머리통을 도끼로라도 열어보고 싶은 심정이 드는데, 또 읽다보면 문득 그들을 너무 잘 이해할 수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고.. 그게 참 슬퍼지는, 그런 소설이었어요. 도박장 안이든 밖이든, 세상은 다를 바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노름꾼19세기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을 대표하는 도스토예프스끼의 장편소설. 1860년대 전반 자신이 주도한 잡지 시대와 연대기의 실패, 형과 아내의 죽음, 그리고 유럽 도박판에서 진 빚 등으로 인해 막대한 부채를 짊어진 작가가 향후 9년 동안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의 저작권을 내주어야 한다는 출판사의 위협 아래 27일 만에 급하게 쓴 소설이다.
상처받은 사람들 119세기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을 대표하는 표도르 도스또예프스끼의 <상처받은 사람들>. 도스또예프스끼의 소설들 가운데 뻬쩨르부르그를 배경으로 한 대표적인 소설 중 하나로, 러시아 역사상 큰 획을 긋는 사회적·문학적 사건들, 즉 크림 전쟁에서 러시아의 패배, 농노제 폐지, 소설 문학의 전성기, 새로운 신문과 잡지의 발간의 와중에서 씌어졌다.
상처받은 사람들 219세기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을 대표하는 표도르 도스또예프스끼의 <상처받은 사람들>. 도스또예프스끼의 소설들 가운데 뻬쩨르부르그를 배경으로 한 대표적인 소설 중 하나로, 러시아 역사상 큰 획을 긋는 사회적·문학적 사건들, 즉 크림 전쟁에서 러시아의 패배, 농노제 폐지, 소설 문학의 전성기, 새로운 신문과 잡지의 발간의 와중에서 씌어졌다.
오, 저도 참고하겠습니다. 저는 이상하게 <죄와벌>만 완독했지 <카라마조프의 형제>는 사 놓고 읽지 않고 있습니다. 대신 영화로 보고 나니까 책은 더 안 읽게되더라구요. ㅠ
오 저도 도스토엡스케 좋아하는데 상처받은 사람들은 아직 안 읽어봤어요. 추천 감사드립니다. 매년 겨울마다 도스토옙스키 소설 한 권 씩 읽는 게 넘 좋아요.
와, 겨울마다요? 멋진데요!^^
역시 @향팔 님의 최애 작가님이라 정성스러운 설명이 가득 담긴 추천이네요. 더욱 믿음(?)이 갑니다! <상처받은 사람들>과 <노름꾼>은 존재 자체도 처음 알았어요. 올려주신 설명 덕분에 두 권 모두 관심이 가네요. 심지어 <노름꾼>은 27일 만에 써낸 작품이라니! 꼭 찬찬히 다 읽어보겠습니다. 정말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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