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6. <조지 오웰 뒤에서>

D-29
내가 이게 뭔지 알고 뛰어든 거라면 용기가 대단한 여자일 거라고. 그리고 조지의 여동생 에이브릴은 이러더라. 모르고 뛰어든 게 틀림없다고, 그렇지 않고서는 이 자리에 있을 리가 없다고.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서퍽 1936년 11월' 중,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대략 서른 살이 넘으면," 오웰은 쓴다. "사람들 대부분은 개인적 야망을 포기하고-사실 많은 경우엔 자신이 개인이라는 감각조차 거의 포기해 버리고- 주로 남들을 위해 살거나, 그도 아니면 그저 힘겹고 단조로운 일에 짓눌려 살아간다." (...) 오웰은 계속 쓴다. "하지만 끝까지 자신만의 삶을 살기를 결심하는, 재능과 의지를 지닌 소수의 사람도 있는데, 작가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현재, 팽팽한' 중에서 ,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그의 자의식, '작가'라는 묘한 자부심에 갑자기 어질어질...
'나쁜 놈'은 어디에나 있다. 지금은 말할 수 없는 진실들의 시대다. 말할 수 없다는 건, 너무나 흔해서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일단 말이 되어 나오면 이루 말할 수 없이 나쁘다는 뜻이다.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밀랍으로 만든 집' 중에서,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너무나 흔해서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일단 말해지면 이루 말할 수 없이 나쁜 진실. 그 진실이란, 아내는 성적인 노동과 가사노동을 무급으로 하는 존재라는 것이었다.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공짜로' 중에서,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나는 검은 상자 안으로 들어가 그(아일린)를 데리고 나오기로 마음먹었다 (...) 나는 아일린을 되살리고 싶었다. 동시에 그를 지워버린,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악한 마술의 속임수를 드러내고 싶었다. 나는 이 작업을 '포용하는 소설'을 쓰는 작업이라고 여겼다.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검은 상자' 중에서,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어머니로서의 권리가 전복된 건 세계 역사상 기록될 만한 여성의 패배였다." 엥겔스는 이렇게 쓴다. "남성은 집에서도 명령을 내렸고, 여성은 강등되어 노예 상태로 전락했으며, 남성이 지닌 욕망의 노예이자 자손 생산을 위한 도구에 불과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역사학자 거다 러너는 <가부장제의 창조>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여성은 최초의 노예였다." 여자들은 짐승들과 함께 가축화되었다. 1938년, 버지니아 울프는 이렇게 썼다. "우리 뒤에는 가부장제가 놓여 있다. 무용함과 부도덕함과 위선과 노예근성으로 가득한 그 비밀스러운 집이..."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공짜로' 중에서,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이제 한 명의 작가이자 한 사람의 아내가 된 나는 거장이라 불리는 남성 작가들을, 그 생각 없는 "20세기 중반의 여성혐오자들"을 부러워하는 나 자신을 깨닫는다. (...) 내게 가장 부러운 건 그들의 창작 환경이다. 그 남자들 중 너무도 많은 수가 우주의 도덕적,물리적 법칙을 거스르는 사회 구조로부터 혜택을 받았다. 그 구조에서는 여성의 보이지 않는 무급 노동이 그들에게 창작할 시간을, 따뜻하고 정돈되어 있으며 쿠션은 빵빵하게 부풀려져 있는 공간을 만들어준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전통적으로 남성 작가가 글을 쓸 시간은 쇼핑이나 요리, 본인이라 다른 사람이 있던 자리 청소하기, 일상적인 편지 쓰기, 손님 접대, 여행이나 휴일 일정 잡기, 아이 보기 (마치 그것이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 혹은 자기 아이들이 아니라는 듯 육아를 '도와주고' 감사 인사를 받는 경우는 제외), 기타 등등의 일을 할 필요에서 해방됨으로써 만들어졌다. 시간이 귀중한 건 유한하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공짜로' 중에서,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다른 모든 귀중한 재화가 그렇듯 시간에의 접근 역시 젠더화되어 있다. 한 사람이 일할 시간은 다른 사람이 시간을 들여 하는 노동을 통해 만들어진다.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공짜로' 중에서,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내게도 아일린 같은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작가처럼 생각한다는 건 곧 남자처럼 생각한다는 것임을 깨닫는다. 그건 남성의 관점에서 오웰에게 무엇이 필요했는지, 오웰이 그것을 어떻게 얻어냈는지 보는 것이다. 하지만 한 사람의 여성이자 아내로서의 나는 아일린의 삶이 두렵다. 그 안에서 나는 목숨을 건 투쟁을 본다. 그건 자아를 유지하는 일, 그리고 여성이 갖추면 너무나도 칭찬받는 가부장제적 덕목인 자기희생과 자기말소 경향, 이 두 가지 사이에서 벌어지는 투쟁이다. 자기 희생과 자기말소 성향이야말로 우리의 노력과 시간을 훔쳐가는 기본 구조의 일부다. 아일린은 무엇을 내주었고, 그 대가로 무엇을 감당해야 했을까? (...) 나는 아일린과는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 시대 여성들은 동등한 존재라고 불린다. 가정에서 상상할 수 없을만큼 불균형하게 과도한 노동을 하고, 미래 세대를 돌보고, 많은 경우에는 이전 세대도 돌보고 있음에도 그렇다. 말과 현실 사이의 간극. 우리는 이 모든 노력을 보이지 않는 상태로 유지함으로써 그 간극을 만드는 일에 공모하고 있다. 그리고 당신은 그 간극 속으로 추락할 수도 있다.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공짜로' 중에서,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이 구절을 읽으며 이 역시 남자처럼 생각한다는 것임을 깨닫고 뜨끔. 남성이든 여성이든 관계 없이 서포트 받고, 또 그런 서포트에는 충분한 보상을 해야 이런 구조가 바뀔 수 있을까. 이런 눈에 띄지 않고 교묘하게 삭제되는 돌봄과 서포트를 조연으로 돌려버리고 여성이 잘할 수 있는 직업군으로 돌리는 것이 기이하고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가부장제가 여성의 시간과 노력과 삶을 약탈하고 훔쳐가는 일종의 전 지구적 폰지 사기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공짜로' 중에서,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표면상의 계층적 평등도, 반대로 부도, 이 불평등한 부담을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 여성들은 여전히 가사와 돌봄 노동을 책임지고 있고, 지도자의 위치에 오르는 일은 드물다. 민주 자본주의 사회의 돈도 커플 사이의 불평등을 해소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여성은 부유하다 해도 여전히 가사노동을 책임진다. 설령 다른 사람에게, 보통은 여성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노동의 일부를 맡길 수 있다고 해도 그렇다. 지구상의 모든 사회는 여성들이 제공하는 무급노동과 저임금 노동 위에 세워져 있다. 만약 그 노동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면 그 액수는 10조 9,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돈을 지불하게 되면 부와 권력은 재분배될 것이고, 그렇게 재분배를 하다보면 가부장제의 자금줄은 말라버리고 이빨은 뽑혀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공짜로' 중에서,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공짜로' 챕터 부분을 읽으면서 챕터 전체를 태깅할 정도였습니다. 가사와 돌봄 노동... 그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면 세계가 무너질 것이고 그 액수는 10조 9,0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이야기가 얼마나 이 노동들이 숨겨진 노동이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어서 더 와 닿았습니다.
여자와 남자가 함께 살며 돌봄과 사랑에 필요한 노동을 할 때 벌어지는 이런 차원의 불평등을 이야기하는 건 오랫동안 금기였다. 이야기를 했다가는 '불평분자'로, 혹은 (이 노동이 은밀한 방식으로 '좋은' 여자 되기의 일부가 되어왔기에) 나쁜 여자'로 보일 위험에 처하게 되니 말이다. 수많은 여성 잡지가 과중한 부담을 짊어진 여성들에게 '자기 돌봄'이나 '부담'을 효율적으로 조절하는 법'에 관한 조언을 제공한다. 마치 그 문제가 개인적이고 우리가 좀 더 노력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를 이렇게 만들고 우리가 가진 것을 빼앗아가는 구조는 건드리지 않고 놔둔 채로 말이다.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공짜로' 중에서,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개인적인 문제로 보는 시선을 거두고 그것이 당연시 되어지는 구조를 살피고 건드려야 하는 것...
아내 노릇이란 우리가 배워 우리 자신에게 행해 온 사악한 마술의 속임수다.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공짜로' 중에서,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아직 시간이 넉넉하게 남은 거 같아서 뒤늦게 합류합니다. ^^
내게는 마치 아일린이 그 자리에서 말해지지 않는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외적으로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는 예비 남편을 자신의 가족 모두가 ‘사찰하고 있는’ 자리에 함께 한다는 참을 수 없는 어색함으로부터 말이다. 오웰의 작가로서의 가난은 그 자신에게는 야망의, 전념의, 혹은 실패의 증거일지 모른다. 하지만 한 명의 아내에게 그건, 리디아가 범죄 수사를 하듯 날카롭게 예견하는 것처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고된 노동의 전조다.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달리기>,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아일린이 오웰에게 끌린다는 사실은, 어쩌면 아일린으로서는 참기 힘들 정도로 많은 것을 가족에게 폭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운명을 믿는 아일린의 성향을, 물질적인 것에 대한 아일린의 철저한 무관심을, 글쓰기에의 열정적인 헌신을. 그리고 그 글쓰기가―아일린의 재치와 널리 알려진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 그가 받은 교육을 고려해 볼 때―아일린 자신의 것이 되지 못할 거라는 전조를.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달리기>,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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