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6. <조지 오웰 뒤에서>

D-29
리스는 자기 친구의 결점들을 알면서도 친구에 대한 애정을 간직할 수 있었다. 그는 오웰을 “표면적으로는 너무도 편안하고 붙임성 있는 남자, 유쾌하고, 유머 감각과 재치가 있으며, 사려 깊고 다정한,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남자”라고 여겼다. “나는 그가 속으로는 ‘다루기 곤란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상상할 수 있었다. 사실, 그는 속으로는 극도로 내성적이었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유독 퓨도르pudor(수치심을 뜻하는, 리스가 마찬가지로 설명하지 않고 남겨둔 단어다)를 타고난 것처럼.” 오웰에 대한 애정에도 불구하고 리스는 이렇게 썼다. “나는 그가 사람의 인격을 평가하는 데 있어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다소 둔했거나, 둔해 보였다.” 이는 어쩌면 오웰이 “한 번도 다른 인간을 진정으로 바라본 적이 없었기”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아일린은 여러 해 동안 경제적으로 자립한 여성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무급으로 일하며 “완전히 빈털터리가 된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몸소 깨닫기 시작했다. 확실한 건 리디아가 예견한 대로 아일린이 집 안과 정원과 가게에서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육체노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아마도 아일린은 직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자기만의 커리어를 꾸릴 생각 따위는 포기해야 하리라는 것을. 아일린은 자신이 줄을 그었던 결혼증명서의 빈칸 속에서 살기 시작한 참이다.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목가적인 삶>,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리디아는 불쾌함에서, 타인을 불쾌하게 하는 일에서 저열한 기쁨을 느끼는 친구의 남편으로부터 친구를 보호하고 싶다. 리디아는 오웰의 듬성듬성한 콧수염과 ‘만족스러운 미소’ 아래서 가학성 비슷한 무언가를 알아본다. 아일린에게는 아직 보이지 않는 무엇을 본다. 그 가학성을 견디기 위해 훗날 아일린이 해야 할 자기학대를.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박하사탕>,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오웰은 리디아를 비웃고 있다. ‘이 여자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봤지?’ 이것이 이 상황에 숨어 있는 뜻이다. ‘난 이 여자를 어디서든, 내가 고르는 어떤 환경에서든 살게 할 수 있어. 그걸 댁이 어쩔 건데.’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박하사탕>,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하... 저는 이 태도가 왜 이렇게 싫죠.
하아아...........
이런 오만한 모습을 볼 때마다 이 문장들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히데코 : 남자들은 여자들의 무지에 대해 각별해하는 것 같아. 무지한 여자라면 쉽게 정복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도 그렇지만, 무지한 여자를 계몽하는 기분은 특히나 즐기지. 남자들은 여자들의 무지에 집중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개입을 하는데, 그 욕망은 하도 집요해서 차마 다른 경우를 예측할 겨를도 없는 것 같아. 무지한 여자가 무지해 보일 뿐 실은 무섭도록 지혜롭다는 걸, 단지 생존 조건 때문에 무지를 연기하고 있을 뿐이라는 걸 눈치챌 겨를이 없지. 때론 자신이 교육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던 어린 여자애가 얼마나 눈부시게 진화해가는지 그 변화를 알아볼 겨를이 없지. 자기 욕망에 너무 취해서. 자기 기분에 너무 도취된 나머지. 나는 남자들이 지닌 그런 류의 무지가 참 좋더라. 그런 어리석음은 이용하기가 참 좋아. 이용당하면서도 자신이 이용당한다는 걸 알아챌 여력이 없는 그 집념이 참 좋아.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김소연 지음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문지 에크리>는 지금까지 자신만의 문체로 특유의 스타일을 일궈낸 문학 작가들의 사유를 동시대 독자의 취향에 맞게 구성.기획한 산문 시리즈다. 이 시리즈는 작가 한 명 한 명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최대한 자유로운 방식으로 표현하는 데서 시작한다.
오 연해님 덕분에 또 좋은 책들을 많이 발견해갑니다. 무지를 가장한 여자의 지혜에 대한 남자들의 무지.. 갑자기 레베카 솔닛의 Men Explain Things to Me 책과 mansplain, manterrupt 등의 유행어가 생각나네요.
저 이 부분 듣는데, 단전에서부터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느낌이었어요!
“내가 받은 인상은,” 리디아는 이렇게 쓴다. “오웰이 아일린을 너무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었다. 남자라면 이런 아내를 소중하게 여겨야 하지 않나? 나는 생각했다. 너무도 매력적인 외모에다, 대단히 지적이고, 유쾌하고 재치 있는 언변을 갖췄고, 요리 솜씨까지 뛰어난 아내가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나는 오웰이 아일린에게 보내는 어떤 상냥한 시선도, 배려하는 작은 몸짓도 감지하지 못했다. 아일린이 모든 일을 다 했고, 식사 준비를 하고 상을 차렸고, 가게 초인종이 울리면 나가서 손님 응대도 했다. 점심을 먹은 뒤 오웰은 위층으로 물러났고, 우리 귀에는 그가 타자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아일린을 도와 설거지를 했고, 그런 다음 우리는 산책을 갔다.”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박하사탕>,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오웰은 아일린을 사랑해서 결혼한 게 아니었군요. 무급 노동을 해줄 아내라는 존재가 필요했고, 게다가 아일린처럼 지적으로 탁월하여 오웰의 작품에 “놀라운 변화”를 줄 수 있는, “오웰이 지니고 싶어 했을 만한 자질”을 지닌 여성을 잘도 구한 것이었어요..
@향팔 @연해 혹시 넷플릭스 드라마 가운데 <수리남> 보신 적 있으세요? 그 드라마를 보면 남주인공이 결혼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자기가 아는 여성한테 쭉 전화 돌리는 장면이 처음에 나오거든요. 저는 오웰의 이 장면, 그리고 나중에 아일린이 죽고 나서 오웰이 두 번째 처를 찾는 장면에서 이 드라마의 모습이 너무 겹쳤어요;
오오 그런 드라마가 있나요? 오웰의 두 번째 처 소니아가 1984년 소설에 나오는 줄리아의 모델이라는데 맞나요? Tyler의 전기에서는 다소 안 좋은 이미지로 나와서..;;
@borumis 님, 소니아에 대해서는 잘 모르시는구나? 이 책에도 나중에 짧게 나오는데 소니아는 원래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퐁티의 내연녀였어요. (메를로퐁티는 아내가 있었으니까!) 메를로퐁티랑 연애하다 헤어졌다 하는 와중에 조지 오웰이 지분거렸고, 나중에 메를로퐁티가 가정으로 돌아가면서 오웰을 최종 선택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나중에 소니아에 대해서도 좀 더 파고 나서 공유드릴게요.)
2002년에 나온 소니아 오웰의 평전도 있어요. <The Girl from the Fiction Department: A Portrait of Sonia Orwell>.
이것까지 읽으면 '오웰혐오연대' 생기는 거 아니에요? ㅎㅎ 근데 전 딱히 이 책 읽어도 오웰에 대한 이미지가 변하진 않았어요. 왠지 '그럴 거 같았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 심정은 '그래, 어디까지 하나 보자'입니다.
ㅎㅎ 요정님은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군요. 저는 전혀 몰랐습니다. 내 스탈은 아니지만 키다리 아저씨에 나올 법한 선량한 이미지라고 생각했는데 완전 이미지 대반전입니다. 근데 글은 잘 써요. 이달 말쯤되면 저한테 뭐가 남을지 저도 궁금합니다. ㅋ
@꽃의요정 소니아는 아일린과 비교하면 훨씬 자기를 더 잘 챙겼던 듯해요. (프랑스 셀럽 유부남과의 열애는 또 다른 문제이긴 합니다만.) 저는 괜히 아일린과 비교해서 소니아가 얄밉기도 하더라고요. 아일린이 그 개고생하면서 남편을 안정적인 수익(인세)이 보장되는 작품을 쓰게 뒷바라지했는데 그 과실은 소니아가 다 가져갔거든요. 소니아는 엄청 사치와 낭비가 심했다는 후문도 있습니다; 이것도 나중에 뒷 부분에서 정확하게 취재(조사)해서 알려드릴게요.
ㅎㅎ 이거 전형적인 한국 막장 드라마 같습니다. 처와 첩간의 대립구도. 그래서 하늘 아래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니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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