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6. <조지 오웰 뒤에서>

D-29
오웰이 새디스트, 마조이스트라는 표현이 여러번 나오던데, 아주 심히 공감되는 표현이 아니었나 싶어요
이책의 끝은 좀 마무리가 잘 됐으면 좋겠는데 그럴 리는 없겠죠? 아일린이 수술 중 사망했다고 하니...ㅠ
저 마지막까지 오웰에게 너무 화나고.. 나중엔 아일린에게도 짜증이 나더라구요
그리고 저는 오늘 분량 중에 '간극에 유의하라'가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모임 초반에 나누었던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심도있게 다룬 대목들이 좋았어요.
오웰에게 디킨스를 그의 작품과 완전히 분리해 생각하는 건 가능한 일이다. “작가의 문학적 개성은 그의 사적인 인격과 거의, 혹은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남자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글을 쓰고, 그와는 전혀 다른 또 한 명의 인간으로서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상자 속의 여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건 고려 대상이 아니다.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간극에 유의하라>,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사인을 받으려고 서 있는 사람들의 줄은 친밀감으로 이루어진 간극이다. 사람들은 당신이 당신의 작품을 읽고 떠오른 그 사람이기를 바라고, 이는 전혀 불합리한 일이 아니다. 당신은 그들의 다정하고 솔직한 얼굴에서 전적으로 타인인 이 사람들이 이미 당신을 알고 있다는 걸 볼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책을 토대로 해서 직관으로 만들어 낸 바로 그 사람이 당신이라 여긴다. 독서라는 이 내밀하고 상상력이 깃든 융합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의 많은 부분을 그 사람에게 투사했을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당신이기를 바라는 ‘당신’은 하나의 혼합체, 즉 당신과 독자가 한데 뒤섞인 또 다른 존재다.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간극에 유의하라>,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내가 생각하기에 한 사람은 그의 작품이 아니라 그저 작품이 나온 근원일 뿐이다. 그 두 가지가 일치하기를 바라고, 그렇지 않다면 ‘취소’라는 처벌을 가하는 것은 새로운 종류의 압제다. 그 압제에서는 어떤 예술도 탄생할 수가 없다.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간극에 유의하라>,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만약 오웰이 오늘날 테이블 뒤에 앉아 책에 사인을 하고 있다면, 줄에 서 있는 팬은 자신이 작품을 통해 알게 된 그 사람을 보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이 보고 싶은 사람을. 그 깡마른 남자는 팔 길이에 비해 너무 짧은 아주 오래되고 닳아빠진 스포츠 재킷을 걸치고, 손수 말아 만든 담배를 줄줄이 태우며 기침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날카로운 푸른 눈과 이튼 출신답게 모음을 길게 끄는 높은 톤의 목소리를 지닌, 약간 말을 더듬는 사람일 것이다. 그 팬은 가식 없이 말하는 언어의 위대한 마법사를, 고상함과 약자의 수호자를 보게 될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연구하고, 스페인에서 목숨을 걸고 파시스트들에게 맞서 싸웠으며, 빛나는 에세이 한 편 한 편 속에서 모두 위선을 비난해 온, 자기비하가 버릇인 한 남자를 보게 될 것이다. 외모만 봐도 자신의 이익을 챙길 생각이라곤 없어 보이는 동정심 많고 고결한 사람을.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간극에 유의하라>,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이런 게 정말 무서운 것 같습니다...
우리가 모르고서야 다 훌륭한 사람인줄 알죠. 몇년 전 우리나라도 미투 운동으로 얼마나 많은 연예인들이 퇴출되거나 유명을 달리했습니까? 제가 성경을 첨 읽었을 때도 생각나네요. 특히 구약. 좋은 말만 써놓은 줄 알았는데 온갖 추잡한 사건을 거르지도 않고 가감없이 보여줬을 때의 그 당혹스러움이란. 악마의 책이었어? 식겁했던 기억이. ㅋㅋ 아, 근데 연해님 타이핑 정말 빠르시네요. 부럽삼~^^
하, 정말요. 이 책을 읽으면서 예술가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역시 보여지는 게 다가 아니구나, 싶어서요. 작품 뒤에 숨어 그럴듯한 인간(?)이 되는 이들도 많이 봐왔기에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언행일치 참 어렵지요). 저도 과거에 성경을 일독했었는데, 읽으면서 멈칫하는 순간이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구약은 가부장적인 면이 많이 담겨있잖아요.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하네요. 타이핑의 비밀은 오전에 읽으며 수집했던 문장들을 미리 저장해뒀다가 오후에 와르르 쏟아내기 때문이랍니다(헷).
어쩐지 그럴 것 같더라니. ㅋㅋㅋ 부지런하십니다. ^^
어떤 작가든 독자가 상상하는 자신의 모습과 자신의 실체 사이의 간극으로 굴러떨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한 여자가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간극에 유의하라>,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지금이야말로 그에게 묻기 적절한 순간일 것이다. 다른 여자들과 섹스하는 일이 당신의 작품에 활력을 주냐고. 아니면 작품을 쓸 수 있을 만큼 남자로서의 자신감에 활력을 주냐고. 그들 두 사람 다 그 질문이 이곳에 존재한다는 걸 안다. 그 질문은 침대와 의자 사이에, 수줍고 기대에 찬 얼굴로 참을성 있게 서서 누군가가 자신을 입 밖에 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두려운 일이긴 하죠, 물론.” 아일린은 말한다. “펜을 종이에 대는 순간 늘 생각보다 더 많은 게 드러나니까요.” 오웰은 기다린다.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교열하기, 실시간으로>,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저는 여기서 '오웰은 기다린다'는 문장이 의미심장하게 읽혔어요.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아일린이 알고 있다'는 걸 '오웰도 알고 있고' 그 부분을 아일린이 짚어주기를 바라는 모습 같았거든요. 질투심을 자극하고 싶었던 걸까요? 한 사람이 파멸하는 걸 목도하고 싶은 건가? 마치 용의자가 사건 현장을 다시 찾는 것처럼요. 읽으면 읽을수록 오웰도, 리디아도, 아일린도 참 복잡한 사람들 같습니다.
오웰은 이렇게 쓴다. "그리고 창피하게도 나는 내가 지독하게 겁에 질려 있다는 걸 깨달았다. 총알이 몸 어디를 할퀴고 갈지 모른다는 생각을 내내 하다 보면 온몸이 불쾌할 만큼 예민해진다." 그럼에도 그는 참호 위로 고개 내밀기를 계속한다. "고개 숙여!"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소리치지만, 그는 들으려 하지 않는다.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159쪽,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가엾은 넬리는 채소를 먹어치우지 못하도록 줄에 묶인 채 작은 궤도만 그리며 평생을 산다. 데리고 나가는 것 정도는 해주어야 할 것 같다.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160쪽,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조지도 집을 비웠고 하니 좋은 기회인 것 같아서요. 가문의 문장을 새기려고 맡겨 놨어요." 전당포에서 돈을 받아 집에 돌아온 아일린은 조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노예 사업으로 번 재산을 다 쓰고 남은 부스러기로 사회주의에 깊이 개입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대다니 얼마나 얄궂은 일이냐고. 하지만 지금 아일린이 보기에 훨씬 더 통쾌한 건 계급적 자의식이 강한 시가 식구들을 속여 넘긴 자신의 해명이다. 사라진 특권을 귀금속에 새겨넣는다는 허구의 이야기.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164쪽,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전쟁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그들은 둘 다 그걸 알고 있다. 아일린은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전쟁 이야기를 흘려보낸다. 자신을 사건의 중심에 놓는걸 워낙에 어려워하는 사람이라 그렇다. 하지만 알고 보니 사건의 중심이야말로 정확히 아일린이 있게 될 곳이다.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167쪽,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마침내 나는 아일린이 경험한 전쟁을 하나로 조합할 수 있었다. 아일린이 어디에 있었는지, 그가 대의를 위해, 부대원들을 위해, 그리고 오웰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 아일린이 여러 사람의 목숨을 구했다는 건 분명했다. 《카탈로니아 찬가》를 다시 읽으며 나는 당혹감에 사로잡혔다. 아일린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아서였다. 명쾌하고 솔직하며 자기 비하로 가득한 이 책은 이제 반쯤만 진실로 느껴졌다.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169~170쪽,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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