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분량을 읽으면서는 모임 초반에 YG님이 해주신 말씀이 떠올랐어요. 아일린이 죽고 나서 두 번째 아내를 찾는 장면들. 오늘 공지에 올려주신 것처럼 여기저기 찔러보며 '거의 필사적으로 아일린을 대신할 누군가를 찾는' 모습에서요. '아내'라는 '일자리'를 구체적으로 '제안'하는 그의 모습은 정말이지 짠할 지경입니다. 요즘 세상에 태어났다면 결혼정보회사를 추천해주는 게 빠를지도요.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6. <조지 오웰 뒤에서>
D-29

연해

새벽서가
결혼정보회사! 빵 터졌습니다. 대체 오웰은 타인을 사랑하는게 가능한 사람이었을까 궁금 하더라구요. 그나마 입양한 아들은 좀 사랑하나 싶었는데, 엄마 잃은 아이를 남에게 맡기고 본인 할 일만 하는 것을 보니 그것도 아니었나 싶고요.

연해
“ 수전은 오웰의 고통을 날카롭게 관찰한다. “그렇게 피를 토하고 나자 오웰은 자기 수명이 줄어들고 있다고 느낀 것 같아요. 걱정되었겠죠. 그러고는, 받아들여질 거라는 어떤 확신도 사실은 없는 상태로, 여자들한테 무턱대고 청혼을 하기 시작했어요. 절박할 만큼 외롭고 혼란스러워서 그렇게 한 거죠. 오웰의 작가로서의 삶은 굉장히 성공적이었고, 아기도 아주 건강했지만, 한 인간으로서 그 사람의 욕구는 채워지고 있지가 못 했던 거예요. 만약에 그때 아내가 있었더라면 오웰은 아내를 사랑했을 거예요.” ”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사랑, 일>,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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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
그에게 아내란 무엇이었을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연해
“ 런던에서의 생활이 내게 얼마나 악몽 같은지 당신은 모르는 것 같아요. 당신에게도 그렇다는 건 알지만, 당신은 종종 마치 내가 그걸 좋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을 하죠··· 사방에 사람들이 가득한 것도 참기 힘들고, 식사를 할 때마다 스무 개의 더러운 손이 그걸 만들었다는 생각에 구역질이 나요. 사실 난 깨끗해질 때까지 팔팔 끓인 음식이 아니면 어떤 것도 먹을 수가 없어요. 공기를 들이마실 수도 없고··· 시를 읽을 수도 없어요. 한 번도 그럴 수가 없었어요. 결혼하기 전 런던에 살 때는 확실히 한 달에 한 번쯤은 시가 가득 든 여행 가방을 들고 멀리 떠나곤 했고, 그게 다음번에 외출할 때까지 위안이 되어주곤 했는데. 그렇지 않으면 옥스퍼드로 올라가 보들레이언 도서관에서 책을 읽곤 했고, 여름에는 배를 타고 처웰 강을 올라가고, 겨울에는 포트 메도우나 갓스토 마을을 산책하곤 했어요. 하지만 수년 동안 내내, 난 마치 온건한 강제수용소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사랑, 일>,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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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심
책을 읽으려고 펼치다가 차례를 볼 때마다 흠칫흠칫 놀랍니다. 질감이 너무 생생해서 손가락으로 문질러보게 됩니다. 이젠 익숙해질만도 한데 말이죠. 나중에 이 책 하면 요 차례가 가장 기억날 것 같아요.


그리다
아 너무 늦게 이 모임을 발견했어요...ㅜㅜㅜ

borumis
전 월요일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작가의 서한을 읽어보고 싶어서 도서관 검색해보니 10월 중순에 반납예정이라고 해서 아쉬웠는데 밀리의 서재에 모임 시작할 땐 없던 이 책이 올라와 있더라구요?!! 게다가 한국어판은 영어판(킨들)과 달리 뒤의 주석 링크가 숫자로 다 달려 있고 전자책은 하이퍼링크되어 있더라구요!! (한국어판이 훨 좋네요!)
신나서 작가의 해설과 주석까지 후루룩 다 읽었습니다^^;;;
작가가 가사노동의 무게 아래 허덕이고 있을 때 오웰의 책들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죠.
"'이 사람은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약자의 입장에서 들여다보는 일을 너무도 잘해낸 사람이잖아. 어쩌면 이 사람 작품을 읽으면 내가 어쩌다 약자가 된 건지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재미있는 게 여러분들이 이 모임에서도 올렸듯이 답답하고 화나고 분노를 토하던 걸 다른 외국 독자들의 반응도 그랬던지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해설에 그 점을 인지하고 있다고 밝히더라구요.
"하지만 저는 이 책이 독자들에게 충격과 분노를 안겨주고, 말문이 막히고 눈물까지 흘리게 만들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충격과 분노와 슬픔을 통해 겉으로는 태연하고 평화롭게 돌아가는 세상 아래 어떤 폭력과 고통의 무급노동이 숨겨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억누르고 숨기고 포장하기 위해 어떤 DOUBLETHINK 이중사고가 작동하는지 정작 오웰과 그의 전기들 속에 숨겨진 간극을 노출하기 위해 일종의 쇼크 THERAPY 같은 방법을 취한 거죠. 마치 정말 1984를 출판한 편집자처럼 구역질이 나고 다시는 이런 책을 읽고 싶지 않을 정도로 온 몸의 세포가 반발할 것 같은 책이지만 눈을 뗄 수 없고 그 DOUBLETHINK의 이면을 바라보게 하듯이..
물론 조언을 해주고 편집자 역할까지 맡았던 아일린의 부재 속에 이런 날카롭고 날 것 그대로의 작품 1984의 면모처럼 DOUBLETHINK와 그 부조리를 드러냈지만 저는 애나 펀더는 아일린의 다른 사람들 눈에서 바라보는 공감능력과 상상력, 그리고 '돌려까는' 유머감각의 재능이 엿보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1984보다는 동물농장에 가까운 이 책을 매우 재미있게 읽었어요. 아일린의 관점 뿐만 아니라 리디아, 노라, 그리고 심지어 조지의 입장에서도 바라본 그녀의 시점의 전환들이 이 책을 다소 상상에 맡기고 곡해를 일으킬 수 있어도 또한 이 책을 더 흥미롭고 독자들의 상상력 또한 자극시키는 전략 중 하나였습니다. 심지어 전 조지가 미워지기도 하다가 또 스페인 내전이나 주라섬에서 가족들과 캠핑가며 그의 엉뚱하고 바보같은 언행들이 너무 코믹해서 정말 깔깔 웃었어요. ('솔직히 지금이 물개 이야기를 할 상황은 아닌 것 같아요'라는 조카의 말이 너무 웃겼어요;;) 심지어 조지의 죽음이 임박할 때 그리고 끝까지 그가 지어낸 허구 속에 자기 자신을 가두어 두려는 모습이 약간 애처롭기도 하더라구요.
하지만 동물농장의 귀여운 동물들과 재미있는 우화 뒤의 모습이 실은 비정한 현실이듯이 다소는 과장하고 일부는 상상의 산물일 수 있어도 작가가 세상에 드러내고자 한 이면은 오웰 뒤에 숨겨진 '아일린'이기도 하지만 결국 그 '좋은 여성', '훌륭한 어머니', '바람직한 아내'의 정의에 처음부터 내장된 돌봄 노동이겠죠.
'이 세상은 여성들의 무급 노동 위에서 굴러갑니다. 제가 바라는 게 있다면 돌봄노동이 여성에 대한 도덕적 판단과 분리되는 것, 그래서 남성 동반자와 좀 더 공평하게 노동을 분배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학부모 모임 등 어딜 가면 전 제 이름과 연락처를 써서 제출하고 소개하는 데 익숙한데 대부분의 어머니들(그것도 이상하게 이런 데는 주로 어머니들만 많이 오시더라구요)이 본인 이름을 '당연히' 안 쓰고 자동적으로 아이 이름으로만 자기 자신을 소개하더라구요. 제가 일하는 곳은 아무래도 직원도 여성이 많고 여성이 주 고객인 곳이어서 직장어린이집 등 육아복지가 잘 되어 있고 저희 남자직원도 1년 육아휴직을 신청하고 지금 부인과 함께 쌍둥이를 키우고 있지만 이런 곳에서도 남녀차별은 있을 것이고 실은 한국이든 미국이든 (그리고 아마 작가가 사는 호주든) 선진국이 되도 이런 돌봄노동과 여성의 지위 등은 아직도 문제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주라섬의 두 노년 여성들이 웃긴 사실을 되풀이하는 것 외에 그 부조리를 피해 갈 방법이 없었던 때와 달리 앞으로는 그런 부조리를 사후가 아니라 사전에 방지하고 직접 맞서 자유로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쓴 것 같습니다.
'제가 바랐던, 그리고 여전히 바라는 바가 있다면, 이 책이 하나의 해방이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장의 제목이 METAL (쇠)이고 낚싯대에 대한 조지의 생각을 담은 문장이 전 인상 깊었습니다. '그대로 두고는 있지만, 오웰은 그게 미끼라는 걸 안다. 반짝이지만 결국에는 쇠 맛이 나게 될 약속.' 우리는 미끼라는 걸 알았으면 결국에 쇠 맛이 나기 전에 이걸 거부해야 하는 반짝이는 PATRIARCHY로부터 해방되어야겠습니다.

YG
@borumis 님, 이번 달에도 완독하느라 고생하셨어요. 중간 중간 비판적으로 읽기 위한 좋은 정보도 공유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 달에도 시간 되시면 함께 하세요! :)

stella15
저는 지난번에도 밝혔다시피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숨 가쁜 사랑>이란 책을 조금씩 읽고 있는데, 역시 로맹 가리도 다르지 않더라구요. 아직 완독을 안해서 좀 거시기하긴 하지만, 로맹 가리의 첫 부인이 나름 유명한 사람인데(무슨 잡지 편집장이라고 했던가?) 로맹 가리의 바람벽을 알고도 결혼을 했더라구요. 하지만 이혼했습니다. 그걸 따로 분리해서 산다? 있을 수 없는 일 같습니다. 진 세버그가 로맹 가리를 만나는 동안 행복했을 것 같지 않은데 제목을 저렇게 뽑은 건 당시 편집자의 의도는 아닐까 싶디도 합니다. 한국어판의 이름일 수도 있고.
조지도 그렇고, 로맹도 그렇고 자기 글 밖에 몰랐다고 하더군요. 나머지는 어떻게 돌아가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는 거죠. 그러니까 그렇게 문란했을 것이고. 태곳적부터 여자는 아무리 자기 부인이어도 재산 목록의 하나로 봤기 때문에 나를 돌봐주는 가치로 본 건 어찌보면 당연한 것 같습니다.
40년 전 여성의 가사노동을 돈으로 환산하면 90만원이라고 하던데 지금은 못해도 200의 가치는 될 겁니다. 그걸 돈으로 환산할 뿐 누구도 보상해주지 않죠. 나라도. 전업주부들 가장 참을 수 없는 게 그거 잖아요. 하루종일 집에 있으면서 뭐했냐는 말! 그 입술을 지져줘야 합니다. ㅎㅎ 암튼 수고하셨습니다.

borumis
헉 그래서 세버그가 자살한 걸까요? 저도 좋아하는 배우였는데..ㅜㅜ 그러고보니 첫번째 부인은 잘 모르고 있었네요. 저희 아빠도 일밖에 모르는 워커홀릭이어서 참...;;; 사회에선 인정받았을지 몰라도 부인은 참 불행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얼마 전 영화 맘마미아에서 메릴 스트립이 기술이 그렇게 발전했는데 왜 침대 정돈해주는 기계는 아직도 없는 거야?하고 불평하는 장면에서 AI가 요즘 지식노동 및 단순노동을 대체하는 추세가 돌봄노동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논의되고 있잖아요? 단순 돌봄 노동의 일부 업무는 대체될 수 있어도 워낙 정형화되어 있지 않고 공감 및 여러 대처 능력이 필요해서 결국 완전한 대체는 힘들 거라는 의견이 많은데.. 안그래도 고령화가 늘어나면서 언젠가 비가시적인 돌봄노동이 가장 핫한 블루칩이 될지도 모르고 무급 노동의 경제적 환산이 이루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롱
로맹가리의 책을 병렬로 읽으려고 준비해두었는데요, 로맹가리 마저 ㅜㅜ … 김이 벌써 빠지네요.

stella15
그래서 결론은 작가와 작품을 따로 봐야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작품들을 읽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로맹 가리의 작품 좋잖아요. 비록 저는 한 작품 밖에 못 읽었지만 전작하고 싶은 작가이긴 합니다.^^

borumis
“ 평생 진실을 말하려 애쓰던 사람이 결국 그 진실을 지탱하기 위해 빽빽이 늘어선 허구들을, 그리고 그것들을 함께해 줄 사람들을 필요로 하게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어쩌면 허구 없이는 행복한 결말도 없을지 모른다. 혹은, 그건 당신이 이야기를 어디서 끝내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행복한 결말을 원한다면 일찍 끝내면 되고, 피할 수 없는 다른 결말을 보려면 계속 가면 된다. ”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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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vrnc
“ 오웰과 아일린은 서로를 자기파멸로 몰고 가는 일종의 군비 확장 경쟁을 벌였던 것 같다. 아일린은 이타심을 통해, 오웰은 자아와 작업이라는 예술가의 탐욕스러운 이중생활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일을 통해 그 경쟁을 이어갔다. ”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p.486,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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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로 지정된 대화

YG
오늘 9월 26일 금요일은 5부를 마무리합니다. '정물, 칼이 있는'부터 '쇠'까지 읽습니다. 한국어판 종이책 기준 522쪽에서 260쪽까지입니다.
『1984』를 완성하고, 거의 5년에 걸친 구애 끝에 아일린을 대신할 짝으로 소니아와 결혼하고, 3개월 후에 아일린을 따라간 조지 오웰의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YG
오늘 읽을 부분의 주인공인 소니아에 대해서 뒷조사를 해봤어요.
소니아 브라우넬(Sonia Brownell, 1918~1980). 소니아는 인도에서 태어나서 영국에서 교육을 받고 나서, 특히 오웰의 친구 시릴 코널리가 편집장으로 있던 <호라이즌(Horizon)>에서 일하면서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의 보헤미안 예술가 네트워크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프랑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와의 열애가 유명하고(메를로퐁티는 장폴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와 함께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의 산파 역할을 한 잡지 <현대>를 이끈 인물입니다), 그와 완전히 정리하고 나서는 알다시피 (거의 5년간 구애한) 조지 오웰의 두 번째 청혼을 받아들여 1949년 10월 13일 결혼하게 됩니다.
오웰이 1950년 1월 21일에 사망하고 나서, 만 32세였던 소니아는 1980년 만 62세로 사망할 때까지 평생 그의 문학적 유산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예를 들어, 소니아는 이언 앵거스와 함께 오웰의 에세이, 기사, 편지 등을 모은 네 권짜리 전집 『The Collected Essays, Journalism and Letters of George Orwell』(1968)을 공동 편집했습니다.
오웰이 『동물 농장』, 『1984』의 작가로만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20세기 최고의 산문가이자 사상가로 재평가받게 하는 데에는 이런 소니아의 작업이 분명히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오웰의 사생활이 드러나는 것을 금기시해서 아직 오웰의 행적을 증언할 여러 사람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전기 작가의 작업에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소니아는 오웰이 남긴 일기와 미발간 원고 등을 검열해서 상당수를 태워버린 일로 유명합니다. 만약, 그런 일기 등이 남아 있었다면 이 책에서 애나 펀더가 아일린과 타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오웰의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여러 행태에 대한 내면의 목소리를 엿볼 수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
소니아는 오웰의 막대한 저작권 수입, 특히 『동물농장』과 『1984』의 상속인이 됩니다.
하지만 소니아는 말년에는 재정적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일단, 소니아가 상당히 사치스러웠던 것 같아요. 값비싼 파티를 열구,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고 선물하고. 계속 화수분처럼 저작권 수입이 들어오니 저축에도 신경을 쓰지 않았겠죠. 그러다, 고용한 회계사로부터 사기를 당하게 됩니다. 오웰의 저작권 수입과 소니아의 개인 재산을 빼돌린 것이죠.
뒤늦게 이런 횡령 사실을 알고 나서, 그것을 되찾기 위한 지루한 법적 소송을 벌여야 했고, 그 과정에서 소송 비용은 비용대로 나가고 소니아는 건강도 해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1980년 뇌종양으로 사망할 때는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말년의 삶이 불우했던 것으로 보여요.
*
그럼, 엄마 아빠 모두 잃은 우리 리처드 블레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행히 소니아는 오웰과의 약속을 지켰어요. 애초 소니아가 엄마 역할을 하고 싶어하지 않았기에 따뜻한 모자 관계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리처드는 소니아를 “어머니(mother)”라기보다 “보호자(guardian)”라고 회상합니다.) 하지만 교육과 양육이 필요한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물론 리처드가 10대, 20대 때는 불화가 심했습니다.)
여섯 살에 고아가 된 블레어는 (소니아의 재정적 지원을 등에 업고) 처음에는 오웰의 여동생네에서 살다가 나중에는 기숙학교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 이후에는 농업 쪽으로 전공을 해서 농기계 회사 매시 퍼거슨(Massey Ferguson)에 서른한 살에 입사해서 1975년부터 1986년까지 영업과 마케팅 업무를 맡습니다.
소니아가 1980년 사망하고 나서, 블레어가 오웰의 저작권 수입 상속자가 됩니다. 1985년부터는 회사를 그만두고 임대 사업 등을 벌이면서 2008년까지 살다가 60대 중반부터는 오웰 재단(The Orwell Foundation), 오웰 소사이어티(The Orwell Society) 등에서 아버지의 문학과 사상을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한답니다. (오웰 상(Orwell Prize)이 그가 후원하는 상입니다.)

borumis
아, 소니아가 메를로 퐁티에게 들었던 말이 참 재미있었어요. "I love you, I think" 이걸 한국어로는 '사랑해, 아마도'라고 번역했는데 주석에서 말한 '그들의 관계 속에 존재했던 철학적이면서도 낭만적인 걸림돌'이라는 느낌을 전달하기엔 뭔가 부족하네요. I think라는 말에 아마도란 의미도 있지만 '생각하다'라는 철학자적 뉘앙스가 있는 걸 한글로는 전달하기 어렵네요. 안그래도 북토크 때 제가 좋아하는 R.F.Kuang의 바벨에서 나온 언어적 뉘앙스의 차이 때문인 듯해요. 실은 작년에 읽은 책들 중에 '바벨'과 얼마전 책걸상에 소개된 'Martyr! (순교자!)'와 최근 한국에 나온 'James' 세 권 다 과연 한국어로 번역되면 어떨까?아니 과연 번역이 되긴 할까?하고 기대하고 언어의 장벽과 다양함에 생각해보게 된 책들이었는데 번역되서 다행이에요. 지금 병렬독서로 R.F. Kuang의 신간 Katabasis와 부커상 숏리스트에 오른 Susan Choi의 Flashlight를 읽고 있는데 이 책들도 조만간 번역되면 좋겠네요.

[세트] 바벨 1~2 세트 - 전2권스물여섯 살의 나이에 세계 3대 SF 문학상 중 네뷸러상과 로커스상을 석권한 R. F. 쿠앙의 대표작. 가장 유력한 수상 후보 중 하나였으나 석연치 않은 정치적 이유(검열 스캔들)로 후보 명단에서 제외됐던 휴고상까지 거머쥐었다면 『바벨』 한 작품으로 세계 3대 SF 문학상 석권이라는 진기록을 세웠을 것이다.

제임스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미국 작가 퍼시벌 에버렛의 『제임스』는 2024년과 2025년에 걸쳐 퓰리처상을 포함해 5개 문학상을 수상하고 5개 문학상의 최종후보에 오르며 최근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은 소설이다.

순교자!미국의 이란 항공기 격추 참사로 어머니를, 고된 노동으로 아버지를 잃은 젊은 시인이 ‘의미 있는 죽음’에 관한 집착 아래 펼치는 ‘순교자 프로젝트’를 그린다. 작가는 아이오와 대학 문예 창작 과정을 이끄는 이란계 미국 시인 카베 악바르로, ‘순교’라는 하나의 행위로 제국주의 미국과 무슬림을 동시에 비판하는 한편, 의미 있는 죽음, 나아가 의미 있는 삶에 대한 통찰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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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15
그럼 소니아가 인도에 사는 백인이었나 보죠? 아무튼 사람은 돈 있으면 거의 그렇게 되나 봐요. 그래도 블레어를 나름 잘 돌봐줬다니 의리는 있었나 보네요.
블레어가 아직 살아있군요. 오웰에 대한 소니아의 행 적이 좀 아쉽긴 하네요. 그렇다면 오웰의 평전은 아직 미완성이네요. 블레어도 아버지에 대해 증언 했을텐데 말이죠.
암튼 뒷조사 수고하셨습니다.^^

연해
와... 이렇게 정성스럽고 자세한 뒷조사(?)라니! 역시 YG님:)
감사합니다.
소니아가 오웰의 일기와 미발간 원고 등을 태워버리지 않았더라면 조지 오웰의 입장(그도 그 나름대로의 입장이 있었겠죠)도 들어볼 수 있었을 텐데, 그게 참 아쉽네요.
리처드 블레어의 소식도 정말 반갑습니다. 조지 오웰이 떠나고 어쩌나(사실 있을 때도 그다지 좋은 아빠 같지는 않았지만 뭐) 걱정했는데, 다행히 무탈하게 잘 자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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