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제발트 읽기] 『캄포 산토』 같이 읽어요

D-29
『현기증・감정들』에 이어서 산문집 『캄포 산토』를 읽습니다. ※ 『캄포 산토』는 제발트가 죽은 이후에 출간된 유고집으로서, 국역본은 120*200의 작은 판형으로 출간되었습니다. 4개의 산문과 14개의 짤막한 에세이로 이뤄져 있습니다. 280쪽 분량을 29일에 걸쳐서 조금씩 읽어보려고 합니다. ※ 특별히 시기를 구분하지 않고, 한 꼭지가 끝날 때마다 제 짤막한 감상을 남기겠습니다. ※ 제 아이디를 탭 하고 [만든 모임]을 보시면 이전에 열렸던 모임의 성격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대략적인 방향성(?)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모임에 대한 의견도 언제든지 말씀해주세요. ※ 안 읽고 얘기하셔도 좋고 아는 척 하셔도 좋고 생판 딴 얘기하셔도 좋습니다. ⏤참여 인원과 관계없이 23/1/30에 시작하겠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시작]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캄포 산토』를 차근차근 읽어보겠습니다. 29일 간 18개의 챕터, 280쪽 분량을 읽겠습니다. 첫 번째 산문은 '아작시오를 짧게 다녀오다'로서, 작가가 프랑스령 코르시카섬의 도시인 아작시오를 다녀오며 보고 듣고 느낀바를 써 내려간 여행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간 읽었던 책들은 호흡이 긴 편이라서 나눠서 얘기가 어려웠습니다만, 이번에는 비교적 짤막한 글꼭지들이라서 접근하기가 수월한 것 같습니다. 물론 이전에 다뤘던 제발트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특징이 짤막한 산문에서도 잘 드러나기는 합니다. '아작시오를 짧게 다녀오다'의 첫번째 문단이 그러한데요, '나'를 전면에 드러내지 않는 논픽션이었다면 글을 여는 첫번째 문단이 없이 바로 두번째 문단으로 들어가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하지만 제발트는 적극적으로 또 적재적소에 '나'를 삽입해서 글 전체에 묘한 분위기를 만듭니다. 나아가 '나'로써 일견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여러 주제를 하나로 꿰기도 하고요. 나폴레옹의 출생지로도 유명한 코르시카섬을 중심으로 카프카와 스탕달과 파올리니 같은 작가들의 얘기들이 마구 뻗어나가는데, 그 각각의 이야기 사이사이에 '여행자로서 나'가 등장해서 풍경을 바라보기도 하고 사색에 잠기기도 합니다. 이전부터 느낀 것이긴 한데, 제발트의 글에서 '나'는 아주 겸손하고 소박한 방식으로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한번씩 이 전체 이야기가 '나'를 중심으로 서술되고 있음을 상기시켜줄 때만, 마치 음식의 부패를 방지하고 맛을 돋우는 소금처럼 적절한 순간에만 등장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아마 이번에도 혼자 떠들게 될 가능성이 높지만 그래도 한번 해보겠습니다:)
[#⟨아작시오를 짧게 다녀오다⟩ ~22P] ⟨아작시오를 짧게 다녀오다⟩에서 화자인 '나'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탐구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아작시오라는 도시를 제외하면 '나폴레옹'을 말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나'는 어떤 의미로 철저한 관찰자로서 글과 현실이라는 양쪽 지면에 한발씩을 걸치고 있습니다. 글 전체가 하나의 주제를 향해서 소실점을 향한다는 인상도, 무언가를 전달해야 한다는 조급함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나'는 코르시카섬의 나폴레옹의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내고 그 주변을 배회할 뿐입니다. (저는 그래서 더 좋았지만요.) 다만 제발트 특유의 역사적인 인식 같은 것은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 부분을 인용하면서 ⟨아작시오를 짧게 다녀오다⟩를 마무리합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레티치아도 카를로도 새로운 정권에 적응해가던 1770년대와 1780년대에는 자신들과 매일같이 식탁에 둘러앉는 이 아이들이 언젠가는 왕과 왕비의 지위로 일약 상승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동네 골목에서 매일 같이 주먹다짐을 벌였던 가장 성마른 사고뭉치가 거대한 제국을 세워 왕관을 쓰고 유럽 대부분의 영토로 뻗어갈 것이라고는. 하지만 어떤 논리로도 해명되지 않는 임의의 법칙에 따라 전개되고 움직이며, 측정할 수도 없이 사소한 것들에 의해서, 느껴지지도 않는 한줄기 바람에 의해, 땅으로 떨어지는 나뭇잎에 의해, 누군가의 눈에서 다른 누군가의 눈으로 인파를 뚫고 전해지는 시선에 의해 결정적인 순간 방향이 바뀌는 역사의 흐름에 대해서 우리가 무엇을 미리 알 수 있단 말인가. 과거를 되돌아볼 때조차 우리는 실제로 과거가 어떠했는지, 어찌하여 이런저런 세계사적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는지 인식하지 못한다. 그 어떤 상상력으로도 붙잡을 수 없는 진리에는 과거에 대한 아무리 정확한 지식도 얼토당토않은 한마디 주장보다 더 가까이 가닿지 못한다. (···) 그에 따르면 프랑스 황제가 유럽의 여러 국가에 변혁을 끼친 것은 전부, 다름아니라 그가 적색과 녹색을 구분치 못하는 색맹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장에 더 많은 피가 흐를수록 그의 눈에는 전장의 풀이 더욱 파릇파릇하게 싹트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라고, 벨기에의 나폴레옹 연구자는 말했다. ⏤본문 20-21쪽.
전혀 모르는, 풍문으로라도 들어보지 못한 이의 글을 읽어보고 싶어서 참여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제발트라는 사람이 독일인이라는 것을 책의 첫 장을 펼치고 안 것이지요. 작가 약력을 보니, 냉철한 이성이 푸르게 빛나는 지식인 같은데, 저에게는 필살기를 숨기고 의뭉스럽게 웃는 무림의 고수 할아버지같이만 느껴졌습니다. ‘의무와 의미’에 묶이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는 무모한 욕망이 메모장과 연필을 들고 무언가의 의미를 찾으려는 행동에 바로 무너져버리는 모습(첫 문단, P10)에서 피식, 두 번째 문단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글에는 ‘파란색 시외버스'를 타고 다다른 아작시오를 돌아다니며 눈에 들어오는 것, 들려오는 것, 떠오르는 것, 추측되는 것이 나른하게 펼쳐져 있어, 저 역시 따뜻한 봄날 지중해의 아름다운 섬을 한 바퀴 돌고 나온 것 같았습니다. 이 글에 나타난 나폴레옹은 쪼그리고 앉아 먼 곳을 바라보는 우스꽝스럽고 측은한 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배회 중에 만나는 이들과 “난쟁이 일족”(제발트가 상상한 나폴레옹 가문)을 연결하는 부분에서는 더더욱 ’세계사를 뒤흔든 나폴레옹‘이란 있기는 있던 건 걸까? 하는 의문이 들 지경이지요. 결국 계획적으로 의미를 찾기 위해 연필과 메모장을 들고 나섰지만 “어떤 상상력으로도 붙잡을 수 없는 진리에는 과거에 대한 아무리 정확한 지식도 얼토당도 않은 한 마디 주장보다 더 가까이 닿지 못”했습니다. 메모장에 연필로 기록한 정보(지식)가 말해줄 수 있는 걸 뭘까요? 나른하고 평화로운 아작시오, 그런데 여기는 심심치 않게 폭탄이 터지는 곳이었습니다. 야밤에 사이렌과 구급차가 소리가 울리는 곳, 제발트가 있던 아작시오의 그날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남의 집 현관을 기웃거리며 “양철 우편함 위 낯선 주민들의 이름을 찬찬히 읽으면서” (p. 9) 그 사람을 상상해보는 것이 어쩌면 손톱 밑의 때만큼이라도 진리라는 것에 가까이 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나른하고 의뭉스러워서 재밌었습니다.
반갑습니다:) 따듯한 봄날 지중해의 아름다운 섬을 한 바퀴 돌고나온 기분 같다는 표현이 참 좋네요. 제발트의 산문에 나오는 산책자들의 포즈는 참 재밌는 것 같아요. 여행을 통해서 자아 따위를 찾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상에게 자신을 안겨준다는 인상을 받곤 합니다. 오늘날의 관광과는 좀 다른 태도죠. 무언가를 보고 듣고 느끼고 알아야 한다는 부담감도 없고 여행 끝에서 찾아내야만 할 것 같은 '진정한 나'도 없으니까요. 쓰신 글을 읽으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광이라는 개념이 참 흥미로워요. 누군가에게는 잠시 잠깐 일탈의 장소이자 돈을 클리넥스 뽑아 쓰듯 펑펑 쓰면서 사진을 찍어가는 공간이지만, 그 지역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무척 평범한 일상의 영역이니까요. 관광은 일상과 일탈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만들어지는 이상한 개념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발트의 여행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russist의 언급처럼 모든 관심이 자신에게만 쏠려 있는 분위기가 불편하고 지겨웠는데, '아작시오를 짧게 다녀오다'는 시선을 (가급적) 밖으로 돌려, 포착된 풍경을 담백하게 그려내고 있어서 매력적입니다. 포착된 풍경, 즉 들려오는 것, 보여지는 것, 느껴지는 것도 '나'의 스크리닝을 거친 것이지만, 안과 밖, 일상과 일탈, 영웅과 범인 사이의 길항 속에서 아직사오의 산책이 이루어지는 것이죠. 이것이 '나'의 절묘한 감춤과 드러냄을 통해 드러나는 것 같아요.
전 한때 작가가 3인칭으로 인물의 내면에 스며들어가는 모든 글이 의아했습니다. 약간 오만하게 느껴지기도 했고요(물론 지금은 다르게 생각하지만요). 그래서 1인칭의 '나'로 끝끝내 집요하게 남아 있으면서도, 모든 주변 풍경을 거북스럽고 비대한 자아로 회수하지 않고도 담담하게, 마치 3인칭의 서술을 보는 듯 써내려가는 제발트의 글을 참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글을 읽으면 '나'는 후경으로 물러나고 사물과 풍경은 뚜렷하게 다가오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어요. 제발트가 내세우는 '나'를 생각하면 언젠가 신영복 선생님이 말씀하신 인간형이 떠오릅니다. 다 같이 있을 때는 있는지 없는지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지만, 없으면 바로 빈 자리가 느껴지는 그런 사람이요.
이 글과 상관없는 얘기지만, 작가들은 낯선 도시에서 낯선 문패나 우편함을 훔쳐보는 걸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김소연 산문집 < 그 좋았던 시간에>에도 여행지에서 폐가에 나귕구는 우편물들을 찬찬히 살펴보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낯선 곳에서 타인의 삶을 상상하는 것, 좀 낭만적인 것 같습니다. ㅎㅎ
작가들은 기본적으로 타인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들 같습니다.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네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캄포 산토] 산문 '캄포 산토'는 마찬가지로 코르시카섬의 한 해안 마을인 피아나를 배경으로 합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캄포 산토란 이탈리아어로 교회 묘지를 뜻합니다. '나'는 피아나를 돌아다니며 각종 묘지의 모습을 살뜰히 살핍니다. 우리는 죽음은 누구에게나 동등하다고 말들은 하지만 살아 생전에 누렸던 지위에 따라 묘지의 풍경과 양상이 달라진다는 것은 잘 얘기하지 않죠. '나'가 '피아나의 묘지'에서 발견한 풍경도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살아생전의 누렸던 부와 지위와 명성이라는 삶의 욕망이 무덤 위에서 드글거리는 모습을 봅니다. 하나 재밌는 점은 '나'가 스티븐 윌슨이라는 연구자를 인용하는 부분에서 나오는 '곡소리꾼'입니다. 한국에서도 문상집에서 대신 울음을 울어주는 곡소리꾼이 있었죠. 예전에 곡소리꾼이 나오는 소설을 읽은 기억이 나는데 제목은 기억이 나질 않네요. 여기서 곡소리꾼의 역할은 죽음을 사회적으로 기억하고 기록하는 역할입니다. 흔히 '울음'은 감정의 신체적 배설로 치부되지만 '곡소리꾼'에 이르러서는 어떤 미학적인 변조, 화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능청스러운 변조"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누구도 기만적이라고 말하지는 않고 용인할 만한 문화적인 의례로 이해합니다. 망자를 불러들이고 또 매년 예를 갖춰 대우하고 또 기억하는 풍습은 만국 공통인 듯합니다. 망자를 두려워하면서도 문화 안에서 예를 갖춰서 포용하는 것이죠. 하지만 점점 도시화 되는 이즈음에는 그런 의례는 점점 하찮아 집니다. "영원한 추모나 조상숭배는 이제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는 '나'의 건조한 푸념에서도 드러납니다. 인구 과잉의 시대에서 망자에 대한 기억과 보관과 유지는 사치스러운 구습이 되어갑니다. 그래서인지 산문의 마지막은 멜랑콜리한 감상으로 끝납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바닷속 알프스]는 코르시카섬에서 사라진, 그래서 이제는 찾아볼 수 없게된 교림에 대한 뒤늦은 소고입니다. 이전 산문에서 느꼈겠지만 '나'는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단순히 묘사하고 감탄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 시선은 언제나 몰락한 자리를 더듬고, 몰락의 자리를 본다함은 '지금 없는 광경'을 보고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따라서 제발트의 글은 언제나 뒤를 돌아보는 사람, 역사적 맥락을 좇는 포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으면서도 느꼈던 것인데 인간의 역사는 우리 생각만큼 고결하고 숭고하지 않죠. 물론 그러한 비판적 인식이 인간 스스로에게서 나왔다는 점에서 지적 고등동물로서 인간의 위대함을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반성으로 무얼할 수 있을지 묻게 됩니다. 어쨌든 인류의 역사 자체가 피와 창과 칼로 타 종족과 생명을 배타적으로 밀어내고 점령하고 찢고 불태운 역사임은 어디 가지 않으니까요. 그 점에서 제발트의 글은 어떤 풍경을 글로써 취하고 적극적으로 반성적인 자세를 취하고 촉구하지 않고 다만 그것을 바라봅니다. 읽는 사람에게 어떤 변화를 요구하지도 않고 나가서 거리로 싸우자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인상적으로 읽은 문장 몇 개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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