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제가 검토 중인 다른 원고에는 “우리가 아는 한 인간의 마음만이 물리적 평면에서 분리되어 도덕성의 절대적인 측면에서 사고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옵니다. 차별과 혐오를 만들어내는 것도 인간이지만, 그것을 양산해내는 체계를 온전히 뛰어넘을 수 있는 것도 인간입니다.
오늘은 188쪽부터 213쪽까지, 「어둠의 저편」을 읽겠습니다.
[도서 증정] 『문명과 혐오』를 함께 읽어요.
D-29

아고라
FATMAN
<<있는 그대로 보기>>
172p
성은 어느 정도 자극을 필요로 하고 섹스가 감정에서 분리되면, 다른 형태의 자극-이 경우에는 고통스러운 신체적 자극-이 나타나서 그 간격을 메운다고 저자는 말한다. (159 쪽)
내가 아는 것은 포르노그래피가 추상이라는 것뿐이다. 그것은 우리의 실제 몸하고는 관계가 없는 재현들이다. 다시 말해 사물 이미지와의 상상 속 경험을 가지고서 사물들 그 자체와의 경험을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그 전에 이미 다른 존재와의 관계의 가능성을, 사물들의 체험으로써 대체했고말이다.
모든 상징적인 재현은 본래 소외에 기여한다는 것이 그들 주장이다.
174p
사람은 각자가 다 역사를 가지고 있고 각자 좋아하는 것이 있고 각자 취미가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아는 상태로 계속 유지하려고 하면 존재론적 정지 상태에 이르게 된다. (중략) 도시에서 돌아다니자면 제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심한 대상화가 필요하다.
182p
마르틴 부버는 그것을 이렇게 간결하게 표현했다. "그리하여 진리의 모든 진지함으로 말하노니, 사람은 '그것'없이는 살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 사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이불
7일차 / 문명과 혐오
"완전히 망해가고 있다면, 내가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겠군." 이런 병에 대해서는 난 인내도 동정도 하지 않는다.
p.196
그 많은 아름다움의 죽임 앞에서 목메어 우는 내 반응이 정상적인 것이고 예측할 수 있는 것이었음도 알게 해주었다. 그러한 상실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다른 형태의 상실, 즉 자기 인간성의 상실, 자신의 마음을 잃어버린 표시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이 모든 것을 깨달은 순간은 이 혐오의 문화, 노아의 규칙이 나에 대한 지배력을 잃어버리는 순간이었다.
p.213
*절망에 빠졌을때 다시 빛으로 나아가는 자세가 감명 깊었습니다. 다른 분들이 책을 발췌하시는 것을 보면, 각자 자신의 인식에 맞는 부분만 편향적으로 읽게되는구나 느끼기도 하는데... 아무튼 이 책은 저자 본인이 어떻게 그 혐오의 문명을 인식하고 깨어나오기까지 구체적 고민과 경험들이 베어있어서 더 값진 것 같습니다.

곰의아이
총과 대포로 시작했던 것을 이제 화학물질로 완성할 수 있게 된셈이다. 이런 물질을 일부러 제조 가끔은 믿어지지 않는다.
믿기 어려운 사실은 그런 물질을 돈 주고 사서 뿌린다는 것이다. 이민 노동자들에세 최저 임금만을 주고 뿌리게 한다는 것이다. 다른 식의 차취도 그들은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어떤 농업인은 습관처럼 매년 추수가 끝날 무렵 이민귀화국에 전화를 걸어 임금을 지불할 필요가 없도록 만든다.
그가 지불해야 하는 임금보다 적은 돈이므로.
그녀는 부질없음이 활동이 아니라 두려움이라는 것을 난 알았다. (P194~195)
같은 방식으로 습관처럼 이민귀화국에 전화를 건다면 벌금만 물을 것이 아닌 왜 습관처럼 신고를 하는지 의심을 해야 하는데 결국 신고한 농업인이나 신고받고 임금보다 적은 벌금을 지불하게 하는 이민 귀화국.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곰의아이
나도 침묵의봄을 겪게 되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문명과 혐오 - 젠더·계급·생태를 관통하는 혐오의 문화』 201, 데릭 젠슨 지음, 이현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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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의아이
우리의 삶의 방식으로 인한파괴를 보면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나의 슬픔이나고통이 아니라 그것을 인정하고 느끼기를 거부하는 내 마음이었다.
『문명과 혐오 - 젠더·계급·생태를 관통하는 혐오의 문화』 212, 데릭 젠슨 지음, 이현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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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게
7일차 9월 16일(화): 어둠의 저편
유록 족 대표는 이 암이 두 살짜리에게서 발병하는 등 새로운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총과 대포로 시작했던 것을 이제 화학물질(농약)로 완성할 수 있게 된 셈이다. … 농업인들 중 많은 이들이 독성 물질로 오염시킬 뿐 아니라 다른 식의 착취도 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 어떤 농업인은 습관처럼 매년 추수가 끝날 무렵 이민귀화국에 전화를 걸어 임금을 지불할 필요가 없게 만든다. 불법 이민자 고용으로 그가 내야 하는 벌금은 그가 지불해야 하는 임금보다 적은 돈이므로. p194
➜얼마 전 영암에서 한 이주 노동자가 지게차에 몸이 묶여 학대받는 장면이 떠오른다. 농장과 건설 현장, 공장에서 이주 노동자를 착취하면서 우리가 이득을 보고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미국도 다르지 않았네
우리 문화가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 생존 방식으로 자발적으로 전환하기를 내 몸 세포 하나하나가 간절히 바라고 있지만,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다고 내가 말했을 때.. p195
➜과거에도 문명이 그 기운을 다했다는 말을 했을텐데, 지금은 정말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뭐든 품어주던 지구가 이제 그렇지 않기 때문에, 문명의 쇠락 혹은 소멸이라는 생각은 과거엔 관념, 허무주의에 그쳤다면 이젠 정말 물리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때가 오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것도 지나가는 걱정에 불과할까.
“완전히 망해가고 있다면, 내가 아무 것도 안 해도 괜찮겠군.” 이런 병에 대해서는 난 인내도 동정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랑할 능력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p196
“기쁨은 우리가 ‘문명’이라고 생각하는 것(문명이란 것은 지구가 걸린 병의 현현일 뿐이죠)의 얇은 판자 뒤에 있거나 그것에 가려져 있지요.” “그렇습니다. 문명은 끝나야 합니다. 우리가 문명을 멸망시킨 뒤 뭔가 남는 것이 있기만 바랄 뿐입니다.” p197
➜저자는 타자와 자연을 대상화하고 착취하는 문명은 끝나는 게 좋다는 것일까.
미래 세상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보러, 돌아올 수 없는 미래 여행을 가겠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내가 생각한 것만큼 나쁜 상황일 경우를 대비해서, 내 머리를 쏘아버릴 총을 하나 가지고 갈 수만 있다면 가겠어.” p198
➜100년, 200년 후 미래로 가는 게 가능하다면, 어떤 조건의 사람들을 어떤 조건을 걸고 보낼 수 있을까. 자식은 없어야 할 것 같다. 후손이 많아져 그 중 한명과 만나 사랑에 빠질 수도 있으니. 탈북민을 위한 교육센터가 있듯 과거에서 온 사람들을 위한 훈련소 같은 것도 있어야겠다. 재산은 복리 효과로 엄청나게 불어날 수 있으니, 과거의 경제적 수준 정도만 보장하는 걸로. 적응하지 못한 시간여행자들만 따로 모여 살 수도 있겠다. 과거를 추억하며. 그런데 정말로 디스토피아라면, 그런 타임 캡슐은 진작 깨지고 시간 여행자들은 살해되거나 버림받지 않을까.
밖의 정복과 안의 억압에 뿌리를 둔 우리 문명이 처음 시작과는 다르게 가리라는 것은 이미 누더기가 된 순진한 희망이다. p205
중성자탄이라는 것이 인간들(그 외 모든 생명체들)을 죽이지만 건물은 무너지지 않게 만든 것이라는 사실, 콘크리트와 유리와 강철만 남아 있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당신이 알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p206
“전쟁에서 그들은 우리 중 일부를 죽일 것이지만 우리는 그들을 전부 없애버릴 것이다.” “그들은 위협이 제거될 때까지 사용 가능한 모든 화력을 사용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p208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자행하는 학살을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사고 구조를 가진 이들은 늘 존재한다. 팔레스타인은 원주민이고, 원주민의 땅을 약탈하는 이들은 이스라엘이다.
(앤드루 잭슨의 인디언 학살.) “나는 항상 내가 죽인 자들의 머리 가죽을 간직해왔다.” p208
➜19세기의 트럼프, 앤드루 잭슨 혹은 21세기의 앤드루 잭슨, 트럼프
그 모든 안락과 고상함의 수혜자로 자랐다는 것은 우리에게 더 큰 책임감과 능력을 준다. 그런 불공평한 특권의 근원을 폐쇄하고 그것의 기초가 되는 경멸과 혐오에 대항해 싸워야 할 책임,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예를 들어 읽고 쓰는 것을 배웠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갖지 못한 도구를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 비해 나는 내가 서 있는 곳, 문명의 중심에서 문명에 더 큰 손상을 입힐 수 있다. p211
➜우리는 우리 ‘문명’의 배신자가 되어 새 문명(?)을 세워야 한다. 전체 인류와 지구 생명을 위한 문명.
세금으로 고문과 살해를 가르치는 미국 아메리카 군사학교(SOA)(그것을 세금으로 운영하는 것은 사실 합당하다. 미국 시민들은 제3세계의 착취와 그를 위해 필요한 고문 등으로 경제적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트럼프 시기에 더 노골적으로 변한 듯 하다. 동맹도 착취하는데 말해 뭐하리.
그 많은 아름다움의 죽임 앞에서 목메어 우는 내 반응이 정상적인 것이고 예측할 수 있는 것이었음도 알게 해주었다. 그러한 상실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다른 형태의 상실, 즉 자기 인간성의 상실, 자신의 마음을 잃어버린 표시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이 모든 것을 깨달은 순간은 이 혐오의 문화, 노아의 규칙이 나에 대한 지배력을 잃어버리는 순간이었다. p213
FATMAN
7일차, 188-213p
194p. 사람들이 이런 물질을 일부러 제조한다는 것이 가끔은 믿기지가 않는다. 아마도 그보다 훨씬 더 믿기 어려운 사실은 그런 물질을 돈주고 사서 뿌린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서 이민 노동자들에게 최소 임금만을 주고 뿌리게 한다는 것이다.
195p. “이 얘기는 아무한테도 하지 않은 건데요. 저는 우리 문화가 구제될 수 없을 것 같아요. 이제 명이 다했어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205p. 밖의 정복과 안의 억압에 뿌리를 둔 우리 문명이 처음 시작과는 다르게 가리라는 것은 이미 누더기가 된 순진한 희망이다. 대다수 사람들의 피와 땀 위에서 소수가 누리는 안락과 고상함이 아닌 쪽으로 갈 수 있다는, 우리 문화가 이성에 따라 이성적인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는, 제정신이 박힌 인간적인 삶의 방식으로 전화하게 될 수도 있다는 순진한 희망의 누더기는 하나의 이야기에 의해 결국 벗겨지고 마는 것 같다.
205-206p. 내가 연방 대법원장 존 마셜이 “발견이 자격을 부여한다.•••• 그 자격은 소유로 완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는 것을 읽었을 때 기둥 일부가 부서졌다. 애머스트 경(프렌치-인디언 전쟁의 북아메리카 영국군 사령관)이 부케 대령에게 다음과 같은 명 령을 내렸다는 것을 읽고 나서는 기둥이 조금 더 무너져내렸다. '
"불평이 많은 인디언 부족들에게 천연두가 퍼지게 하는 것을 고안할 수는 없는 가? 우리는 이번 기회에 인디언들을 줄이기 위해 힘닿는 범위 내에서 모든 전략을 활용해야 한다." 부케의 답을 읽은 뒤에는 기둥이 더 많이 무너 졌다. 그는 자신이 "스페인식 방법"을 더 좋아한다고 답했다. 그것은 사냥개, 게릴라전 훈련을 받은 병사, 경기병을 함께 투입하여 "효과적으로 해충을 박멸 또는 제거"하는 것이다. (중략)
내가 직접 수년 동안 운동을 벌여서 보존되도록 한 1만 에이커가 넘는 숲이 불과 15개월 만에 모두 잘려 나가는 것을 보았을 때, 순진한 희망의 기둥이 어떻게 되었겠는가? 원시림의 큰 나무가 하나씩 넘어갈 때마다 나의 기둥이 얼마나 많이 무너져버렸겠는가?
211p. 그 모든 안락과 고상함의 수혜자로 자랐다는 것은 우리에게 더 큰 책임감과 능력을 준다. 그런 불공평한 특권의 근원을 폐쇄하고 그것의 기초가 되는 경멸과 혐오에 대항해 싸워야 할 책임,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예를 들어 읽고 쓰는 것을 배웠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갖지 못한 도구를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 비해 나는 내가 서 있는 곳, 즉 문명의 중심에서 문명에 더 큰 손상을 입힐 수 있다. 즉 인류에게 좋은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다.
213p. 내가 절망과 싸울 필요가 없고 절망은 절망적인 상황에 대한 정상적이고도 합리적인 반응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 많은 아름다움의 죽임 앞에서 목메어 우는 내 반응이 정상적인 것이고 예측할 수 있는 것 이었음도 알게 해주었다. 그러한 상실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다른 형태의 상실, 즉 자기 인간성의 상실, 자신의 마음을 잃어버린 표시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이 모든 것을 깨달은 순간은 이 혐오의 문화, 노아의 규칙이 나에 대한 지배력을 잃어버리는 순간이었다. 내가 어둠을 뚫고 어둠을 넘어 어둠의 저편으로 간 순간이었다.

아고라
오늘은 214쪽부터 243쪽까지, 「범죄자들」을 읽겠습니다.
이불
8일차 / 문명과 혐오
내가 초점을 이렇게 맞추는 이유는 힘없는 자들의 혐오보다는 권력과 동맹을 맺은 혐오가 더 흥미롭고(?) 더 무섭기 때문이다.
p.236
지구를 노예화하고, 그 위에 사는 사람들을 노예화하는 것은 흑인 남자들이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아프리카 문화도 아니고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문화도 아니다. 그것은 백인들의 서양 유럽 문명이다. 나는 코 앞에 닥친 위협을 이해하고 해소하고 싶다.
p.237
푸르게
8일차
우리는 엉뚱한 사람들을 감금해놓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경제적 이득을 위해서 경영인들이 공중보건을 해치는 일을 하도록 했다면 우리는 그들을 가두어 두고 감방 열쇠를 멀리 던져버려야 한다. p231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그 제품을 생산한 기업인들을 그렇게 느끼지 않을까.
무장 강도가 빼앗은 돈은 평균 250달러 정도고 은행 강도는 몇 천 달러 정도를 훔친다. 은행 강도의 형량은 평균 9.4년이다….조지 부시 1세의 아들 닐 부시는 저축대부조합의 부실로 국민들에게 10억달러 이상을 부담하게 했지만 감옥에서 단 하룻밤도 자지 않았다. p231~232
➜ 어쩌면 우리랑 이렇게 비슷할까. 법은 부유층, 권력층에게 유리하게 쓰여져 있다.
내가 이 책에서 혐오를 퍼뜨리는 자들이라고 흔히 짐작하는 이들과는 다른 사람들을 강조하고 있는 첫 번째 이유는 사람들이 너무 쉬운 곳만 보아왔기 때문에 훨씬 더 큰 위험에 대해 눈을 감고 있어서다. 두 번째 이유는 내 학생 하나가 말한 것과 같이 감옥이 사회를 비추는 깨진 거울과 같기 때문이다. p234
“이 아이들이 그렇게 폭력적인 이유 한 가지는 그들이 주류 사회의 가치관 중 많은 것을 채택하기도 하고 왜곡하기도 하기 때문이야. ‘적자생존’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갱 단원들은 항상 이런 이야기를 해. 그런데 걔들이 이런 말들을 어디서 들었을까? 사회에서 들은 거야. 즉 자본주의의 가치지. 사회 전체의 질서이기도 하고. 이제 사업가들은 다른 사람을 실제로 죽이지는 않지만….” p235
“‘돈이 안 되면 다 소용없어요.’ 누가 저 아이에게 저런 걸 가르쳤을까? 우리 모두가 가르쳤다고 하는 게 맞겠지…아이는 공동체의 튼튼한 기둥이 되는 대신에 감옥에 가 있어. ‘돈이 안 되면 다 소용없어’가 그 아이를 데려간 곳이 결국 거기야. 그러나 사회에서 말하는 대로 이 사회의 일부분이 되려고 그 아이는 애를 쓰고 있는 거야.” ..힘없는 자들의 혐오보다는 권력과 동맹을 맺은 혐오가 더 흥미롭고 더 무섭기 때문이다. 어느모로 보나, 혐오를 가지고 있으리라고 짐작된다는 것 때문에 혐오의 대상이 되는 대표적인 집단이 죄수들인데, 그들은 아주 힘없는 자들이다. p236
상대적 권력의 문제는 내가 백인 문화의 혐오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 중 하나다….지구를 노예화하고, 그 위에 사는 사람들을 노예화하는 것은 흑인 남자들이 아니다. …그것은 백인들의 서양 유럽 문명이다. p237
아프리카에서 백인 노예 상인을 도운 흑인 무역상들에 대해서는 별로 쓰지 않을 것이다. 시장에 팔 노예들을 확보하기 위해 전투를 벌인 아프리카의 왕들에 대해서도 쓰지 않을 것이다. …흑인이 백인을 린치한 것이 아니라 백인이 흑인을 린치했다. p238
➜ 하마스가 이스라엘 시민을 납치해 죽이고 포로로 삼은 것은 당연히 비난할 일이다. 하지만 그 일이 그 전과 후에 있었던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민족 말살 정책을 정당화하는 건 아니다. 거대한 착취와 혐오의 구조를 보지 못하고, 현상에서 나타난 폭력만으로 잘잘못을 따지는 건 결국 부정의에 가담하는 것이다. 만주의 독립군을 테러리스트로 표현한 일본 제국주의와 뭐가 다른가.
환경운동가가 우편물에 폭탄을 넣어 보내는 거랑 미사일을 쏘는 거랑 무슨 차이가 있죠? 미사일이 드럽게 많은 사람들을 더 죽인다는 점 말고 말입니다.
➜ 폭력을 독점한 국가, 그 국가를 통제하는 권력자, 그 권력자를 통제하지 못하는 민주주의. 세금을 낸다는 사실이 우리를 국가 폭력의 공범으로 만드는가. 저자의 주장은 과하다고 보지만 적어도 방관자가 되어선 안 된다. 그 세금이 폭력과 혐오에 쓰이지 않도록 요구해야 할 의무가 있다. 적극적으로 공범이 되지 않는 길이다.

아고라
오늘은 244쪽부터 279쪽까지, 「권력의 대가」와 「동화」를 함께 읽겠습니다.

아고라
우리 사회 제도의 위험 중 많은 부분은 우리 사회가 협력이 아니라 경쟁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를 희생한 대가로 다른 하나가 승리한다.
『문명과 혐오 - 젠더·계급·생태를 관통하는 혐오의 문화』 259쪽, 데릭 젠슨 지음, 이현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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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9일차 / 문명과 혐오
자아도취적인 사람들은 결국 실망을 하게 되고 항상 자신의 실망감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린다.
(중략)
적어도 한가지 조건에서는 자기도취가 심한 사람들도 자기 탓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 실수란 바로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p.249
우리 사회제도의 위험 중 많은 부분은 우리 사회가 협력이 아니라 경쟁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p.259
혐오는 착취하는 단순한 능력을 계속해서 갖는 것을 넘어선다. 즉 이들은 그들의 진정한 차이점 때문에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의 삶의 방식, 우리가 단 하나의 진정한 길이라고 선언한 그것이 사실은 유일한 삶의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혐오하는 것이다.
p.272
*읽을수록 저자의 넓은 식견에 놀라게 됩니다. 글을 더 많이 써주시기를 바라게 되네요 ㅎㅎ

곰의아이
“ 린치 집단은 흑인에게 고통을 가하는 데에서 큰 쾌락을 느끼지 않았던가?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느끼지 않았다. 왜냐하면 고문을 하는 중에도 그들은 그 희생자의 고유함, 개별성을 모르고 있었다. 그 사람은 어떤계층에 속한다는 것 때문에 죽었다. ”
『문명과 혐오 - 젠더·계급·생태를 관통하는 혐오의 문화』 247, 데릭 젠슨 지음, 이현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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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게
9일차
여기서 핵심은 죽인 자들의 의식 속에서 죽은 자들이 살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p247
추상화된 원거리 응징, 관계에서 떼어놓아진 도덕성은 이해할 수가 없다. p249
하느님은 다른 민족들을 이스라엘 사람들 손에 넘겨줄 것이며 그 민족들과 어떤 언약도 맺지 말라고 되풀이해서 경고했다. 그 민족들은 쫓겨날 것이고 그들 땅은 이스라엘인들이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거래 내용은 아주 분명한 듯하다. 네 인간성을 포기하고 타인들과의 상호 연결을 모두 해제하면 네가 꿈꿀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권력을 주겠다는 것. p250
➜선민 의식을 가졌던 나치 독일과 마찬가지로 선민 의식을 가진 이스라엘. 힘이 약했을 땐 희생자였으나 힘이 세진 지금은 나치처럼 행동하고 있다.
보지 않는다. 듣지 않는다. 사랑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존재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어떤 것과 관계를 맺지 않도록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것을 보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것을 보지 않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것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 끔찍한 순환이 완성된다. 내가 보지 않으려 하는 것을 파괴하는 것은 무지 쉽다. p251
반대하는 자들의 목소리를 모두 침묵시키거나 무시하며 밖으로 퍼져나갔고 안으로-심리적으로-확장되면서는 우리의 동기, 생각, 꿈, 욕구를 공략하여 내부의 반대 목소리도 침묵시켰다. 억압이 보이지 않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이 억압받는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고 우리는 평온하게 “고요하게, 법적으로, 박애주의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억압할 수 있게 되었다. p256~257
인종 차이가 강조되는 한, 가난한 백인은 부유한 백인이 흑인을 착취하듯이 자신들도 착취하리라는 것을 잊어버릴 것이다. p261
당장 우리 눈앞에 닥친 과제는 플럼크리크를 비롯한 목재 대기업들을 몰아내는 것이었다. 그 회사들이 없어지고 나면 그 다음에는 내가 당신을 쫓아내게 될 것이라고 내가 말했다. 우리 둘 다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가 서로 대립하게 될 일은 어느모로 보나 이론상으로만 가능할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p265
공적 영역의 모든 면에서 경쟁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즉각적으로 그리고 불가피하게 불안과 혐오를 낳는다. 세상의 근본적인 조직 원리가 경쟁이라고 믿는다면(또한 사회의 근본적인 조직 원리가 실제로 경쟁이라면), 세상이 무자비한 경쟁자들로 가득하다고 인식할 것이고, 경쟁자들 모두가 기회만 되면 나를 희생자로 만들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인식하면 세계가 피해자와 가해자만으로 구성되기 시작한다. p265
➜10대 남성 사이에 여성혐오, 우경화 현상이 심하다고 들었다. 입시 경쟁에서 여성에 뒤지기 때문에, 결국 좋은 대학, 좋은 일자리는 여자들의 차지가 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여성 혐오에 불을 지핀다. 10대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나 역시 부동산 계약을 할 때 상대방이 혹시나 사기를 치지 않을까 걱정한다. 생면부지인 거래 상대방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잠재적 범죄자로 격하하는 것이다. 서로를 믿지 못하고 공동체를 만들기 어려운 건 결국 경쟁 속에 서로를 적으로 인식하는 마음이 커졌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자유를 주신 것은 늘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는 조건하에서였다. 그 조건을 깨뜨리면 그 죄의 결과로 당장 종속당하는 위치에 놓이게 되고 죄에 대한 벌을 받게 된다.” …틀렸다고 생각한다. 늘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노예 상태일 뿐이다. 진정한 자유는, …명목상의 자유가 아닌 진짜 자유는, 분명 평화의 느낌을 줄 것이다. p266
➜앞의 인용문은 힘에 의한 평화라는 주장과 통하는 주장.
백인들의 도덕을 파괴하는 존재로 중국인들을 이와 같이 악마화하는 일은, 역사 시간에 배운 것을 기억해보자면, 백인들-영국-이 총으로, 전쟁을 일으켜서, 또 경제적 압박이라는 수단으로 여러 세대의 중국 국민들을 아편 중독자로 만든 뒤에 일어났다. p268
우리가 신봉하는 근거 없는 믿음 중 하나가 학살이 언젠가는 멈추리라는 것이다. 우리가 중국인들을 없애기만 하면, 백인 남자들이 일자리를 차지할 것이고…그러면 우리는 학살을 멈출 수 있다. 인디언들을 없애기만 하면, ‘명백한 사명’(미국이 대서양부터 태평양 해안까지 지배할 운명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으로 19세기 미국 영토 확장을 정당화하는 슬로건)을 완수할 수 있고, 그러면 학살을 멈출 수 있다. 가나안 사람들을 없애기만 하면, 우리는 약속의 땅에 살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학살을 멈출 수 있다. ..그러나 학살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언제나 새로운 적, 혐오의 대상을 찾아내므로. p269~270
중국인들이 혐오의 대상이 된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이 많은 유럽 이민자들처럼 미국의 다민족 사회라는 ‘용광로’ 속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디언들에게도 똑같은 혐오가 확장되었다. 동화되지 않는 인디언들은 뿌리뽑아야 했다. 인디언들의 문화가 많은 부분 파괴되고 나자, 즉 그 문화와 개인들이 이제는 주변 사람과 사물을 착취하는 권력자들에게 심각한 위협이 되지 않게 되자, 권력자들은-그리고 확대해서 보면 우리들 모두는-그들을 더 이상 미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우리는 여유있게 그들을 멸시하기만 하면 되었다. p272
➜탁월한 분석이다. 우리도 정말 똑같다. 중국인, 화교 싫어하는 이유가 그들이 중국 문화를 고수하기 때문이고, 이슬람 이주민 싫어하는 이유가 한국에 이슬람 문화를 퍼뜨릴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계속 ‘용광로’의 개념을 좋은 것으로 생각해왔다는 것이 난 항상 놀라웠다. …녹아들어가는 것이 모든 사람이 모든 단계에서 순전히 자발적으로 녹아드는 게 아니라면, 그것은 제노사이드라고 보아야 한다. 녹아드는-동화되는-사람은 그 누구든 독자적인 문화적 정체성을 잃어버리니까 말이다. 그것이 제노사이드다. p273
“논리나 도덕성은 항상 틀림없이 이윤에 종속돼. …도덕성도 마찬가지야. 관대함이 이윤을 위협하 때 지도자들은 자기 인간성을 내던지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어.” p276
‘우리가 소화되었을 때 우리 몸과 영혼을 소화 흡수해서 이익을 보는 것이 정확히 누구인가?” p279

아고라
오늘은 280쪽부터 309쪽까지, 「생산」을 읽겠습니다.
이불
10일차 / 문명과 혐오
당신도 혁명을 원할거라고? (중략) 미국인들이 혁명을 일으키지 않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월마트. 기저귀를 싸게 살 수만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줄 서서 기다릴 것이다.
p.284
가장 좋은 선전은 그 전제를 이야기하지 않고 재빨리 그것을 건너뛰고 청중을 그 주장 자체로 휩쓸어가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청중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어느새 대량학살에 동의하고 참여하고 있도록, 또는 지구를 노예화하고 죽이고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p.309

Alice2023
있는 그대로 보기
우리는 선택을 할 수가 있다.
타인들을 객체로 볼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주체인 그들에게 우리를 열어 보일 수도 있다.
"우리가 보려고 하고 들으려고 한다면"
푸르게
10일차
(아테네) 노예는 그들 스스로 생활할 수 없는 도구로 간주되었다. 오늘날 우리의 민주주의는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노동자, 소비자, 지구는 단지 도구로만 간주되며, 유용성이 있을 때 외에는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된다. p282
➜한국 사회에 노조 혐오가 강한 것도 이렇게 도구로 보고,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하고 취급당하기 때문일까.
공동체 전체에 도움이 된다 하더라도 자신들의 권력 유지와 상관 없는 규칙을 만들지는 않는다…궁극적으로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가 아니고 사실은 금권정치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신의 확고한 명령에 따라 성직자가 운영하는 신권정치 체제다. p284
생산이 공동체보다 중요하다. 생태계의 건강이나 풍요보다 더 중요하다. 행복보다 더 중요하고 생명보다 더 중요하다. p285
“그 일을 하는 검둥이들 전부한테 2.5달러가 들어간다 해도 그런 돈은 쓸 생각이 없어.” p289
어떤 사람이 선택을 할 수 있으려면, 선택하지 않을 자유가 있어야 한다. 1982년 영화 <소피의 선택>에서 나치 수용소로 끌려간 소피는 두 아이 중 한 아이를 선택할 것을 강요받는다. …우리 문화에서 정부의 일차적 기능은 사람들이 이른바 ‘자유시장’ 임금 경제에서 자유롭게 사는 선택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남아프리카 정부가 사람들로 하여금 광산에서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한 ‘부드러운 자극’으로 세금을 부과했던 것을 생각해보라. 평원 인디언들을 없애기 위해 미국이 정책적으로 들소 7000만마리를 도륙한 것을 생각해보라. p292
“내가 이 검둥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일찍 죽을 줄은 몰랐습니다.” 카바이드 사가 생산이라는 미명 아래 사람들을 죽인 곳은 보팔과 혹스네스트뿐만이 아니다. 테네시 주 오크리지를 보자. 1940년대부터 1984년까지 유니언 카바이드 사가 핵무기 공장을 가동하던 곳이다. p295
테미크 제조에 쓰이는 화학물질이 유출되어 135명이 응급처치를 받는 일이 일어난 다음, 유니언 카바이드 사의 회장 워런 앤더슨은 이렇게 말했다. “아르페주(향수)를 흘렸어도 135명이 입원을 했겠군.” 이 유출 사고와 앤더슨의 발언은 보팔 사고 후에 나온 것으로, 8000명의 죽음이 그에게 아무런 교훈도 주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인도네시아의 유니언 카바이드 공장에서 나온 수은이 논과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그로 인해 종업원 402명이 신장 질환을 얻었을 때, 회사 간부들은 의사들에게 그 문제에 대해 노동자들에게 이야기하지 말라고 말했다. 위험한 노동조건을 문제 삼으며 파업을 일으키는 노동자들은 즉각 해고되었다. …유출과 부인의 예는 얼마든지 있다. p297
생산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죽여온 회사가 유니언 카바이드 사뿐이냐 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프리포트 맥모란 사에 대해서도 그런 예를 줄 줄 나열할 수 있다. 그 회사는 미국에 본사가 있는 광산 회사인데 토착 문화의 환경을 파괴함으로써 동남아시아에서 제노사이드를 저질렀고, 토착 민들에게서 토지를 빼앗았으며, 저항하는 사람들을 기관총으로 쓰러뜨렸 다. …네덜란드의 초국적 석유 기업 쉘은 아프리카에서 토착 문화의 환경을 파괴하고, 토착민들에게서 땅을 빼앗고, 저항하는 사람들을 목매달아 죽임으로써 제노사이드를 저질렀다. 카길, 엑손, 몬산토, 와이어하우저, RJ 레이놀즈, 제너럴 일렉트릭, 타이슨, 맥삼 같은 대기업들이 만족할 줄 모르는 이윤을 추구하면서 일상적으로 저지르는 잔학 행위를 나열하는 것도 쉬운 일이다. p298
➜다시 영화 <아바타>가 떠오른다.
미국 등지에서 노예제가 사라지게 된 것은 갑자기 우리의 인종차별주의가 약해졌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 말이다.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노력 덕에 없어진 것도 아니고, 남북전쟁 때문에 사라진 것도 아니다. 노예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단지 형태를 바꾸었을 뿐이다. 새로운 형태가 더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권 정치의 높은 사제들, 즉 생산하는 자들에게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p303
“코코아가 공장에 배달되면, 그것이 노예 노동이 없는 가나에서 생산된 코코아인지 노예 노동이 많이 이루어지는 코트디부아르에서 온 코코아인지 구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노예제로 물든 제품을 알지 못한 채 통과시키고 소비자들은 알지 못한 채 사지요.
이것이 노예제의 전 지구화의 의미인데, 제가 노예제의 전 지구화라고 할 때 그 말에는 다른 의미도 담겨 있어요.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여러 나라들의 노예제는 점점 비슷해져갔어요. 이제 우리는 글로벌 형태의 노예제 한 가지만을 볼 수 있죠.”
우리 문화는 우리 모두를 어떤 생각의 노예로 만들어왔다….어떤 생각의 노예가 되는 것은 어떤 사람의 노예가 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하다. 자기가 노예라는 것을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기가 묶인 줄의 끝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개가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날들을 살아왔다. 우리가 보는 것이 현실의 전부고 예전에도 미래에도 그것만이 가능했고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다. 이 생각의 노예가 된 우리는 타인들을 노예로 만들었고, 어떻게 노예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지식을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버지가 딸에게, 어머니가 아들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언니가 동생에게, 교사가 학생에게, 주인이 노동자에게, 사장이 종업원에게, 노예가 노예에게 전해주었다. p305
말이 안 되는 전제에 의문을 품지 않고 우리에게 전해 내려온 이야기들의 내적 논리만을 성급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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