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와 함께 하는 조지 오웰 읽기

D-29
영국 문명에서 점잖음gentleness은 아마도 가장 두드러진 특징일 것이다. 이 점은 영국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당장 분명해진다. 영국은 버스 차장이 온순하고 경찰이 권총을 휴대하지 않는 땅이다. 백인들이 사는 나라치고 사람들을 인도 밖으로 밀쳐내기가 영국만큼 쉬운 데는 없다. 그리고 이와 짝을 이루는 특징 하나는, 유럽의 편자들이 늘 '방종'이나 위선이라 말하는 것으로, 전쟁과 군국주의를 혐오하는 태도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94,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전쟁 체험 중에 빠질 수 없는 것 하나는 사람한테서 풍겨나오는 지독한 냄새를 결코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변소는 전쟁문학에서 지나칠 정도로 써먹은 소재이긴 하지만, 우리 병영의 간이 변소는 스페인내전에 대한 내 나름의 환상을 깨는 역할을 했기에 간단히 언급하기로 한다. ...... 나는 변소 덕분에 처음으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었고, 그 생각을 자주 곱씹었다. "그렇다. 파시즘에 맞서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명분' 있는 싸움을 위해 여기 모인 우리 혁명군 전사들 하지만 우리 생활의 사소한 부분들은 부르주아 군대는 고사하고 감옥의 경우와 다를 바 없이 지저분하고 비천하다." 이런 인상을 간화한 건 그밖에도 많았다. 이를테면 참호 생활의 따분함과 동물적 허기, 남은 음식을 둘러싼 추잡한 음모,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사람들끼리 걸핏하면 벌이는 째째한 다툼 같은 것들 말이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134,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문장 수집 해주신 에세이는 저도 정말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전쟁 중에 이러한 논조의 글을 쓴다는 것이 좀 놀라웠는데 후에 [정치와 영어]와 같은 에세이를 읽으니 작가가 글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들이 어느 정도 읽히면서 이해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사실 조지 오웰의 글은 문장이 특별히 좋은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몰랐던 사실을 직시하게 해 주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워요. 하지만 이게 과연 에세이겠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
아름다운 문장들을 사랑하시는 @stella15 님의 기대에 한참 못미쳤나 봅니다😃 작가가 어떤 단어와 표현을 고르고 어떻게 문장에 생각을 담아야 하는지에 대한 에세이도 있던데 흥미로우실 것 같습니다:) 아울러 좋은 문장들 관련한 책들도 추천 부탁드립니다!
이 무렵 두꺼비는 오래 굶주린 뒤라 대단히 영적인 모습인 것이, 흡사 사순절 막바지에 다다른 엄격한 가톨릭 신자 같다. 동작은 늘어진 듯하면서도 목표가 뚜렷해 보이며, 몸이 오그라들어 눈은 유난히 커 보인다. 때문에 우리는 다른 때엔 느낄 수 없을지 모르지만, 두꺼비가 다른 어떤 동물보다도 아름다운 눈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금 같기도 하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도장반지 같은 데 박는 금빛의 준보석 같은 것이, 금록석이 그런 빛깔이 아닐까 싶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봄에 관해서라면 영국은행 주변의 좁고 음침한 길들도 빼놓을 수 없다. 봄은 어디나 스며들어 찾아오는 것이다. 어떠한 필터라도 통과할 수 있는 신형 독가스처럼 말이다. 봄을 흔히들 ‘기적’이라 부르곤 하는데, 이 닳고 닳은 비유는 지난 5~6년 동안 새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 우리가 견뎌야만 했던 겨울들 때문에 봄이 다시 기적처럼 여겨지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아주 어릴 때부터, 아마도 대여섯 살 때부터 나는 내가 커서 작가가 되리란 걸 알고 있었다. 열일곱 살 때부터 스물네 살 때까지는 그 생각을 포기하려고 했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그게 내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며 조만간 차분히 앉아 책 쓰는 일을 해야 하리란 의식을 갖고 있었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나는 외로운 아이들이 흔히 그러듯 이야기를 지어내고 상상 속의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는 습관을 갖게 됐는데, 애초부터 나의 문학적 야심은 고립됐고 과소평가됐다는 느낌이 뒤섞여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에게 낱말을 다루는 재주와 불쾌한 사실을 직시하는 능력이 있다는 걸 알았고, 그것이 나날이 겪는 실패를 앙갚음할 수 있게 해주는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내가 이런 배경 설명을 일일이 하는 것은, 어릴 때 어떤 식으로 성장했는지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한 작가의 동기를 헤아리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글의 주제는 그가 사는 시대에 따라 결정되겠지만(적어도 우리 시대처럼 격동적이고 혁명적인 시대에는 그렇다) 그는 작가 생활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이미 나름의 정서적 태도를 갖게 되며, 그것은 그가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무엇이다. 물론 그는 마땅히 자신의 기질을 다스려야 하고, 미성숙한 단계에 고착되거나 비뚤어진 심기에 매몰되는 경우를 피해야 한다. 하지만 일찍이 받은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버린다면, 글을 쓰고자 하는 충동 자체가 없어져버릴 것이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나는 어린 시절에 갖게 된 세계관을 완전히 버릴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계속 살아 있는 한, 그리고 정신이 멀쩡한 한, 나는 계속해서 산문 형식에 애착을 가질 것이고, 이 지상을 사랑할 것이며, 구체적인 대상과 쓸모없는 정보 조각에서 즐거움을 맛볼 것이다. 나 자신의 그러한 면모를 억누르려고 해봤자 소용없다. 내가 할 일은 내 안의 뿌리 깊은 호오와, 이 시대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본질적으로 공적이고 비개인적인 활동을 화해시키는 작업이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조지는 역시 소설 보단 산문에 강한 것 같습니다. 그의 글은 결코 만만히 읽히진 않죠.
그동안 여기저기에서 인용되는 문장들을 많이 봐왔던 [나는 왜 쓰는가]도 흥미로웠지만 [걸리버 여행기]에 대한 평론도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예전에 [걸리버 여행기]를 읽으면서 느꼈던, 이 부분을 왜 이렇게 표현했을까 등의 궁금했던 점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나는 정치적이고 도덕적인 의미에서는, 내가 그를 이해하는 한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묘하게도 그는 내가 유보할 것이 없이 찬탄하는 작가들 중 하나이며, 특히 <걸리버 여행기>는 나로서는 싫증이 난다는 게 불가능할 것 같은 책이다. 나는 여덟살 때 처음으로 이 책을 읽은 뒤로 적어도 여섯 번은 읽었다. 이 책의 매력은 무진장한 것 같다. 만일 책을 여섯 권만 남기고 나머지는 전부 없애야 한다면, 나는 단연코 <걸리버 여행기>를 그중 하나로 꼽을 것이다. 여기서 드는 의문이 하나 있다. 어느 작가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과 그의 작품을 즐기는 것 사이에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지적으로 공평무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과 입장이 전혀 다른 작가의 장점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즐기는’ 건 다른 문제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오, 걸리버 여행기를 6번이나 읽었다니 저는 아직도 못 읽고 있으니 뭐하며 사는지 모를겠습니다. ㅠ 조지의 나머지 다섯 권은 뭘지 궁금하네요. ㅎ
오! 네~ 저도 나머지 책들이 정말 궁금하더라구요😃
궁극적으론 문학작품의 가치를 판별하는 기준은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남느냐 말고는 없다. 생존이야말로 그 자체로 다수 의견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지표인 것이다. 톨스토이식의 예술론은 완전히 무가치한 것이다. 자의적인 가정에서 출발한 것일 뿐만 아니라, 아무렇게나 해석할 수 있는 모호한 용어들(‘진정한’이니 ‘중요한’이니 하는 말들)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톨스토이의 공격은 ‘응대’할 수 없는 무엇이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작성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
[책나눔 이벤트] 지금 모집중!
[삼프레스/책 증정] 모두의 주거 여정 비추는 집 이야기 『스위트 홈』 저자와 함께 읽기[도서 증정] <탄젠트>(그렉 베어) 편집자, 마케터와 함께 읽어요![다산북스/책 증정] 『악은 성실하다』를 저자 &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책 나눔][박소해의 장르살롱] 25. 가을비 다음엔 <여름비 이야기> 스토리 수련회 : 첫번째 수련회 <호러의 모든 것> (with 김봉석)도서관에서 책을 골랐을 뿐인데 빙의해 버렸다⭐『겹쳐진 도서관』함께 읽기
💡독서모임에 관심있는 출판사들을 위한 안내
출판사 협업 문의 관련 안내
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메뉴]를 알려드릴게요. [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
극단 '피악'의 인문학적 성찰이 담긴 작품들
[그믐연뮤클럽] 8. 우리 지난한 삶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여정, 단테의 "신곡"[그믐연뮤클럽] 4. 다시 찾아온 도박사의 세계 x 진실한 사랑과 구원의 "백치"[그믐연뮤클럽의 서막 & 도박사 번외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반과 스메르자코프"
같이 읽고 싶은 이야기_텍스티의 네버엔딩 스토리
김준녕, 오컬트도 잘합니다. [다문화 혐오]를 다루는 오컬트 호러『제』같이 읽어요🌽[텍스티] 텍스티의 히든카드🔥 『당신의 잘린, 손』같이 읽어요🫴[텍스티] 소름 돋게 생생한 오피스 스릴러 『난기류』 같이 읽어요✈️[책증정] 텍스티의 첫 코믹 추적 활극 『추리의 민족』 함께 읽어요🏍️
나는 너의 연애가 궁금해
[📚수북플러스] 6. 우리의 연애는 모두의 관심사_수림문학상 작가와 함께 읽어요[장르적 장르읽기] 5. <로맨스 도파민>으로 연애 세포 깨워보기[북다] 《나의 사내연애 이야기(달달북다02)》 함께 읽어요! [북다/책 나눔] 《하트 세이버(달달북다10)》 함께 읽어요!
각양각색! 앤솔로지의 매력!
[그믐앤솔러지클럽] 1. [책증정] 무모하고 맹렬한 처음 이야기, 『처음이라는 도파민』[그믐미술클럽 혹은 앤솔러지클럽_베타 버전] [책증정] 마티스와 스릴러의 결합이라니?![책나눔]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을 때, 시간을 걷는 도시 《소설 목포》 함께 읽어요. [장르적 장르읽기] 5. <로맨스 도파민>으로 연애 세포 깨워보기[박소해의 장르살롱] 20. <고딕X호러X제주>로 혼저 옵서예[그믐앤솔러지클럽] 2. [책증정] 6인 6색 신개념 고전 호러 『귀신새 우는 소리』
과학의 언어로 인간의 마음을 탐구하는 작가, 김초엽
[라비북클럽] 김초엽작가의 최신 소설집 양면의 조개껍데기 같이 한번 읽어보아요[다정한 책방] '한국작가들' 함께 읽기5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_김초엽[문풍북클럽] 뒷BOOK읽기 : 8월의 책 <지구끝의 온실>, 김초엽, 자이언트북스방금 떠나온 세계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레슨!
[도서 증정] 『안정감 수업』 함께 읽으며 마음을 나눠요!🥰지금보다 나은 존재가 될 가능성을 믿은 인류의 역사, 《자기계발 수업》 온라인 독서모임
한국의 마키아벨리, 그의 서평 모음!
AI의 역사한국의 미래릴케의 로댕최소한의 지리도둑 신부 1
🎬 우리가 사랑한 영화 감독들
[책나눔] <고양이를 부탁해><말하는 건축가> 정재은 감독 에세이『같이 그리는 초상화처럼』메가박스 왕가위 감독 기획전 기념... 왕가위 감독 수다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 함께 이야기 나눠요
저항의 문장가, 윌리엄 해즐릿!
[아티초크/책증정] 윌리엄 해즐릿 신간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와 함께해요![아티초크/책증정] 윌리엄 해즐릿 신간 『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 서평단&북클럽 모집[아티초크/책증정] 장강명 작가 추천! 해즐릿의 『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와 함께해요.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축하합니다!
[밀리의 서재로 📙 읽기] 31. 사탄탱고[이 계절의 소설_봄]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함께 읽기(신간읽기클럽 )1. 세계는 계속된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공룡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기로!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7. <경이로운 생존자들>[밀리의 서재로 📙 읽기] 10. 공룡의 이동경로💀《화석맨》 가제본 함께 읽기
모집중밤하늘
내 블로그
내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