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와 함께 하는 조지 오웰 읽기

D-29
하지만 내가 서점 일을 평생 하고 싶지 않은 진짜 이유는 그 일을 하는 동안 내가 책에 대한 애정을 잃었기 때문이다. 서적상은 책에 대해 거짓말을 해야 하는데, 그러다보면 책이 싫어지게 된다. 더 나쁜 건 언제나 책먼지를 털고 책을 이리저리 옮겨야하는 점이다. 내가 책을 정말 사랑한 적이 있긴 했다. 덧붙이자면 적어도 50년이 넘은 책의 모습과 냄새와 감촉을 사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시골에서 경매로 책을 1실링에 한 무더기로 사는 기쁨도 대단했다. ....... 그러던 내가 서점에서 일하게 되자마자 책을 더는 사지 않게 되어버린 것이다. 한 번에 5000권, 만 권씩 보다보니 책이란 게 시시했고 지긋지긋하기까지 했다. 요즘은 가끔씩만 책을 사고, 그것도 읽고는 싶은데 빌려 볼 수 없는 것만을 산다. 그리고 시시한 건 절대로 사지 않는다. 묵은 종이의 달큰한 냄새는 더 이상 내 마음을 끌지 못한다. 편집증 환자 같은 손님들과 죽은 왕파리들이 너무 쉽게 연상되기 때문이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49~50,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ㅎㅎㅎ 대단한 냉소지요~? 평생 몇 권의 소설과 수많은 에세이를, 마치 숨 쉬듯 글을 썼던 작가가 공공연히 ‘책이란 게 시시했고 지긋지긋하기까지 했다’니요 ㅎㅎ
근데 근거없는 소리 같지는 않습니다. 책을 좋아하면 절대로 서점은 하지 말라는 말을 오래 전에 듣긴했거든요. 조지도 별 수 없는 듯. 저도 가면갈수록 책이라는 물성을 좋아하지 점점 책을 안 읽게되는 거 같더라구요. 그나마 이곳 그믐에 오니까 도전을 많이 받게되더군요. 두루 감사할 일이죠. ^^
‘두루 감사할 일’에 정말 깊이 공감합니다~^^
앉는 자리가 터진 금박 입힌 의자가 둘 있고, 앉으려고 하면 미끄러져버리는 구식 말털 안락의자도 하나 있었다. 내 침대는 문에서 가장 가까운 벽면의 오른쪽 구석에 있었다. 발치 바로 맞은편에 다른 침대가 있었는데, 워낙 바짝 붙여둬서 나는 다리를 접고 자야 했다. 다리를 뻗고 자면 그 침대 주인의 등허리를 차버릴 수 있어서였다. (중략) 창은 모두 바람을 막느라 바닥을 빨간 모래주머니로 틀어막아가며 꼭 닫아두어서, 아침이면 족제비 우리처럼 냄새가 났다. 일어날 때는 모르지만 방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면 악취가 코를 찔렀다. (중략) 식탁에는 언제 봐도 여러 가지 식탁보가 덮여 있었는데, 맨 밑바닥엔 스테이크 소스 묻은 낡은 신문지가 한 층 깔려 있고, 그 위엔 끈적끈적한 흰색 방수포 한 장이, 그 위엔 녹색 서지 천 한 장이, 또 그 위엔 거친 린넨 천 한 장이 깔려 있는 식이었다. 그것들은 절대 바뀌는 법이 없었고 하나라도 벗겨내는 경우 역시 거의 없었다. 아침 식사 때 식탁에 떨어진 음식 부스러기는 대개 저녁 식사 때도 그대로 있었다. 나는 아침에 있던 부스러기가 점심을 거쳐 저녁까지 식탁의 어느 자리로 오르내리는지를 보는 일에 점점 익숙해졌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개정판 p.13-14,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개정판1936년 서른셋의 청년 조지 오웰이 영국 북부 탄광 지대에 관한 르포를 청탁받고 그들과 함께 지내며 겪은 생생한 체험담. “실업을 다룬 세미다큐멘터리의 위대한 고전”으로 불리며, 2010년 한겨레출판의 초판 이후 15년간 노동·계급·자본주의 등 정치·사회문제에 관심 있는 독자들의 필독서로 사랑받으며 회자되었다. 이번에 오웰의 다른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와 함께 새 장정을 입은 개정판으로 새롭게 선보인다.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읽다가 위건 부두에 잠깐 들렀습니다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네요 싸구려 하숙집의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정말 말씀해 주신 대로입니다. 문장 수집해주신 부분을 읽고 있으니 담담하게 써내려 간 듯 읽히는데 동시에 제가 마치 그 장소에 있는 것처럼 그 냄새를 맡고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이 듭니다!
런던 같은 도시에는 딱히 병원에 가야 할 정도는 아닌 정신이상자들이 길에 나다니는 경우가 언제나 많고, 그들은 종종 서점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왜냐하면 서점은 돈을 전혀 쓰지 않고도 오랫동안 서성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숀 비텔의 책 중 서점을 찾는 사람들의 다양한 유형을 린네식 생물분류법으로 정리한 책이 떠오르는 부분이었습니다ㅎㅎ 위와 같은 사람들이 속하는 종은 학명 cunctatio imprudens 할 일 없이 돌아다니는 사람입니다.
다른 대부분의 종과 마찬가지로 이전 책들에서 이 종을 언급한 바 있다. 이들이 서점을 방문하는 유일한 이유는 약국에 처방전을 내고 기다리거나 정비소에서 차가 수리되는 동안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다. 그들은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서점에서 시간을 보낸다. 서점에서는 최소한 비를 피할 수 있으며 기다리는 한두 시간 동안 읽을 흥미로운 거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뭐라도 사는 건 아니다.
귀한 서점에 누추하신 분이 - 세상 끝 서점을 찾는 일곱 유형의 사람들 숀 비텔 지음, 이지민 옮김
귀한 서점에 누추하신 분이 - 세상 끝 서점을 찾는 일곱 유형의 사람들서점 주인의 기쁨과 슬픔을 담담하면서도 다정하게 그려내 독자를 사로잡은 숀 비텔의 신작이 출간되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분명 나의 생계를 책임지는 이들의 심기를 건드릴 것”이라면서도, 헌책방을 운영하는 동안 만났던 각양각색의 손님을 저자 특유의 유쾌하면서도 시니컬한 문장으로 그려낸다.
와, 그러고 보니 서점 배경으로한 책들을 좋아하시나봐요. 혹시 서점 운영하시지 않나요? ㅎㅎ
맘 내키는 데 앉아서 맛있은 비스킷과 차를 양껏 먹고 마실 수 있는 작은 뜰이 있는, 이번 생에는 실현 불가능할, 책방을 그냥 맘 속에만 품고 있습니다😃☺️
창덕궁길 동네책방 수북강녕에 놀러 오시면 됩니다 ♡
그렇지 않아도 찾아 뵐 날을 이제나저제나 고대하고 있습니다🙏🏻🥰 수북강녕은 단순 비스킷이나 차 정도에 비할 수 없는, 곳곳에 애정이 듬뿍 담긴 책 컬렉션, 멋진 그림들, 그리고 무엇보다 책방지기님의 너른 식견으로 책에 대해서는 뭐든 여쭤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지요!
손님: 이 책 몇 페이지가 찢어져 있어요. 직원: 네. 저희 책은 오래된 중고책이다 보니까 전 주인에 의해서 젖거나 찢어진 부분이 어쩔 수 없이 있을 수 있어요. 손님: 그러면 가격을 낮춰 팔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20파운드나 하네요? 직원: 그렇긴 한데 이미 그 책의 상태를 고려해서 책정한 가격이에요. 책 상태가 더 좋았다면 20파운드보다 더 비쌀 거에요. 손님: 그래요? 그렇다면 가격 책정할 때 이 부분(어떤 찢어진 페이지를 가리키며)이나 이 부분(또 다른 찢어진 페이지를 가리키며)과 이 부분은 고려하진 않은 거죠? 왜냐면 여긴 2분 전에 우리 아들이 해놓은 거거든요. 직원: 그렇다면 이 책은 전보다 더 해진 책이 되겠네요. 아드님 때문에. 손님: 그렇죠. 그러면 가격을 더 낮게 책정해야 하지 않나요?
그런 책은 없는데요… - 엉뚱한 손님들과 오늘도 평화로운 작은 책방 젠 캠벨 지음, 더 브러더스 매클라우드 그림, 노지양 옮김
그런 책은 없는데요… - 엉뚱한 손님들과 오늘도 평화로운 작은 책방별난 손님들이 등장하는 귀엽고도 웃픈 책이 출간되었다. 그 손님들이 찾은 가게가 서점이라는 점이 특별하다. 저자 젠 캠벨은 영국 런던의 작은 책방에서 일하며 실제로 겪었던 사연들을 한데 엮어 서점 직원도 극한 직업이라는 사실을 유쾌한 필치로 그려낸다.
북런던에 있는 고서점에서 일하며 글을 쓰는 작가의 책도 생각이 나고요 ㅎㅎㅎ 이쯤 되면 오웰이 ‘편집증 환자 같은 손님들’에 치를 떨었던 것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아유, 얄미워! 저런 손님 만날까봐 서점 못 할 것 같아요. ㅎㅎ
바이런은 어디선가 ‘롱괴르’라는 프랑스어 단어를 쓰면서 지나가는 말로, 영국에서는 딱히 그런 ‘단어’는 없지만 그런 ‘개념’은 상당히 많다고 언급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심리 습성 중에는 워낙 두루 퍼져 있어서 거의 모든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끼치면서도 아직 이름은 없는 게 존재한다. 그런 것 중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나는 ‘민족주의 nationalism’라는 단어를 골라봤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앞서 언급한 민족주의적 애증에 대해 다시 말하자면, 그런 애증은 우리 마음에 들건 안 들건 우리들 대부분이 가진 기질의 일부인 것인다. 그런 기질을 없앤다는 게 가능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에 맞서 싸우는 것은 가능하며 그런 투쟁은 본질적으로 ‘도덕적’ 노력이라고 확신한다. 이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이 과연 어떤 사람인지 자신의 감정이 과연 어떤 것인지를 알아내는 문제이며, 그다음으로는 불가피한 편견의 여지를 두느냐의 문제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맥락이 같지 않을 수는 있겠으나 이 부분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울림이 큰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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