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와 함께 하는 조지 오웰 읽기

D-29
영어란 언어가 위중한 상태에 놓여 있지만, 우리가 나서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임을, 그러니 우리 문명이 퇴폐적인 만큼 우리 언어도 어쩔 수없이 전반적으로 함께 몰락하게 된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그런데 한 언어의 쇠락에는 궁극적으로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원인이 있는 게 분명하다. … 우리의 생각이 어리석어 영어가 고약하고 부정확해지지만, 언어가 단정하지 못해 생각이 더 어리석어지기 쉬운 것이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숨 쉬러 나가다 2부 읽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전후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읽으면서 전쟁을 모르는 사람으로서 이해가 덜 된다고 해야할까요.. 머리로는 알겠는데 거기서 끝나는 느낌으로 읽긴 했어요. 볼링의 아버지 가게가 서서히 망하고 세상이 바뀌고 다시는 전쟁 이전처럼 살 수 없음을 묘사하는 부분들에서 굉장히 낯선 느낌이 들더라구요. '겪어본 적 없어 알 길이 없는 그 느낌'이란 문장이 딱 적절한 제 마음의 표현이었습니다. 요번 필사 문장들은 어떻게 이렇게 표현했을까! 진짜 원문이 궁금해지는 문장들로 모아봤습니다.
저도 에세이를 읽으면서 전쟁 관련한 시대적인,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는 부분들은 참 어려웠습니다. 읽고 계신 소설을 읽어 보지는 못했는데요, 필사해 주신 문장들이 강하게 와닿네요. 특히 마지막 부분 ‘당신이 겪어봐서 말해주지 않아도 알 거나 겪어본 적 없어 알 길 없는’ 어느 시대에 대한 향수가 있는 것 같아요.
하나는 비유가 상투적이란 점이고, 또 하나는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글 쓰는 사람이 뜻하는 바가 있으면서도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거나, 뜻하지 않게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자기가 하는 말의 뜻이 통하든 말은 거의 개의치 않는 것이다. 이렇게 뜻이 모호하고 표현력 자체가 떨어지는 것이 오늘날 영어 산문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며, 정치적인 글은 거의 예외 없이 더욱 그렇다. 어떤 주제가 제기되자마다 구체적인 게 추상적인 것으로 돌변해버리며, 진부하지 않은 표현은 아무도 생각해낼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stand shoulder to shoulder with, no axe to grind, Achilles heel, swan song 등의 죽어가는 비유를 쓰지 말고 동사의 사용 범위를 -ise, de- 같은 형식으로 축소하지 말며 잔부한 표현에 not un-의 형식을 써서 괜히 심오한 듯한 인상을 주지 말고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는 부분에 with respect to, in fact that, in view of, in the interest of 등의 구를 쓰지 말며 라틴어나 그리스어, 그리고 과학 용어 등의 남용으로 소위 젠체하지 말 것을 언급하는 부분이 있는 에세이인데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어쩜 이렇게 예쁜 필체를 갖고 계세요? 악필이라 사진 올리기가 두렵습니다. ^^;
범접할 수 없는 양의 독서와 필사를 해오신 @새벽서가 님 앞에서 제 글씨가 부끄러울 뿐입니다☺️ 너무도 친절하신 말씀에 정말 감사드려요!!
지금까지 보여주고자 한 바와 같이, 오늘날 최악의 글쓰기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고, 의미를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 알맞은 이미지를 창조해내는 데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누군가가 이미 정리해놓은 긴 어군들을 이어 붙이고 순전한 속임수로 그것을 받아들여질 만하게 만드는데 있다. 이런 식의 글쓰기가 매력적인 건 그렇게 하기 쉽다는 데 있다. ‘내가 보기에 ~은 이치에 맞지 않은 가정이 아니다’라고 하는 게 ‘나는 ~라고 생각한다’라고 하는 것보다 쉬운 것이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과장된 문체는 그 자체로 일종의 완곡어법이다. 사실에다 보드러운 눈을 뿌리듯 라틴어를 잔뜩 쓰면 요지는 흐려져버리고 세부는 다 덮여버린다. 명료한 언어의 대적은 위선이다. 진짜 목적과 겉으로 내세우는 목적이 다를 경우, 사람은 거의 본능적으로 긴 단어와 진부한 숙어에 의존하게 된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영국 문명에서 점잖음gentleness은 아마도 가장 두드러진 특징일 것이다. 이 점은 영국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당장 분명해진다. 영국은 버스 차장이 온순하고 경찰이 권총을 휴대하지 않는 땅이다. 백인들이 사는 나라치고 사람들을 인도 밖으로 밀쳐내기가 영국만큼 쉬운 데는 없다. 그리고 이와 짝을 이루는 특징 하나는, 유럽의 편자들이 늘 '방종'이나 위선이라 말하는 것으로, 전쟁과 군국주의를 혐오하는 태도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94,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전쟁 체험 중에 빠질 수 없는 것 하나는 사람한테서 풍겨나오는 지독한 냄새를 결코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변소는 전쟁문학에서 지나칠 정도로 써먹은 소재이긴 하지만, 우리 병영의 간이 변소는 스페인내전에 대한 내 나름의 환상을 깨는 역할을 했기에 간단히 언급하기로 한다. ...... 나는 변소 덕분에 처음으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었고, 그 생각을 자주 곱씹었다. "그렇다. 파시즘에 맞서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명분' 있는 싸움을 위해 여기 모인 우리 혁명군 전사들 하지만 우리 생활의 사소한 부분들은 부르주아 군대는 고사하고 감옥의 경우와 다를 바 없이 지저분하고 비천하다." 이런 인상을 간화한 건 그밖에도 많았다. 이를테면 참호 생활의 따분함과 동물적 허기, 남은 음식을 둘러싼 추잡한 음모,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사람들끼리 걸핏하면 벌이는 째째한 다툼 같은 것들 말이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134,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문장 수집 해주신 에세이는 저도 정말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전쟁 중에 이러한 논조의 글을 쓴다는 것이 좀 놀라웠는데 후에 [정치와 영어]와 같은 에세이를 읽으니 작가가 글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들이 어느 정도 읽히면서 이해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사실 조지 오웰의 글은 문장이 특별히 좋은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몰랐던 사실을 직시하게 해 주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워요. 하지만 이게 과연 에세이겠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
아름다운 문장들을 사랑하시는 @stella15 님의 기대에 한참 못미쳤나 봅니다😃 작가가 어떤 단어와 표현을 고르고 어떻게 문장에 생각을 담아야 하는지에 대한 에세이도 있던데 흥미로우실 것 같습니다:) 아울러 좋은 문장들 관련한 책들도 추천 부탁드립니다!
이 무렵 두꺼비는 오래 굶주린 뒤라 대단히 영적인 모습인 것이, 흡사 사순절 막바지에 다다른 엄격한 가톨릭 신자 같다. 동작은 늘어진 듯하면서도 목표가 뚜렷해 보이며, 몸이 오그라들어 눈은 유난히 커 보인다. 때문에 우리는 다른 때엔 느낄 수 없을지 모르지만, 두꺼비가 다른 어떤 동물보다도 아름다운 눈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금 같기도 하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도장반지 같은 데 박는 금빛의 준보석 같은 것이, 금록석이 그런 빛깔이 아닐까 싶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봄에 관해서라면 영국은행 주변의 좁고 음침한 길들도 빼놓을 수 없다. 봄은 어디나 스며들어 찾아오는 것이다. 어떠한 필터라도 통과할 수 있는 신형 독가스처럼 말이다. 봄을 흔히들 ‘기적’이라 부르곤 하는데, 이 닳고 닳은 비유는 지난 5~6년 동안 새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 우리가 견뎌야만 했던 겨울들 때문에 봄이 다시 기적처럼 여겨지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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