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와 함께 하는 조지 오웰 읽기

D-29
하지만 전체주의는 신앙의 시대보다는 정신분열의 시대를 약속한다. 한 사회는 그 구조가 노골적으로 인공적인 것이 될 때, 달리 말해 지배계급이 그 기능은 잃었지만 강압이나 사기로 권력을 고수하는 데 성공할 때 전체주의화된다. … 하지만 전체주의에 의한 타락이 꼭 전체주의 국가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생각이 유행하는 것만으로도 일종의 독이 퍼질 수 있으며, 그 때문에 문학적인 목적으로 쓸 수 없는 주제들이 잇따라 생겨나게 되는 까닭이다. 강요된 통념이 있으면(흔히 그러하듯 두 가지 통념이 있어도) 어디서든 좋은 글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확장된 의미의 전체주의, 묵시적 전체주의 등으로 읽히면서 여전히 깊이 생각해 보게 되는 지점들이 많은 에세이였습니다.
어떤 펍을 특별히 왜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맥주 얘기부터 하는 게 자연스럽겠지만, 내 경우엔 “물 속의 달”이 제일 마음에 드는 건 흔히들 말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 “물 속의 달”에선 마실 것을 담는 용기에 신경을 많이 쓰며, 그래서 예컨대 맥주 한 파인트를 손잡이 없는 유리잔에 따라 오는 실수를 결코 범하지 않는다. 유리나무 백랍으로 된 조끼 외에, 그들이 지금의 런던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느낌 좋은 분홍빛 도자기 머그잔도 쓴다. 도자기 머그잔은 30년 전쯤 사라졌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투명한 잔을 좋아했기 때문인데, 내가 보기에 맥주는 도자기 잔에 따르는 게 더 맛있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시간 순으로 쓴 에세이를 따라 오다 보니 1946년 그 즈음의 오웰이 이런 에세이를 쓴 것이 어떤 이유였는지 왠지 알 것 같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고 그러네요.
“물속의 달”이 대단한 건 뜰이 있다는 점이다. 살롱에서 밖으로 이어진 좁다란 통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꽤 큰 틀이 나타나고, 거기 플라타너스들 아래 작은 녹색 테이블들과 철제 의자들이 놓여 있는 것이다. 뜰 한 쪽 끝에는 아이들 그네와 미끄럼틀도 있다. 여름날 저녁이면 여기서 가족 파티가 열린다. 그럴 땐 누구라도 플라타너스 밑에 앉아, 미끄럼 타고 내려오는 아이들이 신나서 지르는 소리를 들으며 맥주나 생사과술을 마실 수 있는 것이다. 아기들이 타고 온 유모차는 문 가까이에 세워두면 된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오, 이제 보니 영어 필사는 육필로 하시는군요.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글씨 차분하니 예쁩니다. 제가 언제 한번 이렇게 차분하게 써 본 적이 있던가 반성하게 됩니다. ㅎㅎ 근데 조지 오웰은 역시 저에겐 좀 어렵긴 하더군요. ㅋ
네~ 말씀해 주신 대로 너무 어렵습니다 ㅎㅎ 제대로 따라가려면 전쟁 전후의 국제 정세, 시대상, 영국인들의 정서 및 문화적 배경을 알아야 하고 작가론이나 작품론을 따라가려면 언급하는 작가들을 다 알아야 하는데 .. 전에 언급해 주신 최근 번역된 <조지 오웰 뒤에서>, 그 외의 평전, 소설, 에세이 등에 인덱스를 잔뜩 붙여 가며 읽고 있는데 정말 쉽지 않네요:)
우와, 대단하심니다! 저는 공부엔 영 취미가 없는 족속이라 감히...ㅠ 한 수 가르쳐 주십시오. ㅎㅎ
저는 공부는 영 아닙니다 … ㅎㅎ 그저 이것저것 들춰보고 있네요 ㅎㅎㅎ
영어란 언어가 위중한 상태에 놓여 있지만, 우리가 나서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임을, 그러니 우리 문명이 퇴폐적인 만큼 우리 언어도 어쩔 수없이 전반적으로 함께 몰락하게 된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그런데 한 언어의 쇠락에는 궁극적으로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원인이 있는 게 분명하다. … 우리의 생각이 어리석어 영어가 고약하고 부정확해지지만, 언어가 단정하지 못해 생각이 더 어리석어지기 쉬운 것이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숨 쉬러 나가다 2부 읽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전후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읽으면서 전쟁을 모르는 사람으로서 이해가 덜 된다고 해야할까요.. 머리로는 알겠는데 거기서 끝나는 느낌으로 읽긴 했어요. 볼링의 아버지 가게가 서서히 망하고 세상이 바뀌고 다시는 전쟁 이전처럼 살 수 없음을 묘사하는 부분들에서 굉장히 낯선 느낌이 들더라구요. '겪어본 적 없어 알 길이 없는 그 느낌'이란 문장이 딱 적절한 제 마음의 표현이었습니다. 요번 필사 문장들은 어떻게 이렇게 표현했을까! 진짜 원문이 궁금해지는 문장들로 모아봤습니다.
저도 에세이를 읽으면서 전쟁 관련한 시대적인,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는 부분들은 참 어려웠습니다. 읽고 계신 소설을 읽어 보지는 못했는데요, 필사해 주신 문장들이 강하게 와닿네요. 특히 마지막 부분 ‘당신이 겪어봐서 말해주지 않아도 알 거나 겪어본 적 없어 알 길 없는’ 어느 시대에 대한 향수가 있는 것 같아요.
하나는 비유가 상투적이란 점이고, 또 하나는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글 쓰는 사람이 뜻하는 바가 있으면서도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거나, 뜻하지 않게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자기가 하는 말의 뜻이 통하든 말은 거의 개의치 않는 것이다. 이렇게 뜻이 모호하고 표현력 자체가 떨어지는 것이 오늘날 영어 산문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며, 정치적인 글은 거의 예외 없이 더욱 그렇다. 어떤 주제가 제기되자마다 구체적인 게 추상적인 것으로 돌변해버리며, 진부하지 않은 표현은 아무도 생각해낼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stand shoulder to shoulder with, no axe to grind, Achilles heel, swan song 등의 죽어가는 비유를 쓰지 말고 동사의 사용 범위를 -ise, de- 같은 형식으로 축소하지 말며 잔부한 표현에 not un-의 형식을 써서 괜히 심오한 듯한 인상을 주지 말고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는 부분에 with respect to, in fact that, in view of, in the interest of 등의 구를 쓰지 말며 라틴어나 그리스어, 그리고 과학 용어 등의 남용으로 소위 젠체하지 말 것을 언급하는 부분이 있는 에세이인데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어쩜 이렇게 예쁜 필체를 갖고 계세요? 악필이라 사진 올리기가 두렵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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