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와 함께 하는 조지 오웰 읽기

D-29
아주 어릴 때부터, 아마도 대여섯 살 때부터 나는 내가 커서 작가가 되리란 걸 알고 있었다. 열일곱 살 때부터 스물네 살 때까지는 그 생각을 포기하려고 했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그게 내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며 조만간 차분히 앉아 책 쓰는 일을 해야 하리란 의식을 갖고 있었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나는 외로운 아이들이 흔히 그러듯 이야기를 지어내고 상상 속의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는 습관을 갖게 됐는데, 애초부터 나의 문학적 야심은 고립됐고 과소평가됐다는 느낌이 뒤섞여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에게 낱말을 다루는 재주와 불쾌한 사실을 직시하는 능력이 있다는 걸 알았고, 그것이 나날이 겪는 실패를 앙갚음할 수 있게 해주는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내가 이런 배경 설명을 일일이 하는 것은, 어릴 때 어떤 식으로 성장했는지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한 작가의 동기를 헤아리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글의 주제는 그가 사는 시대에 따라 결정되겠지만(적어도 우리 시대처럼 격동적이고 혁명적인 시대에는 그렇다) 그는 작가 생활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이미 나름의 정서적 태도를 갖게 되며, 그것은 그가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무엇이다. 물론 그는 마땅히 자신의 기질을 다스려야 하고, 미성숙한 단계에 고착되거나 비뚤어진 심기에 매몰되는 경우를 피해야 한다. 하지만 일찍이 받은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버린다면, 글을 쓰고자 하는 충동 자체가 없어져버릴 것이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나는 어린 시절에 갖게 된 세계관을 완전히 버릴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계속 살아 있는 한, 그리고 정신이 멀쩡한 한, 나는 계속해서 산문 형식에 애착을 가질 것이고, 이 지상을 사랑할 것이며, 구체적인 대상과 쓸모없는 정보 조각에서 즐거움을 맛볼 것이다. 나 자신의 그러한 면모를 억누르려고 해봤자 소용없다. 내가 할 일은 내 안의 뿌리 깊은 호오와, 이 시대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본질적으로 공적이고 비개인적인 활동을 화해시키는 작업이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조지는 역시 소설 보단 산문에 강한 것 같습니다. 그의 글은 결코 만만히 읽히진 않죠.
그동안 여기저기에서 인용되는 문장들을 많이 봐왔던 [나는 왜 쓰는가]도 흥미로웠지만 [걸리버 여행기]에 대한 평론도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예전에 [걸리버 여행기]를 읽으면서 느꼈던, 이 부분을 왜 이렇게 표현했을까 등의 궁금했던 점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나는 정치적이고 도덕적인 의미에서는, 내가 그를 이해하는 한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묘하게도 그는 내가 유보할 것이 없이 찬탄하는 작가들 중 하나이며, 특히 <걸리버 여행기>는 나로서는 싫증이 난다는 게 불가능할 것 같은 책이다. 나는 여덟살 때 처음으로 이 책을 읽은 뒤로 적어도 여섯 번은 읽었다. 이 책의 매력은 무진장한 것 같다. 만일 책을 여섯 권만 남기고 나머지는 전부 없애야 한다면, 나는 단연코 <걸리버 여행기>를 그중 하나로 꼽을 것이다. 여기서 드는 의문이 하나 있다. 어느 작가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과 그의 작품을 즐기는 것 사이에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지적으로 공평무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과 입장이 전혀 다른 작가의 장점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즐기는’ 건 다른 문제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오, 걸리버 여행기를 6번이나 읽었다니 저는 아직도 못 읽고 있으니 뭐하며 사는지 모를겠습니다. ㅠ 조지의 나머지 다섯 권은 뭘지 궁금하네요. ㅎ
오! 네~ 저도 나머지 책들이 정말 궁금하더라구요😃
궁극적으론 문학작품의 가치를 판별하는 기준은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남느냐 말고는 없다. 생존이야말로 그 자체로 다수 의견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지표인 것이다. 톨스토이식의 예술론은 완전히 무가치한 것이다. 자의적인 가정에서 출발한 것일 뿐만 아니라, 아무렇게나 해석할 수 있는 모호한 용어들(‘진정한’이니 ‘중요한’이니 하는 말들)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톨스토이의 공격은 ‘응대’할 수 없는 무엇이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악은 처벌받되 선은 보상받지 않는다. 셰익스피어 후기 비극들의 교훈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종교적이지 않으며, 확실히 기독교적이지도 않다. 시대 배경이 기원후라는 가정을 하고 있는 작품은 <햄릿>과 <오셀로> 둘 뿐인데, 이 두 작품 중에서도 <햄릿>에 나오는 유령의 좀 우스꽝스러운 행동들을 제외하면 만사에 정의가 실현되는 ‘내세’를 가리키는 부분은 없다. 이들 비극은 전부 인생이 슬픔으로 가득하긴 해도 살 만한 가치가 있으며 인간은 고귀한 동물이라는 인본주의적 가정에서 출발하는데, 이는 노년의 톨스토이가 동의하지 않았던 믿음이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톨스토이의 셰악스피어 평론, 특히 <리어 왕>의 비평에 대한 조지 오웰의 비평을 담은 에세이입니다. 이 글을 쓴 직후 주라섬으로 가서 이후로는 언론에 정기적으로 기고하는 글은 더이상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작가가 바라보는 톨스토이와 셰익스피어, 그리고 예술관과 현재의 관점에서의 그에 대한 여러 비평들을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가 무척이나 컸습니다.
저도 조지가 그렇게 많은 글을 썼을 거라곤 생각 못 했습니다. 대단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저도 정확한 정보는 모르나 소설 6편, 르포르타주 형식의 글이 4편 정도, 신문이나 잡지 등에 기고한 장단편 에세이 및 평론이 300편 정도라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아마 시도 썼던 것 같습니다. 제가 읽은 에세이가 40편 남짓 밖에 안되나 글의 소재의 다양함에서도 좀 놀랐습니다:)
이 부분을 보니 꼭 읽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관심있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문학 평론이 꽤 있던데요, 제가 읽어 보지 않은 작가들에 대한 평론도 흥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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