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의 서재로 📙 읽기] 28. 법정 밖의 이름들

D-29
세상 모든 피해, 그리고 피해자는 균질하게 회복될 수 없다.
법정 밖의 이름들 - 법 테두리 바깥의 정의를 찾아서 서혜진 지음
수많은 법률 중 형사처벌이나 피해자 보호를 위한 특별법이 생겨나게 된 계기는 슬프기 짝이 없다. 법률과 제도가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수많은 피해자의 죽음과 피로 만들어진 법이기 때문이다.
법정 밖의 이름들 - 법 테두리 바깥의 정의를 찾아서 서혜진 지음
60대 초반인 미정의 피해 감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수치심’이었다. 반면 스무 살 유나가 표현한 피해 감정은 ‘빡침’이었다. 유나에게는 “빡치고 짜증을 유발하는” 강제추행 피해였지만, 미정에게는 “죽고 싶을 만큼 수치스러운” 강제추행이었다. 무엇이 이들의 감정을 다르게 만들었을까? 이들과 함께 살아온 시대의 사람들, 그 시대가 가진 피해에 대한 인식, 사회의 분위기, 문화적 배경, 모든 것이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또 하나 중요한 요소가 있다. 성폭력 범죄를 바라보고 다루었던 법률의 태도이다.
법정 밖의 이름들 - 법 테두리 바깥의 정의를 찾아서 서혜진 지음
헌법재판소가 간통죄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며 성적 자기결정권을 언급한 때는 1990년이고, 대법원이 준강간죄의 보호 법익을 설명하며 성적 자기결정권을 언급한 때는 2000년이었다. ... 형법이 제정된 1953년부터 1995년 개정되기 전까지, 강간과 강제추행 등의 성폭력 범죄를 다루는 형법 제32장의 제목은 「정조에 관한 죄」였다. 1995년 12월 29일에 개정되어 1996년 7월 1일부터 시행된 이 법은, 정말 제목 그대로 정조에 관한 죄들을 규정했다. 즉, 국가가 보호하고자 했던 것은 피해자의 신체도, 자유도, 권리도 아니었다. 오로지 ‘정조’였다.
법정 밖의 이름들 - 법 테두리 바깥의 정의를 찾아서 서혜진 지음
습관적 폭력이 시간이라는 지속성을 만나 극단적 폭력이 되었다.
법정 밖의 이름들 - 법 테두리 바깥의 정의를 찾아서 서혜진 지음
때때로 피해자는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더라도 하루라도 빨리 그 일에서 해방되고자 한다.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생존의 기술이다.
법정 밖의 이름들 - 법 테두리 바깥의 정의를 찾아서 서혜진 지음
'추석 연휴 기간 일평균 가정폭력 신고는 매년 증가 추세다.' https://naver.me/5r3fBDa7 추석 전야 지금 순간.. 어느 곳에서도..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겠지요..
국민참여재판 제도가 성범죄 재판에 적용되면, 피해자에게는 가혹해도 너무 가혹한 과정이 된다. ... 국민참여재판 진행 시 피해자는 낯선 사람들 앞에서 증인으로서 피해를 아주 구체적으로 진술해야 한다. 하지만 당사자로서의 발언권은 사실상 없다.
법정 밖의 이름들 - 법 테두리 바깥의 정의를 찾아서 서혜진 지음
배심원 여러분들도 혹시 이렇게 생각하시나요? 피해자는 순결하고 문제가 없는 사람, 완벽한 사람이어야 한다고요. 사건 직후에 바로 경찰서로 달려가서 신고했어야 하고, 평소 품행에 어떤 문제도 없어야 하고, 비도덕적 행동도 하지 않았어야 하고, 감히 피해자가 사건과 관련된 합의금이나 배상금 등 어떠한 돈 이야기도 입 밖에 꺼내면 안 되고, 피해 이후에 사람들과 만나서 웃고 즐겨서도 안 되고, 평생 우울하게 지내야 한다는 생각. 이 모든 조건을 갖추어야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성폭력 통념. 우리가 그리는 왜곡된 피해자상이 결국 국민참여재판의 성범죄 무죄율을 비정상적으로 높인 원인입니다. 만약 배심원 여러분들께서 이런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하셨다면 잘못된 편견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사건을 판단함에 있어 성폭력 통념을 걷어내고, 한 번 더 피해자의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봐 주시길 바랍니다.
법정 밖의 이름들 - 법 테두리 바깥의 정의를 찾아서 서혜진 지음
피해자의 피해 회복은 가해자의 제대로 된 사과에서 시작한다. 사과를 받았다는 사실은 피해로 얼룩진 마음을 스스로 닦을 수 있는 큰 용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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