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독서 대신 청독(혹은 청서?)를 하는 편이라 우선 지옥편을 들었습니다. 죄목과 형벌, 죄인들이 줄줄이 나열되는 구조라 듣기에는 최적화된 작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충 윤곽은 잡았네요. 저도 역시 에피쿠로스 학파 모두가 단지 영혼과 사후세계를 부정했다는 이유로 지옥 6환에 떨어져 그런 벌을 받아야 하나 하고 입술을 삐죽거렸네요. ㅎㅎ
제게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수많은 그리스·로마 신화가 기독교적 서사 속으로 흡수된 방식이었습니다. 단테는 견고한 기독교적 신앙을 전제로 한 이 허구(fiction)에 또 다른 허구인 신화(myth)를 불러들여, 지옥의 풍경을 더욱 그로테스크하지만 일견 우화적인, 이중적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실제 고전 인물들과 당대의 인물들로만 이야기가 채워졌다면 역사와 사실을 엮어 놓은, 진중하지만 기묘함을 놓친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명작으로 간주되었을테지만요
그리고 의외였던 것은, 지옥의 가장 밑바닥을 차지한 이들이 살인자나 폭군이 아닌 ‘배신자’들이었다는 거죠. 단테에게 있어 악의 본질은, 아마도 기독교적 가치관과 정치적 유배로 끝내 고향땅을 밟지 못했던 그의 개인적 삶의 영향이 합쳐진 무엇이었던 거겠죠?
이번 주말 연극 무대 위에서 신곡을 보기 전에, 우선 천국편까지 완청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서 이제 연옥으로 넘어가야겠습니다. 마침 밀리의 서재에 여러 출판사 번역본이 올라와 있어 이책 저책 옮겨 다니며 참고하고 있는데요. 오딧세이 처럼 원본이 없는 책이다 보니 여러 필사본이 있을테고, 거기에 형식미도, 서사시에 가까운 운문 번역부터 쉽게 풀어쓴 번역서까지 여러 버전이 있어서 어투 및 고유명사 표기를 비교해보는 재미도 나름 괜찮습니다.
[그믐연뮤클럽] 8. 우리 지난한 삶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여정, 단테의 "신곡"
D-29

베오

은은
시작부터 불성실 참가자 냄새가 모락 나는 저는...귀스타브 도레 삽화가 궁금해서 열린책들로 시작!은 했습니다. 2곡까지 읽으니 진도율 2%더라구요 ㅡㅡㅋ
관극은 이번 주가 어려울 것 같아 10월 11일로 신청하겠습니다.

수북강녕
참석률부터가 워낙 '성실' 그 자체시니, '불성실'이라는 단어는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10월 11일, 잘 접수하였습니다
[그믐연뮤클럽] 8기는 현재까지 약 30분이 관극을 신청해 주셨습니다 와아... 단테 선생님과 지옥에 계신 분들이 다 놀라 뛰어오실 것 같아요~!

김새섬
와! 무려 30명 단체 관극이라니 역대 최다 인원 아닌가요? 날짜를 둘로 쪼개길 잘 하신 듯 해요. 연극계의 큰 손, 수북강녕 님!! 믿고 보는 연뮤클럽입니다.아멘~~~~

은은
우와아아 30명이요? 지옥 이전에 피악에서 절하시겠어요 수북강녕님 ㅎㅎㅎ

김새섬
저도 전자책으로 읽고 있는데 지옥 편이 34곡, 연옥 33곡, 천국 33곡으로 분량은 도합 100 편이네요. 한 곡씩 읽을 때마다 몇 퍼센트 완독했는지 바로바로 알 수 있어 좋습니다.

은은
아아 2곡 2%가 그런 거였군요!!! 바보를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_+

소리없이
“ 내가 말했다.
스승이여, 위대한 심판 후에는 이러한 고통이 더욱 커질까요, 아니면 줄어들까요, 아니면 그대로일까요?
그러자 그는
네 이론으로 돌아가라. 거기에 의하면 어떤 것이 완벽할수록 더욱 선을 느끼니, 고통도 마찬가지다. 이 저주받은 무리는 절대로 진정한 완벽함에는 이르지 못할 것이지만 지금보다는 가깝게 기대할 수 있으리. ”
『[그믐연뮤클럽] 8. 우리 지난한 삶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여정, 단테의 "신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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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북강녕
서해문집, 민음사, 열린책들, 그리고 오디오북까지... 여러 가지 버전으로 읽고 계시니 모임의 이야기도 더욱 다양해지는 것 같습니다
지옥의 6환과 가장 밑바닥에 대한 인상적인 의견도 잘 들었습니다 그믐인들은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 있으니 지옥이 아니라 천국에서 만나야 마땅합니다 암요!

수북강녕
“ - 회칙 : 단테 알리기에리 사후 6세기 말에 가톨릭 세계의 문학과 문예를 연구하는 교수와 학생들에게, 베네딕토 15세 교황 -
저는 다만 그를 찬양하는 일원으로서뿐만 아니라 또한 진정한 의미의 지도자로서 지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는 교회가 단테의 어머니라고 불릴 만한 최초이자 최고의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략) 문학을 공부하는 모든 이에게 단테가 사도적 교좌와 얼마나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의 위대한 명성에 대한 모든 찬사가 어떻게 동시에 가톨릭 신앙에 대한 찬사이기도 한 것인지를 할 수 있는 한 명백하게 보여 주고 싶습니다. (중략)
단테의 타고난 기품의 대부분이 그에게 숨을 불어넣어 준 신앙에서 나왔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이런 까닭에 그의 위대한 작품은 인간 예술의 모든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것에 못지않게, 또한 천상으로부터 받은 진리의 빛으로도 빛나고 있습니다. 과연 단테가 이러한 환상을 창작할 수 있도록, 즉 인간 죽음의 역사화로 추상할 수 있도록 이끌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이 창작과 추상은 오직 하나의 목적으로 인도합니다. 그것은 바로 현세와 내세를 다스리시는 신의 공의와 섭리가 인간에게 개별적이든 사회적이든 그들의 자유 의지로 선택한 행동에 상응한 상이나 벌을 내리신다는 것을 선언하려는 목적입니다. (중략) 마리아가 천사들과 인류의 모후로 계시는, 초월적인 아름다움으로 묘사되는 천국이 있는 반면에, 그 정반대로 그리스도를 따라 천국에 이르기를 거절한 자들이 벌을 받는, 우주의 최저점인 지옥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옥과 천국 사이에는 정화의 산이 있어, 영원한 고향으로 들어가기에 합당하도록 충분한 보속이 끝날 때까지 영혼들이 이곳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단테 시는 밑바닥에서 천상으로 가는 이 역정을 가톨릭 교리로 된 불후의 아름다운 자수로 수놓았습니다. ”
『단테의 신곡 - 상』 p.5-7/8-9,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최민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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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북강녕
'구원을 향한 7일간의 순례'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가톨릭출판사의 상하 버전은 베네딕토 15세 교황의 서문으로 시작합니다 이 책이 기독교 교리서가 아니며 교황들도 지옥에 있는 것을 묘사했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단테의 깊은 신앙과 그로 인한 숭고한 작품의 탄생에 대해 강조하는 서문입니다
교황의 다음 차례로는 '추천의 말 : 가톨릭클래식 시리즈 발행을 반 기며 : 천주교 서울대교구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도 붙어 있습니다 가톨릭 신앙이 녹아 있는 고전문학에 대해 담백하게 소개하고 추천하는 내용으로요

수북강녕
“ 「지옥편」 필사 시작합니다
- 제1곡 -
단테는 35세에 어두운 숲속에서 헤매다가 언덕 위의 한 빛을 발견하고 이를 향해 나아갔으나 표범과 사자, 그리고 승냥이와 이리들에 길이 막혀 다시 숲으로 돌아가려 한다. 이때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나 지옥·연옥·천국, 즉 삼계의 편력을 권하면서 스스로 길잡이가 되어 먼저 지옥으로 내려간다. p.37
- 제2곡 -
단테가 자신의 힘을 돌아보고 명계를 돌아보기에 충분한지 아닌지 의심할 때, 베르길리우스는 자신이 림보를 나와 황야에 오게 된 이야기를 한다. 이에 단테는 힘을 얻어 스승이며 길잡이인 그를 따라 지옥으로 향한다. p.51
- 제3곡 -
단테는 지옥 문에 이르러 그 위에 쓰여 있는 무서운 글귀를 읽은 후, 먼저 지옥권 앞에서 선에도 악에도 무관심했던 겁쟁이들의 혼을 본다. 더 나아가 아케론 강에 오니 사공 카론이 망령들을 재촉하여 배에 싣고 맞은편 해안으로 향한다. 이때 광야가 진동하고 전광이 번쩍이니 단테는 실신하여 땅에 엎어진다. p.64
- 제4곡 -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단테는 이미 지옥의 제1환의 가장자리에 와 있다. 베르길리우스를 따라 림보로 들어가니 여기가 바로 그리스도를 모르고 세례를 받지 못하는 자들이 머무르는 곳이다. 단테는 이곳에서 옛 시인과 철인, 명장, 그리고 열녀들의 혼을 보고,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지옥의 제2환으로 향한다. p.77
- 제5곡 -
마침내 지옥의 제2환에 오니 그 입구에서 단테는 지옥의 판관인 미노스를 본다. 이곳에는 사음의 죄를 범한 많은 무리가 지옥의 광풍과 칠흑 같은 어둠 속을 헤매는데, 그들 중 프란체스카의 영혼이 단테에게 불리어 애인 파올로와 함께 단테에게 그들의 슬픈 연애 이야기를 한다. p.93 ”
『단테의 신곡 - 상』 p.37/51/64/77/93,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최민순 옮김

단테의 신곡 - 상당대의 문화, 학문, 종교를 모두 담아낸 중세 문학 사상 가장 위대한 결작, 《단테의 신곡》이 가톨릭 클래식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그리스도교 신학 및 철학에 대한 지식과 문학적 재능을 바탕으로 원서의 운율을 살리고 풍부한 각주까지 더한 최민순 신부의 번역으로 된 이 책을 세련되고 현대적인 디자인, 고급스러움을 더한 양장 제본, 보기 쉬운 문체로 새롭게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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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북강녕
가톨릭출판사의 버전은 매 '곡'이 시작하기 전, 4-5줄의 간단한 요약으로 해당 '곡'에서 벌어질 일들을 소개합니다
운문만 따라가다 보면 대체 누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혼미해질 때가 있는데요
'곡' 앞의 요약이 헤매는 독자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주네요 ^^
밥심
다행히 열린책들 버전에도 각곡마다 서두에 요약 서비스가 있습니다.

수북강녕
각 출판사에서 번역할 때 얼마나 고민이 있었을까, 싶습니다
아름다운 운문을 살리자 니, 대중들이 정신줄을 붙잡고 따라오기 도저히 어려울 것 같고,
현대어 줄글로 풀어쓰자니, 그건 원문과 너무 달라지고...
@밥심 님의 소감과 요약, 나아가 새로운 엽편 창작도 기대됩니다
9월 28일과 10월 11일, 일정 모두 어려우신가요?! 우리 다시 백숙, 아니 치킨 함께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눠야죠 :)
밥심
아, 물에 빠진 닭다리를 나눠 뜯던 인연을 잊지 않으셨다니 감사합니다. 연극은 일정이 안 나오네요, 연휴 때 같이 놀자는 사람들이 많아서요. ㅋㅎ 엽편 창작은 커녕 완독이나 가능할지 두렵습니다. 제가 책을 조금 빨리 읽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아직 진도율 20%입니다(절망).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으로 한 편씩 엽편쓰면 재밌을 것 같으나 우선은 완독이 먼저죠.

하뭇
제가 그래서 '번역'된 문학을 읽는 것이 좀 힘들어요.
문학은 전달 수단인 언어 그 자체로도 의 미가 있는 것인데 그걸 다른 매개체로 바꾼 것이 과연 그 작품을 읽었다고 할 수 있는 걸까. 대략의 내용만 알 수 있는 거 아닌가.
한국 드라마 대사가 영어 번역 된 거만 봐도 언어 유희나 문화적 맥락이 전혀 전달이 되지 않더라고요. 그럼에도 외국인들은 그것만 봐도 좋아하긴 하지만, 진짜 재미와 깊이를 이해할 수는 없잖아요.
그것처럼 저는 문학도 그런 거 같아요. 세계 문학을 읽는다는 건, 그 내용을 아는 것 좀더 나아가 주제를 아는 것 정도에 그치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내용을 알고 주제를 아는 것 역시 가치가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소리없이
신부님께서 번역하신 것은 어떠한지 궁금했는데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리없이
“ 아무리 위대한 시인이라도 자신의 시대와 자기 역량의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한 한계에만 주목하여, 모든 종교가 상호 이해하는 시대에 새삼스럽게 단테가 뭔가, 지옥을 믿고 게다가 그곳에 정적을 처넣고 싶어하는 냉혹한 인간의 시를 왜 읽는가, 혹은 한 여성을 향한 짝사랑을 축으로 삼아 종교를 논하고자 한 망상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말하고 싶은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한 반론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해도 우리는 단테의 부정적인 면을 배우려는 게 아니다. 나는 자유로운 정신으로 인류 고전의 하나인 단테의 텍스트에 즉해서 자기 자신의 눈으로 배우라고 권고하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서 우리는 위대한 선구자가 시대의 억압에 어떻게 대항했는지, 어떻게 자신의 한계에 도전했는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며, 무엇보다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보다 잘살고 진정한 행복을 얻기 위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지를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추방당한 삶 속에서도 자기 자신과 신에게 충실했던 한 인간이 인류에게 보낸 선물이 바로 <신곡>이다. ”
『단테 『신곡』 강의』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단테 『신곡』 강의고독하고 집요했던 『신곡』 50년 공부의 결실, 1년 6개월에 걸친 품격 높은 강의와 질의응답을 담은 최상의 가이드북. 저자가 서양 철학을 전공했고, 그리스·로마 문학과 가톨릭 신학을 오랜 시간 공부하고 연마했기에, 작은 용어 하나라도 시간의 축적 과정에서 파생되는 의미의 맥락을 짚은 다음 진도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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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
아...지옥편 읽으며 일종의 반감을 느끼고 14곡쯤에서 중단하고 있었는데 다시 읽을 동기를 주는 글입니다. 단테는 추방되어 떠돌다 죽었고 그 기간에 신곡은 썼다하니 이는 일종의 복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옥을 여러층위로 구분하고 각 층에 누구를 떨어뜨릴지 모두 단테가 정하는 거니까요. 결국 단테가 심판자네요. 엄밀히 말하면 이는 신성모독일 수도 있지않을까라고까지 생각했어요. 원제가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인것도 신화적 이야기를 끌어와 우화적 느낌을 살린것도 다 어느정도 가벼움으로 무마하기 위함인건 아닐까했죠. 그런복수라면 억울하게 고자된 후 사기를 쓴 사마천이 최고지 이건 뭐..이랬죠. 지옥 또한 그 자체로서 납득이 안가거든요.
정의는 내 지존하신 창조주를 움직여,
천주의 권능과 최상의 지혜와
최초의 사랑이 나를 만드셨노라.
3곡 처음에 나오는 글인데 여기들어오는자 모든 희망을 버리라는 유명한 글귀, 로뎅의 지옥문에도 새겨져있다는 그 글귀보다 최초의 사랑이 나를 즉 지옥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더 크게 와닿고 반감을 더 불러일으켰어요. 잘못을 지은 인간의 죄를 시시콜콜 따지고 끝없고 희망없는 지옥으로 보내면서 그 지옥을 사랑으로 만들었다니 그게 과연 신일까. 의문이 들더군요.
'장미의 이름'이란 영화를 보고 결국 종교는 두려움의 땅에서 자란다는 걸 깨닫고 지옥이라는 두려움을 기반하는교리는 거부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단테의 지옥 이야기가 시큰둥했는데 연옥은 철학이고 천국은 신학이라니 계속 읽어봐야겠네요.
이야기가 두서없었습니다. 확 와닿는 인용글이라 막 쏟아냈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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