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서가 아닌 원서를 함께 읽는 모임입니다.
저는 예전에 한 번 원서를 읽었고요. 이번에 다시 읽는데 다른 분들과 함께 읽으며 얘기를 주고받을 수 있을까 해서요. 번역서가 아닌 원서여야 하는 이유는, 저가 번역서가 아닌 원서에서 큰 감동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영어를 잘 못함에도 불구하고, 처음 이 소설을 한 달 가까이 천천히 읽다보니 마치 소설 속 주인공들의 유년 시절이 내 삶의 기억처럼 간직되더라고요.
저가 사실 오늘 여기 처음 가입해서 뭘 어떡할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냥 책 읽다가 아무 말이라도 아무 때라도 말 걸어주시면 저가 항상 기다리고 있다가 응답하겠습니다. 그럼 되지 않을까요?
앵무새 죽이기 <To Kill a Mockingbird> 영어 원서 함께읽기
D-29

뭐야모임지기의 말

뭐야
혹시 책을 어떻게 구할지 궁금해하실 것 같아 덧붙입니다.
이 책 앵무새 죽이기의 원서
Harper Lee의 To Kill a Mockingbird는
굉장히 유명한 소설입니다. 그래선지 동네 도서관이 영서 코너가 있는 정도 규모라면 대부분 이 책이 꽂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알라딘 중고서점 같은 데 들러봐도 흔히 꽂혀 있고요.
새 책으로 온라인으로 구입하시려면 것도 어렵지 않지만
만약 그렇다면 과연 이 책이 본인이 원하는 책인지 구글링을 해서 미리 한 번 읽어보세요.

뭐야
근데 미리 읽어보시면 앞부분이 조금 어려울 수도 있어요.
저도 그랬거든요.
근데 이 소설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맨 앞에 몇 장입니다.
그 몇 장만 넘어가면 주인공 코찔찔이들 위주로 얘기가 흘러가기 때문에 훨씬 쉬워집니다.

뭐야
그러고보니 이 책에 대한 소개도 제대로 하지 않았네요.
왜 하필 이 책이어야만 하는지, 게다가 원서여야만 하는지...
뭐 유명하기로는 지구상에서 랭킹 10 바깥 밀려나면 서러워질만한 소설이긴 합니다.
뭐 유명하다고 나한테 꼭 좋으라는 법은 없지만, 저는 확실히 좋았습니다.
솔직히 너무나 완벽한 소설이라고 생각했고요. 동시에 10명의 독자가 읽으면 5명 이상에게는 분명 가슴을 울리게 할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번역서라면, 저도 국내 번역된 책을 몇 권 펼쳐봤고 집에도 하나 있긴 한데, 번역서로는 과연 이 소설이 10명 중 다섯 명 이상의 가슴을 울릴 수 있을지 자신할 수가 없었습니다.

뭐야
근데 그럼 일단 영어를 잘해야 하지 않나? 그래야 읽고 감동을 받든말든 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일단 제가 영어를 잘 못합니다. 살면서 영어를 잘한다는 자신감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학교에서 억지로나마 줏어들은 게 있고 또 요즘은 번역기도 있고 AI도 있다보니까 영어를 잘 못해도 읽으려면 읽을 수 있습니다. 단지 좀 귀찮을 뿐이죠. 그리고 좀 느릴 뿐이죠.
그래서 원서를 읽는 것은 영어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책을 아주 천천히 꼼꼼히 열심히 읽는 것을 과연 받아들일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뭐야
그렇게 아주 천천히 꼼꼼하게 열심히, 이 소설 To Kill a Mockingbird를 저와 함께 읽어나가신다면
저는 솔직히 어느정도 장담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을 읽는 열 명 중 다섯 명은 가슴이 울리는 독서를 체험하실 수 있을 거라고요. 근데 문제는 열 명이 모일 리는 없다는 거겠죠. 아무튼 뭐 궁금한 거 있으면 저처럼 이렇게 주절주절 아무 말이나 남겨주시면 저가 응답하겠습니다. 아무 말이나 남겨주세요.

뭐야
“ When he was nearly thirteen, my brother Jem got his arm badly broken at the elbow. When it healed, and Jem’s fears of never being able to play football were assuaged, he was seldom self-conscious about his injury. His left arm was somewhat shorter than his right; when he stood or walked, the back of his hand was at right angles to his body, his thumb parallel to his thigh. He couldn’t have cared less, so long as he could pass and punt. ”
『[세트] 앵무새 죽이기 (그래픽 노블) + 앵무새 죽이기 - 전2권』 프레드 포드햄 지음, 이상원 옮김, 하퍼 리 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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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미리읽기를 해 볼까요. 소설의 첫 문단입니다. 화자의 오빠, 젬은 열 세 살쯤에 팔이 심하게 부러졌는데, 팔꿈치 쪽에서. 그게 다 낫고 그래서 축구(미국식 가짜축구)를 다시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사라졌을 때 오빠 잼은 그 부상의 별로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부상당한 그의 왼팔은 오른팔보다 약간 짧아졌고, 그가 서 있을 때나 걸을 때, 그쪽 손등이 몸과 직각을 이루고 그쪽 엄지는 그쪽 허벅지와 평행해지는 꽤 부자연스런 자세가 나오는 후유증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빠 잼은 패스하고 펀트(공차기)할 수 있는 한 그보다 더 무심할 수 없었다고 하네요.

뭐야
“ When enough years had gone by to enable us to look back on them, we sometimes discussed the events leading to his accident. I maintain that the Ewells started it all, but Jem, who was four years my senior, said it started long before that. He said it began the summer Dill came to us, when Dill first gave us the idea of making Boo Radley come out. ”
『[세트] 앵무새 죽이기 (그래픽 노블) + 앵무새 죽이기 - 전2권』 프레드 포드햄 지음, 이상원 옮김, 하퍼 리 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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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다음 두 번째 문단입니다. 그 후 충분히 시간이 지나 그 일을 돌아볼 수 있게 되자 우리, 화자와 오빠는 그 사고(오빠 팔이 부러진)를 있게 만든 사건들에 대해 논의했다네요. 화자는 Ewells가족 때문에 그 모든 게 시작되었다고 주장했고 반면 젬은(화자보다 네 살 위) 그것보다 훨씬 전이라고, 딜이라는 친구가 찾아온 그 여름부터 시작된 거라고, 딜이 처음 우리에게 부 래들리를 불러내자고 제안했던 바로 그때부터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뭐야
여기까지 읽고 정리하면 일단 화자(나중에 나오겠지만 진 루이스, 별명은 스카우트)와 그의 네 살 터울 오빠 젬이, 젬은 열 세살쯤이고 화자는 아홉 살쯤이었을 때 젬의 팔이 심하게 부러졌고 젬은 이후 그 일을 별로 신경 안쓰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그게 굉장히 큰 사건이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두 남매가 둘이 자라고 나서도 어쩌다 그 일이 벌어졌나 어디서부터 시작이었나 둘이 옥신각신하는 거죠.

뭐야
“ I said if he wanted to take a broad view of the thing, it really began with Andrew Jackson. If General Jackson hadn’t run the Creeks up the creek, Simon Finch would never have paddled up the Alabama, and where would we be if he hadn’t? We were far too old to settle an argument with a fist-fight, so we consulted Atticus. Our father said we were both right. ”
『[세트] 앵무새 죽이기 (그래픽 노블) + 앵무새 죽이기 - 전2권』 프레드 포드햄 지음, 이상원 옮김, 하퍼 리 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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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다음 세 번째 문단입니다. 그래서 화자가 말하길 오빠처럼 볼 것 같으면, 이 모든 건 앤드류 잭슨 장군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그가 인디언을 몰아내지 않았으면 우리가족 조상인 사이먼 핀치가 여기 알라바마로 오지 않았을 것고 그럼 우리도 없을 테니까. 오빠랑 나는 주먹질로 언쟁을 결론짓기에는 나이를 너무 먹어서 에티커스, 아빠한테 물어봤는데 그는 우리 둘 다 일리가 있다고 했다는 겁니다.

뭐야
쓰다보니 내가 왜 이걸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나, 의문인데 하여튼 여기서 언급되는 이 젬이 팔이 부러진 사건은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고, 어쩌면 이 소설 전체가 어쩌다가 그 사건이 벌어졌는지 점점 더 그 사건에 다가가는 이야기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럼 그 사건을 어디서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할지에 대해서 성인이 된 화자와 젬은 의견이 엇갈리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들 가족의 족보까지 거슬러올라가게 되고요, 그래서 이 다음에는 말 그대로 족보 이야기가 좀 나옵니다. 그래서 초반이 어려워지는 거고요. 하지만 그게 지나면 젬이 열 살 남짓이고 화자인 진 루이스가 아직 미취학 아동일 때 옆집에 딜이라는 친구가 놀러온 그 옛날 여름부터 소설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끝자락
유명한 소설이라 한 번 읽어보고 싶었는데, 우연히 운좋게 이 모임을 발견했네요. 원서는 초반에 손에 잡히지 않아 읽다가 금새 포기하곤 했는데, 위에 써주신 글들을 보니 이 책 이야기에 흥미가 생기네요. 조만간 원서책을 구해보겠습니다.

뭐야
안녕하세요. 끝자락님과 만나서 저도 운이 좋으네요 ㅋ

뭐야
자문자답) 한 달 동안 다 못 읽으면 어떡하지?
참여해주시는 분들이 생기니 구체적인 측면을 생각하게 되네요.
우선 우리 다 영어독해 능력이 각각 다를텐데, 그럼 어떻게 서로 페이스를 맞추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앞서 말했다시피, 저가 이 책을 읽었기에, 각자 어느 부분을 읽고 얘기를 꺼내시더라도 최소한 저는 그 얘기를 받아줄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각자 자기 페이스대로 읽고 언제까지 어디까지 읽어야 한다 뭐 그런 일정을 만들지는 않겠습니다. 잘 읽히면 잘 읽히는대로 잘 안 읽히면 안 읽히는대로 지속적인 소통이 이뤄지는 걸 우선하고 싶어요.

뭐야
그럼에도 우리는 한국사람이지 미국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영어를 잘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영어를 잘 못하는(허나 정규교육은 꾸역꾸역 받아서 전혀 못하지는 않는) 저 같은 사람을 기준하자면. 제가 가진 페이퍼백으로 이 소설은 370여 페이지 정도입니다. 그럼 이 소설을 한 달 안에 읽으려면 하루에 열두세 페이지 정도는 읽어야만 한다는 거고요. 매일매일. 그럼 저 기준으로 하루에 적어도 두세 시간은 온전히 이 소설에 투자를 해야 했었습니다. E북으로 읽으면 막히는 문장을 바로 긁어서 번역기나 AI에게 물어볼 수 있고요. 종이책으로 읽으면 번역서를 함께 빌리거나 준비해두고, 잘 모르겠으면 참고하면 됩니다. 물론 이렇게 열심히 읽더라도 한 달 안에 다 못 읽을 수 있고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한 달 만에 다 읽냐, 못 읽냐가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재밌었는가, 감동을 느꼈는가, 함께 좋은 대화를 주고받았느냐입니다. 우리가 이 책을 함께 읽으며 잠깐이라고 재밌고 뭔가를 느꼈고 좋은 대화를 주고받은 느낌이라면, 그럼 한 달 지나서 또 모임 만들어서 계속 읽으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결과나 목표 이전에 순간 순가의 과정이라는 거겠죠.
화제로 지정된 대화

뭐야
“ When he was nearly thirteen, my brother Jem got his arm badly broken at the elbow. When it healed, and Jem’s fears of never being able to play football were assuaged, he was seldom self-conscious about his injury. His left arm was somewhat shorter than his right; when he stood or walked, the back of his hand was at right angles to his body, his thumb parallel to his thigh. He couldn’t have cared less, so long as he could pass and punt.
When enough years had gone by to enable us to look back on them, we sometimes discussed the events leading to his accident. I maintain that the Ewells started it all, but Jem, who was four years my senior, said it started long before that. He said it began the summer Dill came to us, when Dill first gave us the idea of making Boo Radley come out.
I said if he wanted to take a broad view of the thing, it really began with Andrew Jackson. If General Jackson hadn’t run the Creeks up the creek, Simon Finch would never have paddled up the Alabama, and where would we be if he hadn’t? We were far too old to settle an argument with a fist-fight, so we consulted Atticus. Our father said we were both right.
Being Southerners, it was a source of shame to some members of the family that we had no recorded ancestors on either side of the Battle of Hastings. All we had was Simon Finch, a fur-trapping apothecary from Cornwall whose piety was exceeded only by his stinginess. In England, Simon was irritated by the persecution of those who called themselves Methodists at the hands of their more liberal brethren, and as Simon called himself a Methodist, he worked his way across the Atlantic to Philadelphia, thence to Jamaica, thence to Mobile, and up the Saint Stephens. Mindful of John Wesley’s strictures on the use of many words in buying and selling, Simon made a pile practicing medicine, but in this pursuit he was unhappy lest he be tempted into doing what he knew was not for the glory of God, as the putting on of gold and costly apparel. So Simon, having forgotten his teacher’s dictum on the possession of human chattels, bought three slaves and with their aid established a homestead on the banks of the Alabama River some forty miles above Saint Stephens. He returned to Saint Stephens only once, to find a wife, and with her established a line that ran high to daughters. Simon lived to an impressive age and died rich.
It was customary for the men in the family to remain on Simon’s homestead, Finch’s Landing, and make their living from cotton. The place was self-sufficient: modest in comparison with the empires around it, the Landing nevertheless produced everything required to sustain life except ice, wheat flour, and articles of clothing, supplied by river-boats from Mobile.
Simon would have regarded with impotent fury the disturbance between the North and the South, as it left his descendants stripped of everything but their land, yet the tradition of living on the land remained unbroken until well into the twentieth century, when my father, Atticus Finch, went to Montgomery to read law, and his younger brother went to Boston to study medicine. Their sister Alexandra was the Finch who remained at the Landing: she married a taciturn man who spent most of his time lying in a hammock by the river wondering if his trot-lines were full.
When my father was admitted to the bar, he returned to Maycomb and began his practice. Maycomb, some twenty miles east of Finch’s Landing, was the county seat of Maycomb County. Atticus’s office in the courthouse contained little more than a hat rack, a spittoon, a checkerboard and an unsullied Code of Alabama. His first two clients were the last two persons hanged in the Maycomb County jail. Atticus had urged them to accept the state’s generosity in allowing them to plead Guilty to second-degree murder and escape with their lives, but they were Haverfords, in Maycomb County a name synonymous with jackass. The Haverfords had dispatched Maycomb’s leading blacksmith in a misunderstanding arising from the alleged wrongful detention of a mare, were imprudent enough to do it in the presence of three witnesses, and insisted that the-son-of-a-bitch-had-it-coming-to-him was a good enough defense for anybody. They persisted in pleading Not Guilty to first-degree murder, so there was nothing much Atticus could do for his clients except be present at their departure, an occasion that was probably the beginning of my father’s profound distaste for the practice of criminal law.
During his first five years in Maycomb, Atticus practiced economy more than anything; for several years thereafter he invested his earnings in his brother’s education. John Hale Finch was ten years younger than my father, and chose to study medicine at a time when cotton was not worth growing; but after getting Uncle Jack started, Atticus derived a reasonable income from the law. He liked Maycomb, he was Maycomb County born and bred; he knew his people, they knew him, and because of Simon Finch’s industry, Atticus was related by blood or marriage to nearly every family in the town.
Maycomb was an old town, but it was a tired old town when I first knew it. In rainy weather the streets turned to red slop; grass grew on the sidewalks, the courthouse sagged in the square. Somehow, it was hotter then: a black dog suffered on a summer’s day; bony mules hitched to Hoover carts flicked flies in the sweltering shade of the live oaks on the square. Men’s stiff collars wilted by nine in the morning. Ladies bathed before noon, after their three-o’clock naps, and by nightfall were like soft teacakes with frostings of sweat and sweet talcum.
People moved slowly then. They ambled across the square, shuffled in and out of the stores around it, took their time about everything. A day was twenty-four hours long but seemed longer. There was no hurry, for there was nowhere to go, nothing to buy and no money to buy it with, nothing to see outside the boundaries of Maycomb County. But it was a time of vague optimism for some of the people: Maycomb County had recently been told that it had nothing to fear but fear itself.
We lived on the main residential street in town — Atticus, Jem and I, plus Calpurnia our cook. Jem and I found our father satisfactory: he played with us, read to us, and treated us with courteous detachment.
Calpurnia was something else again. She was all angles and bones; she was nearsighted; she squinted; her hand was wide as a bed slat and twice as hard. She was always ordering me out of the kitchen, asking me why I couldn’t behave as well as Jem when she knew he was older, and calling me home when I wasn’t ready to come. Our battles were epic and one-sided. Calpurnia always won, mainly because Atticus always took her side. She had been with us ever since Jem was born, and I had felt her tyrannical presence as long as I could remember.
Our mother died when I was two, so I never felt her absence. She was a Graham from Montgomery; Atticus met her when he was first elected to the state legislature. He was middle-aged then, she was fifteen years his junior. Jem was the product of their first year of marriage; four years later I was born, and two years later our mother died from a sudden heart attack. They said it ran in her family. I did not miss her, but I think Jem did. He remembered her clearly, and sometimes in the middle of a game he would sigh at length, then go off and play by himself behind the car-house. When he was like that, I knew better than to bother him.
When I was almost six and Jem was nearly ten, our summertime boundaries (within calling distance of Calpurnia) were Mrs. Henry Lafayette Dubose’s house two doors to the north of us, and the Radley Place three doors to the south. We were never tempted to break them. The Radley Place was inhabited by an unknown entity the mere description of whom was enough to make us behave for days on end; Mrs. Dubose was plain hell. ”
『[세트] 앵무새 죽이기 (그래픽 노블) + 앵무새 죽이기 - 전2권』 프레드 포드햄 지음, 이상원 옮김, 하퍼 리 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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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어제밤에 미리읽기를 너무 대충 해버린 것 같아서, 소설의 첫 몇 장을 가져와서 제대로 "미리" 보겠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이 첫 몇 장이 이 소설에서 가장 어려운데요, AI 제민이에게 부탁해 번역한 것도 올려볼게요. 물론 이 번역도 완벽한 것도 아니라서 미리 읽는데 혹 막히는 부분이 있다면 참고하시고 결국 각자가 직접 읽은 원문에 충실해야겠죠.

뭐야
내 오빠 젬은 열세 살이 다 되었을 무렵, 팔꿈치가 심하게 부러졌다. 팔이 다 나아서 젬이 다시는 풋볼을 못 하게 될까 봐 걱정했던 마음이 가라앉고 나니, 그는 다친 팔에 대해 거의 의식하지 않았다. 왼팔이 오른팔보다 조금 더 짧았는데, 서거나 걸을 때 손등이 몸과 직각을 이루고 엄지는 허벅지와 나란했다. 하지만 패스를 하고 펀트를 날릴 수만 있다면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사고 당시를 회상할 수 있을 만큼 시간이 흐른 뒤, 우리는 가끔 그 사건으로 이어진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나는 그 모든 일의 시작은 이웰 가문이라고 주장했고, 나보다 네 살 많은 젬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는 딜이 처음 우리에게 와서 부 래들리를 밖으로 나오게 할 계획을 세운 그 여름에 시작됐다고 했다.
나는 만약 넓은 시야로 봐야 한다면, 진짜 시작은 앤드루 잭슨 대통령부터라고 말했다. 잭슨 장군이 크리크 부족을 크리크 강으로 몰아넣지 않았다면, 사이먼 핀치는 절대 앨라배마 강을 거슬러 올라오지 않았을 거고, 그가 없었다면 우리가 어디 있었겠냐고. 주먹다짐으로 싸우기엔 우리 둘 다 너무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우리는 아빠인 애티커스에게 물어봤다. 아빠는 우리 둘 다 맞다고 했다.
남부 사람인 우리 가문에는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도 헤이스팅스 전투 양쪽 가문 중에 기록된 조상이 아무도 없다는 점이 일부 가족들에게는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우리에게는 사이먼 핀치라는 사람밖에 없었다. 그는 콘월 출신의 약종상으로 모피 사냥꾼이기도 했는데, 그의 경건함보다 더 대단한 건 그의 지독한 구두쇠 정신이었다. 영국에서 사이먼은 스스로를 감리교도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그들의 자유주의적인 동포들에게 박해받는 것에 분노했다. 그 역시 감리교도였기에, 그는 대서양을 건너 필라델피아로, 그다음은 자메이카로, 그리고 모빌로 가서 세인트 스티븐스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존 웨슬리의 엄격한 가르침인 사고파는 데 말을 많이 사용하지 말라는 것을 마음에 새긴 사이먼은 의술을 펼쳐 큰돈을 벌었지만, 이 일을 하면서 그는 자신이 하느님의 영광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금붙이나 값비싼 옷을 걸치는 일)에 유혹될까 봐 불안해했다. 그래서 사이먼은 인간을 재산으로 소유하는 것에 대한 스승의 가르침을 잊고 노예 세 명을 샀다. 그들의 도움을 받아 그는 세인트 스티븐스에서 40마일쯤 떨어진 앨라배마 강둑에 정착지를 세웠다. 그는 오직 한 번, 아내를 찾기 위해 세인트 스티븐스로 돌아갔고, 그녀와 함께 딸을 많이 낳는 가계도를 만들었다. 사이먼은 꽤 오래 살았고 부유한 상태로 죽었다.
우리 가문의 남자들은 핀치 농장이라 불리는 사이먼의 정착지에 머물며 목화 농사로 생계를 꾸리는 것이 관례였다. 그곳은 자급자족하는 곳이었다. 주변의 대농장에 비하면 소박했지만, 얼음, 밀가루, 그리고 의류를 제외하고는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생산했다. 이 세 가지는 모빌에서 오는 강배를 통해 조달되었다.
사이먼은 남북전쟁으로 그의 후손들이 땅만 남기고 모든 것을 빼앗긴 상황을 무기력한 분노로 지켜봤을 것이다. 그러나 땅에 의지해 사는 전통은 20세기까지도 깨지지 않았다. 그때가 바로 나의 아빠인 애티커스 핀치가 법을 공부하기 위해 몽고메리로 갔고, 그의 남동생은 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보스턴으로 갔을 때다. 그들의 누나 알렉산드라는 농장에 남은 유일한 핀치였다. 그녀는 말수가 적은 남자와 결혼했고, 남편은 대부분의 시간을 강가의 해먹에 누워 낚시줄에 물고기가 걸렸을지 생각하며 보냈다.
아빠가 변호사 자격을 얻고 나서 메이컴으로 돌아와 개업을 했다. 핀치 농장에서 동쪽으로 약 20마일 떨어진 메이컴은 메이컴 카운티의 군 소재지였다. 법원 내에 있는 애티커스의 사무실에는 모자걸이, 침 뱉는 통, 체커판, 그리고 때묻지 않은 앨라배마 주 법전 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그의 첫 두 의뢰인은 메이컴 카운티 교도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진 마지막 두 사람이었다. 애티커스는 그들에게 2급 살인죄를 인정하고 목숨만은 건지라고 주정부의 관대한 제안을 받아들이라고 간곡히 설득했다. 하지만 그들은 헤이버포드 가문이었고, 메이컴 카운티에서 이 이름은 멍청이라는 뜻과 동의어였다. 헤이버포드 형제는 암말을 불법으로 억류했다는 오해로 메이컴의 유명한 대장장이를 해치웠는데, 세 명의 증인이 보는 앞에서 이 일을 벌일 만큼 경솔했다. 그들은 '그 개자식은 그럴 만했다'는 것이 누구에게나 충분한 변호가 된다고 우겼다. 그들은 1급 살인죄에 대해 끝까지 무죄를 주장했고, 결국 애티커스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이 떠나는 순간에 함께 있어주는 것 외에는 없었다. 그날이 아마 아빠가 형사법을 몹시 싫어하게 된 시작이었을 것이다.
메이컴에서 처음 5년간 애티커스는 그 무엇보다 절약하며 살았다. 그 후 몇 년간은 번 돈을 남동생의 학비에 투자했다. 존 헤일 핀치는 아빠보다 열 살 어렸고, 목화 농사가 돈이 안 되던 시기에 의학을 공부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잭 삼촌을 자리 잡게 한 후, 애티커스는 변호사 일로 괜찮은 수입을 올렸다. 그는 메이컴을 좋아했다. 메이컴 카운티에서 나고 자랐고, 자기 동네 사람들을 잘 알았으며 그들 역시 아빠를 잘 알았다. 그리고 사이먼 핀치의 부지런함 덕분에 애티커스는 혈연이나 혼인으로 마을의 거의 모든 가족과 연결되어 있었다.
메이컴은 오래된 마을이었지만, 내가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피로에 지친 오래된 마을이었다. 비가 오면 거리는 붉은 진흙탕으로 변했고, 인도로 풀이 자랐으며, 법원 건물은 광장에 푹 주저앉아 있었다. 왠지 모르게 그때는 더 더웠다. 여름날 검은 개는 더위에 힘들어했고, 후버 카트에 묶인 앙상한 노새들은 광장에 있는 참나무의 후텁지근한 그늘에서 파리를 쫓았다. 아침 9시만 되면 남자들의 뻣뻣한 칼라가 축 처졌다. 숙녀들은 정오 전에 목욕을 하고, 오후 세 시에 낮잠을 잔 다음, 밤이 되면 땀과 달콤한 탈크 가루를 묻힌 부드러운 차 케이크 같았다.
그때 사람들은 느릿느릿 움직였다. 광장을 가로질러 어슬렁거리고, 상점들을 드나들며 모든 것에 여유를 가졌다. 하루는 24시간이었지만 더 길게 느껴졌다.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갈 곳도, 살 것도 없었고, 살 돈도 없었으며, 메이컴 카운티 경계를 벗어나서 볼 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에게는 막연한 낙관의 시대였다. 메이컴 카운티는 최근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직 두려움뿐'이라는 말을 들었으니까.
우리는 마을의 주요 주택가에 살았다. 애티커스와 젬, 그리고 나, 그리고 요리사 캘퍼니아가 함께였다. 젬과 나는 아빠가 마음에 들었다. 그는 우리와 놀아주고, 책도 읽어주고, 정중한 거리를 두고 우리를 대해주셨다.
캘퍼니아는 우리랑 좀 달랐다. 온몸이 각지고 뼈대만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근시여서 눈을 찡그렸다. 손은 침대 살만큼이나 넓적하고 그 두 배는 딱딱했다. 그녀는 항상 나에게 부엌에서 나가라고 명령했고, 오빠가 나이가 많은 걸 알면서도 왜 젬처럼 행동하지 못하냐고 물었고, 내가 아직 돌아갈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도 집에 오라고 소리쳤다. 우리들의 싸움은 장엄하고도 일방적인 것이었다. 캘퍼니아는 늘 이겼는데, 주로 아빠인 애티커스가 항상 그녀 편을 들었기 때문이다. 오빠 젬이 태어날 때부터 우리와 함께 있었기에, 나는 기억할 수 있는 한 늘 그녀의 폭군 같은 존재감을 느껴왔다.
우리 엄마는 내가 두 살 때 돌아가셨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부재를 느껴본 적이 없다. 엄마는 몽고메이 출신의 그레이엄 가문 사람이었는데, 아빠가 처음 주 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을 때 만났다. 그때 아빠는 중년이었고, 엄마는 아빠보다 열다섯 살 아래였다. 결혼 첫해에 젬이 태어났고, 4년 뒤에 내가 태어났다. 그리고 2년 뒤 엄마는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집안 내력이라고들 했다. 나는 엄마를 그리워하지 않았지만, 젬은 그리워한 것 같다. 그는 엄마를 아주 또렷이 기억했고, 가끔 놀이 도중에 길게 한숨을 쉬더니 차고 뒤로 가서 혼자 놀곤 했다. 젬이 그럴 때는 방해하지 않는 게 좋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거의 여섯 살이고 젬이 열 살 가까이 되었을 때, 우리의 여름철 놀이 구역(캘퍼니아가 부르면 들릴 거리)은 우리 집에서 북쪽으로 두 집 건너에 있는 헨리 라파예트 뒤보스 아주머니네 집과 남쪽으로 세 집 건너에 있는 래들리네 집이었다. 우리는 그 경계를 넘을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래들리네 집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살고 있었는데, 그에 대한 묘사만 들어도 우리는 며칠 동안이나 얌전하게 행동할 정도였다. 뒤보스 아주머니는 그야말로 지옥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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