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미술관2

D-29
지인으로부터 딱 제 취향이라는 말과 함께 선물 받은 책입니다. 이중섭, 나혜석, 이응노, 유영국, 장욱진, 감환기, 박수근, 천경자, 백남준, 이우환..... 눈에 익숙한 한국 화가들의 이름에 벌써 마음이 간질간질합니다.
1. 이중섭 이중섭의 <흰 소>는 중학교 교과서에서 처음 봤습니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제게 소는 그저 친근하고 얌전하고 말 잘 듣는 순한 동물이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저는 밝은 색감과 균형적인 작품들에 관심이 많았어서 이중섭의 전투력 넘치는 <흰 소>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심드렁한 제게, 소를 그려낸 이중섭은 이렇게 말합니다. p016 - "우리들의 새로운 생활을 위해서만 들소처럼 억세게 전진, 전진, 또 전진합시다." > 일 년에 적어도 한 번, 때론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서너 번 제주에 머무는 제가 서귀포에 가면 반드시 들르는 곳이 언덕 위의 이중섭미술관입니다. 너무 화려하거나 많이 밝지 않게 그려 넣은 그의 꿈들을 하나 하나 들여다 보고 설명을 읽다 보면 그 아름다움에 감복하다가도 그의 절망과 간절함이 느껴져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드러내 너무 떠벌리면 이뤄지지 않을 것 같아 조심스러운 그의 마음이 담긴 것 같아 더욱 그렇습니다. 가정에서의 교육은 물론이지만 학교에서의 교육 또한 사람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지는 이중섭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다닌 오산고등보통학교는 '독립운동 비밀결사 단체 신민회의 일원이자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일원이기도 했던 독립운동가 이승훈'이 설립했다고 작가는 설명합니다. 이중섭이 민족의 삶과 정신을 소를 통해 표현해 내고 서명 또한 한글로만 남긴 까닭이 어떤 마음에서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오 년 뒤, 1955년 서울에서 지인들의 도움으로 열린 전시회에서 팔린 작품들은 구입자들이 작품값을 지불을 하지 않아 이중섭에겐 금전적 이익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같은 해 대구에서 열린 전시회는 이중섭을 더욱 좌절에 빠뜨렸고 결국 그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버텨온 그의 오랜 노력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걸 느껴야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과연 누가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요. 그렇게 그는 가족에게 미안해하며 세상을 떠났습니다. p045 - 그가 세상을 떠난 해인 1956년. 뉴욕 현대 미술관(MoMA)에서 그의 은지화 3점을 소장품으로 결정합니다. '예술성뿐 아니라 소재 사용과 작가의 창의성으로 봐서도 실로 매혹적인 작품'이라는 평과 함께 말이죠. ...... ...... 그가 포기한 꿈은 그의 삶 끝에서 이뤄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 제 지인 중에 대구에서 미술을 직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이가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일을 통해 수입이 꽤 많곤 했는데 그의 주변에는 무명 작가들이 늘 많았습니다. 밥 한 번 함께 먹자고 기껏 기차 타고 대구를 내려가면 이런 저런 이유로 제가 알지도 못하는 작가들을 식사 자리에 부르곤 했습니다. 그에게 불려온 그들과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내는 게 살짝 불편하던 제가 어느 날인가 도대체 알지 못하는 작가들을 그리 부르는 이유가 뭔지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온 그의 대답에 더이상 불만을 품지 않았습니다. "니나야, 니 그거 아나? 나 같은 그림쟁이, 니 같은 글쟁이, 토리같은 딴따라..... 갸들 중에 지가 노는 물에서 꼭대기 1%에 들어야 겨우 밥 먹고 산다. 내는 1%는 아니지만 술도 먹고 산다. 니 알다시피 내가 맡아서 하는 일이 좀 많잖아. 그게 다 후배 데리고 친구 데리고 학생들 데리고 일하는 기라. 그렇게 번 돈이니까 내 몫에서 더 나눠야지. 사람이 밥은 먹고 살아야 안 하나?" 반 고흐의 동생 테오같은, 대구의 제 친구같은 누군가가 이중섭 주변에 많았으면 어땠을까요. 아니,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또 한 명의 이중섭이 최고은이 박은용이 힘겨운 하루하루를 버티며 [도원]의 꿈을 품고 살아가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2. 나혜석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서울 최초 유화 개인전, 일본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최초의 여성 유학생..... 시대를 벗어나 살았던 나혜석의 일생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1896년에 부잣집 딸로 태어나 18살에 일본으로 가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였고 첫사랑이던 시인 최승구의 사망으로 몸을 가누지 못할 실의에 빠집니다. 보다 못한 오빠 나형석으로부터 법학과 출신의 김우영을 소개 받은 때가 바로 그 이후입니다. 1919년 삼일만세운동 참여 독려와 모금활동을 진행했다는 혐의로 체포, 구금되었다가 풀려난 1920년 김우영과 결혼을 합니다. 만삭의 몸으로 열게 된 첫 개인전은 대성공으로 마무리되고 그 후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매년 수상을 하며 서양화가로서의 명성을 얻습니다. 1927년 김우영과의 세계일주는 나혜석에게 야수파 화풍을 공부할 황금같은 기회와 동시에 사회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될 위기를 불러옵니다. 1930년 김우영과의 이혼 그리고 사회를 향한 외침일 수 있는 <이혼 고백장>을 통해 나혜석은 모든 이의 눈 밖에 나게 되고 결국 53세의 나이로 서울시립병원에서 무연고자로 생을 마감힙니다. 나혜석의 작품들 중에 제가 좋아하는 작품은 그녀가 야수파에서 큰 영향을 받기 전에 그린 <농촌 풍경>과 이혼 후인 1933년에 그린 <자화상>입니다. 어쩌면 제가 단순하고 화려하고 명료한 야수파 화풍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까닭일 수도 있겠습니다. 1928년 작품 <자화상>을 모딜리아니 화풍으로 그렸다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모딜리아니 작품 속의 여인들은 '겉으로는 가냘퍼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무척이나 안정되고 만족스러워 깨어지거나 허물어지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에 반해 나혜석의 <자화상>은 외적으로는 강하고 굳건해 어느 것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아 보이지만 주름이 잡힌 채 채워진 앞단추와 가지런히 모아진 손, 무엇보다 이를 깨문 듯한 입술의 모양은 스스로를 지키기 불안해 보이는 인물의 묘사로 저는 읽습니다. 나혜석이 유화 물감을 맘껏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된 시기는 이혼 후 작품을 만들다가 만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1940년 작품 <무희>를 보면 그렇습니다. 외부의 판단이나 눈길에 영향을 받지 않는 듯한 무희들의 표정에서 담담한 화가의 마음이 옅보입니다. 그녀가 경제적 사회적 여유와 틈새를 조금만 더 누릴 수 있었더라면, 그래서 완성된 그녀만의 화풍으로 좀더 오래 작품 활동을 했더라면.... 그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큰 행운이었을 겁니다. p097 -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의 판단은 애초부터 없는 것이지만, 선택과 세월과 환경이 사람을 얼마나 다르게 만들어놓더냐.(....) 예부터 우리는 뜻이 굳으면 환경 따위는 문제가 안 된다고 들어왔지만 그 말을 믿지 말거라. 환경이야말로 우리의 마음과, 그리고 영혼까지도 주무를 수 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 해방을 맞이한 1945년 아버지 우영은 아들 진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런 글을 적어 보냅니다. 환경. 1927년 세계 여행에 앞서 '모든 탈을 벗고 펄펄 놀고' 싶었다며 '환경'이 그리 만들었다고 토로한 혜석에 관해 일언반구 하지 않았다던 우영. 시간이 흘러 60대 노인이 된 그는 새 아내 양한나가 운영하던 자매여숙을 열심히 도왔다고 합니다. 오갈 곳 없는 여인들과 고아들을 먹이고 재워주며 안전하게 보살펴주던 그곳을. > 나혜석을 사랑한 김우영의 용기와 인내와 분노와 고요함에 대해서는 이곳에 길게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가장 적절한 시기에 나혜석을 [대단한 나혜석]이 되게끔 도운 배경이며 디딤돌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3. 이응노 화가 이응노의 작품은 이러저러한 경로로 눈에 많이 익습니다만 그의 삶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였는데 이 책을 읽으며 또 새로운 검색을 통해 좀 더 상세히 알게 됩니다. 이응노를 '변신의 귀재'로 부르고 싶어하는 저자의 말마따나 그의 인생 마디마디는 새로운 시도로 이어집니다. '내 눈으로 본 실제 자연을 나만의 표현방식으로 그려야 한다'라는 생각을 갖고 '내 눈으로 본 것을 어떻게 새롭게(나답게) 표현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던 이응노에게 포기란 없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도 머물 곳이 없어도 그는 방법을 찾아내고 해결해 나갑니다. p114 - "당시 내 머릿속에는 민족적인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꽉 차 있었어요. 모두들 서양화만을 그린다면 동양화는 대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p119 - "역시 나는 권력자보다는 약한 사람들, 함께 모여 살아가는 사람들, 움직이는 사람들, 일하는 사람들, 뭔가 말할 수 있는 사람들 쪽에 관심이 갔고, 그들 속에 나도 살아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p131 - "그림이란 벽에 거는 장식품으로만 그쳐서는 안 돼요. 사회의 모순, 순수한 인간에 대한 애정. 이런 피 끓는 발언이 없어서는 안 되지요. 그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그림에 생명이 깃들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의 삶은 어쩌면 매순간이 새로운 시도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시도만 하다 결국 변신을 포기해버리는 미술가들이 제법 많습니다만 그에게 포기는 없었고 마침내 모든 작품들의 완성도를 꼭대기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존경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잭슨 폴록의 드리핑 기법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는, 동양화 기법을 흠뻑 입힌 이응노의 <생맥>은 폴록에서는 감지되지 않는 거침없고 생동감 넘치는 붓질로 엄청나고 강력한 힘을 드러냅니다. 개인적으로 1950년대의 작품들을 좋아합니다. 먹물로 아웃라인을 그리고 눈에 거스르지 않을 만큼의 색을 입힌, 마치 촛점을 맞춰 사진을 찍은 듯 인물들을 구성해낸 작품들에서 새로운 시도의 완성에 대한 이응노의 흡족함이 느껴집니다. 그의 삶을 들여다 보다 속담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 그의 인생에 던져진 수 많은 레몬들은 한 조각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가 떠나고 나서도 우리 주변엔 그가 만들어낸 새콤달콤한 레모네이드만 가득할 뿐입니다.
4. 유영국 일제 강점기에는 부잣집 자녀로 태어난 화가가 많습니다. 유영국 또한 울산의 부잣집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을 갈 수 있었고 서양의 문물이라면 거름없이 받아들이던 일본 덕(?)에 추상주의를 처음 접하게 됩니다. 탄압과 만행이 난무하던 식민 통치 아래 가난한 이가 무엇을 꿈꿀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어쩌면 그 겨울을 겪으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숫자보다 훨씬 더 많은 천재 예술가들을 잃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유학을 하며 서구의 추상주의를 접하고, '정신적 자유'를 추구하던 유영국은 제약과 규칙이 없는 추상미술이 자신이 마음껏 유영할 수 있는 조형예술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p148 - "예술가는 논리적 사고를 지녀야 한다. 시대의 조류는 늘 바뀌기 때문에 예술가는 10년 또는 20년 후 자기가 한창 활동할 때에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에 대해 미리 냉정하게 예측하여 공부해야 한다. 예술가에게도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두뇌가 필요하다" p159 - 작품이 팔리는 건 어려운 일이었지만, 무엇보다 서로의 작품을 직접 보고 생각을 주고받으며 자신의 예술세계를 더 '자기답게' 진화시키는 것이 중요했죠. 실제 이 과정에서 영국의 예술세계는 매우 큰 변화를 이루게 되는데요. > 스스로 세계를 만들어야 하는 예술가에게 주변 예술가들과 '서로의 작품을 직접 보고 생각을 주고 받'는 일은 요즘 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행여 누가 내 창작품을 흉내내지는 않을까 비슷한 더 나은 작품을 만들어내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예술가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세상 모든 삶에 경쟁이라는 두렵고 불안한 상황이 존재하는 까닭이겠지요. 건너 건너 아는 화가의 작품을 보고나서 작품의 작은 디테일에 대해 한 마디 조언을 해줬더니 변화를 주더라, 그런데 팔 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그의 작품에서 보이더라며, 괜한 얘기로 그를 가둬버린 게 아닌가 싶어 안타깝다고 지인이 말하더군요. 모여서 술병만 비우는 모임은 아무도 화가도 작가도 발전시키거나 변화시킬 수 없을 것 같습니다. p172 - 한평생을 살며 '나만의 언어'를 창조한다는 것. 단 하나의 언어를 만드는 것도 어려운 일일지 모릅니다. 대부분의 미술가 역시 하나의 조형언어를 만들어내기 위해 평생을 바칩니다. > 유영국이 그려낸 '유영국만의 언어'는 산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산을 감싸고 있는 자연입니다. 유영국의 작품들을 시기별로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가 얼마나 많은 시도를 했고 그 모든 과정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결과로 드러났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시도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그의 모습이 근사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품은 1981년 작 <사계절> 과 1994년 작 <산> 입니다. 누가 봐도 '한국의 산'임을 기가 막히게 표현해 냈습니다.
5. 장욱진 작가는 '외골수'라는 단어로 장욱진을 표현합니다. 제 머리에 떠오르는 작가 중의 외골수는 이외수입니다만 장욱진의 사진을 보면 이외수 작가와 어찌 그리 닮은 느낌 같은 분위기인지 모릅니다. 집안의 반대에 시달리면서도 꾸준히 그림을 그리다가 열여섯 살에 휴양차 머물던 수덕사에서 나혜석을 만나 "네 그림이 내 그림보다 좋다"는 칭찬까지 듣는 행복을 누린 그는, 스물세 살에 떠난 일본 유학에서조차 지도 교수의 가르침보다는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만들기 위해 미술책과 서양화가들의 그림을 통한 탐구를 거듭합니다. 그런데, 그의 작품들을 살펴 보면, 추상도 사실도 아닌, 난생 처음 하얀 도화지와 색연필을 선물 받은 행복한 어린 아이의 그림 같습니다. 도화지 구석구석을 빈틈 없이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주변 아름다운 것들로 모두 가득 채우며 뿌듯해하는 어린 아이 말입니다. 이번 생애에 두 장도 허락되지 않아 딱 한 장 안에 내 모든 행복과 꿈을 그려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고민을 거듭하고 그릴 존재들을 선별하고 구상하고 다시 고민하며 그려낸 단 한 장의 그림. 장욱진의 모든 작품들이 그렇습니다. p200 - "나는 고요와 고독 속에서 그림을 그린다. 자기를 한곳에 몰아세워 놓고 감각을 다스려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p204 - 마치 자연의 섭리에 따라 까치가 자신만의 알을 낳듯, 오리가 자신만의 알을 낳듯, 육진은 그렇게 자신만의 '그림 낳기'를 추구했습니다. 남이 만들어놓은 그 어떤 것도 베끼지 않고 오직 자기 내면에서 순수하게 생성된 영감과 이미지만을 그리려는 것. '그림에 나를 고백하고 나를 드러내고 나를 발산하는' 그림. 참으로 정직한 예술가의 자세입니다. ...... ...... 내면에 어떤 영감도 어떤 이미지도 떠오르지 않을 때, 그때 그는 술 뚜껑을 땄습니다. 그의 주도는 끝장을 보는 것이었죠. 마시기 시작하면 15-20일을 이어가 자신의 기력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 마셨습니다. 그의 이런 주벽을 두고 아내는 이렇게 말합니다. "머리에 비듬이 생기고, 항문이 열릴 때까지 가야 그친다." 거의 자학과도 같은 주벽을 마치고 난 후에는 미친 듯이 그림에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모든 기력이 소진될 때까지. 이렇게 그림을 그릴 때는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림에 완전 몰입할 때는 식음을 전폐하는 수준이었다고 하니 정말 그림과 술만 취한 취화선의 삶이라 할 만합니다. > "나는 심플하다"고 말하던 장욱진은 생활로 또 그림으로 이를 증명합니다. 장욱진의 그림에는 집을 가득 채운 가족과 멀지 않은 이웃들, 그리고 소, 돼지, 개, 닭이 있습니다. 아, 까치도 있습니다. 그림 속 까치와 장욱진 자신은 화면을 가득 채운 둥근 타원형 안에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요한 안정 가운데 사색하고 꿈을 꾸는 모습이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그는 동물들만을 그린 경우도 많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장욱진의 그림은 <동물가족> (1964)와 <소와 돼지>(1985)입니다. 이십 년 차이가 나는 두 개의 그림에서는 똑같이, 장욱진이 아니면 그릴 수 없는 선과 색 그리고 그림 밖 아니 울타리 밖 동물들을 바라보며 행복한 장욱진이 있습니다.
6. 김환기 섬에서 태어난 사람의 마음은 두 가지 중 하나라고 합니다. 섬이라는 벗어날 수 없는 환경이 답답해 절망하고 좌절하며 육지로의 탈출을 꿈꾸던지 매일 눈 앞에 펼쳐진 끝을 모를 바다와 하늘에 감동하며 행복해 하던지..... 김환기는 전라남도 신안군에 위치한 안좌도에서 태어납니다. 대지주라는 가업을 이어주길 바라는 아버지와의 협상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 일본 유학길에 오르는 것이었습니다만 약속을 어긴 아버지로부터 또 섬으로부터 탈출합니다. 김환기의 달항아리는 너무도 유명해 더이상 붙일 말이 없습니다. 다만 김환기라는 화가의 삶과 그의 달항아리가 완성될 때까지의 여정을 지켜준 김향안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감탄과 칭송을 금할 수 없습니다. 김환기는 여러모로 운이 좋은 사내였습니다. 나를 인정해주고 내 일을 이해해주고 나의 불안하지만 간절한 모든 과정을 응원해주는 사람을 찾고 맞이하고 여생을 함께 했으니 말입니다. P243 - "둥글다 해서 다 같지가 않다. 모두가 흰 빛깔이다. 그 흰 빛깔이 모두가 다르다. 단순한 원형이, 단순한 순백이, 그렇게 복잡하고, 그렇게 미묘하고, 그렇게 불가사의한 미를 발산할 수가 없다. 고요하기만 한 우리 항아리엔 움직임이 있고 속력이 있다. 싸늘한 사기지만 그 살결에는 다사로운 온도가 있다. 실로 조형미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p264 - "사랑이란 믿음이다. 믿지 않으면 사람을 서로 사랑할 수 없다. 믿는다는 것은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는 거다. 곧 지성이다." (향안) > 김환기의 파리 활동을 위해 미리 불어를 공부하고 김환기보다 먼저 프랑스로 가 화랑 관계자들을 만나며 김환기의 작품 전시회에 관한 의견을 타진하고 또 후엔 뉴욕으로 넘어가서 고난한 매일을 이어가며 김환기의 곁을 지키던 김향안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미술을 전공하다 그만둔 지가 한참이지만 제 아이의 방에는 제법 많은 두꺼운 노트가 아직도 한 켠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사는 도시를 방문할 때면 조용한 낮시간에 그 노트들 중 한 두 권을 집어 들고 침대에 앉아 한 장 한 장 살펴보곤 하는데요.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한 아이의 배경과 고민과 과정이 그 안에 차곡차곡 적혀 있고 그려져 있습니다. 아이가 육 년 동안 예술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만든 수 많은 작품들에 대한 설명과 과정은 보고 또 봐도 질리지가 않습니다. 아이를 키우던 엄마의 마음이 이럴진대, 사랑하고 사랑하는 남편의 작업과 그 모든 과정을 매일 지켜볼 수 있던 김향안은 한 시도 불행할 틈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7. 박수근 p270 -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p278 - 목판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평평한 나무판을 깎아 종이에 찍어내죠. 그래서 원근법을 활용해 공간의 깊이를 만들기 보다는 '평면적인 공간 구성'을 추구하게 됩니다. 또, 통제 가능한 색이 '흑과 백'뿐인 만큼 모든 형태를 '선'만으로 단순하게 표현하기를 추구하게 되죠. '평면적인 공간 구성'과 '선적인 대상 표현'에서 도드라져 나오는 단순한 화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수근만의 회화의 원리는 이렇게 판화의 원리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p279 - "나는 우리나라의 옛 석물 즉 석탑, 석불 같은 데서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원천을 느끼며 조형화에 도입하고자 애쓰고 있다." p285 - 마지막으로 수근은 신라인들이 화강석에 부처를 새긴 방식에 주목합니다. 신라인은 오직 '선'만으로 부처의 모든 것을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평평한 화강석 벽 위에, 전경과 배경의 구분 없이 선만으로 부처의 형상을 빚고, 화면 전체를 조화롭게 구성하는 신라인의 묘수. 수근 은 선만으로 모든 형상과 구성을 완성하는 신라인의 미학을 자신의 그림에 고스란히 담아냅니다. p294 -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매일 똑같은 노동을 성실히 수행하는 사람들의 행위. 그것이야말로 부처로 가는 수행과도 같은 것임을. 겉보기에 지극히 보잘것 없고 평범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지극히 고상하고 아름다운 행위라는 것을.수근은 그 직관적인 깨달음을 자신의 그림 속에 반영합니다. > 박수근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작품을 탄생시켰는지 알 수 있는 문장들입니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이 왜 '지극히' 평범한 우리의 이웃들인지 작품들의 질감이 왜 화강암을 닮았는지 그의 작품들은 왜 그리 단순한 선과 간결한 색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말입니다. 밀레와 판화와 신라 경주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실험하고 타진하며 마침내 완성시킨 박수근의 작품들! 박수근의 작품은 무엇보다 작품 전체에 깔려 있는 오돌도돌할 것 같은 질감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것입니다. 유화가 아니면 만들어낼 수 없는 질감인데요. 유화로는 가장 한국적인 풍경을 그려낸 화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르세, 루브르를 왜 가야 하냐고? 사진은 절대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화가가 만들어낸 작품 속 붓질, 바로 그 질감을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러 가는 거야. 그걸 알아채는 눈을 갖고 있지 않다면 굳이 돈 들여 갈 필요도 없지." 미술계에 한 발 아니 온몸을 푹 담갔다가 나온 제 지인의 말입니다. 해마다 가장 편안하고 익숙한 한국으로의 여행만 계획하던 제가 어쩌면 한국 스킵, 유럽 고고를 계획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8. 천경자 p313 - "어두컴컴한 방에서 불을 들고 파경을 향하여 가는 희곡의 어느 주인공이 되어 있는 것처럼, 나는 자신의 비애와 분노를 즐기며 예술을 구가하고 싶은 이상한 정신의 여백을 느낀다." p327 - "어려운 환경 속에서 아프리카 여행을 단행하게 된 광기는 오직 더 살고 싶은 집념에서였다. 나로서는 산다는 의미가 예술이라는 용광로에 불이 활활 타올라 새로운 작품이 쏟아져 나올 그 생활에 있고, 아프리카의 자극과 풍물은 내 마음의 용광로에 불을 붙게 하는 용광로가 되어 주리라 믿고 있다. 그렇게 해서 화가의 생명이 연장된다면 나라는 분신도 살 수 있는 것이고, 그러지 못할 때 나는 산다는 의미를 상실할 것이다." > 천경자의 작품 설명을 자극적으로 꾸미기 위해 작가가 너무 무리수를 두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의 대부분의 작품은 황홀한 환상을 품고 또 꽃처럼 지극히 아름다운 꿈을 꾸는 여인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작가는 그녀를 뱀과 무교의 상자에 억지로 구겨넣고 싶었을까요. (제 생각이지만) 뱀은 천경자 삶의 한 굵은 마디였을 뿐이었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작가는 그녀가 유부남인 김남중과의 인연을 길게 이어간 것 또한 천경자 스스로 '비애와 분노를 즐기며 예술을 구가하고 싶은 이상한 정신의 여백' 때문이라고 단정짓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천 화백의 차녀 김정희 교수가 여성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제가 생각하기에 어머니는 (두 번째 남편인) 저희 아버지를 굉장히 사랑하셨어요. 어머니는 주변에 문인, 동료 등 남자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한 번도 스캔들이 없으셨죠. 아버지만 사랑하신 거죠."라고 말한 걸 보면 작가만의 추측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로지 작품을 위한 영감을 찾아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도 45세부터 75세까지 삼십 년 동안 해외 여행을 다니며 자신을 성장시킨 천경자라는 예술가를 호도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억지스러운 설명보다는 차라리 천경자의 작품 사진을 책에 더 넣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9. 백남준 돈이 삶의 모든 기회를 지배하던 시절에 엄청난 부를 소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음악과 유학의 혜택을 누린 백남준입니다. 축복 받은 환경과 잠재력으로 천재적 성과를 거둔 영재입니다. 그의 많은 예술적 업적을 보면, 그는 천재입니다. 산업화 혁명의 시기에 태어나 경제적 자유를 누리며 살았지만 거짓을 일삼고 권력과 거래하던 사업가 아버지를 보며 사업가로서의 삶에 허망함을 느껴 백남준은 어쩌면 예술로 눈을 돌렸는지 모르겠습니다. 미술비평가이자 백남준의 예술 세계를 가장 깊이 연구한 이용우에게, "남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것을 포기한 순간부터 굉장히 자유로웠다." 라고 말했다는 백남준은 괴짜로도 유명합니다. 개인적으로 인상주의의 한 기법인 점묘법을 '획기적인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선을 점으로 표현하려는 생각을 어떻게 했을지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미디어아트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백남준의 작품들을 보면,그렇습니다. 사실 미디어아트 분야는 백남준이 아니더라도 관객 혹은 시청자 참여라는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는 흐름이었습니다만, 역시 첫 시도는 분야를 막론하고 매우 중요한 획을 긋는 대단한 일입니다. p357 - "지적이고 전문적이며 상업화한 문화와 부르주아의 병든 세계를 추방하라. 죽은 예술, 모방, 인공적인 예술, 추상적인 예술의 세계를 제거하라. 살아 있는 예술, 반예술을 진전시켜라. 평론가, 예술애호가, 전문가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현실 개념을 증진시켜라." > 요즘 한국을 장악한, 상업적이기만 한 디지털미디어아트를 다니다 보면 문득문득 식상함과 지루함이 올라오며 고요한 감동을 주는 평면예술이 그리워집니다. 생각해 보면, 바닥에 떠다니는 옥수수알을 따라다니며 밟아 팝콘을 터트리던 때가 제일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깨우침이 사라진 그리고 변화 없는 예술은 관객을 끌어모으지 못합니다. 백남준 사망 후 그의 작품들에 대한 모든 소유권은 맏형 백남일의 장남인 켄 백 하쿠다에게 돌아가고 용인에 백남준 아트센터가 세워집니다. 그곳에서 잠시 일했던 지인으로부터 삐걱거리고 시끄럽던 그곳 상황과 분위기를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떠나기 전 (그의 마지막 바램으로) 그의 모든 작품들이 그를 아끼고 응원하던 나라와 도시와 전시관으로 나눠져 가만히 머물며 모든 이들의 소유로 남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느낍니다. 그게 [굳모닝, 미스터 오웰]을 기획하고 공연한 백남준답지 않았을까요.
10. 이우환 작곡가가 되고 싶었지만 재능이 없는 것 같아 문학가를 꿈꾸며 사색과 글쓰기를 즐기다가 미술대학에 입학해 동양화를 전공합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몇 개월 되지 않아 일본에 사는 삼촌 병문안을 갔다가 일본에서 철학과에 입학을 합니다. 문학을 할래도 일어 실력이 부족하니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길입니다. 그렇게 돌고 돌아 이우환은 화가로 설치미술가로 거듭납니다. '선'과 '점'으로 표현되는 이우환의 작품들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김환기 작품들이 겹쳐 떠오릅니다. 김환기의 점묘화가 1970년부터 시작되었고 이우환의 작품 '점으로부터'가 1974년부터이니 점묘법이 한창 유행(?)일 시기인 것 같습니다. 김환기의 작품이 그리움과 애절함과 아쉬움 등 많은 감정이 아우러진 느낌이라면 이우환의 작품은 기름을 다 걷어낸 맑은 국같은 느낌입니다. 이번 생에 그럴 일은 없겠지만, 선물을 받는다면 김환기 작품은 현관 입구에 이우환 작품은 안방 침대 맞은 편에 걸어 놓고 싶습니다. 이우환의 철학적 사고에 대해 작가는 참으로 많은 페이지를 허용하며 어렵고 길게 적어 놓았습니다만 제가 난독증도 있고 어려운 단어 잘 이해도 못해서 드문드문 대애충 넘겼습니다. 다만, 그의 설치미술 작품들의 의미는 어느 정도 이해하겠습니다. 하지만 사실, 작품이라 함은, 음악이든 미술이든 춤이든 그게 무엇이든 이해보다는 느낌을 줘야하고 또 받아야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작가는 작품으로 자신을 이야기하고 관객은 작품 속에서 나 자신과의 연결고리를 찾으며 감동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방구석 미술관2]를 읽고 나서 아쉬운 점은 이렇습니다. 1. 작가는 '왜 우리는 서양미술에 열광하면서 한국미술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한국의 미술가들을 선별해 책으로 꾸몄다고 합니다만 사실 이 책에 실린 열 명의 미술가는 모두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분들이라 작가가 그들의 생애에 대한 비중을 줄이고 그들이 탄생시킨 작품들을 연대 순으로 설명하거나 작품에 얽킨 이야기에 더 집중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림들이 작품 연도와는 상관없이 실려 있어 작가의 화풍 변화를 알 수 없기도 합니다. 2. 미술가들이 더 알려지면 좋겠다 싶은 마음으로 책을 기획했다면 각 미술가에 대한 설명의 마무리로 그들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위치나 이름을 적어줬으면 좋지 않았나 싶습니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구글이나 네이버 검색하면 다 나오긴 합니다만, 나혜석 작품들이 다수 소장된 수원시립미술관이나 대전의 이응노미술관,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양주시립 장욱직미술문화재단과 리움미술관, 종로의 환기미술관,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 천경자 작품이 93점이나 소장하고 있는 서울시립미술관, 용인의 백남준아트센터와 창신동의 백남준기념관, 한국프레스센터 앞과 고려대 경영대학 본관 앞에 설치되어 있는 이우환의 '관계항'과 '관계항-장소성', 부산시립미술관의 '이우환 공간' 등..... 을 적어줬더라면 책을 읽는 사람들이 한 번쯤 찾아가 보고 싶어지지 않겠습니까. 특히나 미술관 가까이에 사는 분들은 더욱 그럴거구요. 뭐, 저는 그렇습니다. ^^ 개인적으로 도슨트투어를 좋아하지 않... 아니, 꺼리는 편입니다. 제가 아직 '제대로'의 도슨트투어를 해보지 못한 탓일수도 있겠습니다. 한국에서 미술관을 돌다 보면 그룹 관람객들과 관람 노선이 꼬일 때가 있습니다. 저도 한국말을 하니 관람객들 무리가 가까이 있으면 도슨트의 목소리가 워낙 커서 듣지 않으려 해도 귀에 들어오는데요. 작품에 붙어있는 설명서 내용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지나치는 경우를 꽤 봤습니다. 작품 관람은 많이 보는 것보다 작품 하나 하나를 잘 들여다보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제 입장에서는, 대표 작품 두어 개만 대충 보고 다음 전시실로 바삐 옮겨가는 발걸음들이 늘 아쉽습니다. 다 읽고 나서 살짝 아쉬운 걸 보니, 이 책을 읽기 전에 저는 근사한 도슨트투어를 기대했나 봅니다. 어쨌든 이 책을 추천하고 선물해준 지인 덕분에 내년 한국 일정은 잊고 있던 미술가들의 작품을 찾아 가까이 보려 합니다. 카카오맵에 별표시 해둔 곳들에 하나하나 발도장 눈도장 찍어 보겠습니다.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
[책나눔 이벤트] 지금 모집중!
[도서 증정] 우리의 일상을 응원하다 이송현 작가 신작《제법 괜찮은 오늘》 함께 읽어요![책 증정_삼프레스] 모두의 주거 여정 비추는 집 이야기 『스위트 홈』 저자와 함께 읽기[도서 증정] <탄젠트>(그렉 베어) 편집자, 마케터와 함께 읽어요![다산북스/책 증정] 『악은 성실하다』를 저자 &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
💡독서모임에 관심있는 출판사들을 위한 안내
출판사 협업 문의 관련 안내
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메뉴]를 알려드릴게요. [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
극단 '피악'의 인문학적 성찰이 담긴 작품들
[그믐연뮤클럽] 8. 우리 지난한 삶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여정, 단테의 "신곡"[그믐연뮤클럽] 4. 다시 찾아온 도박사의 세계 x 진실한 사랑과 구원의 "백치"[그믐연뮤클럽의 서막 & 도박사 번외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반과 스메르자코프"
같이 읽고 싶은 이야기_텍스티의 네버엔딩 스토리
김준녕, 오컬트도 잘합니다. [다문화 혐오]를 다루는 오컬트 호러『제』같이 읽어요🌽[텍스티] 텍스티의 히든카드🔥 『당신의 잘린, 손』같이 읽어요🫴[텍스티] 소름 돋게 생생한 오피스 스릴러 『난기류』 같이 읽어요✈️[책증정] 텍스티의 첫 코믹 추적 활극 『추리의 민족』 함께 읽어요🏍️
나는 너의 연애가 궁금해
[📚수북플러스] 6. 우리의 연애는 모두의 관심사_수림문학상 작가와 함께 읽어요[장르적 장르읽기] 5. <로맨스 도파민>으로 연애 세포 깨워보기[북다] 《나의 사내연애 이야기(달달북다02)》 함께 읽어요! [북다/책 나눔] 《하트 세이버(달달북다10)》 함께 읽어요!
각양각색! 앤솔로지의 매력!
[그믐앤솔러지클럽] 1. [책증정] 무모하고 맹렬한 처음 이야기, 『처음이라는 도파민』[그믐미술클럽 혹은 앤솔러지클럽_베타 버전] [책증정] 마티스와 스릴러의 결합이라니?![책나눔]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을 때, 시간을 걷는 도시 《소설 목포》 함께 읽어요. [장르적 장르읽기] 5. <로맨스 도파민>으로 연애 세포 깨워보기[박소해의 장르살롱] 20. <고딕X호러X제주>로 혼저 옵서예[그믐앤솔러지클럽] 2. [책증정] 6인 6색 신개념 고전 호러 『귀신새 우는 소리』
과학의 언어로 인간의 마음을 탐구하는 작가, 김초엽
[라비북클럽] 김초엽작가의 최신 소설집 양면의 조개껍데기 같이 한번 읽어보아요[다정한 책방] '한국작가들' 함께 읽기5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_김초엽[문풍북클럽] 뒷BOOK읽기 : 8월의 책 <지구끝의 온실>, 김초엽, 자이언트북스방금 떠나온 세계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레슨!
[도서 증정] 『안정감 수업』 함께 읽으며 마음을 나눠요!🥰지금보다 나은 존재가 될 가능성을 믿은 인류의 역사, 《자기계발 수업》 온라인 독서모임
한국의 마키아벨리, 그의 서평 모음!
AI의 역사한국의 미래릴케의 로댕최소한의 지리도둑 신부 1
🎬 우리가 사랑한 영화 감독들
[책나눔] <고양이를 부탁해><말하는 건축가> 정재은 감독 에세이『같이 그리는 초상화처럼』메가박스 왕가위 감독 기획전 기념... 왕가위 감독 수다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 함께 이야기 나눠요
저항의 문장가, 윌리엄 해즐릿!
[아티초크/책증정] 윌리엄 해즐릿 신간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와 함께해요![아티초크/책증정] 윌리엄 해즐릿 신간 『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 서평단&북클럽 모집[아티초크/책증정] 장강명 작가 추천! 해즐릿의 『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와 함께해요.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축하합니다!
[밀리의 서재로 📙 읽기] 31. 사탄탱고[이 계절의 소설_봄]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함께 읽기(신간읽기클럽 )1. 세계는 계속된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공룡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기로!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7. <경이로운 생존자들>[밀리의 서재로 📙 읽기] 10. 공룡의 이동경로💀《화석맨》 가제본 함께 읽기
모집중밤하늘
내 블로그
내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