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미술관2

D-29
지인으로부터 딱 제 취향이라는 말과 함께 선물 받은 책입니다. 이중섭, 나혜석, 이응노, 유영국, 장욱진, 감환기, 박수근, 천경자, 백남준, 이우환..... 눈에 익숙한 한국 화가들의 이름에 벌써 마음이 간질간질합니다.
1. 이중섭 이중섭의 <흰 소>는 중학교 교과서에서 처음 봤습니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제게 소는 그저 친근하고 얌전하고 말 잘 듣는 순한 동물이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저는 밝은 색감과 균형적인 작품들에 관심이 많았어서 이중섭의 전투력 넘치는 <흰 소>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심드렁한 제게, 소를 그려낸 이중섭은 이렇게 말합니다. p016 - "우리들의 새로운 생활을 위해서만 들소처럼 억세게 전진, 전진, 또 전진합시다." > 일 년에 적어도 한 번, 때론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서너 번 제주에 머무는 제가 서귀포에 가면 반드시 들르는 곳이 언덕 위의 이중섭미술관입니다. 너무 화려하거나 많이 밝지 않게 그려 넣은 그의 꿈들을 하나 하나 들여다 보고 설명을 읽다 보면 그 아름다움에 감복하다가도 그의 절망과 간절함이 느껴져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드러내 너무 떠벌리면 이뤄지지 않을 것 같아 조심스러운 그의 마음이 담긴 것 같아 더욱 그렇습니다. 가정에서의 교육은 물론이지만 학교에서의 교육 또한 사람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지는 이중섭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다닌 오산고등보통학교는 '독립운동 비밀결사 단체 신민회의 일원이자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일원이기도 했던 독립운동가 이승훈'이 설립했다고 작가는 설명합니다. 이중섭이 민족의 삶과 정신을 소를 통해 표현해 내고 서명 또한 한글로만 남긴 까닭이 어떤 마음에서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오 년 뒤, 1955년 서울에서 지인들의 도움으로 열린 전시회에서 팔린 작품들은 구입자들이 작품값을 지불을 하지 않아 이중섭에겐 금전적 이익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같은 해 대구에서 열린 전시회는 이중섭을 더욱 좌절에 빠뜨렸고 결국 그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버텨온 그의 오랜 노력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걸 느껴야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과연 누가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요. 그렇게 그는 가족에게 미안해하며 세상을 떠났습니다. p045 - 그가 세상을 떠난 해인 1956년. 뉴욕 현대 미술관(MoMA)에서 그의 은지화 3점을 소장품으로 결정합니다. '예술성뿐 아니라 소재 사용과 작가의 창의성으로 봐서도 실로 매혹적인 작품'이라는 평과 함께 말이죠. ...... ...... 그가 포기한 꿈은 그의 삶 끝에서 이뤄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 제 지인 중에 대구에서 미술을 직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이가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일을 통해 수입이 꽤 많곤 했는데 그의 주변에는 무명 작가들이 늘 많았습니다. 밥 한 번 함께 먹자고 기껏 기차 타고 대구를 내려가면 이런 저런 이유로 제가 알지도 못하는 작가들을 식사 자리에 부르곤 했습니다. 그에게 불려온 그들과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내는 게 살짝 불편하던 제가 어느 날인가 도대체 알지 못하는 작가들을 그리 부르는 이유가 뭔지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온 그의 대답에 더이상 불만을 품지 않았습니다. "니나야, 니 그거 아나? 나 같은 그림쟁이, 니 같은 글쟁이, 토리같은 딴따라..... 갸들 중에 지가 노는 물에서 꼭대기 1%에 들어야 겨우 밥 먹고 산다. 내는 1%는 아니지만 술도 먹고 산다. 니 알다시피 내가 맡아서 하는 일이 좀 많잖아. 그게 다 후배 데리고 친구 데리고 학생들 데리고 일하는 기라. 그렇게 번 돈이니까 내 몫에서 더 나눠야지. 사람이 밥은 먹고 살아야 안 하나?" 반 고흐의 동생 테오같은, 대구의 제 친구같은 누군가가 이중섭 주변에 많았으면 어땠을까요. 아니,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또 한 명의 이중섭이 최고은이 박은용이 힘겨운 하루하루를 버티며 [도원]의 꿈을 품고 살아가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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