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4.아이티 혁명사, 로런트 듀보이스

D-29
그래서 역사가 어디로 흐를지는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것 같아요
저는 오늘부로 3장까지 읽었습니다.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1장부터 3장까지 각 장이 아이티의 구성원들을 순차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느꼈어요. 1장에서는 아이티와 서구 세계의 접촉부터 시작하여 백인이 아이티에 정착한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2장에서는 인디오들이 소멸하면서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흑인들의 애환과 삶을 묘사하고 있고요. 3장은 이 두 인종 사이의 계급과 권력, 성性, 경제적 역할로 인해 등장한 혼혈집단인 자유유색인이 나옵니다. 시간의 순서에 따라 아이티 섬으로 넘어온 인종 집단과 그들의 역할, 위치를 자연스레 알 수 있어서 읽기 편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3장이 가장 인상 깊었어요.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 긴장감이 가장 높아지던 아이티의 모습, 경제적 영향력의 증가에 따라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는 자유유색인, 그런 자유유색인들의 성장을 견제하려던 백인 농장주들, 식민지를 포기할 생각이 없는 프랑스 본토 각자의 이해관계의 충돌 구도가 굉장히 다양하면서도 복잡했다는 걸 알게 되었고요. 프랑스 혁명의 가치가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지 못했다는 점, 누군가는 그 혁명을 통해서 이권과 영향력을 손에 넣으면서도 반대편의 누군가는 그 혜택을 얻지 못하게 억누르려 했다는 점에서 혁명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혁명이라고 하면 막연하게 모두가 변혁을 겪고 사회가 격변할 것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누군가에게는 체제전복의 사건이 다른 누군가에는 반동적인 억제력이 된다는 게 신선하면서도 충격이었어요.
저도 그저께 딱 3장까지 읽었어요. 오늘부터는 4장 시작하려 합니다. 마침 EBS에서 레미제라블도 하네요. ^^
“각자의 이해관계의 충돌 구도가 굉장히 다양하면서도 복잡했다는 걸 알게 되었고요.” - 이 말씀에 진심 동감합니다. 아이티 혁명이라는 게 단순히 흑인 노예들이 들고일어나서 백인들을 쫓아냈대, 이렇게만 말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그 저변에는 매우 복잡한 층위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있었다는 사실을 이번 독서로 깨닫고 있습니다.
오히려 아이티의 구성세력과 인종, 계층이 섬의 크기에 비해 훨씬 더 분열되고 복잡했던 점이 노예해방과 독립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라고 생각이 드네요. 서로가 서로를 두려워하고 견제하며 권력을 잡고자 욕망했기에 구심점이 있는 단일 세력으로 뭉치지 못하여 반란이 쉽게 진압되지 못한 점, 반란의 장기화로 인해 노예들이 구시대의 제약에서 탈출한 기간이 길어진 점이 그렇죠. 책의 앞에서 작가는 생도맹그는 정신분열적인 장소였다고 말했는데, 다르게 생각하면 정신의 분열이 결국 기존 사회와 체제로부터의 분열로 이어지는 길이었던 것 같습니다.
덧붙여서 7장 ‘자유의 땅’에서 당시 에스파냐와 영국 등이 혁명프랑스와 벌인 전쟁 또한 노예해방의 원동력으로 작동하게 되는 걸 보면서, 저도 은화님과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상대적으로 특혜를 받은 또 다른 노예 집단은 농장주의 저택에서 일하는 하인들이었다. 그들은 들에서 일하는 노예들보다 좋은 옷을 입었고 잘 먹었으며, 자기들의 지위를 이용하기도 했다. 늘 주인 가까이에 있다는 점이 유리했다. 십장과 장인들을 빼면 하인 노예들이 가장 쉽게 해방될 수 있었다. 반면에 그들은 다른 노예들과 격리되어 있었고 주인들의 성적 착취에 더 많이 종속되었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82p,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1790년대 말, 노예 생활을 하는 동안 자신의 또 다른 직업을 이용해서 자기가 받은 아기를 죽인 삼디라는 산파에 관한 이야기가 떠돌았다. 그녀는 자신이 죽인 아기들 하나하나를 생각나게 하는 70개의 매듭이 달린 허리띠를 착용했는데, 아기들에게는 자신이 '해방자'였다고 선언했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84p,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살인이 '삶'보다 더 나은 것이 되어 버리는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이 대목이 인상깊었어요. “아기들에게는 자신이 ‘해방자’였다…”
1771년 생도맹그의 관리들은 "노예의 마음속"에 열등감을 남겨 두기 위해서 "자유가 부여된 뒤에도" 인종차별을 유지할 필요가 있고, 그렇게 해서 그들의 피부색이 예속의 운명을 짊어졌고 그 무엇도 그들을 자신의 주인과 "동등하게" 만들 수 없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115p,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법은 그들을 분리된 두 사회계층의 구성원으로 규정하면서, 혈통에 따라 형성된 각각의 운명과 함께 그들 사이에 차이를 만들어냈다. 이처럼 생도맹그는 정신 분열적 사회였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116p,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혈통의 미묘한 차이를 밝히는 정교한 인종 체계를 만들고 생도맹그에서 백인 특권의 가장 열렬한 옹호자가 된 사람이 자신의 아프리카 조상들로부터 도망친 차였다고 암시하고 있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120p,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오드뤽의 임무는 자신의 최우선 과제, 즉 가능하면 많은 설탕을 생산해내는 것이었다. 그는 1785년에 쓴 편지에서 "하루에 16시간 밖에 일하지 않는데, 어떻게 많은 설탕을 만들 수 있겠는가?" 하고 생각했다. 이를 해결할 방법은 "인간과 동물을 최대한 소모시키는 것"이라고 그는 결론지었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p.151~152,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어떻게 하면 인간의 노동이 16시간 '밖에'가 될 수 있는지 상상하고 싶지 않네요. 혁명은 역시 가장 억압적인 환경이 갖춰져야만 터져나오는 양극단의 충돌일 수밖에 없나 봅니다.
이 '방탕한' 노예들은 주인을 속이고, 주인의 아이들에게 젖을 줄 때에도 부정한 성행위를 계속했다. 검둥이 여성들은 백인 아이들에게 '상한 젖'을 먹였고, 이 '해로운 음료'가 '염치없는 욕망의 씨앗'을 전달했다. 크레올 어머니들은 자식에게 마땅히 젖을 먹여야 함에도 어릴 때부터 여자 노예에게 맡김으로써 아이에게 여자 노예에 대한 색욕이 스며들게 했다는 이유로 비난받아야 했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p.117,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예전이나 지금이나 자신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대상을 공격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상대방을 도덕적으로 불결하고 추잡하다고 비난하는 건가 봐요. 고국에서 멀리 떨어진 타지라는 이유로 자신들의 욕망을 절제하지 않았던 백인 남성들이 문제의 원인을 다른 쪽으로 돌리는 게 웃기기도 하면서도 설마 저렇게 진짜로 믿었을까 궁금해지네요.
그러나 레몽의 지적처럼, 자유유색인 여성들이 백인들과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몸을 팔"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인종주의 법률 때문이었다. 일부 자유유색인 여성들은 "직업적인 관리인이자 개인적인 동반자"의 역할을 겸하는 매니저라는 호칭을 취함으로써 백인 남성과 관계를 공식화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많은 백인 이주민들이 식민지에서 사업상의 사회적 관계를 만들고 그 사업을 관리하기 위해서 매니저에게 의지했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p.118,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집세가 안 든다는 건, 우정인 관계에 성적인 요소를 더할 수 있는 상당히 좋은 동기다. (중략) 이것이 화폐로서의 섹스다. 갓 사귀기 시작한 사람과 함께 살면서 생활비를 줄이는 것은 성적이라기보다는 실용적이다. 당신이 다투지 않고 지낼 수 있는 사람을 알게 되었는데 그 사람과 같이 있는 것이 즐겁다면, 그리고 적어도 한두 달은 그러한 관계를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면, 그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은 당연히 말이 된다.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부끄러워해서도 안 된다.
핸드 투 마우스 - 부자 나라 미국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빈민 여성 생존기 p.145, 린다 티라도 지음, 김민수 옮김
핸드 투 마우스 - 부자 나라 미국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빈민 여성 생존기미국 저임금 노동자 린다 티라도가 가난한 자신의 삶을 생생하게 기록한 책이다. 그는 가난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하고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지, 부자들이 바라보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 거친 말로 분노를 쏟아내는 동시에 익살스러운 유머로 풍자한다.
자유유색인 여성들이 백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하고 그들과 관계를 맺은 이유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 이전에 가난에 대한 책에서 읽었던 문장이 떠올랐어요. <핸드 투 마우스>는 미국에서 소득수준이 하위 30%인 워킹푸어로 살아가던 여성 '린다 티라도'가 본인이 겪은 가난에 대한 생각과 실화를 담은 에세이에요. 린다는 워킹푸어이지만 젊었을 때는 잠깐 대학에도 다녔을 정도로 일반적인 지적수준이나 교양, 사고와 의식이 우리들과 같은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집에 연달아 악재가 닥치면서 삶이 점점 버거워지다가 하층계급으로 전락하게 되었고요. 이 책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특정한 행동을 왜 하는지, 왜 가난한 사람이 계속 가난할 수밖에 없는지를 일상과 직업의 체험과 연관지어 설명해주는데 읽기 쉬우면서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영역이라 집중하며 읽었습니다. 책에서는 하층계급에게 성생활이 어떤 의미인지도 설명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저자는 책 문장처럼 가난한 약자의 입장에서는 상대편이 원하는 바가 있는데 그걸 충족시켜주는 대가로 한동안 생활비와 주거, 식사의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즐겁게 살 수 있다면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게 매우 좋은 기회라고 설명해요. 왠지 그 당시 생도맹그의 자유유색인 여성들도 완전히 같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입장이지 않을까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국가와 정부가 자유유색인의 진출을 법으로서 교묘히 가로막고 제한한다면 사회 구성원 입장에서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가능한 방법을 모두 동원하려는 게 당연하니까요. 오히려 그런 자유유색인 여성들을 통해 도움을 얻는 남성들도 있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백인 남성들이 유색인 여성들을 보고 문란하다고 하는 비난이 참 야비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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