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4.아이티 혁명사, 로런트 듀보이스

D-29
폭도들에 복수하고, 주인과의 관계를 뒤집고, 처음으로 자기들이 가진 힘의 한계를 경험하면서 느꼈음에 틀림없는 그 어떤 벅찬 기분을 우리는 그저 짐작만 할 따름이다. 또한 가족과 함께 농장에 남을지 아니면 반란자들을 따라갈지, 잔혹한 처형으로 끝날지도 모르는 폭동에 가담할지 아니면 전쟁의 와중에서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할지, 보상을 기대하면서 주인을 섬길지 아니면 불확실한 자유를 위해서 싸울지를 놓고 많은 이들이 경험했을 갈등과 고민을 우리는 상상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P.182,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한 저명한 농장주는 영국 수상 윌리엄 피트에게 편지를 보내 영국의 생도맹그 점령을 요청했다. 그는 그것이 노예제를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P.188,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전쟁 중인 양측 모두 자신들을 위해 싸울 노예들을 더 많이 징집했다. 그들은 전쟁만 끝나면 노예제가 재건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기대한 것은 너무나 큰 착각이었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P.195,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백인들과 자유유색인 모두에게 노예들이 병력자원이자 도구로써 휘둘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노예들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자신들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는 얘기로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자신들이 노예를 통제하며 권력과 혜택을 수호하고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은 노예들의 등에 업힌 채 목표에서 점점 멀어지는 모습이네요. 백인과 자유유색인이 서로 물어뜯는 사이 노예들은 지배계층의 무력함을 깨닫고, 그들의 방식을 배움으로써 오히려 자유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는 게 역설적입니다.
말씀하신 내용과 관련해서 이 대목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노예들은 자기들의 전쟁도 아닌 전쟁에 보조군으로 소집되었지만, 그 결과 전투 경험과 새로운 정치적 전망을 획득했다. 일단 “무기를 들고 동등하게” 복무하게 되자, 그들은 “자기들에게 약속된 자유를 기정 사실로” 받아들였다. 어떤 농장주가 썼듯이, 농장을 떠나 군영으로 간 노예들은 “일하는 습관을 잃어버렸고” 그 과정에서 “생각하는 데 익숙해졌다.” 백인과 자유유색인 사이의 전쟁이 끝나자, 그들은 자신의 전쟁을 시작했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217쪽,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오늘 150-200쪽까지 출근하며 읽었는데, 노예 혁명단들도 백인들을 끔찍하게 살해하는 걸 보고 역시 인간에게 이성적인 것을 바라는 제가 바보 같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겠죠....복수하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근데 생각해 보면 집안일 좀 안 한다고 가족들에게 빽빽 소리지르는 제가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아요. 저 사람들은 본인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겼다가 자유가 주어진 거잖아요;;;;
밑에 @향팔 님이 문장 수집에도 적어주셨지만 노예들로서는 무장 반란 외에는 자신들의 상태를 벗어날 길이 없었다는 점에서 백인, 자유유색인, 흑인 모두 충돌 외에는 여지가 없었을 거에요. 자신들의 소유물로만 간주하던 아이티의 지주와 농장주들은 노예의 노동여건을 개선할 생각도 없고, 노예를 계속해서 수입할 수 있으니 기존 노예들을 소모할 뿐이고.. 아이티는 특히 섬이라는 환경이 그런 갈등을 더 부추겼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교통수단이 발전하더라도 여전히 섬은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공간이죠. 과거였으면 항해 외에는 방안이 없었으니 더더욱 그랬을 테고요. 투쟁이 일어나면 결국 어느 한 쪽이 완전히 전멸하거나 힘을 상실하지 않는 한 물러설 곳이 없기에 양쪽 모두 치열했을 겁니다. 농장주들은 그들대로 생존의 위협을 느껴 더 악을 쓰고, 노예들은 노예들대로 지배계급이 사라지지 않는 한 자신들의 반란이 실패하면 죽은 목숨이니.. 역사에 만약은 없다는 말이 아마 아이티에 통하는 말일 거라고 생각해요. 설령 반란의 시기나 방법이 조금 더 늦춰지거나 달라졌다 해도 결국은 언젠가는 다가올 재앙이었을 겁니다. 전 역사의 사례들도 그렇고 개개인들의 관계에서도 그렇고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되지 않는 막다른 길이 올 때가 있다고 생각하곤 해요. 폭력이 정당하지는 않지만 흔히들 말하는 '강 대 강'으로 어느 한 쪽도 서로 자신의 입장에서 물러설 수 없으면 남는 방법은 누군가가 굴복하는 길 뿐이니까요. 이미 노예제라는, 나와 남을 구분짓고 차별을 정당화하는 제도를 허용하는 사회였기에 정해진 결말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는 스스로에게 신호를 보냈고, 우는소리도 두려움도 없이 죽음을 맞이했다.” 병사들이 그의 몸을 뒤지자 “그의 주머니에서 프랑스에서 인쇄된 〈인권선언〉과 신성한 혁명에 관한 상투적인 문구들로 가득한 팸플릿이 나왔다. 상의 주머니에는 부싯깃 한 뭉치, 인산염 그리고 생석회가 들어 있었다. 가슴에는 주물로 보이는 머리카락, 풀잎, 뼛조각이 가득 담긴 작은 주머니가 있었다.” 자유의 법, 언제라도 불을 댕길 수 있는 재료들, 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강력한 부적, 이는 분명 효능이 있을 법한 조합이었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166쪽,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그러나 폭도에게는 그들만의 이데올로기, 그들만의 역사, 그들만의 희망이 있었다. 왕당파와 공화파 백인들의 활동이 반란을 위한 무대를 마련하고 그 반란이 진행되는 데 기여했지만, 반란 노예들이야말로 반란의 진정한 원동력이었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169쪽,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노예들은 그들의 주인과 노예제를 유지하는 정부에 맞서 항구적인 전쟁 상태에 있었다. 그들은 그 어떤 수단, 심지어 폭력을 써서라도 자유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가랑쿨롱은 썼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170쪽,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프랑스의 노예제 폐지론자들은 확실히 난처해졌다. 그들의 신중한 개혁안은 다수의 백인들에게는 상당히 지나친 것이었지만, 노예들에게는 거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p.207,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1792년 4월 4일 국민의회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유색인들과 자유 흑인들은 백인 이민자들과 나란히 정치적 권리의 평등을 누려야 한다. 그들은 지방선거에서 투표하고, ‘능동적인’ 시민으로서 재산 자격을 충족한다면 모든 공직에 선출될 수 있도록 허용될 것이다.” (중략) 이제 식민지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 즉 자유인과 노예만이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자유인 사이에는 어떠한 인종차별도 없을 것이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p.208,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어떤 백인 상인은 폭도들에 관해서 “그들은 몇몇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자유의 정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약탈하고 살인하고 방화하려는 욕망에 의해 내달렸다”고 썼다. 그러나 농장주의 저택을 약탈하고, 노예로 살던 농장의 시설을 파괴하고, 자신들을 노예로 부린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야말로 자유를 추구하는 확실한 방법이었다. 또한 대다수의 노예들이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182쪽,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책의 배경은 주로 프랑스 지배령인 생도밍그를 위주로 소개되고 있지만 당시 스페인령이던 산토도밍고 쪽에서는 계속해서 노예수입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아메리카 대륙에는 스페인의 식민지들이 많았고, 이 식민지들에 지속적이면서도 노예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데는 '노예무역 독점권'(Asiento de Negros, 일명 아시엔토)이라는 배경이 있고요. 스페인 왕국은 노예무역에 직접 가담하여 포획하기 보다는 다른 국가의 상인들에게 노예 공급을 대행으로 맡겼습니다. 1500년대부터 시작하여 1700년대 후반까지 포르투갈, 제노바, 프랑스, 영국 등 당시 다양한 유럽 국가들이 이 독점권을 전쟁이나 협상 등으로 넘겨 받아 노예를 스페인 식민지들에 독점적으로 공급하여 많은 이윤을 얻었고요. 책의 초반에도 나온 것처럼 스페인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노예로 부리려다가 포기한 이후로 흑인들로 눈을 돌립니다. 당시 포르투갈과의 조약으로 인해 스페인은 브라질 서쪽의 아메리카 신대륙 영토들에 대해서만 영향력이 있었기에 흑인노예를 공급받기 위해서는 아프리카 서부 해안을 차지하고 있던 포르투갈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등 유럽의 주요 전쟁이 끝날 때마다 아시엔토의 소유권이 옮겨 갈 정도로 당시 노예무역 독점권은 중요한 수입원 중 하나였고요. 계약은 주로 특정 국가의 상인집단이나 부유층에과 스페인 왕실이 독점계약을 맺고 N년에 걸쳐 일정 인원수의 노예를 공급하는 조건이었다네요. 우리는 당시 영국령 식민지였던 훗날의 미국의 흑인노예사와 노예무역을 주로 배우지만 실제 노예무역 공급량의 상당량은 중남미의 식민지들로 향했답니다. 아이티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식민지였으니 만큼 그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었겠죠. 커피, 설탕, 담배와 더불어 흑인은 당시 유럽 열강들에게 상품 취급을 당해야 했던 슬픈 역사이기도 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Asiento_de_Negros
수천 명의 노예들이 자기들 전쟁도 아닌 전쟁에서 서로 싸워야 했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p.218,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어떤 농장주가 썼듯이, 농장을 떠나 군영으로 간 노예들은 "일하는 습관을 잃어버렸고" 그 과정에서 “"생각하는 데 익숙해졌다." 백인과 자유유색인 사이의 전쟁이 끝나자, 그들은 자신의 전쟁을 시작했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p.217,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이 부분을 읽을 때 답답하기도 하고 노예들의 처지가 안타까웠어요.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쪽과 자신들이 기득권에 들어가려는 백인과 자유유색인의 투쟁에 아프리카계 노예들의 자리는 아예 안중에도 없는 모습.. 자신들에게 다가올 더 큰 변혁을 모르고 섬의 10%밖에 안되는 집단끼리 아웅다웅 하는 게 웃겨 보이기도 했습니다. 노예들은 들판에서, 농장에서, 도시에서 상대편 쪽에 끌려온 또 다른 노예군단을 맞아 서로 죽이고 죽일 때 무슨 감정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자신과 마찬가지로 선택권이 없이 협박을 당해 끌려온 상대에게 동정심을 느꼈을까요? 아니면 그 과정에서도 약간의 혜택과 이익을 얻기 위해 지원한 자신이 겹쳐 보여 상대를 경쟁자로써 혐오했을까요? 하지만 그런 피를 흘리는 과정이 있었기에 노예들도 점점 자신들의 영향력과 힘을 깨닫고 물리적으로, 사회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게 되었으니 위기가 곧 기회였나 봅니다. 오히려 백인과 자유유색인들이 자신들끼리 서로 싸우느라 노예들의 성장을 견제하지 못한 걸 보며 누군가의 불운이 누군가에게는 행운이 된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든 우리는 완전히 파멸이다. 만약 우리가 반란 노예들을 격퇴하고 죽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이 괴수들에 의해 도륙당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죽이면 우리는 우리의 재산을 파괴하는 꼴이 된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p.226,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수백 명의 반란 노예들이 승리를 쟁취한 병사가 된 것이다. 한 관찰자에 따르면, 그들은 “자유인의 자긍심을 가지고” 행진하면서 도시의 노예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이 우리처럼 했다면, 이 나라는 우리의 것이 되었을 것이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193쪽,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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