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족과 봉건귀족 중심의 체제에 불만을 품고 혁명으로 이어지게 된 부르주아들이 한편으로는 억압의 체제를 되풀이하며 노예를 통해 부를 쌓음으로서 성장했다는 게 아이러니네요.
인권, 자유, 평등의 개념이 발생했어도 모든 인종에 적용되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음을 생각해보면 애초에 식민지나 흑인,인디오는 그들에게 고려 대상조차 아니었겠죠.
“ 한편 사건을 맡은 조사관은 잔혹 행위를 저지른 농장주를 처벌하는 것이 혁명의 발발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즉 농장주의 폭력을 저지하지 않는다면, 노예들이 정부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그들은 폭력을 통한 복수 말고는 다른 선택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
이런 걸 보다 보면 역사는 결국 우연들이 모여서 필연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느껴집니다. 매순간 역사 속의 개인과 집단들은 미래를 의식하지 않은채 그 시대에 지배적이었던 사고관을 가지고 선택하고 행동하지만 그 결과들이 모여 다른 방향으로 변화를 이끌어내니까요.
그 순간 순간마다 다르게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결국 자신들의 타고난 한계로 인해 정해진 길로 가야했던 대다수의 사람들이 역사적 흐름을 이루고, 또 그로 인한 충격이나 반작용이 점차 누적되다가 터져나오게 되고...
마캉달만이 아니라도, 투생 루베르튀르가 아니었더라도 누군가가 결국 아이티 섬의 분노를 업고 등장했을 테니까요.
역사 속에 있는 사람들은 본인들이 역사를 만들어간다는 걸 의식하지 못한다는데 오늘날의 저희들도 먼 미래에는 누군가가 보기에 어리석거나 잘못된 선택을 향해가고 있던 시대로 보일 수도 있을 걸 생각하면 묘하네요.
향팔
말씀하신 맥락을 저는 이 대목에서도 조금 느낄 수 있었습 니다.
향팔
“ 18세기 후반에 그들[식민지 행정가들과 계몽 지식인들]은 “노예제는 개혁되어야 하고 궁극에 가서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또한 노예들의 도주와 폭동을 비롯해 독살과 자살, 낙태를 통한 일상적인 저항과 이에 대한 농장주들의 폭력적인 대응이 악순환으로 통제 불능이 되기 전에 저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인종주의나 식민주의를 반대한 것은 아니고, 노예제가 점차 다른 형태의 노동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메르시에가 묘사한 이상 세계는 아메리카의 비효율적인 노예제를 아프리카 인들이 그들의 오두막 옆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제국으로 대체한 것에 불과했다. ”
저도 이 문장을 읽을 때 노예제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식민지를 통한 부와 기호품의 수입은 포기할 수 없던 당시 사람들의 사고가 낯설었어요. 라스 카사스 신부가 인디오들의 수탈과 학대를 보고 아프리카인들로 노예를 대체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발상 과 크게 결이 다르지 않다고도 느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고통에 공감하고 연민을 느껴 선행을 베풀려는 마음은 있지만, 더 큰 체제를 바꿀 생각으로는 이어지지 않는 (또는 바꿀 생각은 없는) 그 지점 말이죠.
당시의 계몽사상가들 조차도 대서양 무역과 상업자본주의, 식민지 체제를 넘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던 시대의 한계였겠죠?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본토를 넘어 어딘가에는 제국령의 식민지가 있어야 하는 세상, 누군가가 피지배민으로서 통치를 받아야 하는 세상 너머에 어떤 개념이 있는지 알기 어려웠겠죠. 마치 오늘날의 우리도 자본주의를 넘어선 다른 세상이 올 수 있을지 상상하기 어려운 것처럼요.
은화
“ 아직까지 자본주의 외의 세상이 없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자본주의 너머의 세상을 순간순간 마주칠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마크 피셔가 말했듯, 우리가 가진 욕구들은 아직 대개 이름이 없다. “자본주의가 펼쳐놓은 무한한 반복에서 탈출한 미래를 보는 것이 우리의 욕구이다. 그 탈출은 새로운 인식, 욕구, 자각이 가능한 그런 미래에 달려 있다.” 지금 삶의 모든 면에서 그런 욕구들은 성취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그 욕구들이 우리가 무언가 새로운 것을 키워나갈 토대이기도 하다. ”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 p.461, 세라 자페 지음, 이재득 옮김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 우리를 지치고 외롭게 만드는 사랑하는 일에 대하여젠더, 노동, 불평등, 사회 변화에 대해 꾸준히 목소리를 냈던 저널리스트 세라 자페는 이 책에서 이러한 '사랑이 노동'이 가진 신화를 폭로한다. 뛰어난 저널리스트인 그는 치밀한 조사와 방대한 참고자료를 수집하여 다양한 산업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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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위의 생각과 비슷한 개념이 다른 책에서 읽었던 게 떠올라서 올렸습니다. 우리가 이름을 모르는 욕구라는 말이 딱 알맞는 말 같아요. 개념적으로는 머리에서 생각하고 희망하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가오고 형성될 수 있는지는 모르는 개념...
계몽주의자들과 노예들 모두 그런 생각을 갖고 살아가지 않았을까 합니다.
향팔
마크 피셔의 책도 읽어보고 싶더라고요.
자본주의 리얼리즘 - 대안은 없는가, 2판『자본주의 리얼리즘』 2판이 출간되었다. 2022년 영국에서 발표된 원서 2판에는 마크 피셔의 부인인 조이 피셔의 ?서문?, 동료이자 비평가인 알렉스 니븐의 ?서론?, 소설가로 피셔와 함께 제로 북스와 리피터 북스를 설립한 타리크 고더드의 ?후기?가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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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요정
요새 기후위기 때문에 우리가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지만 '근데 나 말고 너'란 인간의 무의식이 무서운 것 같아요. 노예제도가 현대사회에선 기계로 대체되면서 인간이 본인들의 편의를 포기 못하는 것처럼요.
의식적으로야 무엇이 옳은지도 알고 실천도 해야 하지만 막상 크게 바꾸는 건 엄두를 못 내거나 여러 사정이 복합적으로 겹쳐질 때도 있고요. 어렵네요....
은화
그래서 새로운 사회이념이나 체제가 형성되려면 더디지만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나봐요. 예전에는 역사를 볼 때 왜 그 당시의 사람들이 그런 선택을 내렸을까, 왜 그런 현실적 타협을 해야만 하거나 더 밀어붙이지 않았을까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답답하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지나고 보니 정치인이나 개혁가 한두 명이 원한다고 하여 세상이 바뀌지는 않기 때문이었다는 걸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변화를 원한다고 해도 현재의 당연시되는 세계관과 의식, 거기에 맞게 재편된 생활들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변화를 원한다고 해도 이미 익숙한 지금의 체제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도 감을 잡기 어렵고요. 변화된 사회가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을 떠나 지금의 사회보다 살기 편하고 쾌적한 세상인지, 기존의 것들을 내려놓음으로서 얻게 될 대체재가 무엇인지도 확신할 수 없고요.
철도를 깔 수 있을 상황이 되었을 때 비로소 기차가 발명 된다는 식의 문장을 본 기억이 있어요. 어떤 전환점이나 중요한 순간은 시공간과 문화와 기술과 사회의식이 그 때에 알맞게 형성되어야만 변화할 수 있다는 요지였던 거로 기억하는데요. 운명론적인 사고관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요즘 들어 더 자주 떠오르게 되는 문장이네요.
향팔
네, 어느 책에서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보다 세상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이 더 쉽다”고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다른 세상이 언젠가는 분명히 또 올 텐데 말이죠.
은화
“ 농장주들은 노예제를 반대하는 저작이야말로 노예들이 후원자를 얻었다고 생각하게 만듦으로써 노예들의 봉기를 부추긴다고 불평했다. 노예제 폐지론자들은 농장주와 학대와 무시로 노예들이 폭동 이외의 다른 어떤 선택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반박했다. ”
“ 18세기 초 남부 지방의 많은 아프리카계 주민들은 인구조사에서 백인으로 분류되었는데, 그들은 법적인 문서를 작성할 때 인종적 측면에 관해서는 거의 기술하지 않았다. 그러나 1760년대가 되자 상황이 바뀌었다. 바가스는 공증 문서에서 물라토로 간주되었고, 어린 레몽은 쿼드룬, 즉 아프리카 혈통이 4분의 1 포함된 사람으로 표기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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