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4.아이티 혁명사, 로런트 듀보이스

D-29
결국 인디오 노동력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흑인노예들을 대서양 교역로로 끌고 왔겠군요. 본인들의 고향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처지였던 인디오나, 고향에서 강제로 끌려와 가족과도 지불해야 했던 흑인이나 모두 형태만 다를 뿐 똑같은 노예 취급이었다는 게 슬프네요. 사람이 죽어가는 자리에서 커피랑 사탕수수는 무정하게 잘 자라고 있을 풍경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멸족의 속도가 이렇게나 빠를 수 있다니… 정말 무시무시합니다.
사탕수수는 1493년에 콜럼버스가 식민지에 도입했고, 1500년대 초부터 에스파냐 사람들이 신세계에 사탕수수 농장을 일구기 시작했다. 1530년대에는 서른 곳 넘는 설탕 공장이 식민지에 들어섰고, 16세기 중반에는 연간 설탕 생산량이 수천 톤을 헤아렸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p.37,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이전에 관심도서로 <설탕 전쟁>을 넣어뒀어요. 노예제 관련 책들을 찾다보니 중남미의 사탕수수 플랜테이션도 역사의 한 부분으로 언급되는데 설탕의 기원 그리고 역사에서 국가마다 설탕이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다룬 책입니다.
설탕 전쟁 - 제국주의, 노예무역, 디아스포라로 쓰여진 설탕 잔혹사설탕을 향한 욕망이 유럽 제국주의 팽창과 맞물리며 전 세계로 퍼져 나간 파란만장한 여정을 따라간다. 또한 설탕 산업이 촉발한 노예제로 인해 잔혹하게 희생된 원주민과 흑인 노예의 역사를 조망하며, 설탕의 달콤한 맛 뒤에 드리운 인류사의 어두운 그림자를 드러낸다.
오, 예전에 같은 저자의 <향신료 전쟁>을 담아(만) 뒀었는데 새로운 책이 나왔군요. 이 책도 읽어보고 싶네요. 제국주의와 그 시대를 이해하려면 설탕 공부(?)는 필수인 것 같습니다.
카리브 해의 노예 식민지들은 프랑스 본토의 사회경제적 변화의 원동력이 되었다. 역사가 장 조레스는 18세기에 낭트와 보르도에서 창출된 부가 프랑스혁명에서 돌출한 ‘인간해방’을 위한 투쟁의 결정적 부분이었다는 ‘슬픈 역설’을 지적한 바 있다. 구체제가 부과한 한계 때문에 좌절한 수많은 부르주아지들은 카리브 지역에서 노예들이 생산한 설탕과 커피 덕분에 부자가 되었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46쪽,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생도맹그의 노예들은 프랑스혁명의 기초를 닦는 데 한몫했고 마침내는 혁명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으며, 심지어 자유를 위한 투쟁에서 프랑스혁명을 능가했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47쪽,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생도맹그는 "자메이카, 쿠바, 브라질을 다 합친 것만큼 많은 설탕을 수출"했고,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면서 "대서양 노예 체제의 중심"이 되었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p.46,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제국을 통틀어 가장 큰 부를 창출한 식민지가 카리브 해의 식민지들이었고, 그중에서도 아이티가 최고였다니… 잘 몰랐던 사실이에요. ‘캐리비안의 해적’이 그토록 악명을 떨쳤던 것도 이런 사실과 관련이 있나 봅니다.
왜 캐리비안 해 근처에서 해적들이 번성했나 싶었는데 책을 읽어보니 해적들이 활약하기 좋은 조건이 모두 뭉쳐있었군요. 유럽 본토와 완전히 떨어진 물리적 위치, 국가간 식민지 경쟁 속에서 암묵적인 지원, 넘쳐나는 자원과 기호품, 상대적으로 노리기 쉬운 먹잇감들. 식민지에서 새 삶을 꿈꾸며 유럽에서 사람들 중 또 다른 기득권과 계층사회에 좌절한 이들의 입장에서는 해적이라는 보다 쉬운 경로에 대한 유혹이 강했을 것 같아요. 마침 이전 <노예선>의 마커스 레디커 작가가 해적에 대해서도 쓴 책이 있네요.
대서양의 무법자 - 대항해 시대의 선원과 해적 그리고 잡색 부대아우또노미아총서 77권. 레디커는 해군 대장, 상인, 국민국가의 관점이 아니라 선원, 노예, 계약하인, 해적, 그리고 다른 여러 무법자의 시점에서 17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까지의 역동적인 해상 모험의 세계를 탐험한다. 이들의 항해 경험을 처음으로 한데 모은 책.
이 책도 재밌겠어요! 목차를 훑어보니 <노예선>에서 봤던 내용들도 살짝 눈에 띄네요.
구체제가 부과한 한계 때문에 좌절한 수많은 부르주아지들은 카리브 지역에서 노예들이 생산한 설탕과 커피 덕분에 부자가 되었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p.46~47,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왕족과 봉건귀족 중심의 체제에 불만을 품고 혁명으로 이어지게 된 부르주아들이 한편으로는 억압의 체제를 되풀이하며 노예를 통해 부를 쌓음으로서 성장했다는 게 아이러니네요. 인권, 자유, 평등의 개념이 발생했어도 모든 인종에 적용되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음을 생각해보면 애초에 식민지나 흑인,인디오는 그들에게 고려 대상조차 아니었겠죠.
사람들은 시종일관 법을 어김으로써 독점에 경의를 표했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p.61,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식민지를 멀리 있는 무절제와 폭력의 왕국으로 보고 그 주민들을 태생적으로 다른 사람으로 보는 것은, 노예제로부터 이익을 취하고 그 생산물을 소비하는 유럽인들과 노예제 사이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데 도움이 되었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p.65,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내가 흑인이라는 점이 나의 유일한 결점입니다. 나 자신을 백인으로 만들 수 있다면, 당신은 신의 뜻에 따라 당신의 재산이 늘어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p.67,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한편 사건을 맡은 조사관은 잔혹 행위를 저지른 농장주를 처벌하는 것이 혁명의 발발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즉 농장주의 폭력을 저지하지 않는다면, 노예들이 정부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그들은 폭력을 통한 복수 말고는 다른 선택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p.97,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자연이 학대와 억압 속에 고문당하는 이 자녀들에게 빚지고 있는 이 위대한 인물은 어디에 있는가? 그는 어디에 있는가? 결국 그는 나타날 것이다. 이를 의심하지 말지어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p.99~100,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이런 걸 보다 보면 역사는 결국 우연들이 모여서 필연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느껴집니다. 매순간 역사 속의 개인과 집단들은 미래를 의식하지 않은채 그 시대에 지배적이었던 사고관을 가지고 선택하고 행동하지만 그 결과들이 모여 다른 방향으로 변화를 이끌어내니까요. 그 순간 순간마다 다르게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결국 자신들의 타고난 한계로 인해 정해진 길로 가야했던 대다수의 사람들이 역사적 흐름을 이루고, 또 그로 인한 충격이나 반작용이 점차 누적되다가 터져나오게 되고... 마캉달만이 아니라도, 투생 루베르튀르가 아니었더라도 누군가가 결국 아이티 섬의 분노를 업고 등장했을 테니까요. 역사 속에 있는 사람들은 본인들이 역사를 만들어간다는 걸 의식하지 못한다는데 오늘날의 저희들도 먼 미래에는 누군가가 보기에 어리석거나 잘못된 선택을 향해가고 있던 시대로 보일 수도 있을 걸 생각하면 묘하네요.
말씀하신 맥락을 저는 이 대목에서도 조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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