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분을 읽을 때 답답하기도 하고 노예들의 처지가 안타까웠어요.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쪽과 자신들이 기득권에 들어가려는 백인과 자유유색인의 투쟁에 아프리카계 노예들의 자리는 아예 안중에도 없는 모습.. 자신들에게 다가올 더 큰 변혁을 모르고 섬의 10%밖에 안되는 집단끼리 아웅다웅 하는 게 웃겨 보이기도 했습니다.
노예들은 들판에서, 농장에서, 도시에서 상대편 쪽에 끌려온 또 다른 노예군단을 맞아 서로 죽이고 죽일 때 무슨 감정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자신과 마찬가지로 선택권이 없이 협박을 당해 끌려온 상대에게 동정심을 느꼈을까요? 아니면 그 과정에서도 약간의 혜택과 이익을 얻기 위해 지원한 자신이 겹쳐 보여 상대를 경쟁자로써 혐오했을까요?
하지만 그런 피를 흘리는 과정이 있었기에 노예들도 점점 자신들의 영향력과 힘을 깨닫고 물리적으로, 사회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게 되었으니 위기가 곧 기회였나 봅니다. 오히려 백인과 자유유색인들이 자신들끼리 서로 싸우느라 노예들의 성장을 견제하지 못한 걸 보며 누군가의 불운이 누군가에게는 행운이 된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은화
“ "일이 어떻게 돌아가든 우리는 완전히 파멸이다. 만약 우리가 반란 노예들을 격퇴하고 죽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이 괴수들에 의해 도륙당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죽이면 우리는 우리의 재산을 파괴하는 꼴이 된다." ”
“ 1792년 4월 4일 국민의회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유색인들과 자유 흑인들은 백인 이민자들과 나란히 정치적 권리의 평등을 누려야 한다. 그들은 지방선거에서 투표하고, ‘능동적인’ 시민으로서 재산 자격을 충족한다면 모든 공직에 선출될 수 있도록 허용될 것이다.” 법령은 ‘노예들의 봉기’에 대한 대응의 일환으로 제시되었다. 다시 말해서 시민의 ‘단결’이 “약탈과 방화로부터 그들의 재산을 보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명기했다. ”
“ 이제 식민지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 즉 자유인과 노예만이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자유인 사이에는 어떠한 인종차별도 없을 것이다. 이는 대단한 진전이었다. 아메리카 노예제 사회의 한복판에서 인종에 의거한 법적인 차별이 금지된 것이다. 이 법령은 생도맹그의 수많은 자유유색인들과 함께 아프리카계 주민들이 의미 있는 정치권력을 가지게 될 것을 보장했다. 생도맹그의 노예 반란은 노예제를 구하기 위해서 인종 평등을 부여할 수밖에 없게끔 만들어 역설적인 방식으로 정치의 지평을 확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