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플랜테이션 경제를 재건하는 데 사활을 걸기로 결심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을 때 드는 비용이 훨씬 더 컸기 때문이다. […] 노예해방은 무너지기 쉬운 허약한 것이었다. 자유를 얻기 위해서 루베르튀르는 그 자유가 노예들이 꿈꾼 자유보다 덜한 것이라도 우선은 받아들여야 한다고 결심했을 것이다. ”
어제 가입해서 읽기모임에 참여는 못했지만 그간의 내용 잘 읽었습니다. 저는 아이티에 대한 내용은 피케티의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접했습니다. 그 책에서는 서고 열강이 다양한 나라에서 벌인 식민지수탈도 심도 있게 다루고 있었습니다. 그 책을 읽으며 고대사회에서 현재의 자본주의로의 이행이 발전이거나 계급해방의 과정이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역사상 국경을 넘나들며 상업과도 결합된 대규모 노예제도는 오히려 자본주의 초기에 가장 광범위했고, 이 노예제도를 통해 싼값으로 제공되는 면화를 비롯한 재화가 없었다면 유럽노동자들의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 초기 자본의 축적이 불가능했을 것이니까요. 또한 알려진 대로 미국남부의 대농장뿐아니라 아이티와 같은 국가가 만들어질 정도로 근대 유럽에도 대규모 노예제도가 존재했고요.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었는데...늦게나마 읽고계신 책을 구해 보아야겠습니다.
은화
“ 배는 심오한 일련의 경제적 변화의 중심에 있었고 자본주의의 융성에 필수적으로 작용하며 새로운 영토의 장악, 수백만 명의 징용과 경제적 성장 시장으로의 재배치, 금과 은의 채굴과 담배와 사탕수수의 재배, 장거리 상거래 시장의 동반 상승, 마지막으로 세상 누구도 본 적 없던 자본과 부의 계획적 축적을 모두 이루어 냈다. 느리고 변덕스러우며 평탄하지 않지만 의심할 여지없는 저력으로 세계 시장과 국제적 자본주의 체제가 등장했다. ”
『노예선 - 인간의 역사』 p.62,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노예선 - 인간의 역사노예무역, 노예제도는 세계자본주의의 부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고 노예선으로 창출된 노동력은 상품으로 거래되며 자본주의 확립에 기초적인 역할을 했다. 여기에 핵심 도구, 장소로 활용된 노예선에는 폭력, 공포가 만연했고 수많은 아프리카인과 선원이 그 희생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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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안녕하세요 @참미르 님! 참여 감사합니다. 이전에 진행했던 책에서도 대서양 노예무역이 근대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중간단계로서 국제무역을 위한 노동력의 이동이었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 내용이 생각나네요.
아메리카 대륙의 광활한 자원과 토지에 대해 처음에는 영국, 스페인, 프랑스의 개척자들은 현지 인디오들을 동원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인디오 문명의 빠른 붕괴로 이런 시도는 얼마 못 갔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후에는 유럽 본토에서 계약에 의해 몇 년 동안 대가를 받고 일하는 소작농들이 넘어오기도 했지만 신대륙의 풍토와 기후에 적응하지 못해 앓아 눕고 금새 지치면서 효용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고요.
결국에는 비슷한 고온 기후에 익숙한 아프리카로 눈을 돌리게 되고요. 당시 팽창하던 유럽 세계와 이슬람 세계라는 두 거대한 축 사이에서 아프리카는 두 종교 모두에게 이단의 땅이었기에 노예무역의 희생양이 되었다고 하죠. 인간이 인간을 소유하고 누군가의 자유를 평생에 걸쳐 억압할 권리를 가지는 제도가 우리 사회에서 없어진 지 그닥 오래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노예제에 관심이 생겨 계속 관련 주제들을 찾아 읽고 있습니다.
꽃의요정
“ 일하는 자가 꼭 노예여야만 하는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자유인'도 일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노동의 결실'을 집에 가지고 갈 수 있다는 것을 알면 인내심과 만족감을 가지고 그렇게 할 수 있다. ”
제가 10월은 너무 바빠 게시판에서 조용했습니다~그래도 책은 450쪽까지 읽어서 오늘 다 읽을 것 같아요. ^^
새로운 지역의 역사에 대해 알게 된 즐거운 지적 경험이었습니다. 우리 또 만나요! ㅎㅎㅎ
꽃의요정
완독했습니다! 역시 남는 사람은 루베르튀르 씨네요^^
향팔
“ 1794년 이후 루베르튀르는 시종일관 해방노예들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강행하면서, 노예해방을 수호하고 확고히 하기 위해서 그러한 제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1801년에 그는 “자유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식민지 경제의 재건이 “특히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식민지의 미래를 설계하고자 했던 그는 과거가 식민지를 꼼짝달싹 못하게 짓누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생도맹그는 설탕과 커피 생산자로 성장해 왔고, 현행 대서양 경제에서 생도맹그가 다른 역할을 맡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
“ 생도맹그는 오랫동안 식량 수입에 의존해 왔는데, 1790년대 말에 프랑스와 영국이 전쟁을 질질 끌면서 대외 교역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졌다. 외국 상인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생도맹그는 식민지의 전통적인 상품을 생산하고 수출해야 했다. 이는 단지 경제적 필요뿐 아니라, 루베르튀르가 알아챘듯이 정치적 생존의 문제였다. 생도맹그 인민이 자신의 미래에 관해 발언권을 가지려면, 오직 강력한 플랜테이션 경제에서만 가능한 경제적 자립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농장 너머의 미래를 내다보는 해방노예들의 열망을 억눌러야 했다. 그러나 1800년 10월 엄중한 법령으로 노동 규제를 강화하면서 그가 명확히 했듯이, 이는 루베르튀르가 지불해야 할 값비싼 대가였다. ”
“ 1801년 2월, 루베르튀르는 해방노예들이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더욱 제한하는 또 다른 법령을 공포했다. 그가 언급한 바에 따르면, 식민지의 여러 지방에서 “경작자 하나, 둘 또는 셋”이 힘을 합쳐 몇 에이커의 미경작지를 매입하고, 그 땅에 정착하기 위해서 농장을 떠났다. 그들은 노예제하에서 허용된 소규모 농사의 전통을 이어 가면서, 채마밭을 일궈 자급자족하고 남는 것을 지역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 충분한 곡물과 가축을 키우고자 했다. […] 그들은 노예제하에서 허용된 소규모 농사의 전통을 이어 가면서, 채마밭을 일궈 자급자족하고 남는 것을 지역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 충분한 곡물과 가축을 키우고자 했다. 그러나 루베르튀르는 그러한 관행을 그의 플랜테이션 정책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했다. ”
“ 그는 “생도맹그 식민지의 농업은 다른 나라의 농업과 매우 다르다”고 썼다. 이들 농업이 생산적이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단들을 결합”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소토지 경작은 생산성 증대에 기여하지 못할뿐더러, 기존의 농장들로부터 ‘일손’을 빼감으로써 사실상 생산을 감소시켰다. 루베르튀르는 50카로(carreau) 또는 3에이커 이하의 소토지 매매를 법으로 금지했다. 게다가 더 큰 규모의 토지 거래는 그의 통제 아래 있는 지방 행정 당국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당국은 토지가 어떻게 이용되는지를 감시해야 했다. 그 법령으로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토지를 획득할 수 없게 되었다. 부유한 지주와 땅 없는 노동자들만 있고, 그 사이에는 아무도 없었다. ”
해방을 쟁취한 노예들이 드디어 지옥같은 대농장 노동에서 탈출하고, 자기만의 작은 땅에서 자기 먹을 것을 가꾸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제 단순한 머리 속 이상향인데, 루베르튀르는 그런 건 터무니없는 머리 속 꽃밭 같은 소리라 여기고 기존의 대농장 플랜테이션 경제만이 모두가 살 길이자 애써 획득한 자유를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군요. 어쩌면 노예해방투쟁 자체보다도 그 이후의 길을 만들어가야 하는 과업이 더욱 복잡하고 어려운 투쟁인지도 모르겠어요. 자유를 쟁취한 후에는 어떻게 보전해야 하는지, 어떤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지,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는지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것은 정말 간단치가 않은 일이라는 걸 느낍니다.
향팔
생도맹그의 지도자는 구질서로의 복귀를 열망하는 농장주들과 완벽한 자유를 열망하는 노예들을 동시에 만족시키기 위해서 가는 줄을 타고 있었다.
“ 루베르튀르의 1801년 11월 법령의 엄격함은 그가 몇 년 동안 유지해 온 균형 정책의 부담을 부각시켰다.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자유를 수호하는 데 헌신했던 루베르튀르는 독재자가 되었고, 그가 지배하는 식민지는 사회 계서제, 강제 노동, 폭력 진압에 기초한 사회가 되었다. 그 포고령은 진정한 자유가 플랜테이션 경제와 공존할 수 있는 중도 노선을 찾아내는 데 루베르튀르가 실패했음을 보여 주는 일종의 지표였다. […] 그러나 루베르튀르의 체제를 노예제와 혼동한 프랑스 사람들은 뜻밖의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그가 자유에 가한 많은 제한에도 불구하고, 해방노예들은 현재와 과거 사이의 차이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과거로 돌아가기보다는 기꺼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
11장 ‘영토’를 읽다가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라는 이름을 보고(379쪽), 쫌 오래되긴 했지만 예전에 읽었던 책이 떠올라서 꽂아봅니다.
아이티는 독립 후에도 미국의 지배 및 30년간의 부자 세습 독재에 시달리다, 1986년 민중 봉기로 독재자를 쫓아내고 아리스티드의 민주 정부가 들어섰다고 하는데요. 곧이어 다시 군부 쿠데타가 발발, 아리스티드는 망명길에 올라야 했습니다. 거기서 끝은 아니고 미국과 유엔이 개입하면서 아리스티드는 귀환을 했다가 얼마 안 가서 또 쫓겨나고 엎치락 뒤치락, 하여튼 겁나게 파란만장하더군요.
<가난한 휴머니즘>은 그 아리스티드가 2000년에 쓴 책입니다. 원래는 빈민가의 사제였다가 아이티 최초의 자유선거로 집권한 대통령 아리스티드. 그가 아이티가 가야 할 길을 모색하는 성찰의 편린들을 아홉 통의 편지로 담아냈는데요. (디게 작고 짧은 책이에요.) 전지구적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아이티처럼 가난한 나라를 어떻게 집어삼키는지 보여주면서, 그 시스템 속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거부할 수도 없는 와중에 대안적인 “제3의 길”을 찾겠다는 얘기예요. 지금에 와서는 그 제3의 길이라는 것도 유행 지난 지가 한참 된 테마겠지만, 그래도 뭐 근본적인 문제는 변한 것이 별로 없으니까요…
책머리에서 옮긴이가 “피정의 휴식” 같은 책이라고 하길래 ‘글쎄, 그렇게 명상적인 내용이 아닐 텐데?’ 생각했었는데, 다 읽고 나서는 그 말에 공감이 되더라고요. 도저히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암울한 현실,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두려운 싸움과 생존의 이야기를 이렇게 희망과 열정과 확신에 가득 차서, 이렇게 우아하고 품격 있는 글로 써낼 수 있다니, 하면서 감탄했거든요. (신부님이어서 그랬을까요?)
그들이 만들고자 했던 “인간다운 세계, 존엄한 가난”이라는 것이 끝내 불가능한 꿈이라 해도 누가 뭐라 할 수 있을까요. 책에도 나오듯, “우리의 제안이 완전한 것이 아니라 한다면, 그들 국제기구의 제안도 얼마나 파멸적인 것인지 이미 드러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는 대답할 말이 없으니 말이죠…
근데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좋은 책을 만나도 비관적인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게 사실이랍니다. 예전에도 이 방에서 잠시 나온 얘기지만, 지금의 체제 역시 언젠가는 극복이 될까요? ‘될 수 있겠지, 세상에 영원한 건 없으니까, 하지만 그 다음엔 또 다른 형태의 지배 구조가 뒤따르겠지’ 하는 생각이 자꾸 들거든요. 누구든지 음식과 물, 교육과 보건을 보장받을 수 있는 세상이라는 건, 인간 족속이 결코 이룰 수 없는 유토피아일까요.
가난한 휴머니즘 - 존엄한 가난에 부치는 아홉 통의 편지해방신학자이자, 전직 아이티 공화국 대통령인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끊임없는 내란과 독재에 시달리고 세계 어떤 나라보다 문맹률이 높은 아이티에서, 지은이 아리스티드가 날마다 받는 편지는 엄청나다. 그는 사람들의 편지 속에 담겨 있는 열정과 소망에 대한 대답을 <가난한 휴머니즘>에 아홉 통의 편지로 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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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절망의 암흑에서 만난 희망! 우린 대안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 대안이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 주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우리를 굶주림에서 꺼내어 ‘존엄한 가난’으로는 이끌 것이라 봅니다. ”
『가난한 휴머니즘 - 존엄한 가난에 부치는 아홉 통의 편지』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지음, 이두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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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적어주신 내용을 보고 든 생각인데 만일 루베르튀르와 아리스티드가 시간을 거슬러 서로 만날 수 있었다면 서로에 대해 어떻게 평가했을지 궁금하네요. 두 인물이 다른 방식을 택하고 있음에도 지향점은 같지 않았나 생각도 들고요.
루베르튀르는 자유와 독립을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경제 체제의 복원이 필요하다고 보고 그 과정에서 일정 부분 억압을 선택했고, 아리스티드는 선진국이나 강대국이 제시하는 경제발전의 길과 지원에 편입되는 것이 꼭 올바른 방향은 아님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각자 독재와 민주체제의 대립점에 서 있지만 '경제적 독립을 통한 자주'라는 목표점이 같아 보입니다.
중남미의 국가들 중 미국을 비롯한 외국계 기업들의 자본 침투로 경제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나라들이 있고, 최근에는 아프리카의 국가들이 일대일로를 내세우는 중국의 자본지원을 받는 현실에서 '발전'이라는 키워드 뒤에 어떤 정치적 영향력이 숨어 있는지 그 이면을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여요.
루베르튀르가 생도맹그의 자립을 위해서는 생도맹그 시민들 본인들의 주도로 플랜테이션을 되살려 독립의 자격이 있음을 보여주고, 가까운 식민지들과의 교류로 활로를 찾으려 했던 것처럼 아리스티드도 꼭 '국제적인 기준'에 편입된다는 게 전부는 아님을 말하고 싶었나 봅니다.
은화
“ “법이 우리를 우리 자신에게 돌려준 지금, 유럽의 프랑스인들을 본받아 우리가 우리의 자유를 쟁취한 지금, 우리가 당신들을 위해 일한 모든 시간에 대한 임금과 우리가 겪은 모든 학대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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