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4.아이티 혁명사, 로런트 듀보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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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영토’를 읽다가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라는 이름을 보고(379쪽), 쫌 오래되긴 했지만 예전에 읽었던 책이 떠올라서 꽂아봅니다. 아이티는 독립 후에도 미국의 지배 및 30년간의 부자 세습 독재에 시달리다, 1986년 민중 봉기로 독재자를 쫓아내고 아리스티드의 민주 정부가 들어섰다고 하는데요. 곧이어 다시 군부 쿠데타가 발발, 아리스티드는 망명길에 올라야 했습니다. 거기서 끝은 아니고 미국과 유엔이 개입하면서 아리스티드는 귀환을 했다가 얼마 안 가서 또 쫓겨나고 엎치락 뒤치락, 하여튼 겁나게 파란만장하더군요. <가난한 휴머니즘>은 그 아리스티드가 2000년에 쓴 책입니다. 원래는 빈민가의 사제였다가 아이티 최초의 자유선거로 집권한 대통령 아리스티드. 그가 아이티가 가야 할 길을 모색하는 성찰의 편린들을 아홉 통의 편지로 담아냈는데요. (디게 작고 짧은 책이에요.) 전지구적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아이티처럼 가난한 나라를 어떻게 집어삼키는지 보여주면서, 그 시스템 속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거부할 수도 없는 와중에 대안적인 “제3의 길”을 찾겠다는 얘기예요. 지금에 와서는 그 제3의 길이라는 것도 유행 지난 지가 한참 된 테마겠지만, 그래도 뭐 근본적인 문제는 변한 것이 별로 없으니까요… 책머리에서 옮긴이가 “피정의 휴식” 같은 책이라고 하길래 ‘글쎄, 그렇게 명상적인 내용이 아닐 텐데?’ 생각했었는데, 다 읽고 나서는 그 말에 공감이 되더라고요. 도저히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암울한 현실,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두려운 싸움과 생존의 이야기를 이렇게 희망과 열정과 확신에 가득 차서, 이렇게 우아하고 품격 있는 글로 써낼 수 있다니, 하면서 감탄했거든요. (신부님이어서 그랬을까요?) 그들이 만들고자 했던 “인간다운 세계, 존엄한 가난”이라는 것이 끝내 불가능한 꿈이라 해도 누가 뭐라 할 수 있을까요. 책에도 나오듯, “우리의 제안이 완전한 것이 아니라 한다면, 그들 국제기구의 제안도 얼마나 파멸적인 것인지 이미 드러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는 대답할 말이 없으니 말이죠… 근데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좋은 책을 만나도 비관적인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게 사실이랍니다. 예전에도 이 방에서 잠시 나온 얘기지만, 지금의 체제 역시 언젠가는 극복이 될까요? ‘될 수 있겠지, 세상에 영원한 건 없으니까, 하지만 그 다음엔 또 다른 형태의 지배 구조가 뒤따르겠지’ 하는 생각이 자꾸 들거든요. 누구든지 음식과 물, 교육과 보건을 보장받을 수 있는 세상이라는 건, 인간 족속이 결코 이룰 수 없는 유토피아일까요.
가난한 휴머니즘 - 존엄한 가난에 부치는 아홉 통의 편지해방신학자이자, 전직 아이티 공화국 대통령인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끊임없는 내란과 독재에 시달리고 세계 어떤 나라보다 문맹률이 높은 아이티에서, 지은이 아리스티드가 날마다 받는 편지는 엄청나다. 그는 사람들의 편지 속에 담겨 있는 열정과 소망에 대한 대답을 <가난한 휴머니즘>에 아홉 통의 편지로 갈무리했다.
절망의 암흑에서 만난 희망! 우린 대안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 대안이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 주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우리를 굶주림에서 꺼내어 ‘존엄한 가난’으로는 이끌 것이라 봅니다.
가난한 휴머니즘 - 존엄한 가난에 부치는 아홉 통의 편지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지음, 이두부 옮김
적어주신 내용을 보고 든 생각인데 만일 루베르튀르와 아리스티드가 시간을 거슬러 서로 만날 수 있었다면 서로에 대해 어떻게 평가했을지 궁금하네요. 두 인물이 다른 방식을 택하고 있음에도 지향점은 같지 않았나 생각도 들고요. 루베르튀르는 자유와 독립을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경제 체제의 복원이 필요하다고 보고 그 과정에서 일정 부분 억압을 선택했고, 아리스티드는 선진국이나 강대국이 제시하는 경제발전의 길과 지원에 편입되는 것이 꼭 올바른 방향은 아님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각자 독재와 민주체제의 대립점에 서 있지만 '경제적 독립을 통한 자주'라는 목표점이 같아 보입니다. 중남미의 국가들 중 미국을 비롯한 외국계 기업들의 자본 침투로 경제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나라들이 있고, 최근에는 아프리카의 국가들이 일대일로를 내세우는 중국의 자본지원을 받는 현실에서 '발전'이라는 키워드 뒤에 어떤 정치적 영향력이 숨어 있는지 그 이면을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여요. 루베르튀르가 생도맹그의 자립을 위해서는 생도맹그 시민들 본인들의 주도로 플랜테이션을 되살려 독립의 자격이 있음을 보여주고, 가까운 식민지들과의 교류로 활로를 찾으려 했던 것처럼 아리스티드도 꼭 '국제적인 기준'에 편입된다는 게 전부는 아님을 말하고 싶었나 봅니다.
“법이 우리를 우리 자신에게 돌려준 지금, 유럽의 프랑스인들을 본받아 우리가 우리의 자유를 쟁취한 지금, 우리가 당신들을 위해 일한 모든 시간에 대한 임금과 우리가 겪은 모든 학대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바이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p.335,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루베르튀르는 특별한 이유 덕분에 영국과의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었다. 그는 영국군이 생도맹그에서 철수하기를 원했지만, 식민지 경제를 재건하는 데 그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 그리고 그는 영국 상인들과 카리브 해에서 프랑스가 보유한 가장 중요한 식민지 사이의 교육에 동의했는데, 이는 아주 고무적인 성과였다. 루베르튀르는 생도맹그가 생산하는 커피와 설탕을 수출할 수 있는 메커니즘, 따라서 그 식민지가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한 수입원을 확보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베르튀르는 그 이상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프랑스 정부와의 노골적인 분쟁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었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p.348,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루베르튀르는 아이티의 새로운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의 성향에 따라 태도가 바뀌는 불안정하고 변덕스러운 프랑스로부터 군사적/재정적/정치적 독립이 필수였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이를 위해서 총재정부가 파견한 에두빌과 같은 본국의 인사들, 자신과 입장이 비슷했던 정치적 동지들조차도 필요하면 내쫓는 냉정함을 드러내고요. 멀리 있는 프랑스보다 가까운 이웃 식민지와 국가들과의 교역이 당장의 경제에 더 중요하다는 현실 논리를 선택하는 걸 보며 '이 사람은 현대에도 보기 힘든 현실인식 능력이 있구나' 라고 느꼈습니다. 특히 이웃한 자메이카의 노예해방 시도를 밀고하는 모습은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자유를 희생해야 한다는 그의 가치관이 또 한 번 드러나는 것 같고요. 다른 자유를 희생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것이 루베르튀르의 최대의 장점이지만 동시에 이로 인해 아이티가 프랑스와 전쟁을 할 수 밖에 없는 정치적 불안을 야기하는 원인제공자였다는 점에서 독립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가 생각해 보게 되네요.
폐허가 된 농장과 그 주변에서 사람들은 작은 땅을 경작했고, 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서 작물을 재배했다. 그들은 닭, 돼지, 소를 키우면서 종종 버려진 사탕수수밭에 가축을 풀어놓았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p.358,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왠지 이 문장이 뭉클했습니다. <불타는 사탕수수밭>에서 나오던 16시간 쉬지않고 노동을 시키려던 감독관의 문장과 대비가 되더라고요. 사탕수수 밭을 따라 정돈된 플랜테이션 농장의 풍광과 비교되는 어수선한 밭의 풍경은 노예 출신의 주민들에게는 목가적인 시골이자 고향이지만, 농장주와 백인들에게는 무질서의 공포였겠죠. 하지만 섬의 노예였다가 주인이 된 시민들에게 그것은 뿌리내린 체제의 땅으로부터 해방된 자유를 상징하는 감동적인 광경으로 보였을 것 같습니다. 저 멀리 들판 너머에까지 펼쳐진 자유로운 가축과 해방노예들, 압제와 노예제의 상징이었던 농장이 이제 자연의 수풀에 뒤덮여 가는 모습. 오늘도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몸과 노동으로 느끼며 채마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그 풍경이 참으로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모든 적수들이 그런 것처럼, 리고와 루베르튀르도 강박적으로 그들의 차이를 강조하고자 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서로 아주 많이 닮아 있었다. 그들의 체제는 모두 해방노예들을 농장에 묶어 두고 영국 및 미국 상인들과의 경제적 유대를 강화하는 데 기초를 두었다. (...) 결국 루베르튀르와 리고외 대립은 인종적 정체성의 차이, 또는 이데올로기나 관행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영토와 정치권력을 놓고 벌인 싸움이었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p.362~363,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양쪽 지도자들은 서로 적을 악마로 간주했고, 전투는 그 어느 쪽도 조금의 자비도 보여 주지 않으며 '광란의 상태'로 치달았다. "어느 누구도 포로를 잡는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땅도 고통을 당했다. 리고는 후퇴하면서 병사들에게 '불의 사막'을 만들라고 명령했다. 그는 뿌리가 허공에 드러난 나무만 남기고 철수 명령을 내렸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p.366,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우리에게만 인정된 형식적인 자유가 아니라, 붉게 태어났든(물라토), 검게 태어났든, 아니면 희게 태어났든 그 누구도 타인의 재산이 될 수 없다는 원칙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라는 것"이라고 그는 분명하게 말했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p.375,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그는 경작자들을 '노예'처럼 취급했다고 비난받았지만, 그의 목표는 생도맹그 인민이 "방종 없는 자유를 맛볼"수 있게 함으로써 "그 섬의 행복을 전반적으로" 증진하는 것이었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p.387,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새로운 체제에서의 운명은 "채찍질에 의해서 자극하는 육체적 효과가 아니라, 설득을 통해서 주입된 것이든 헌병대가 뒷받침하는 시 조례의 강제력을 통해서 강요된 것이든, 어쨌든 의무로서 간주되었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p.399,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그러나 몇 년 뒤에 보나파르트는 생도맹그에 관한 결정에 대해서 후회하며 회상할 것이다. 죽음을 맞이하면서, 그는 군대를 보낼 것이 아니라 “투생을 인정하고” 그를 통해서 생도맹그를 통치했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생도맹그에서 죽어 간 수많은 프랑스 병사들의 유령, 아니면 프랑스의 차갑고 음습한 산중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한 어느 장군의 유령에게 시달리면서 죽어 간 한 사람의 중얼거림이었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p.404,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모든 곳에서 승리한 우리는 소총밖에 가진 것이 없었다. 적은 어디에도 없었지만, 언제나 그들이 이 나라의 주인이었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p.416,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우리는 더 이상 어떠한 심리적 공포도 심어주지 못했는데, 이는 어떤 군대에게 나타날 수 있는 최악의 상태”라고 라크루아는 썼다. 후대의 연대기 작가가 썼듯이, “이 땅은 숲이나 바위 뒤 등 어디에나 적들을 숨겼다. 자유가 그들을 낳았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p.422,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보나파르트 정부는 생도맹그 원정을 “아메리카에서 일어나고 있는 흑인 야만주의에 맞서는 서양 문명인들의 십자군”으로 규정했다. 르클레르에게 내리는 훈령에서 보나파르트는 “에스파냐, 영국, 미국도 이 흑인 공화국의 존재 때문에 당황하고 있다”고 적었고, 카리브 해의 다른 식민지 관리들에게 “흑인들의 반란을 섬멸하는 것이 유럽인들의 공동의 이익”이라는 인상을 주라고 권고했다. 프랑스 외무장관 샤를모리스 드 탈레랑은 영국에 보내는 전문에서 “중앙아메리카에서 형성되고 있는 새로운 알제(Algiers)를 파괴하는 것은 문명 전체의 이익”이며, 르클레르의 임무는 “통상과 식민지를 가진 모든 나라들의” 지지를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396-397쪽,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이는 또한 혁명 생도맹그에서 성장하고 있던 새로운 사회가 유럽의 식민지 체제 전체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생각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음을 반영한다. 영국 정부는 협조했다. 수상 애딩턴은 “두 정부의 이해관계는 자코뱅주의, 특히 흑인 자코뱅주의를 파괴하는 것으로 정확하게 같다”고 선언했다. 생도맹그에 도착한 르클레르가 “유럽이 카리브 해의 식민지들을 보전할 수 있을지 여부가 지금 이 순간에 여기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선언했을 때, 이는 프랑스 정부 내의 분위기를 요약한 것이었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397쪽,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흑인들의 일인자는 그렇게 끝났다”라고 라크루아가 적었다. 한 전기 작가는 “루베르튀르가 위험천만한 속임수에 처음으로 넘어갔다”고 언급했다. 부인 수잔, 아들 이삭과 플라시드, 조카 한 명을 포함한 그의 가족도 체포되어 대서양 건너로 이송되었다. 그는 고나이브에서 유배선에 올랐을 때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당신들은 나를 타도하기 위해서 생도맹그 흑인들의 ‘자유의 나무’를 몸통만 잘랐다. 자유의 나무는 뿌리가 깊고 많기 때문에 다시 자라날 것이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429쪽,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데쿠르티에 따르면, 데살린은 함께 싸운 ‘콩고들’에게 그들이 만약 프랑스군에게 죽는다면 이는 신의 축복이라고 설득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파파(Papa) 투생을 다시 볼 수 있는 기니로 즉각 이송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파파 투생은 그곳에서 군대를 완성하기 위해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그의 군대는 생도맹그를 다시 정복할 운명이었다. 이는 아프리카로의 귀환이었고, 그 궁극적인 목표는 식민지를 되찾는 것이었다. 그런 약속에 자극받은 아프리카 전사들은 “마치 옛 친구들을 곧 만날 수 있다는 기대에 들떠, 초자연적인 용기를 가지고 기니 노래를 부르면서” 싸우러 나갔다고 데쿠르티는 적었다.
아이티 혁명사 - 식민지 독립전쟁과 노예해방 456쪽, 로런트 듀보이스 지음, 박윤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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