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클래식 2025] 10월, 금각사

D-29
하지만 '알게 모르게'라는 문학적 표현을 쓰면 안 되겠지. 나는 모두 알고 있었거든. 지옥의 특색은 구석구석까지 명료하게 보인다는 점이지. 그것도 암흑 속에서!
금각사 (무선) p148,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그렇겠지. 너는 동정이로군. 전혀 아름다운 동정이 아니야. 여자에게도 인기가 없고, 몸 파는 여자를 살 용기도 없지. 그것뿐이지. 하지만 네가 동정끼리 어울리겠다는 생각으로 나와 사귀겠다면 잘못 생각한 거야. 내가 어떻게 해서 동정에서 벗어났는지 이야기해줄까?”
금각사 (무선)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나는 산노미야 시에 있는 선사(禪寺)의 자식으로, 날 때부터 안짱다리였다……. 하지만 내가 이런 식으로 고백을 시작하면, 너는 나를 아무에게나 신상 이야기를 하는 불쌍한 병자라고 생각하겠지만, 누구에게나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야. 내 쪽에서도, 창피한 이야기지만, 처음부터 너를 고백 상대로 여기고 있었어. 왜냐하면 아마도 내가 해온 짓들이 분명히 너에게 가장 가치 있고, 내가 해왔던 대로 한다면 분명히 그것이 너에게 가장 좋은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종교가는 그런 식으로 신자의 냄새를 맡고, 금주가(禁酒家)는 그런 식으로 동지의 냄새를 맡는다는 사실을 너도 알고 있겠지?
금각사 (무선)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이 세상의 온갖 악몽, 역사상의 온갖 악몽은 그런 식으로 생겨난 거야. 하지만 백일하에 피투성이가 되어 몸부림치는 사람의 모습은 악몽에 뚜렷한 윤곽을 주고 악몽을 물질화해버리지. 악몽은 우리들의 고뇌가 아니라 타인의 격심한 육체적 고통에 불과하게 되지. 하지만 타인의 아픔은 우리들에게는 느껴지지 않거든.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
금각사 (무선)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그것은 하나의 행위조차 되지 못했다. 요컨대 그가 암시한 인생이란, 미지(未知)로 가장하여 우리들을 속이고 있는 현실을 무너뜨리고 다시는 조금이라도 미지를 포함하지 못하도록 세계를 청소하기 위한, 위험하고 천박한 연극이었던 것이다
금각사 (무선)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다친 데는 괜찮니?” “다친 데라고?”— 가시와기는 비웃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언제 다쳤냐? 응? 너는 어째서 내가 다쳤다고 헛소리를 하냐?” 나는 할 말을 잊고 있었다. 가시와기는 나를 잔뜩 안달하게 만든 다음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했다. “그건 연극이야. 그 길에 떨어지는 연습을 여러 차례 해서 정말 뼈라도 부러진 듯이 멋지게 허풍을 떨며 넘어지는 방법을 연구해두었지. 여자가 모르는 척하며 지나치려고 했던 것은 뜻밖이었지만. 하지만 보라구. 이미 여자는 나에게 반하게 됐으니까. 아니 잘못 말했군. 즉 내 안짱다리에 반하게 된 거지. 그 계집애는 직접 내 다리에 요오드팅크를 발라댔다니까.” 그는 바지 자락을 걷어 올리고 엷은 노란색으로 물든 정강이를 보여주었다.
금각사 (무선)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우아한 무덤이란 초라한 거로군” 하고 가시와기가 말했다. “정치적 권력이나 금력은 멋진 무덤을 남기지. 당당한 무덤을 말이야. 그자들은 생전에 전혀 상상력이 없었으니까 무덤도 자연히 상상력의 여지가 없는 자가 세우게 되지. 하지만 우아한 쪽은 자타의 상상력에만 의지하며 살았으니까, 무덤도 이런, 상상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게 남게 되지. 이쪽이 나는 비참하다고 생각해. 사후에도 계속해서 남의 상상력에 의존해야만 하니까.
금각사 (무선)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불교고 나발이고 없어. 우아함, 문화, 인간이 생각하는 미적인 것, 그러한 모든 것들의 실상은 삭막하고 무기적인 거야. 용안사(龍安寺)는 아니지만, 돌멩이에 불과하지. 철학, 이것도 돌멩이, 예술, 이것도 돌멩이야. 그리고 인간의 유기적인 관심이래야, 한심하게도 정치뿐이지. 인간은 모름지기 자기 모독적인 생물이니까.
금각사 (무선)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전쟁의 막바지, 전쟁의 끝에서 이방인이 된 미조구치를 통해 시대를 보여준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가 가져온 트라우마는 벗어나기 힘들다. 그들의 삶을 아름다운 풍경을 설명하는 속에서 잠깐씩 등장해서 극복하기 위해노력하지만 문득 문득 떠오르는 것까지는 막을수없는것 같다.
나는 애매하게 웃었다. 난방이 되지 않은 절간의 심야, 싸늘한 무릎, 우뚝 서 있는 낡고 굵은 기둥들이 소곤소곤 이야기하고 있는 우리들을 에워싸고 있었다. … 결백한 내가 보내게 될 순결한 침묵의 나날을, 즉 결코 참회의 필요가 없는 나날을 완전히 모방할 수 있다. 아니, 모방하면 되는 것이다. … 노사는 내가 느꼈던 핵심, 그 감미로움의 핵심을 알고 있었다!
금각사 (무선)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그는 햇빛 아래에서 혼자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한 인상이 가슴에 와닿았다. 봄날의 햇빛과 꽃 속에서, 내가 느끼는 부끄러움과 어색함을 그는 지니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그 모습을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주장하고 있는 그림자, 아니 존재하고 있는 그림자 그 자체였다. 햇빛은 그의 단단한 피부에 스며들지 못함에 틀림없었다.
금각사 (무선)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아직 4분의 1 정도밖에 못 읽었지만 정말 재미있네요. 이런 작품인 줄 몰랐습니다.
글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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