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의 서재로 📙 읽기] 29. 구의 증명

D-29
오늘 밀리의 서재에서 드디어 <구의 증명>을 다 읽었어요. 사실 최진영 작가님 책은 이 작품이 처음이기도 하고, 워낙 호불호가 갈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좀 걱정했었거든요.막상 읽어보니 예상만큼 나쁘진 않았지만, 책에 나오는 묘사들이 너무 기괴하게 느껴져서 읽는 내내 솔직히 좀 힘들었습니다. 이걸 보면서 내내 '사랑이라는 게 정말 이렇게까지 처절하고 헌신적이어야만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놓지 않고 사랑하는 구와 담의 모습에서 왠지 모르게 '그러지 말았으면..' 하는 복잡한 마음이 들었네요. 저한테는 사랑의 의미를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하게 해 준 작품이었어요.
구가 말했다.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 나는 너를 먹을 거야. 너를 먹고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을 거야. 우리를 사람 취급 안 하던 괴물 같은 놈들이 모조리 늙어죽고 병들어 죽고 버림받아 죽고 그 주검이 산산이 흩어져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진 다음에도, 나는 살아 있을 거야. 죽은 너와 끝까지 살아남아 내가 죽어야 너도 죽게 만들 거야. 너를 따라 죽는 게 아니라 나를 따라 죽게 만들 거야. 네가 사라지도록 두고 보진 않을 거야. 살아남을 거야. 살아서 너를 기억할 거야.
구의 증명 최진영 지음
무언가를 알기 위해서 대답이나 설명보다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고. 더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데 지금 이해할 수 없다고 묻고 또 물어봤자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모르는 건 죄가 아닌데 기다리지 못하는 건 죄가 되기도 한다고.
구의 증명 최진영 지음
'그때 이모는 여름을 만들고 있었다. 여름을 만든다는 이모의 말만 기억날 뿐, 여름이 무엇이었는지는 까먹었다.' ... 비구니 스님이셨기 때문인지.. 부채 만드는 일이 이모에게 여름 아니었을까..? 잠시 생각해봤네요..
저는 선풍기 생각했어요 ^^
비싼 옷을 집에서 함부로 입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어릴 때부터 그런 옷을 입고 살아온 사람처럼, 그런 옷쯤 추리닝으로나 입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구의 증명 최진영 지음
이 소설을 읽으며 둘의 사랑 보다.. 둘의 굴곡진 삶이 내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사람으로서 살아내려 할 때에는 물건 취급하지 않았는가. 그의 시간과 목숨에 값을 매기지 않았는가. 쉽게 쓰고 버리지 않았는가. 없는 사람 취급 하지 않았는가. 없는 사람 취급받던 사람을, 없는 사람으로 만들 수는 없다.
구의 증명 최진영 지음
문을 마주하고 선 담이 속으로 어떤 말을 하고 있을지 잘 알았기에, 다행스럽기도 서운하기도 했다.
구의 증명 61p, 최진영 지음
서로 그리워하는 모습을 읽으며 울컥 했어요.
39%까지 읽었는데 61p의 구의 감정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담이 문 앞을 서성이고 있을 때 구는 왜 서운한 감정이 들었을까요?
'서성이며 망설이며 돌아서며, 돋아난 꽃이 피고 지고 밟히는 것을 보았다. 꽃향기를 지우는 장마가 시작되던 날, 담이 우리 집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꼭 지난밤의 나처럼 서 있었다. 문을 마주하고 선 담이 속으로 어떤 말을 하고 있을지 잘 알았기에, 다행스럽기도 서운하기도 했다.' '담이는 내 생각을 하지 않나. 내 생각을 한다면 여기서 이러고 있는 나를 모를 리 없는데. 하지만 담은 몰랐다. 그 밤 중 단 한 번도 문을 열고 나오지 않았다.' 그 무수한 밤.. 그 밤 중 한 번이라도 문을 열고 나왔더라면.. 하는 서운함 아니었을까요.. 꽃 피고 향기 그윽한 봄밤을 그렇게 통째로 날려버리지 않았을 텐데요.. ^^;
아마 구가 담을 그리워했듯 담도 구를 그리워해서 다행이고 구가 담을 그리워하는 건 너무 당연한데 몰라줘서 서운했을까요?
구에 대한 생각이 서서히 옅어지고 그 자리에 다른 생각이 들어오자,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구는 엄청나구나. 구 대신 들어온 다른 것들이 터무니없이 옅고 가벼워서 구의 밀도를 대신하지 못했다.
구의 증명 최진영 지음
똑 소리를 내야 할 때는 똑 소리를 내곤 했는데. 몸 안에 방음벽이라도 두른 것 같았다. 그 벽에 걸러져 밖의 소리도 잘 들어가지도 않고 내면의 소리도 퍼져나오지도 않았다.
구의 증명 최진영 지음
어째서 사망신고를 해야 하는가. 무엇을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구가 죽었다고, 내 이름으로 그것을 증명해야 하는가. 그럴 수 없다. 여기 내 눈앞에 있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몸이 있는데. 만지고 안을 수 있는데. 그 누구도 몰라야 한다. 어차피 관심 없지 않았는가. 사람으로서 살아내려 할 때에는 물건 취급하지 않았는가. 그의 시간과 목숨에 값을 매기지 않았는가. 쉽게 쓰고 버리지 않았는가. 없는 사람 취급 하지 않았는가. 없는 사람 취급받던 사람을, 없는 사람으로 만들 수는 없다.
구의 증명 최진영 지음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상대를 끝없이 기다린다는 뜻일까.
구의 증명 최진영 지음
무거운 짐을 이고 나르며 몸을 쓰는 일을 할 때는 머릿속이 복잡하지 않아 좋은데,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서 걱정이라고 했다. 힘든 일할 때 시간이 빨리 가면 좋잖아. 주저하다가 물었다. 그 속도로 내 삶이 지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좀…… 무서워.
구의 증명 최진영 지음
몸은 고되고 앞날은 곤죽 같아도, 마음 한구석에 영영 변질되지 않을 따뜻한 밥 한 덩이를 품은 느낌이었다.
구의 증명 최진영 지음
구는 더 시골로 들어가자고 했다. 경찰도 공무원도 CCTV도 없는 산골로 들어가자고. 우리는 번개 맞아 죽은 고목 같은 집에서 까만 청설모처럼 살아야 한다고. 지상으로는 최대한 내려오지 말고 고목 안 고목 위에서만 살면 아무도 우리가 사람인 줄 모를 거라고. 나는 사람이 무엇인가 생각했다. 사람 대접 받으려고 안간힘 쓰던 날을 생각했다. 이제 구는 사람이기를 아예 포기하려 하는구나. 사람보다 고목이나 청설모가 되려고 하는구나. 그래 그게 낫겠다. 사람 대접 받겠다고 평생을 싸우느니 그냥 이쯤에서 청설모가 되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기꺼이 그러자고 했다. 사람 말고 다른 것이 되자고 했다.
구의 증명 최진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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