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의 서재로 📙 읽기] 29. 구의 증명

D-29
똑 소리를 내야 할 때는 똑 소리를 내곤 했는데. 몸 안에 방음벽이라도 두른 것 같았다. 그 벽에 걸러져 밖의 소리도 잘 들어가지도 않고 내면의 소리도 퍼져나오지도 않았다.
구의 증명 최진영 지음
어째서 사망신고를 해야 하는가. 무엇을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구가 죽었다고, 내 이름으로 그것을 증명해야 하는가. 그럴 수 없다. 여기 내 눈앞에 있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몸이 있는데. 만지고 안을 수 있는데. 그 누구도 몰라야 한다. 어차피 관심 없지 않았는가. 사람으로서 살아내려 할 때에는 물건 취급하지 않았는가. 그의 시간과 목숨에 값을 매기지 않았는가. 쉽게 쓰고 버리지 않았는가. 없는 사람 취급 하지 않았는가. 없는 사람 취급받던 사람을, 없는 사람으로 만들 수는 없다.
구의 증명 최진영 지음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상대를 끝없이 기다린다는 뜻일까.
구의 증명 최진영 지음
무거운 짐을 이고 나르며 몸을 쓰는 일을 할 때는 머릿속이 복잡하지 않아 좋은데,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서 걱정이라고 했다. 힘든 일할 때 시간이 빨리 가면 좋잖아. 주저하다가 물었다. 그 속도로 내 삶이 지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좀…… 무서워.
구의 증명 최진영 지음
몸은 고되고 앞날은 곤죽 같아도, 마음 한구석에 영영 변질되지 않을 따뜻한 밥 한 덩이를 품은 느낌이었다.
구의 증명 최진영 지음
구는 더 시골로 들어가자고 했다. 경찰도 공무원도 CCTV도 없는 산골로 들어가자고. 우리는 번개 맞아 죽은 고목 같은 집에서 까만 청설모처럼 살아야 한다고. 지상으로는 최대한 내려오지 말고 고목 안 고목 위에서만 살면 아무도 우리가 사람인 줄 모를 거라고. 나는 사람이 무엇인가 생각했다. 사람 대접 받으려고 안간힘 쓰던 날을 생각했다. 이제 구는 사람이기를 아예 포기하려 하는구나. 사람보다 고목이나 청설모가 되려고 하는구나. 그래 그게 낫겠다. 사람 대접 받겠다고 평생을 싸우느니 그냥 이쯤에서 청설모가 되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기꺼이 그러자고 했다. 사람 말고 다른 것이 되자고 했다.
구의 증명 최진영 지음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이들이 있는 반면.. 태어난 것 밖에 없는데.. 평범 조차 사치가 되는 사람들도 있지요.. 첫 숨부터 지옥을 들이키며 살아내야 하는.. '사람 대접을 받겠다고 평생을 싸우느니.. 사람 말고 다른 것'..이 되는 것이 기꺼운.. 구와 담의 운명이 처절했고.. 오가며 스치는 사람들 중에도 지금 버텨내고 있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싶었습니다.. 그들 중에도 구와 같은 운명이 있을 수 있겠다 싶은..
둘의 사정이 너무 슬프고 현실적으로 그려졌어요..
저도 다 읽고 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호불호가 갈릴 소설인가? 싶긴해요. 차라리 저는 급류가 불호에 가까웠습니다. 이 책에서 그려지는 사랑도 절절한 사랑 정도로 받아들여지는데, 이건 지금 제가 와일드펠~을 읽고 있기 때문일 것 같네요. 여기서도 헌신적인 아내의 사랑이 나오거든요^^; 제 별점은요, 3.5점..? 초반부가 임팩트 있었지만 후반부는 무난한 소설이었습니다.
급류2020년 《한경신춘문예》에 장편소설 <GV 빌런 고태경>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소설가 정대건의 두 번째 장편소설 <급류>가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40번으로 출간되었다. <급류>는 저수지와 계곡이 유명한 지방도시 ‘진평’을 배경으로, 열일곱 살 동갑내기인 ‘도담’과 ‘해솔’의 만남과 사랑을 그린 소설이다.
와일드펠 저택의 여인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브론테’였던 앤 브론테를 국내에 새로이 소개하며, 마땅히 누려야 했을 명성을 빼앗긴 그의 비운의 마지막 소설 《와일드펠 저택의 여인》을 에드먼드 뒬락의 삽화 일곱 점과 함께 초역으로 선보인다.
아.. 급류.. 도담과 해솔은 함께 있겠죠.. 소소한 사랑을 점점이 채워가면서..^^
구의 증명 최진영 지음
저도.. 구&담 > 솔&담
입시로 시작한 이야기는 늘 취업으로 끝났다. 어떻게 하면, 어느 길로 가면 빨리 돈을 벌 수 있느냐의 문제. 빨리, 안정적으로 벌 수 있는가의 문제. 대부분 그 답을 찾고 있었다. 같은 나이의 친구에게, 네가 아직 세상을 모른다는 말을 들었다. 그건 아니고, 그건 힘들고, 그건 말이 안 되고,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고, 대부분의 문장이 그렇게 시작되거나 끝났다. 그들의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깊은 무력감에 빠졌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실패는 예정되어 있는 것 같고,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는 것 같고, 그래서 이미 진 것 같았다.
구의 증명 최진영 지음
내가 몸담았던 모든 곳에서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리고 싶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다. 철저히 혼자이고 싶었다. 나를 바꾸고 싶었다. 바꿀 수 없다면 버리고 싶었다. 버리고 다시 살고 싶었다.
구의 증명 최진영 지음
살아가다 보면 이런 순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리셋하고 싶은..
돈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영혼 값은 달랐다.
구의 증명 최진영 지음
원하던 대로 간호학과에 갔고 한 학기를 다니다가 휴학한 상태였다. 등록금에 생활비에 방세까지, 두 학기를 연달아 다닐 여력이 안 된다고 했다. 빨리 돈을 벌고 싶어서 간호사를 꿈꾸었는데, 그러기 위해선 일단 돈이 있어야 했다. 생각처럼 살아지지가 않네.
구의 증명 최진영 지음
행복하자고 같이 있자는 게 아니야. 불행해도 괜찮으니까 같이 있자는 거지.
구의 증명 최진영 지음
……지금도 있지. 죄책감 없이. 당연하게. 쭉 그래왔으니까. 약한 놈만 골라잡으면서. 잡힌 놈이 등신이지, 생각하면서. 애들도 그렇게 키우고. 응. 잘 잡아먹는 게 능력이라고 가르치고. 후회한다면, 힘이 세지 않은 걸 후회하고. 죄책감을 갖는 게 오히려 비정상이고.
구의 증명 최진영 지음
지금의 인간은 미개하지 않은가. 돈으로 목숨을 사고팔며 계급을 짓는 지금은. 돈은 힘인가. 약육강식의 강에 해당하는가. 그렇다면 인간이 동물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가. 세련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동물의 힘은 유전된다. 유전된 힘으로 강한 놈이 약한 놈을 잡아먹는다. 불과 도구 없이도, 다리와 턱뼈와 이빨만으로. 인간의 돈도 유전된다. 유전된 돈으로 돈 없는 자를 잡아먹는다.
구의 증명 최진영 지음
길바닥에 주저앉아 구를 끌어안고서 새벽이 오도록 구의 서른 걸음을 상상했다. 죽어가며 간신히 움직인 그 의지를, 뼈와 근육을, 구의 마음을. 어떤 상상도 견딜 수 없어 차라리 나의 뇌를 꺼내 내팽개치고 싶었다. 구는 길바닥에서 죽었다. 무엇이 구를 죽였는가. 나는 사람이길 원하는가.
구의 증명 최진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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