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부분부터 공감되는 글귀 하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저마다 맹점을 갖고 있어 앉은뱅이를 업고 가는 장님처럼 서로에게 눈과 다리가 되어줄 수 있다면 이상적이겠지만, 한국사회에서는 오히려 서로의 맹점이 부각되고 있다. (p4)
버기
요즘의 세상에선 자유주의를 많이 이야기하지만, 진정한 자유가 아닌 경제적 자유주의로 귀결됨에 동의합니다.
그렇기에 "쪼그라든 자유주의"라는 단어가 와닿아요.
역자님은, 진정한 자유주의가 아닌 작금의 쪼그라든 자유주의가 된 원인이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저자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통통
@버기 절판되었던 책을 복간한 이유도 버기님이 느끼신 부분과 맞닿아 있다고 해요. 중반부가 되면 버기님의 궁금증이 해소되리라 기대하며..! 무사한(!) 한주 읽기 축하드립니다!
통통
4주차가 시작되었습니다.
[4주차] 11/10(월) ~ 11/15(토) : 7장 ~ 끝까지
어느덧 끝을 향해 갑니다. 어떤 생각과 질문들이 남으셨는지 궁금하네요.
밑줄 친 부분을 남겨주셔도 좋고, 의문이나 후기를 남겨주셔도 좋습니다. :-)
건양
안녕하세요, 뒤늦게 인사드립니다! 제가 사는 곳 근처에서 책이 배달돼서 신기했습니다 :) 책 잘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거의 다 읽어가는데, 장별 후기를 곧 남기려고 합니다. 요즘 정치철학 공부를 다시 열심히 하고있어 나름 재밌고 빠르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먼저 우리가 자유주의라는 것을 굉장히 넓게 정의해서 그 구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유라는 것이 책에서 의미하듯, 아무것도 통제받지 않은 욕망의 노예인 것인지, 적절히 통제하고 다스릴 줄 아는 능력인 것인지 그 생각이 다르니까요. 단순히 세상과 동떨어져 존재하는 개인이라는 것은 일종의 환상과도 같습니다.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도 비슷한 비판이 나오죠. 센델이 공동체주의자라고 불리는 이유는 극단적인 자유주의를 밀고 나갔을 때의 부정적인 것들을 예기했고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의 규칙을 단순히 무시하면 안된다는 방향으로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2년전쯤 책에서 언급되는 제이슨 브레넌의 <민주주의에 반대한다>라는 책을 읽었는데 극단적인 정치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은 동의하나, 그 해결점으로 특정 집단이 정치를 운영하는, 엘리트주의적인 해결이 답인가에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물론 이 책도 공동체에서 시작하자는 방향으로, 다소 약한 해결책을 내놓지만 모두에게 통용되는 것이라는 환상이 부작용을 낳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특히 이 책은 현재에 문제되는, 극단적인 성적 자유를 밀고 가는 미국의 리버럴 진영과 극단적인 시장 만능주의를 밀고 가는 트럼피즘 모두에 비판을 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어 보입니다. 인상적인 것은 자유주의 자체가 기존의 공동체들이 만든 질서 위에 서있기 때문에 작동하고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애초에 단순히 자유인 개인이 존재한다면, 사회는 자유인 개인으로 환원되고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생겨버립니다. 기존의 것들이 있기에 자유라는 것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이죠. 저는 현재 극단적인 양극이 인공지능 시대로 가는 경제체제에서 무기력한 노동자들이라는 경제적 상황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론 기술과 시장만능주의라는 정치이데올로기 또한 중요하게 작동하고 있기에 비판하고 파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읽고 한 번 더 정리를 해봐야겠습니다!
통통
@건양 남겨주신 글을 읽으면 생각의 흐름이 보이는 듯해요. 앞에서 말해주는 느낌? 꼬꼬무 같은... ㅎㅎㅎ 저도 결론에 다다르며 다소 헛헛한(!) 기분이 들었지만 저자도 이미 주지하고 있는 바이니 받아들이며 생각해봐야겠지요. 이후 후기도 기다려집니다.
통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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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주차] 11/10(월) ~ 11/15(토) : 7장 ~ 끝까지
어느덧 끝을 향해 갑니다. 어떤 생각과 질문들이 남으셨는지 궁금하네요.
밑줄 친 부분을 남겨주셔도 좋고, 의문이나 후기를 남겨주셔도 좋습니다. :-)
문화건달
진짜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는데 제가 11월에 일이 많아서 읽지도 못하고 괜히 신청만하고..
최근 뉴욕시장 당선도 책의 내용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은데..저는 천천히 다음에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Ennui
안녕하세요. 정말 뒤늦게 글 남깁니다. 저 또한 일이 바빠서 책을 받아놓고 이제서야 다 읽어 가네요. 미처 충분히 정리하진 못하였는데, 늦게나마 그믐에 글 남겨 보겠습니다.
당장 읽으면서 한 가지 떠오른 생각은 우리가 '자유'라는 개념 자체를 재사유할 필요가 있다는 정도였어요. 야나부 아키라의 『프리덤, 어떻게 자유로 번역되었는가』라는 책을 일전에 읽은 적 있는데, 여기서 저자는 본디 동양에서는 '자유'라는 말이 부정적인 뉘앙스로 띠고 있었음을 지적하더라구요. 이를테 면 오늘날 우리는 자유를 긍정적인 개념으로만 해석하고, 이에 대비되는 부정적 자유 개념을 '방종'이라고 부르지만, 실상 19세기 후반 이전까지 동양에서 자유는 (부러 역설을 즐기는 선불교 류의 텍스트에서를 제외하면) 항상 부정적인 개념이었다는 얘기입니다. 요컨대 자유는 '어떠한 제약 없이 하고 싶은 것을 내키는 대로 하는' 것이었던 적이 없다는 얘기지요. 드닌이 지적하는 바도 이와 맞닿아 있는 듯합니다. 정치 이데올로기로서 자유주의는 특정한 종류의 자유만을 추종하고, 그 자체에 내재한 이데올로기적 측면을 숨겨버리는 듯합니다.
만렙토끼
선거는 한때 자유민주주의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잘 조율된 연출로 여겨졌으나, 이제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부정하고 부패한 체제의 증거로 여겨진다.
『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 20, 패트릭 J. 드닌 지음, 이재만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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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토끼
자유주의는 실패해왔다. 어딘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충실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는 성공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 21, 패트릭 J. 드닌 지음, 이재만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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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토끼
그리하여 자유주의는 자신의 최대 약점을, 심지어 스스로 초래하는 쇠퇴마저 대체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왜 자유주의는 실패했는가』 54, 패트릭 J. 드닌 지음, 이재만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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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토끼
“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은 국가의 용해 효과, 즉 전통적 관계, 문화 규범,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사고, 그리고 시장의 고려사항보다 사람 사이 유대와 박애에서 생겨나는 관심사를 우선하는 관행과 습관 등을 용해하는 국가의 효과를 시종일관 지지해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