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밤] 40. 달밤에 낭독, 체호프 1탄 <갈매기>

D-29
그래서 체홉이 트리고린 입을 빌려 신세한탄이라도 한걸까 의심스럽더라고요.
쫌 그런듯요. 근데 후진 인간으로 묘사한 것도 일종의 자기고백일까요?
글쎄요, 작품 안에서 작가를 상상하는 게 장점은 흥미롭다는 거고 단점은 흥미로운 상상일 뿐이기에... 기억하기로는 본인도 자기 삶이 그닥 만족스럽지는 않다는 얘기였으니까 그거야 다들 그렇긴 하죠^^
트리고린 대화에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가 잠시 떠올랐어요. 저도 별반 다르지 않아 자기 수양이 되면 이런 고민 안 할 텐데요. 체호프의 속물 같은 대사가 툭툭 저를 건드려요.
깊이에의 강요, 읽어본 듯도 한데 기억이 안 나 찾아봤네요. 체호프의 속물적인 대사, 라면 여기서도 인물들이 다소 속물적이라고 느끼셨나요? 참고로 저는 비교적 다들 솔직하고 열정적으로 자기 얘기를 하는 것 같다고 느꼈어요, 물론 그렇다고 그게 꼭 진실인 건 아닐테지만.
다자이 오사무의 '신 햄릿'이란 소설(?)을 읽었는데 읽고보니 '갈매기'에서도 햄릿이 인용된 게 생각나더군요. 또 그러고보니 햄릿도 갈매기도 '세대간의 갈등'을 공통점으로 끼워맞추고 싶어졌습니다. 거트루드는 아들 햄릿에게, 폴로니어스는 딸 오필리어에게 각각 상당한 영향력과 쇼크를 주게 되죠. 그리고 갈매기에서는 아르카디나와 트레플료프의 관계가, 트리고린과 니나의 관계가 있습니다. 극의 가장 큰 갈등과 결핍과 갈망은 트레플료프가 쥐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는 어머니의 인정과 애정과 나아가 지원까지 바라지만, 얻지 못하고 아르카디나는 아들에 요만큼의 애정도 없진 않으나, 시골구석의 어머니보다는 도시의 여배우가 되길 선택하고, 자신이 가진 애정과 열정과 돈까지 모두, 도시의 삶을 위해 그리고 연인에게 사랑받기 위해 몰빵합니다. 그래서 못난 아들 대신 트리고린을 사랑하고 트레플료프 역시 어머니 대신 니나에게 인정과 애정을 갈구하게 되지만, 니나는 사실 아르카디나가 되고 싶어하는 소녀죠. 그리고 니나 역시 아르카디나 같은 배우가 되어 트리고린 같은 작가 곁에서 살고 싶어합니다, 도시에서. 그리고 트리고린 역시 그런 니나에게 뭔가 끌리지만, 끌려갈 뻔하지만 아르키디나는 마치 아들을 움켜잡는 듯한 솜씨로 그를 다시 자신 곁으로 끌어오죠. 뭐 끼어맞춰 봤지만 하나마나한 말이고 그닥 영양가는 없네요ㅋ
다자이 오사무가 쓴 수필을 읽다가 체호프의 '갈매기'에 대한, 더군다나 며칠 전 여기서도 얘기 나눴던 트리고린에 대한 언급이 있어 옮겨봐요.
나는 독자의 입장에서, 예를 들어 체호프의 독자로서, 그의 서간집에서 무엇 하나 발견한 것이 없다. 그의 작품 <갈매기> 속 등장인물인 뜨리고린의 독백이 서간집 여기저기에서 들려왔을 뿐이다.
생각하는 갈대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재원 옮김
생각하는 갈대[다자이 오사무 전집] 제10권 [생각하는 갈대]가 양장본으로 재출간되었다. 다자이가 ‘다자이 오사무’라는 필명으로 작가 활동을 시작한 1933년부터 자살로 생을 마감한 1948년 사이에 발표한 에세이 95편과, 단편소설 한 편을 발표 순서대로 싣고 목차는 연도로 표시하였다.
헉... 신랄하네요.
나는 당신이 말한 문장, 혹은 내 자신이 말한 모든 문장에서 착상을 떠올리고, 그것을 나만의 문학 창고에 서둘러 저장합니다. 언젠가 써먹을 데가 있을지 모르니까요.
갈매기 / 세 자매 / 바냐 아저씨 / 벚꽃 동산 갈매기 (트리고린),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동완 옮김
한 작가님과 술을 마신 적이 있는데 술자리에서 나오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전부 핸드폰에 적으시더라고요. 역시 작품이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예전에 문지혁 작가님은 글감의 "냉장고"라고 표현하기도 하셨죠. 요리를 하려면 식재료가 필요하니 나만의 냉장고를 꽉꽉 채우자!
소설 쓰고 앉아 있네 - 문지혁 작가의 창작 수업밤에는 소설을 쓰고, 낮에는 글을 가르치는 문지혁 작가는 대학생을 비롯, 일반인 대상 글쓰기 수업에서 후배 작가들을 만나 소설 쓰기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18년이라는 지난한 시간 동안 쓰고 가르치며 터득하고 축적한 이야기 법칙을 한 권의 책 『소설 쓰고 앉아 있네』에 모두 정리하였다.
작가는 아니지만 감히 그 입장을 상상해보면, 체호프는 자신이라서 작품속 인물의 입을 빌려 고스란히 말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저가 작가라면 다른 사람들 얘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겠지만 그걸 고스란히 작품에 쓰지는 못할 것 같아요. 그럼 그건 현실의 짝퉁으로 전락하게 될 거니까.
특히 아직 성공을 맛보지 못한 젊은 작가는 자신이 재주 없고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지고 피폐해지지요. 아무런 인정도, 주목도 받지 못한 채, 마치 돈을 몽땅 잃은 노름꾼처럼 상대방과 눈이 마주치는 걸 꺼려하면서도 하염없이 문학계 예술계 주변을 기웃거리는 겁니다. 그 시절의 나는 내 작품의 독자를 실제로 본 적이 없었지만, 상상 속에서 그들은 어쩐지 적대적이고 의심 많은 사람들처럼 느껴졌지요. 대중은 내게 두려운 존재였어요.
갈매기 / 세 자매 / 바냐 아저씨 / 벚꽃 동산 갈매기,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동완 옮김
‘경애하는’ 따위는 쓰지 마시고 이렇게만 써 주세요.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지도 잊어버린 마샤에게.’
갈매기 / 세 자매 / 바냐 아저씨 / 벚꽃 동산 갈매기 (마샤),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동완 옮김
@김하율 작가님이 마샤가 닉네임일 정도로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처음엔 이유를 몰랐네요. 이젠 그녀가 정말 가엾습니다.
마샤가 다른 인물들에 비해 특별히 가엽게 여겨지는 부분이 있을까요?
전 마샤가 왜 그렇게 우울할까? 그 이유가 궁금하더라고요.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며 마음에도 없는 남자와 결혼한 엄마의 우울이 전이된 것일까요? 본인도 그렇게 이룰 수 없는 짝사랑을 하면서?
마샤 뿐 아니라 극의 여러 인물들이 서로 엇갈린 짝사랑을 하고, 그런데 그 짝사랑의 대상이 어느정도 자기 바람과 결핍의 그림자 같달까? 그리고 그런 면에서 마샤도 비슷할 거라고 저는 생각했거든요. 저가 대충 읽고 일반화한 것일 수도 있겠죠. 놓쳤거나 잊은 부분이 있거나.
초반에 말씀하신 것처럼 인물들이 다들 서로 동문서답하는 구조인데요, (이 사람은 저 사람을 좋아하고 저 사람은 또 다른 것을 갈구하고 그 사람은 또 다른 곳을 바라보는 형태) 그나마 다른 등장 인물들은 어느 정도라도 상대방에게 약간의 반응이나마 얻을지언정 투명 인간 같지는 않은데 마샤는 트레플료프로부터 어떤 인정도 받지 못하는 것 같아 가엾더라고요.
여기까지가 어제 생각이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마샤의 남편 메드베덴코가 마샤보다 더 불쌍하네요. 그의 사랑 역시 보답도 못 받는데 고되게 집안일에 돈 버는 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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