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 15쪽 대사 중)
(트레플료프) 그런데 어머니는 현대극을 사랑하시죠. 당신이 인류와 신성한 예술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보기에는 그저 틀에 박힌 판박이 무대에 지나지 않지만 말이에요. 막이 오르면, 삼면의 벽으로 둘 러싸인 조그만 방 안에서 저 뛰어난 천재들, 성스러운 예술의 대사제들이 우리에게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걷고 옷을 입는 온갖 인간군상을 연기해 보여 주지요. 따분한 대화에서 무언가 그럴듯한 교훈을 이끌어내려 하고요. 극작가들은 온갖 다채로운 색깔로 포장하지만 결국은 언제나 똑같은 얘기만을 지루하게 반복, 반복, 반복할 뿐이에요. 나는 그런 것들에서 벗어나야 해요. 그 천박함에 질식당하지 않기 위해 모파상이 서둘러 에펠탑에서 도망쳐 나온 것처럼 말이에요.
(소린) 하지만 우리는 연극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단다.
(트레플료프) 네, 그래요. 하지만 우리에겐 새로운 형식이 필요해요. 새로운 형식을 찾을 수 없다면, 차라리 아무것도 없는 편이 나아요.
[그믐밤] 40. 달밤에 낭독, 체호프 1탄 <갈매기>
D-29

그믐30

그믐30
(4막 70쪽~71쪽 트레플료프 독백 중)
(쓰려고 하다가 이미 써 놓은 것을 훑어본다)
예술의 새로운 형식을 그토록 부르짖어 왔건만, 이제 나 스스로가 점점 타성에 젖는 느낌이야.(중략)
달밤에 대한 묘사가 너무 길고 장황해. 트리고린은 자신만의 기법을 터득해서 묘사에 능수능란하지. 그 사람이라면,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강둑 위에 버려진 깨진 병조각과 물레방아 아래 드리운 검은 그림자를 제시할 거야. 그런데 나는 가물거리는 불빛이니, 별들의 고요한 반짝임이니, 고요하고 향기로운 대기로 사라져 가는 피아노의 머나먼 소리니 이런 식이거든. 끔찍하군.
(사이)
점점 더 확신으로 다가오는군. 문제는 낡은 형식이냐 새로운 형식이냐에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좋은 문학은 작가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가슴속 생각을 얼마나 자유롭게 쏟아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

거북별85
작품 하나를 끝내자마자 무슨 일인지 벌써 다른 작품을 써야 하고, 그 다음엔 세 번째, 그 다음엔 네 번째 작품을…….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이, 그렇게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겁니다. 한 작품을 끝내자마자 나는 서둘러 다음 작품을 향해 달려들지요. 나도 이런 나 자신을 어쩔 수가 없어요. 대체 이런 인생 어디에서 밝고 아름다운 면을 찾을 수 있는지 묻고 싶군요. 오, 얼마나 고단한 생활입니까! 당신과 흥분하며 얘기하는 이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끝내지 못한 소설이 있다는 걸 떠올리고 있습니다.

거북별85
헬리오트로프 향기를 맡을 때면 이렇게 혼잣말을 합니다. ‘역한 냄새, 과부의 꽃, 여름날 저녁을 묘사할 때 써 먹어야지.’ 나는 당신이 말한 문장, 혹은 내 자신이 말한 모든 문장에서 착상을 떠올리고, 그것을 나만의 문학 창고에 서둘러 저장합니다. 언젠가 써먹을 데가 있을지 모르니까요.

거북별85
“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지지요. 인생을 소모하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나도 어쩔 수가 없어요. 얼굴도 모르는 대중에게 먹일 꿀을 얻기 위해 내가 기르는 가장 사랑스러운 꽃들을 훑고, 줄기를 찢고, 뿌리를 짓밟고 있는 격이랄까? 정말 이게 미친 게 아니고 뭘까요?
”
『갈매기 / 세 자매 / 바냐 아저씨 / 벚꽃 동산』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동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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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별85
정말 트리고린의 한마디 한마디가 청산유수네요^^;;
니나가 점점 빠 져드는게 느껴집니다~~

거북별85
내가 글쓰기를 시작했던 젊고 좋았던 그 시절에도 글을 쓰는 일은 끊임없는 고통의 연속이었어요. 특히 아직 성공을 맛보지 못한 젊은 작가는 자신이 재주 없고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지고 피폐해지지요. 아무런 인정도, 주목도 받지 못한 채, 마치 돈을 몽땅 잃은 노름꾼처럼 상대방과 눈이 마주치는 걸 꺼려하면서도 하염없이 문학계 예술계 주변을 기웃거리는 겁니다. 그 시절의 나는 내 작품의 독자를 실제로 본 적이 없었지만, 상상 속에서 그들은 어쩐지 적대적이고 의심 많은 사람들처럼 느껴졌지요. 대중은 내게 두려운 존재였어요. 그래서 내 희곡작품이 처음으로 무대에 올랐을 때는, 마치 연극을 지켜보는 관객들의 검은 눈에 적대감이 어려 있고, 푸른 눈에는 차가운 무관심이 담겨 있다고 느꼈죠. 오, 얼마나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기분이었는지!

거북별85
안톤체홉 희곡이라는 말만 하지 않으면 완전 오늘날 현실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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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임종을 맞을 때까지도 나는 그들에게서 ‘제법이군, 재능은 있어’라는 말을 들어야만 할 겁니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지요. 내가 죽고 나면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내 무덤 옆을 지나가면서 말할 겁니다. “트리고린이 여기 누워 있군. 훌륭한 작가였어. 하지만 투르게네프보단 못하지.”라고 말입니다. ”
『갈매기 / 세 자매 / 바냐 아저씨 / 벚꽃 동산』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동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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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별85
작가나 여배우가 될 수만 있다면, 저는 가난이나 환멸도, 주변 사람의 미움도, 자신에 대한 불만족에서 오는 고통도 다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 대가로 저는 세상에 명성을 요구할 거예요…….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엄청난 명성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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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의 욕망이 느껴지네요~~~^^
그녀가 트레플료프를 택하지 않은건?? 트리고린에 비해 덜 유명해서? 트레플료프의 사고가 단순하지 않아서? 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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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고린: 더 이상 있으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자기 아들이 미친 듯이 날뛰고 있으니. 자살 시도를 하질 않나, 이제는 나한테 결투를 신청할 거라고들 하더군요. 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신경질을 내고 으르렁거리질 않나, 새로운 예술형식이 어떻다느니 일장연설을 늘어놓지를 않나. 예술에는 새로운 형식과 옛 형식이 조화롭게 공존할 만한 여지가 아예 없다는 듯이 말이죠.
마샤 : 질투심 때문일 거예요. 어찌됐든 제가 참견할 일은 아니지만요.

거북별85
트리고린의 대사는 요즘의 기성세대가 새로운 세대를 바라볼때 하는 일반적인 생각이 아닐까요?? 100년전인데도 비슷해서 신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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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플료프: (비꼬는 투로)진짜 재능 있는 사람이라고요! (화를 내며)어머니가 어울려 다니시는 그 어떤 예술가들보다 제가 더 똑똑할 걸요! (머리에서 붕대를 뜯어낸다)관습의 노예인 주제에, 예술계 윗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자신들이 만든 것만이 유일하게 올바른 것이라고 주장하죠.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은 잘못됐고 틀렸다고 무시하면서요. 난 그런 예술관은 받아들일 수 없어요, 어머니나 그 사람의 관점을 인정할 수 없다고요!

거북별85
기성세대를 바라보는 새로운 세대의 모습도 오늘날과 비슷해서 신기합니다^^

거북별85
아르카디나 : 내가 그렇게도 늙고 보기 싫어졌나요? 내 앞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다른 여자 이야기를 할 만큼 말이에요……. (그를 끌어안고 키스한다)당신은 제정신이 아니에요. 소중한 나의 보리스! 당신은 내 인생의 마지막 장이에요! (무릎을 꿇는다)나의 기쁨, 나의 자랑, 나의 빛……. (그의 무릎을 끌어안는다)만일 당신이 단 한 시간만이라도 나를 버린다면, 난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거예요. 미쳐 버릴 거예요. 오, 나의 경이, 나의 왕…….

거북별85
40대 아르카디아의 구애가 정말 뜨겁습니다~ 읽는동안 닭살이~ㅜㅜ

거북별85
트레플료프 : (격정적으로)니나! 니나! 당신, 당신이었어. 당신을 보려고 온종일 내 마음이 아프고 괴로웠나 봐. (그녀의 모자와 외투를 벗긴다)오, 내 사랑, 내 연인, 그녀가 돌아왔어! 울지 말아요, 울지 말아요.

거북별85
니나에 대한 트레플료프의 사랑이 뜨겁습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궁금증이?
트레플료프는 니나를 열렬히 사랑합니다 그러나 니나는 자신의 어머니 애인인 트리고린과 이미 아이를 낳은 사이입니다
트레플료프와 니나가 결혼하고 엄마 아리카디나와 그녀의 애인 트리고린이 결혼한다면 이집의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는건가요??? 유명한 희곡을 너무 꽉막힌 유교걸 마인드로 해석 하면 안되겠죠??^^

거북별85
“ 트레플료프: 나는 몹시 외로워. 날 따스하게 감싸 줄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어. 마치 지하 동굴에서 사는 것처럼 추워. 그래서 무엇을 쓰든, 내 작품은 모두 메마르고 음울하고 거칠기만 하지. 여기 있어 줘, 니나, 부탁이야. 아니면 나도 당신과 함께 떠나게 해 줘. ”
『갈매기 / 세 자매 / 바냐 아저씨 / 벚꽃 동산』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동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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