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밤] 40. 달밤에 낭독, 체호프 1탄 <갈매기>

D-29
야코프는 안됩니다!
앗! 족연 극단 최초로 치열한 배역 다툼이? ㅎㅎ 공정한 오디션을 통해 뽑혀야 하는 걸까요! 두근두근~
ㅎㅎ 궁금합니다 원하시는 배역이???
(76쪽 대사 중) 니나 난 갈매기에요. 아니, 아니지••••••, 난 배우에요. 그이는 연극을 믿지 않았고, 내가 가진 연극에의 꿈을 비웃곤 했어요. 그래서 난 점점 의기소침해져갔고 마침내 나 자신도 더 이상 연극을 믿지 않게 됐어요. 당신은 배우가 스스로 서툴고 보잘것없는 연기를 한다고 느낄 때의 그 기분을 이해하지 못 할 거예요. 난 갈매기예요. 아니, 아니에요. 예전에 당신이 어떻게 갈매기를 총으로 쏘아 죽였는지 기억해요? 한 사내가 길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만난 여자를 심심풀이로 파멸에 이르게 하는••••••. 단편소설에 쓸 이야깃거리에요••••••. 아,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닌데••••••. (이마를 문지른다) 무슨 말을 했 더라? 무대 이야기를 하고 있었군요. 이제 난 변했어요. 이제 난 진짜 여배우죠. 연기를 하면서 기쁨과 희열을 느끼고, 무대에 서면 완전히 도취해 우월한 존재가 된 기분을 느껴요. 이곳에 머무는 동안 걷고 또 걸으면서 생각하 고 또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나날이 내 정신적인 힘이 성장하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이제 난 알아요, 코스챠, 우리가 하는 일은 모두 마찬가지예요. 당신이 글을 쓰건 내가 무대에서 연극을 하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명예가 아니었어요. 중요한 것은 견뎌내는 능력이에요.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짊어지고 견디는 법을 배우고, 또 신념을 잃지 말아야 해요. 난 믿어요, 그래서 난 그렇게 괴롭지 않아요. 나의 사명을 생각할 때면, 난 삶이 두렵지 않아요. 트레플료프 (슬픈 듯이) 당신은 자신의 길을 찾았고, 어디로 가야 할지를 분명 히 알게 됐군. 그런데 난 여전히 혼란스러운 망상과 꿈속을 헤매며 이 모든 것들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무엇 때문에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고 있어. 그 어떤 것도 믿을 수 없고, 무엇이 내 사명인지도 모르겠어.
어머닌 저를 사랑하지 않아요. 그렇고말고요. 어머닌 인생과 연애와 화려한 옷을 사랑하시죠. 그런데 저는 벌써 스물다섯 살이고, 그래서 어머니는 절 보면 당신이 이젠 더 이상 젊지 않다는 사실을 떠올리실 수밖에 없는 거예요. 제가 없을 땐 어머닌 고작해야 서른두 살로 보이는데, 제가 곁에 있으면 다시 마흔세 살로 돌아가야 하니까요. 그러니 저를 싫어할 수밖에요.
갈매기 / 세 자매 / 바냐 아저씨 / 벚꽃 동산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동완 옮김
극작가들은 온갖 다채로운 색깔로 포장하지만 결국은 언제나 똑같은 얘기만을 지루하게 반복, 반복, 반복할 뿐이에요. 나는 그런 것들에서 벗어나야 해요. 그 천박함에 질식당하지 않기 위해 모파상이 서둘러 에펠탑에서 도망쳐 나온 것처럼 말이에요.
갈매기 / 세 자매 / 바냐 아저씨 / 벚꽃 동산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동완 옮김
트리고린은 똑똑하고 단순하고 친절한 사람이에요. 뭐랄까, 조금은 우울한 성격이긴 하지요. 아직 마흔 살도 채 되지 않았는데 평단의 찬사를 한 몸에 받고 있어요. 그의 소설에 대해서 말하자면, 음, 뭐랄까? 재미있고 재능이 넘치죠. 하지만 톨스토이나 졸라를 읽은 사람이라면 그의 작품을 좋아할 것 같지는 않네요.
갈매기 / 세 자매 / 바냐 아저씨 / 벚꽃 동산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동완 옮김
유명 여배우가 우는 걸 본다는 건 참 이상한 일이야. 그것도 그렇게 하찮은 이유 때문에! 또 대중의 사랑을 받고, 신문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여러 외국어로 작품이 번역되는 유명 작가가 온종일 낚시나 하고, 잉어 두 마리 잡았다고 좋아하는 것 또한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저명인사들은 가까이 다가가기 어렵고 오만할 거라고 생각했어. 출생 신분이나 돈밖에 모르는 군중을 경멸하면서, 그들이 가진 불멸의 명성과 영광을 통해, 그런 군중의 속물근성에 보란 듯이 복수하고 있는 거라고.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내 눈앞에서 다른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울고, 카드놀이를 하고, 화를 내고 있어.
갈매기 / 세 자매 / 바냐 아저씨 / 벚꽃 동산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동완 옮김
왠지 니나는 유명배우였던 아르카디나와 유명 소설가 트리고린처럼 명성있는 분들을 무척 동경하는 인물처럼 보입니다 뭐 유명 인사와 친분은 누구나 원하는거겠지만~ 이 부분을 보면서는 트리고린에 대한 사랑이 혹시 그의 명성때문이 아닌가하는 의심도 살짝 드네요^^
니나: 뛰어난 재능을 가진 유명 작가는 어떤 느낌일지 알고 싶어서요. 유명하다는 건 어떤 느낌인가요? 어떤 감정이 들어요? 트리고린: 어떤 감정이라? 그런 걸 느껴본 적이 없군요. (잠시 생각하고 나서)둘 가운데 하나일 겁니다. 내 명성을 당신이 부풀리고 있거나, 아니면, 내가 유명세라는 걸 도무지 느끼지 못하는 인간이거나.
트리고린은 정말 유명세를 모르는지 궁금하네요 !! 아르카디나와 트리고린이 일반인들보다 하고 싶은대로 행동할 수 있는것은 자신들의 유명세 덕분인거 같은데요~^^;;
(1막 15쪽 대사 중) (트레플료프) 그런데 어머니는 현대극을 사랑하시죠. 당신이 인류와 신성한 예술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보기에는 그저 틀에 박힌 판박이 무대에 지나지 않지만 말이에요. 막이 오르면, 삼면의 벽으로 둘 러싸인 조그만 방 안에서 저 뛰어난 천재들, 성스러운 예술의 대사제들이 우리에게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걷고 옷을 입는 온갖 인간군상을 연기해 보여 주지요. 따분한 대화에서 무언가 그럴듯한 교훈을 이끌어내려 하고요. 극작가들은 온갖 다채로운 색깔로 포장하지만 결국은 언제나 똑같은 얘기만을 지루하게 반복, 반복, 반복할 뿐이에요. 나는 그런 것들에서 벗어나야 해요. 그 천박함에 질식당하지 않기 위해 모파상이 서둘러 에펠탑에서 도망쳐 나온 것처럼 말이에요. (소린) 하지만 우리는 연극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단다. (트레플료프) 네, 그래요. 하지만 우리에겐 새로운 형식이 필요해요. 새로운 형식을 찾을 수 없다면, 차라리 아무것도 없는 편이 나아요.
(4막 70쪽~71쪽 트레플료프 독백 중) (쓰려고 하다가 이미 써 놓은 것을 훑어본다) 예술의 새로운 형식을 그토록 부르짖어 왔건만, 이제 나 스스로가 점점 타성에 젖는 느낌이야.(중략) 달밤에 대한 묘사가 너무 길고 장황해. 트리고린은 자신만의 기법을 터득해서 묘사에 능수능란하지. 그 사람이라면,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강둑 위에 버려진 깨진 병조각과 물레방아 아래 드리운 검은 그림자를 제시할 거야. 그런데 나는 가물거리는 불빛이니, 별들의 고요한 반짝임이니, 고요하고 향기로운 대기로 사라져 가는 피아노의 머나먼 소리니 이런 식이거든. 끔찍하군. (사이) 점점 더 확신으로 다가오는군. 문제는 낡은 형식이냐 새로운 형식이냐에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좋은 문학은 작가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가슴속 생각을 얼마나 자유롭게 쏟아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
작품 하나를 끝내자마자 무슨 일인지 벌써 다른 작품을 써야 하고, 그 다음엔 세 번째, 그 다음엔 네 번째 작품을…….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이, 그렇게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겁니다. 한 작품을 끝내자마자 나는 서둘러 다음 작품을 향해 달려들지요. 나도 이런 나 자신을 어쩔 수가 없어요. 대체 이런 인생 어디에서 밝고 아름다운 면을 찾을 수 있는지 묻고 싶군요. 오, 얼마나 고단한 생활입니까! 당신과 흥분하며 얘기하는 이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끝내지 못한 소설이 있다는 걸 떠올리고 있습니다.
헬리오트로프 향기를 맡을 때면 이렇게 혼잣말을 합니다. ‘역한 냄새, 과부의 꽃, 여름날 저녁을 묘사할 때 써 먹어야지.’ 나는 당신이 말한 문장, 혹은 내 자신이 말한 모든 문장에서 착상을 떠올리고, 그것을 나만의 문학 창고에 서둘러 저장합니다. 언젠가 써먹을 데가 있을지 모르니까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지지요. 인생을 소모하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나도 어쩔 수가 없어요. 얼굴도 모르는 대중에게 먹일 꿀을 얻기 위해 내가 기르는 가장 사랑스러운 꽃들을 훑고, 줄기를 찢고, 뿌리를 짓밟고 있는 격이랄까? 정말 이게 미친 게 아니고 뭘까요?
갈매기 / 세 자매 / 바냐 아저씨 / 벚꽃 동산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동완 옮김
정말 트리고린의 한마디 한마디가 청산유수네요^^;; 니나가 점점 빠져드는게 느껴집니다~~
내가 글쓰기를 시작했던 젊고 좋았던 그 시절에도 글을 쓰는 일은 끊임없는 고통의 연속이었어요. 특히 아직 성공을 맛보지 못한 젊은 작가는 자신이 재주 없고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지고 피폐해지지요. 아무런 인정도, 주목도 받지 못한 채, 마치 돈을 몽땅 잃은 노름꾼처럼 상대방과 눈이 마주치는 걸 꺼려하면서도 하염없이 문학계 예술계 주변을 기웃거리는 겁니다. 그 시절의 나는 내 작품의 독자를 실제로 본 적이 없었지만, 상상 속에서 그들은 어쩐지 적대적이고 의심 많은 사람들처럼 느껴졌지요. 대중은 내게 두려운 존재였어요. 그래서 내 희곡작품이 처음으로 무대에 올랐을 때는, 마치 연극을 지켜보는 관객들의 검은 눈에 적대감이 어려 있고, 푸른 눈에는 차가운 무관심이 담겨 있다고 느꼈죠. 오, 얼마나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기분이었는지!
안톤체홉 희곡이라는 말만 하지 않으면 완전 오늘날 현실같습니다^^
아마 임종을 맞을 때까지도 나는 그들에게서 ‘제법이군, 재능은 있어’라는 말을 들어야만 할 겁니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지요. 내가 죽고 나면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내 무덤 옆을 지나가면서 말할 겁니다. “트리고린이 여기 누워 있군. 훌륭한 작가였어. 하지만 투르게네프보단 못하지.”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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