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번은 군수가 점심 먹고 공설운동장 가자 이랬습니다. 왜 데리고 왔는데요. 볼 게 있습니다. 뭡니까. 공설운동장에서 행사를 하면 주민들이 하나도 안 온다. 당신 마을의 행사인데 왜들 안 오는 것이냐. 군수 당신 돌았구만. 당신만 본부석에서 햇볕 피하고 비 피하고 하지. 우리만 땡볕에서 미쳤냐, 거길 왜 가냐. 우리나라 공설운동장이 다 그렇거든요. 본부석만 있습니다. 군수가 깜짝 놀란 겁니다. 그게 감응입니다. 맞어. 나만 저기서 거들먹거리고 앉아있으면 누가 오겠느냐 감응한 것입니다. 이분이 보통 군수가 아니죠. 가만히 있지를 않았습니다. 뭘 했느냐. 공설운동장 뒤에다가 등나무 240그루를 심었습니다. 그래서 스탠드에 그늘을 만들자. 기가 막힌 생각이죠. 저한테 이거 보여주려고 왔습니다. 선생님, 얘네들이 자라나야 되는데 어떡합니까? 등나무의 집을 좀 설계해 주십시오. 내 평생 설계하다가 등나무의 집까지 설계하게 된 것이죠. ”
『같이 그리는 초상화처럼』 p. 102, 정재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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