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건과의 인터뷰를 통해 다시 한번 인물 다큐멘터리를 다룰 때 역사적, 문화사적 맥락을 간과하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같이 그리는 초상화처럼』 198쪽, 정재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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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현실이 영화가 되기 위해서는 비전이 필요하다. 현실의 조합 그 자체가 아니라 현실 이상을 말하는 것이 영화다.
『같이 그리는 초상화처럼』 207-208쪽, 정재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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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 촬영된 모든 장면은 편집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그 의미와 목적이 계속 변경될 수 있다. 다큐멘터리 촬영으로 얻은 쇼트들은 내가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창고와 같다. 내가 어떤 요리가 필요한지에 따라 창고의 재료는 새롭게 거듭난다. 그러니 서둘러 그 재료들을 평가하면 안 된다. ”
『같이 그리는 초상화처럼』 210-211쪽, 정재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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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여전히 정기용은 나의 삶에 계속 침투하여 나를 사유하게 만들고 움직이게 하고 있다.
『같이 그리는 초상화처럼』 212쪽, 정재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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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이 부분을 읽는데, <어른 김장하>라는 다큐멘터리가 생각났어요. 정기용도 우리의 '어른'이셔서 그랬나봐요.
지혜
관객들은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같이 그리는 초상화처럼』 215쪽, 정재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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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이 부분이 매우 흥미로웠어요. 제 경우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저는 어느 정도 경계를 가지고 있는데 말이죠.
지혜
프로듀서는 내가 말하는 감독으로 거듭났다고 했다.
『같이 그리는 초상화처럼』 217쪽, 정재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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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스르르 미소가 지어지는 대목이었어요. 정기용과 정재은의 관계가 '감응'의 관계였기에 빚어진 결과가 아닌가 생각하게 되네요.
지혜
또 다른 두 분의 감응 관계는, 책 말미에서 드러난 감독님의 '산포'에 대한 생각이에요. 공공건축에 관심이 많았던 정기용 건축가와 다큐멘터리 영화의 공공재적인 성격을 지향하는 정재은 감독의 감응 관계 말이죠.
물냉이
비용을 지불해야만 무언가를 향유할 수 있는 시대에, 저도 공공 건축과 영화의 산포에 관한 문제의식이 크게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산업 생태계를 위해 당연히 필요한 부분이겠지만, 그것이 꼭 돈이어야 할지 혹은 사회적 지원이 필요할지 등에 관한 그 너머의 상상력도 분명 필요한 시점인 것 같아요.
“ 이제서야 모든 예술 창작 행위는 결국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조각가가 현실에 존재하는 어떤 재료들을 바탕으로 그리고(여기까지는 논픽션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주제를 잡고 형태를 잡아 어디론가 향해(여기부터는 픽션을 향해가는 일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루하루 작업을 해 나간다. ”
@물냉이 책 표지의 선은 의미가 있는 것인가요? 궁금해졌어요. 정기용 건축가님의 서명인가? 생각도 해봤네요. ㅎㅎ
책 내용에는 "같이 그린 초상화"이고, 제목은 "같이 그리는 초상화"라서 둘의 차이를 생각하게 돼요. 여전히 정재은 감독님과 정기용 건축가님의 지인들은 현재 진행형으로 그리고 계시겠구나 생각하니, 이 책의 울림이 더 커지는 듯합니다.
물냉이
책 표지의 선은 디자이너가 그린 자유로운 드로잉의 선이랍니다! 이 책을 만나시는 분들이 책을 읽기 전, 책을 덮고 난 후 자기만의 초상화를 자유롭게 그려보셨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디자인이라 생각했어요.
'같이 그린', '같이 그리는'에 관한 멋진 해석도 감사합니다. 저도 꼭 그렇게 생각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