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와 문학 편집자의 로망 아니겠습니까? 이야기의 결말을 바꾸는 것. ^^
[📚수북플러스] 6. 우리의 연애는 모두의 관심사_수림문학상 작가와 함께 읽어요
D-29

장맥주

장맥주
여러 가지로 영광인 글이에요. 제 이름이 무려 줄리언 반스 옆에 있어서 영광이고,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이야기의 결말을 바꿀 수 있는 힘’을 말씀해주셔서, 그리고 정말로 힘 있는 결말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화자는 분명 상대를 발끈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만들었고, 닿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사람의 마음속을 뚫고 들어가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야기에는 정말 힘이 있구나, 저도 재확인할 수 있어서 기뻤어요. 제 글의 여러 문구나 장치들도 활용해주셔서 그것도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

리지
세 번째 질문에 대한 글입니다. 막상 올리려니까 뭔가 쑥쓰럽네요. 제가 상상해본 결말이 2번 질문에 대한 답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ㅠㅠㅋㅋㅋ) 공유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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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예쁘다.”
그녀는 작은 손으로 내 새끼 손가락을 움켜 쥐며 당겼다. 밤하늘을 올려다 보는 그녀의 시선 끝에, 거기에 정말로 아름답게 달이 떠 있었다. 달은 멀리서 노랗게 빛났다.
우리는…… 이번에도 우리의 관계는 중요치 않다. 우리는 가족일 수도 있고, 가까운 이웃일 수도 있다. 우리는 같은 아파트 다른 동에 살며 주기적으로 얼굴을 보는 사이일 수도 있다. 우리는 같이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는 사이일 수도 있고, 김밥을 먹는 사이일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는 가족보다도 먼 사이일 수도 있고, 더 이상 만나서는 안 될 사이일 수도 있다.
내가 말하고 있는 그녀는 평범한 다섯 살짜리 유치원생이며 그녀는 나보다 서른 살이 어리다. 그녀는 내가 스물 아홉에 만났던 그녀의 딸이다.
스물 아홉의 나는 그녀를 구하고 싶었다. 자기를 파괴하는 사람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저돌적인 입맞춤 말고는 그녀를 구원할 방법이 아직 떠오르지 않았지만. 그녀가 구원을 바라지 않는다는 게 무슨 상관일까. 그녀를 향한 내 마음이 그녀에게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것처럼, 구원을 바라지 않는 그녀의 의지는 나에게 아무 상관이 없었다. 구원은 수요와 공급 법칙을 따른다. 수요가 있어도 공급은 없을 수 있고, 수요가 없어도 공급은 있을 수 있다. 수요가 없다면 공급가를 낮춰 만들어낼 수 있다. 스스로를 구원할 의지가 없다면 내가 이끌어 주면 된다. 이제 이곳은 나와 그녀만이 존재하는 이른바 ‘구원 시장’이다.
그녀의 원룸을 다녀온 이후 한동안 회사에서 그녀를 의식적으로 피했다. 그녀를 구할 방법을 먼저 찾아야 했다. 내가 피한다는 걸 알았는지 그녀도 내게 연락하지 않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그녀에게서 모텔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지금까지의 고민을 들려줘야겠다는 생각에 제안을 수락했다. 이런 날은 섹스를 해야하는 걸까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고민하며 서랍에서 위스키 한 병을 꺼내 가방에 챙겼다.
모텔방에서 시덥지않은 대화를 이어가던 나에게 그녀는 본론을 말했다. “나 임신했어.” 아……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 순간, 어쩌면 구원을 받아야 하는 건 내가 아닐까 생각했다. “남편하고도 이미 얘기 했어. 아이는 낳아야지.” 그녀는 내가 원룸을 떠난 이후, 술김에 남편과도 잠자리를 가졌다고 했다. 아이의 아빠가 누군지 밝힐 생각은 없다는 말과 함께, 원한다면 종종 아이를 만날 수 있게 해주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 말은 달이 예쁘다는 말과 같은 말일까. 그때도 우린 모텔에서 만나게 될까. 그녀의 남편은 집에서 아이를 보며, 나와 자러 가는 그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려줄까. 그녀에게 묻고 싶었다. 이제는 치유되고 싶은 마음이 드냐고. 그러나 그녀에게는 어떠한 열정도 기대도 없어 보였다. 그녀는 그저 멍하니 위스키 병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의 그녀는 나를 삼촌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종종 아파트 단지 내 산책로에서 마주쳤다. 나는 그녀의 그녀를 볼 때마다 그녀가 잃었던 딸 아이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한다. 멀리서 달려와 내 새끼 손가락을 꼭 잡는 그녀의 그녀를 들여다 본다. 그녀의 그녀도 나처럼 두 눈 사이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게 될까. 그렇다면 그녀의 그녀가 상처를 입을 때, 혹은 상처보다 더 큰 고통 속에 있을 때 내가 무엇을 내걸 수 있을지 생각했다.

장맥주
이런 퀄리티의 글들이 올라올 거라고는 정말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이 결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고민 한참 했습니다. 여전히 여러 가지 생각이 들고, 그래서 계속 들여다보게 되는, 너무나 매력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딸을 얻어서 기쁠까? 치유되었을까? 그렇지 않다면 구원 받고자 하는 수요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그녀는 왜 아이 아버지가 누구인지 밝히려 하지 않는 걸까? 아이 아버지가 혹시 화자일 가능성을 두려워하는 걸까? 그렇다면 그녀는 역시 남편에게 돌아가고 싶었던 것일까? 지금 그녀는 구원받기 위해 애쓰고 있는 걸까?
구원은 공급만으로 이뤄지지 않음을 깨달았으면서도 화자는 왜 여전히 그녀 곁에 머물고 있는 걸까? 5살 여자아 이가 자기 딸인지 아닌지 확인하기는 쉬운데도 왜 그러지 않는 걸까? 언젠가 아이의 미간이 넓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면서 어떻게 이 불확실성의 긴장을 버틸 수 있는 걸까?
궁금하지만 지금 당장은 @리지 님이 대답해주시지 않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질문들입니다. 인간의 마음이란.
좋은 결말 써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리지
오와 @장맥주 작가님! 댓글을 읽는데 왜 이렇게 떨릴까요!ㅎㅎ 저도 남겨주신 질문들을 몇 번이나 들여다 보고 있어요. 답변을 생각해 보는데 뭐랄까요, 제가 쓴 문장들에 책임감? 같은 비스무리한 느낌? 답변을 잘 해야 제 문장들이 의미있는 문장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데 정 확하게 뭔지 잘 모르겠네요. 아무튼 좋다는 이야기입니다! 답변은 제 안에 잘 품고 있겠습니다. :)
이렇게 소설 결말을 이어서 써 보는 건 처음인데요, 내가 화자와 등장인물들을 잘 이해한 게 맞는지, 그 사람들이 이런 선택(제가 쓴 부분)을 하는 게 맞을지 계속 생각해보게 되는, 이전 독서 경험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작품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글 읽어 주시고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
밥심
어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미친 놈이라고 비아냥거리겠지, 내가 모를 리가 없다만 쉽사리 반박을 하지 않는 것은 그런 비난이 충분히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랄까, 아니지, 그냥 나도 체념한 것이라고 솔직히 고백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아니 아니 아니야, 단순히 그렇게만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왜 안 그렇겠는가? 아이를 먼저 보낸 후 밥 한술을 억지로 뜰 때마다 난 이렇게 처먹어도 되는가 울먹이고 내 얼굴에 자리 잡은 따스한 햇빛에 노곤해지다가도 화들짝 놀라며 아이는 차갑고 어두운 어느 곳에선가 흐느끼고 있을텐데 내가 이 호사를 누려도 되는가 싶어 표정을 일그러트리곤 하는데 아내인들 안 그렇겠는가? 할 수 있는 한 망가져서 욕을 처먹고 지옥의 심연까지 떨어져 갈기갈기 몸과 마음이 찢어지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겠는가? 누가 내 목을 졸라주면 좋겠고 저 년은 아이를 먼저 보낸 몸 쓸 어미네 하고 대놓고 욕을 해주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아내는 젊은 놈을 만나 쾌락에 헐떡이는 자신을 향해 내가 나쁜 년이라고 욕을 해대며 줘 패주기를, 주저하지않고 당장 이혼하자고 말해주기를 바라고 있겠지만, 나도 그것을 잘 알고 그녀를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하지만 말이다, 그럴 수는 없잖아, 모든 것을 잃어버린 아내에게 그런 모진 짓을 할 수는 없잖아, 조금이라도 같이 짊어지고 나가야 하잖아. 그럴 수밖에 없다고, 다 이해해야 한다고 마음다짐을 하면서도 그 놈이랑 엉켜있는 아내의 몸이 떠오르는 순간 미쳐버릴 것 같지만 참아내야 하잖아, 사랑하는 아이를 함께 만들어내고 또 보낼 수밖에 없었던 아내를 내 마음 편하자고 툭 놓아버릴 수는 없잖아.

연해
잠시 잊고 있었던 <투란도트의 집> 이야기가 다시 등장해서 반가웠습니다. 내내 침묵하고 있던 남편의 독백이라 낯설었는데, 글을 가만히 따라가다보니 그 또한 온전치 않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실 저는 이랬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자신의 아내가 젊은 남자와 관계를 이어가는 걸 뻔히 알면서도 이해해주는 게 과연 이해일까, 방관일까, 무관심일까, 무책임일... (그만해)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 그의 솔직한 심정을 잠시나마 들여다본 것 같아 좋았습니다. 이랬다저랬다 중심을 잡지 못하는 혼란 속에서 인간적인 느낌도 들었고요. 다만 이 문장이 참 아프네요.
"모든 것을 잃어버린 아내에게 그런 모진 짓을 할 수는 없잖아, 조금이라도 같이 짊어지고 나가야 하잖아."
밥심
제 정신이 아닌, 우왕좌왕 상태인 남편의 속내를 표현해보고 싶어 횡설수설 썼습니다. 500여자나 되는 글을 읽어 주시고 소감까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초록책잔
@밥심 저두 세 작품 결말 다 읽었어요^^
연우가 나와서 놀라서 연우만 언급!
밥심
안그래도 스크롤 압박이 큰 이 방에서 도합 1500여자나 되는 글을 읽어주신데 대해 깊이 감사드립니다!

장맥주
<포틀랜드 오피스텔>에 이르러 저희가 목소리 없었던 캐릭터들에게 목소리를 주고 있는데, 그 의미는 차치하고 저는 이 작업이 너무 재미있고 무엇보다 놀랍습니다. 부끄럽지만 저의 반응은 '아, 당신에게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가 아니라 '뭐야, 당신한테 목소리도 있었어?' 하는 것이었어요. 실생활에서도 제가 목소리 없는 존재들의 삶에 대해 그렇게 빈곤하게 상상했겠구나 싶어 아찔하네요.
<투란도트의 집>에서 남편의 존재감에 대해서는 다른 분들도 말씀해주셨습니다. 저는 그게 '빈 자리의 존재감'이라 여겼고, 그 빈 자리를 채우면 인상적인 존재감도 사라질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밥심 님 글을 읽으며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목소리가 있어도 그의 존재감은 여전하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
밥심
먼저 긴 소감글 감사합니다!
세 편의 소설 읽고 남편, 수녀, 아이에 대해 쓸쓸한 감정이 생겨 글로 써봤습니다. 그것도 라슬로 식 만연체로요. 원래 만연체를 싫어해서 라슬로 포함 긴 문장을 쓰는 작가의 소설을 잘 읽지 않는데 이 세 사람의 이야기를 쓸 때는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과는 당연히 실력을 갖춘 프로 작가가 아닌 일반 아마추어가 쓴 티가 여지없이 드러난 정신없는 글이 되고 말았지만 저에게는 재미있는 과정이었습니다.
내로
마지막에 화자가 저에게 "그렇지 않아?" 하고 외치는 것을.. 느꼈어요.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없었어요. 멋져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장맥주
@모임
그믐 회원들이 함께 만들고 있는 <투란도트의 집> 사운드트랙이 듣고 싶으시면 유튜브에서 '투란도트의 집 장강명'으로 검색하시면 플레이리스트가 나옵니다. 사운드트랙 잘 구워지는 중입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
이지유
잘 들을게요.:)

장맥주
감사합니다, 작가님. 잘 들어주세요!
(멋진 사운드트랙이 만들어지는 거 같아 뿌듯합니다.)

향팔
우아 벌써 50곡이네요! 얼쑤 절쑤~

장맥주
풍악을 울려라!!

초록책잔
와...저는 멘트 없으셔서 제노래는 탈락이구나 생각했는데....제가 올린 노래도 있네요^^ 잘 듣겠습니다~ 주위에도 많이 알릴게요~

장맥주
도른 님, 아니 @초록책잔 님 추천곡을 빼먹을 리가 있나요. ^^
정성스럽게 곡 추천해주시고, 곡들도 하나하나 할 얘기가 많고, <책, 이게 뭐라고>에 대한 애정에 병력도 고백해주시니, 저도 정성 담아서 성의 있게 답글을 써야지, 하다가 답을 오히려 못하게 되었어요. (역시 모든 게 타이밍이죠? 독서도, 드라마도, 답글도...)
그저께부터 새 장편 작업에 들어갔어요. 작품 자체는 그다지 야심이 담기지는 않았지만 장편을 쓰는 게 오랜만인 데다 빨리 마쳐야 할 개인적인 이유가 있어서 좀 기합이 들 어 있어요. 작업을 하는 틈틈이 그믐에 들어와서 글들을 보고 답글을 달고 있는데 쉽게 달 수 있는 건 그 자리에서 답니다. 가벼운 마음이죠. 저는 가볍지 않은 마음은 잘 표현하지 못하는데 어릴 때부터 그랬던 거 같습니다. 아마 죽을 때까지 이럴 거 같아요. ㅎㅎㅎ
사운드트랙 널리 알려주신다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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