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이 많이 계셨군요. 저는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제에 관해서 전문가 분들의 의견을 소상히 들을 수 있어서요. 그믐의 힘이고, 관계의 힘이군요. 제가 믿는 말이 있는데, [인간은 아름답다. 우리는 그것을 믿는다] 라는 문장입니다. @내로 님 글처럼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고 웃눈 문화가 더욱 중요할 것 같습니다. 많이 배웁니다.
[📚수북플러스] 6. 우리의 연애는 모두의 관심사_수림문학상 작가와 함께 읽어요
D-29

차무진

미스와플
장애인복지관에 수업 받으러 가면 그 분들이 청소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 일로 근로 시간 계산이 되어서 알바비를 받는 분도 계시고 봉사하는 분도 계신데요. 한 번은 우리 애가 복지관 1층 바닥에서 울면서 구르고 있었어요. 그 때 그 분들이 먼저 와서 그렇게 얘기하시는 겁니다. "도와드릴까요?" 라고. 어떤 분은 '한 팔로' 청소하시고, 어떤 분은 걸음을 잘 못 걸으시면서 저한테 도움을 주려하시고, 어떤 분은 중얼중얼중얼 하고 눈을 잘 못 맞추고 저를 못 쳐다보시면서 우리 애를 도와주려고 하셨습니다. 저는 먹먹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죠. 그 날 우리 애는 누가 달래도 안 듣다가 별 수 없이 교육 포기하고 집에 가려고 할 때 어느 청소하시던 분이 사탕 주면서 달래서 울음 멈추고 교육 잘 받았습니다.
아! 일화가 하나 떠오르네요. 정보라 작가님이 홍선주 작가님 소설 속 인물에게 이렇게 얘길 쓰셨어요. "그렇게 개인적 복수를 하시면 안됩니다. 노조에 가입하세요." ㅎㅎㅎ (소설은 시간강사가 교수에 복수하는 얘기. 정보라작가님은 실제 노조원이심) 저도 소설 속 인물들께 이렇게 얘기하겠습니다.
"장애인 복지관에 가 보세요. 누구에게도 열어주니까 귀신이어도 대화 되면 됩니다. 개인 예산제를 장애인개발원 등등에서 연구 활발하게 하고 있으니 그 문제도 상담해 보세요."

차무진
"장애인 복지관에 가 보세요"
꼭 가보겠습니다. 그런 곳에 한번도 가지 못하고 이런 단편을 쓰다니...사실 저는 여러 분들의 글들을 읽으며 매우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꼭 가보겠습니다.

미스와플
꼭 장애인복지관에만 가셔야 된다는 말씀은 아니어요. 예를 들면 저를 만나시ㅁ......아니, 아닙니다.

차무진
@SooHey 님. 제가 감사합니다.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나중에 뵈면 꼭 맥주한잔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연해
천천히, 오래, 여러 번 읽게 되는 글입니다.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이 공간이 얼마나 안온한지를 다시금 느끼게 됐어요. 한 분 한 분의 내밀한 서사에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그만큼 소중한 이야기라 생각하고, 이 이야기를 어지간하면 잘 안 하시는 이유에 대해서도 잘 읽었습니다.
그럼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조금 딴소리를 해보고 싶은데요. 위에서 제가 올렸던 영화 중에 <그녀에게>라는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고, 이 영화의 주인공(엄마)이 쓴 책이 <배려의 말들>이라는 책이에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SooHey 님이 말씀하신 "장애가 측은히 여겨지고, 상처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런 것으로 여겨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문장에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는데요. 제가 배려라고 생각하는 배려를 (일방적으로) 상대에게 주지 말고 '상대가 원하는 걸 하는 게 진짜 배려'라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며 많이 했었거든요. 상대가 원치도 않았던 호의를 내 기분(과 감정)에 취해 마음대로 던지지 말자는 다짐도 했고요.
맥주의 힘은 이리도 대단한 것이었던가! 라는 농담을 끝으로, 정성스럽게 나눠주신 글 오래 간직하겠습니다.

배려의 말들 - 마음을 꼭 알맞게 쓰는 법"진정한 배려는 선한 마음이 아니라 나와 타인과 상황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형이라는 말>과 <다르지만 다르지 않습니다>를 쓴 류승연 작가가 배려에 대한 문장을 모으고 단상을 붙여 '친절과 다른 배려'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장 바로가기

차무진
그럼요. 맥주의 힘은 대단합니다.
그런데 그분, 요즘 맥주를 조금 멀리 하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작업일도 바쁘시고 해서요. 맥주 친구로서 조금 섭섭하지만 기다리는 중입니다. ^^

고우리
말씀 감사해요 SooHey님. 이 소설에 대한 믿음을 확인시켜주신 것 같아서. 책이 나오고 이 소설에 대한 이른바 악플이 몇 개 있었 는데, 저는 아무런 신경이 쓰이지 않더라고요(참고로 제가 이 책 편집자). 그 댓글들에 정당한 답을 달 자신이 있었고, 틀렸다면 틀렸다고 인정하면 되니까요, 그리고 그런 소란스러움이 건강한 거라고 생각하고요. 처음부터 그랬고, 안 그랬으면 책을 못 냈겠죠. 저는 외려 이런 주제를 이야기해준 작가님이 고마웠어요. 사실 당연히 그래도 되는 일인데, 그 일이 용감하고 대담해 보이는 일이 되더라고요. 저는 그런 차무진 작가님이 소듕하고, SooHey님 같은 독자가 소듕해요~

차무진
저도 마름모에 귀의했습니다. 일찌감치!!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마름모

고우리
아,,,, 현웃........................

소향
@차무진 ㅋㅋㅋㅋㅋㅋㅋ

stella15
@장맥주 @차무진 사실은 어제 저에게 장맥주님 답글 달아주신 게 있는데 여기에 함께 쓰는 게 좋을 것 같아 씁니다. 근데 얘기를 하다보면 차무진 작가님께 찍힐 것 같아서 가급적 작품에 대해서는 언급을 안하고 싶은데 진짜 미안합니다. 조큼 말이 거칠더라도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저는 차무진 작가님 글이 이해가 안 갔습니다. 좀 화도 나고요. 물론 무모하리만큼의 도전과 모험정신은 저도 높이 사드립니다. 하지만 어떻게 오컬트와 장애인의 성의 문제가 결합되고, 조화를 이룬다는 거지? 처음엔 흥미롭긴 했지만 단편이다 보니 뭔가 급하게 마무리가 되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솔직히 저라면 도저히 못 쓸 것 같은데 차 작가님은 프로고 이 이야기를 시작하셨으니 재대로된 결말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장편으로 써 보시길 권했습니다. 자기 글에 책임지는 게 프로다움 아닌가요?
또 어찌보면 장애인을 소설에서 다룸에 있어서 좀 급진적이지 않나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수헤이님 말씀대로 장애인도 그 장애의 정도가 여러 가지거든요. 소설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게 캐릭턴데 장애인을 이렇게 밖에 설정할 수 없을까? 그도 좀 유감이었습니다. 그것도 컴퓨터 화면안에 가뒀습니다.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장애2급은 만나 보지는 못했지만 과연 장애2급은 본능을 제어하지 못하는 미숙한 존재인가? 심하게 말해서 발정난 짐승과 별반 다르지 않게 그리는 것 같아서 유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보는 인식이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지지 않았구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사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 성의 문제는 30년전에도 제기되어 온 것이기도 합니다. 당시만하더라도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순백의 영혼'으로 인식했죠. 말이 좋아 순백의 영혼이지 지능이 떨어지고, 의사 결정 못하고, 악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인식이 그 배면에 깔려 있죠. 즉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이 자신을 인식하는 수준이 낮을 거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아니죠. 장애인도 다양하고, 여러 가집니다.
사실 이쯤해서 저도 밝히지만, 저도 장애인입니다. 중도장애로 10살 때 뇌성마비가 왔죠. 운이 좋았던지 저는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고, 사회생활하는데는 별 무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처음엔 상태가 안 좋았죠. 한쪽으로 침을 질질 흘렸던 때도 있었으니까요. 그러니까 당장 내 오빠와 동생이 저를 지진아라고 놀리더군요. 아니 침 좀 흘렸다고 그게 지진아가 되는 겁니까?
제가 30년 전에 창작을 공부한 적이 있는데, 누구라면 알만한 원로 문학평론가님한테서 배우기도 했는데, 그분이 어느 날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장애자와 비장애자가 조화를 이루며 살게 마련이라고. 그러면서 장애인에겐 몸을 움직일 때마다 특정 부분의 성감대가 발달한다고 했습니다. 그게 비장애인과 조화를 이루게 한다고. 저를 두고 하셨다기 보단 당시 고개와 손가락인가 발가락 하나를 빼놓고 전신이 마비된 동급생 언니가 있었죠. 남의 손을 빌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언니었습니다.
말도 좀 어눌한 편이었죠. 말을 어눌하게 한다고 지능까지 떨어지는 건 아니었죠. 이 언니 똑똑합니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이기도 하죠. 그래서일까? 결국 결혼도 했는데 무려 비장애인과 해서 애까지 낳고 잘 살고 있습니다. 물론 연락 끊어진지는 오래됐지만 그 시절 구의원인가도 했습니다. 웬만한 비장애인 보다 더 낫지 않습니까?
암튼 처음에 선생님이 그 얘기를 했을 때 이거 성희롱 아냐? 그런 생각도 얼핏 했습니다. 사실 선생님이 음담패설엔 좀 일가견이 있으셨고, 언니가 뭐라하지 않으니 그냥 그런가보다 넘어갔는데, 지금 생각하면 선생님은 조화를 염두해 두셨던 것 같습니다.
제가 96년도인가? 그때 운이 좋아서 어느 유명한 영화감독이 하는 시나리오 워크숍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감독님은 끝나기 10분,15분 남겨놓고 유럽의 단편 영화를 보여주셨습니다. 한 날은 내용이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두 장애인이 비행 즉 나쁜 짓을 벌이는 내용을 보여 준 작품이 있었습니다. 작품 의도는 장애인들을 순백의 영혼으로만 생각하는 일반의 인식을 깨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그거 보고 정말 감탄했죠. 그래 봐로 저런 거야했습니다. 제 얘기는 장애인도 얼마든지 나쁜 사람 많다. 이런 게 아닙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보편성을 장애인도 가지고 있다는 걸 말하는 겁니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순백의 영혼으로 인식하는 건, 어떻게 감히 장애인을 나쁜 사람으로 표현할 수 있느냐는 거죠, 그러면 죄짓는 것 같아서 그렇게 못하고 안하는 겁니다. 그렇게 들었던 게 30년 전인데 지금은 그때보다 나아졌을까? 의문이 들더군요.
장맥주님이 차 작가님의 작품을 두고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른 앤솔에 걸어놨다면 더 멋있었을 거라고. 저도 동감입니다. 사실 아시겠지만 <빛 넘어로>엔 불륜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투란도트...>를 더 높이 사는 건 어쨌든 불륜이 다뤘다는 겁니다. 독자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때론 매섭습니다. 불륜을 다루기로 했다면 단 한 줄이라도 다뤄야합니다. 불륜을 다룬다면서 왜 여기엔 불륜이 안 나오지? 저는 차 작가님이 장애인도 과연 불륜을 할까에 대해 의문을 갖으셨는지 궁금하더군요.만약 그 질문에서부터 글을 썼다면 되게 재밌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이를테면 그런 거가 되겠죠.
어느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결혼을 했습니다. 사실 대단한 거죠. 흔한 일은 아니니까. 그런데 어느 결혼이나 그렇듯 결혼은 100% 만족하지 못합니다. 뭔가 부조리한 면들을 보게되고 그걸 결혼하기 전 알고지내던 같은 장애인 친구에게 털어놓다 불륜으로 들어간... 뭐 못해도 이런 정도의 이야기가 나와줘야 불륜 앤솔이 되는 거 아닌가요?
죄송합니다. 그냥 아쉽고,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지 차 작가님껜 불만 같은 건 없습니다. 전 아까 오전에 들어와 지금까지 달린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그에 비해 저의 이 글은 그냥 작품의 관점에서 비평했을뿐이란 점 말씀 드립니다. 사실 창작을 공부하면서 이런 훈련을 많이하다 보니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이런 것만 배웠습니다. ㅠ
사실 저도 장애인으로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여러 에피소드가 있는데 언젠가는 이걸 글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런 생각의 기회를 주신 차 작가님이나 수헤이님을 비롯한 여러분께 감사의 마음이 있습니다. (이거 뭐 수상 소감도 아니고. 흐흐) 차 작가님은 앞으로도 더 좋은 작품 많이 쓰실 거라고 믿습니다. 힘내십쇼! 홧팅~

장맥주
@stella15 님, 어려운 고백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시는 활동들도 응원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사실관계는 제가 말씀드려야 할 거 같아요. <우리의 연애는 모두의 관심사>는 불륜 앤솔러지가 아니라 '금지된 사랑' 앤솔러지예요. 맨 처음에 제가 아이디어를 낼 때 "저희 불륜 소재로 소설 써볼까요?" 하고 의견을 내기는 했는데, 이후에 마름모에서 정식으로 '금지된 사랑 앤솔러지'로 기획을 정리했습니다.
시작이 이러했고, 불륜 앤솔러지라고 말하는 게 좀 더 금기를 넘는 듯한 기분이 들어 그렇게 제가 몇 번 부른 적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이 책을 읽는 분들께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차무진
@stella15 님.
우선, 제 단편 소설이 여러모로 불편한 마음을 갖게 해드린 것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장맥주 님이나 @고우리 대표님께서 어떠한 의견을 주실듯하여 제가 먼저 답을 달아요. (두 분은 그 이슈에서 저를 많이 도와주시거든요, 이런! 수정하다 보니 이미 장맥주 님꼐서 글을 쓰셨군요. )
우선 '오컬트와 장애인의 성의 문제'를 다루는 것에 관해서는, 소설이 어떤 것은 건드리고 어떤것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면, 그것은 소설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소설이란 그 어떤 주제도 소재도 회피하지 않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근친상간도, 나라도 팔고, 신도, 부모도 죽일 수 있어야 합니다. (자극적인 의미가 아니고요 ^^) 그게 누구에게 화가 나도, 누구에게 기쁨이 되어도, 또 비난을 받아도, 작가가 쓰는 것에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백할게요. 저도 이런 논란이 예상되어 쓸때 몹시 겁이 났었습니다. 너무너무 겁이 났습니다. ㅠㅠ)
읽으시기 불편하셨을 터이지만 변명 하나만 하게 해주세요.
저는 장애를 가진 작중 캐릭터를 '발정난 짐승'이나 또는 '순백의 영혼'으로 그린 적은 없습니다. 장애를 가졌던, 가지지 않았던 모두 동일한 본능과 성이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진짜로 목적을 두었던 점은 장애를 가진 동생을 돌보는 어머니 입장이었습니다. 제 외사촌누나가 우리 이모 앞에서 12살 조카를 버리고 싶다고 우는 모습을 보며, 또 이모가 진짜 조카를 버릴 방법을 찾는 것을 보며, 그분들이 평생 감내해야 할 고통을 내가 어찌 알 수 있을까,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너무도 슬픈 일이었습니다. (물론 조카는 버려지지 않았습니다)
저 또한 자식이 있습니다. 제 자식들이 혹, 몸이나 마음이 불편했다면 나는 감당할 수 있을까, 글을 쓸 수 있을까, 밥을 먹을 수 있을까, 생각만해도 번쩍번쩍 몸이 떨립니다. 그런데 사촌누나는....이모는...또 조카는...또 다른 여러분들은.........
그런데 우리는 그저 '점잖은 척'을 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수녀의 입으로 점잖은 척 하지 말라고 시켰습니다.
장맥주 작가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금기'의 기획이었습니다. 다른 작가님들은 '불륜'을 멋지게 다루어주셨고, 저는 금기를 다루었습니다. 수녀가 수상한 주술을 연구하는 것도, 인간이 아닌 것들을 불러내어 아들을 만나게 할 수 밖에 없는 어머니의 생각도, 어머니를 건드리려는 아들도, 누군가의 사생활을 몰래 지켜보는행위도, 지켜보는 노인이 컴퓨터 앞에서 바지를 내리는 것도, 노인이 죽은 아들보다 죽은 아내를 만나려는 것도, 생명을 품은 유일한 딸의 방이 닫혀 있는 것도 전부 제 입장에서는 아슬아슬한 금기의 실험이었습니다. 장애인을 소재로 삼는 것도 저에게는 또한 금기에 도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말씀대로 장애를 가진 분들의 이야기는 비 장애인이 함부로 쓰지 못하는 것일테니까요)
스텔라 님 말씀대로 작품이란 오롯히 읽는 분들의 것일 터, 해석도, 불만도 전부 읽는 분들의 것입니다. 작가가 이런저런 자신의 이야기를 지면에 대고 하는 것이 좋다고 저는 보지 않습니다. 작가는 오직 작품으로만 말해야 하니까요.
고로 이 멘트글을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몹시 고민했습니다. 그래도 그믐이 그런 것이잖아요. 작가와 독자가 마음을 열고 온갖 이야기들을 나누는 장. 작가로서 금기를 작업하고 싶었고, 아픔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언짢음을 드려서 송구하단 말씀을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스텔라 님 께 힘을 얻고 갑니다. 저도 지금까지 달린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스텔라 님의 글이 비평어서 좋았고, 개인적인 사견이어서도 좋았습니다. 저도 이런 생각의 기회를 주신 스텔라 님과 여러분들께 감사합니다.
그믐에서 오래오래 만나뵙기를 바랍니다.

stella15
무섭기는...의외로 간이 작으신가 봅니다. ㅋㅋ
사실 작가님 여기저기서 얻어 맞으셨다고 하셔서 저도 더 이상 언급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오늘 들어와보니 뭉클한 마음이 도가 지나쳐 저야말로 작가님께 실례를 범한 것 같아 송구할 다름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의견을 표현한 것이 저는 오히려 좋았단 생각이듭니다. 알고 보면 저도 놓친 게 있었습니다. 장애인 가족들. 장애인 문학이란 게 필요하지 않나 싶기도하고요. 그랬을 때 장애인을 여러 각도에서 보여주는 시도들이 있어야하는데 너무 천편일률적인 이제까지의 관행들이 좀 아쉬운 마음에 예민했던 것 같습니다. 용서하시고, 이젠 좀 편한 마음 갖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작가님의 따 뜻한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거북별85
@stella15 님의 긴 글과 @차무진 작가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우선은 @stella15 님의 긴 글을 읽으면서는
작가님들의 작품을 읽고 이렇게 길게 생각하며 쓰는게 쉽지 않은데 그래도 애정이 있으신거겠지 싶었습니다~^^
그리고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여우의 계절> 북토크 때 지방에서 올라오신 독자님이 계셨어요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질문시간 때 그 분도 작가님께 버럭! 하셨던 기억이 있네요~~~😅😅
왜 일까? 잠깐 궁금해졌습니다
제 짧은 소견으로는 우선 작품들의 색깔이 강렬한 편이세요 이번처럼 일반적이지 않고 불편할 수 있는 소재나 내용을 다루시기도 하구요~
전 차작가님의 소설은 그 어떤 소재도 주제도 회피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 응원하겠습니다 !!
제가 그믐 처음 모임에서 몸에 좋은 현미같은 느낌도 좋지만 술술 넘어가는 백미같은 글도 좀 부탁드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작가님의 독자적인 매력은 간직한채 독자들에게 좀더 친근하게 다가가면 좋겠다는 바램이 살짝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전에도 이런 질문을 드렸던거 같은데 작가님의 길을 가시겠다고 하신것 같기도 하네요^^
이건 개인적 사심이 들어간 질문입니다
제가 이번에 차작가님 인스타에 올리신 김준녕 작가님의 <제>를 읽었거든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 읽고 나서는 그 작가님 나이보고 좀 놀랐습니다^^;;
그런데 읽는 내내 드는 생각이. 이런 소재의 작품을 @차무진 작가님께서 집필하신다면 어떻게 펼쳐질까 너무 궁금했습닏다
혹시 앞으로 <제>와 같은 한국형 오컬트 장르의 장편을 쓰실 예정은 없으신지 궁금합니다
전 차작가님이 이분야에서 누구보다 정말 잘 하실거 같거든요!!^^
내로
저는 대학생 때부터 장애인과 꾸준히 만났고, 학교에도 4년간 근무했으니 그리 적지 않은 시간을 장애인과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소설에서의 장애인에 대한 묘사가 표현하신 것처럼 그렇게 무겁게 다가오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오히려 그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소중한 깨달음의 시간이었습니다. ‘순백의 영혼’과 관련해 주신 의견은 갑자기 저희 반에 다운증후군이었던 바리스타를 꿈꾸는 아이가 생각나서 심쿵했어요. 그 아이의 웃음은.. 진짜에요. 그리고, <빛 너머로>의 새로운 결말을 쓴 작가로서…ㅎㅎ 조금의 해석을 덧붙여 봅니다. 진짜 작가의 의도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저는 소설이라는 장르의 속성 중 하나가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모든 것이 붕괴하는 순간, 그 직전까지 무모하게 나아가는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관점에서, 저는 <빛 너머로>에서 묘사된 장애인이 오히려 (제가 생각한) 작가의 의도를 드러내는 훌륭한 촉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설에서는 “백 그 자체”인 귀신이 등장하고, 장애인 아들 또한 거의 “백 그 자체”처럼 묘사합니다. (그러나 완전히 “백”인 것은 아니지요. 엄마가 머리 자를 때 바르게 잘 앉아있기도 했고,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실은 밥도 잘 먹고, 엄마에게 재롱도 잘 피우는 아들이었을 거예요 ㅎㅎ)
엄마는 “성”에 있어서 만큼은 더 이상 관리가 어려워 귀신의 힘을 빌립니다. 그동안 이성으로 어찌어찌 아들을 케어했지만 이성으로 닿지 않는 영역이 있었던 거죠ㅠㅠ 저는 귀신의 힘까지 빌린다고? 놀라면서도,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던 그들의 “사랑”을 봤습니다. 고통스러운 사랑이었죠. 결코 그들의 사랑은 논리적인 이성이나 화려한 언어로 설명되지 않았어요. 부모의 뜨거운 손길과 같은 감각, 공노식씨가 가진 극한의 그리움 혹은 자기 파괴로 비쳐지면서까지 자기를 끝까지 몰아넣는 몰두 같은 것들요. 작가의 의도가 그런 것 아니었을까요? 사랑은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장애인 아들은 화면 안에서의 모습만 등장했고, 아주 날 것의 영상들로서 고통 그 자체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공노식씨는 장애인 아들과 만나지 않습니다. 아니 만나지 못하죠. 어딘가로 갔으니까요. 3년 전 죽은 아들과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것처럼요. 자연스럽게 두 명의 아들이 오버랩되었습니다. 결국 그 영상은 훗날 공노식씨가 현실로 돌아올 계기가 되잖아요. 그런 점에서 그 영상은, 공노식씨에게는 구원의 시작이 됩니다. 현실 너머에서 현실을 살아가게 하는 동력을 발견한 거죠. 아이러니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게 진실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 부모와 장애인 아들이 겪는 그들의 현실, 그 커다란 고통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현실에 발을 붙이게 만드는 이유일 수 있다고요.

거북별85
@내로님도 소설의 속성 중 하나로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모든 것을 붕괴하는 순간까지 무모하게 나아가는 예술이라고 말씀하시니 신기합니다^^
제가 몇번 북토크에서 작가님들께 작품속 인물들의 서사를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이끄셔야 하셨냐고 질문드렸더니 모두들 비슷하게 대답하시더라구요^^
문제를 더 선명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 극단으로 이끌고 가셨다구요~~~ ^^
내로
아! 저는 외국 작품들을 보며 그런 걸 느꼈는데, 실례지만 혹시 어떤 작가님이셨는지 소개 부탁드려도 될까요 :)

거북별85
최근에는 김준녕 작가님의 <제>였습니다 한국적인 오컬트 작품인데 작품 속 내용은 '디아스포라'가 담겨있습니다 이민자들에 관한 내용인데 친구 사이인 등장인물들을 왜 이렇게 까지 끌고 가셨나고 하니 그렇게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여러 분이 대답해 주셔서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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