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이나 그런 거 아예 생각 안 하고 여자의 심리를 바닥에서 드러내는 글이다.
언덕 위의 빨간 지붕
D-29
Bookmania
Bookmania
이 글에서 다른 글꼴로 쓰는 글자가 있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작가 중에 그런 인간이 더러 있다. 하루키도 그러나?
Bookmania
그리고 역시 직장은 기본과 상식만 지키면 된다.
Bookmania
일본에서 여자도 AV에 대해 항의하는 것 같지 않다. 자기 밥줄이 걸린 거라 그러는 것 같다. 그 수가 너무 많다. 관련 회사도 많고. 마치 연예 기획사 같다.
Bookmania
이 글을 보고 법정 화가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다.
Bookmania
내가 글에 한자와 영어를 집어넣는 이유는 나도 그걸 배우기 위해 그런 것이다.
Bookmania
여자는 약자이고 아닌 것처럼 속이는 짓을 잘한다는 것인가, 이 글은.
Bookmania
남자가 가스라이팅한 것인가, 아니면 서예지처럼 여자가 가스라이팅한 것인가.
Bookmania
사건의 진실
같은 일을 가지고도 자기에게 유리하게만 일을
다시 편집한다.
하긴 역사도 승리한 인간들의 입맛에만 맞게
다시 조립된 것이다.
나도 그러니까 인간들은 다 같다.
내가 곧 세상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곧 나이기도 하고.
그래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제삼자나 다 내려놓고
가진 게 전혀 없는 사람에게 물어봐야 그나마
진실에 조금 더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또는 어린애나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이건 내가 뭔가에 꼬여서 그런 게 아니라
원래 인간과 그 세상이 그렇게 생겨 먹어 그런 것이다.
나더러 뭐라 하지 마라, 듣는 사람 기분 나쁘다.
Bookmania
보수는 물질만 알고 얼굴이 철면피이고 양심 같은 게 없는 사이코패스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진보는 마음이 약해 자기가 저지른 죄로 인해 그 충격으로 자살을 하기도 한다. 이게 큰 차이다. 물질을 중히 여기느냐 아니면 인간의 그 어떤 것을 중히 여기느냐 그 차이다.
Bookmania
여자의 감이라는 말이 있는데 많은 눈치를 봐서 그렇다. 사슴은 눈치를 보는데 사자는 안 그렇다. 느긋하게 잠을 청한다. 그러나 사슴은 불안해서 잠도 선잠을 잔다. 그래 약자는 남다른 감이 생기는 것이다. 공포와 앞으로의 위기를 피부로 미리 아는 것이다.
Bookmania
인간은 처음엔 다 자기와 같은 줄 안다. 그러나 인간들은 다 제각각이다.
Bookmania
별로 안 친하다가 공동의 적을 위해 친해지는 경우도 있다.
Bookmania
그 글은 자기와 생각이 같은 건 아니지만 일단 읽으면 그 작가와 같은 생각으로 그냥 읽어나가는 것도 좋다. 책을 읽는 동안엔 그 작가가 되어 보는 것이다.
Bookmania
나는 글의 줄거리나 심리에 중점을 두고 일기도 하지만 나는 그 표현 자체에 중점을 두고 읽기도 한다. 나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Bookmania
미국은 교회의 편에 들 수밖에 없는 나라다.
Bookmania
교수 집안에 교수가 또 나오고 의사 집안엔 또 의사가 많이 나온다. 이걸 미디어에서 마치 치켜세우고 당연한 것처럼 묘사하는데 잘못이다. 그건 그냥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다. 자기들의 노력으로 그렇게 된 게 아니다. 엄밀히 능력도 아니고 그냥 운이 좋아 그렇게 된 것이다.
Bookmania
술 잔뜩 먹고 그 다음날 싸매고 드러누워야 드라마를 보지 그렇지 않으면 아까워 책을 읽는다. 그만큼 그 어떤 것에도 독서 시간을 빼앗기는 게 아까운 것이다.
Bookmania
작가는 대개 남이 보기에 이상하다. 본질만 말하기 때문이다. 그게 맥락과 안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Bookmania
익숙함
집 떠나면 개고생이고, 아무리 추레해도 집보다
편한 곳은 없다고 한다.
이게 왜 그런 고하니 익숙해서 그곳이
이미 자기와 충분히 동화(同化)되었기 때문이다.
장소뿐 아니라 시대도 그렇다.
현대에서 갑자기 조선시대로 돌아가면 엄청
불편할 것이다.
시골에서 걸어서 서울로 과거 시험을 보러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며칠을 두고 가야 할 것이다.
가다가 주막을 만나 맘에 드는 처자(處子)를 만나면
과거 시험도 때려치우고 거기서 눌러살 수도 있는 것이다.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엄청 불편한 것이다.
전엔 푸세식 변소가 편했다.
쪼그려 앉아 볼일 보는 게 편했고 양변기에 편히 앉아
볼일을 보면 뭔가 하다 만 것처럼 찜찜한 구석이 남았다.
그래 푸세식으로 달려가 다시 볼일을 마저 보기도 했다.
“역시 변소는 이래야지!” 하는 것이다.
예전엔 안방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는 게 편했는데,
요즘은 의자에 앉아야 편하다.
상갓집 빈소에서 절을 하고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온돌바닥에 앉아 밥을 먹으면 이젠 삭신이 쑤시고
오금이 저려 못 앉아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양변기와 의자에 앉는 게 이젠
더 익숙해져서 그런 것이다.
그래 지하철도 이젠 쪼그려 앉아 용변(用便)을 보는
화변기(和便器)를 좌변기(坐便器)로 교체 중이다.
승객도-나이 지긋한 사람 말고는-화변기이면
도로 나온다.
자식과 오래 같이 살다 갑자기 독립해 떨어지면
처음엔 힘들다가도 시간이 갈수록
자식과 떨어진 지금에 물들어간다.
그 상황에 적응해 그게 오히려 더 익숙해진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할 것이다.
나중에 자식이 휴가라도 나오면 오히려
그게 더 낯설 것이다.
“부모가 이래도 되나?”
죄책감이 들 정도다.
시집을 오고 장가를 가서 친정이 이젠 지금
우리 집보다 낯설고 어머니가 해주던 밥이 결혼 초기엔
그리웠다가 이젠 부인이 해주는 밥이 더 입에 맞는 것
같고 어쩌다가 어머니가 해주는 밥은
-솔직하게 표현은 못 하지만-뭔가 입에 붙지 않는다.
아내가 해주는 밥에 길들여지고 더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렇게 간사하고 환경에 맞게 변신하는 동물이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하는 것이다.
거기에 물들어서 그런 것이다.
독립해서 나와서 산 지가 오래될수록 본가에 들러
어쩌다 자면 낯설어서 잠을 설치기도 한다.
심지어 전에 자신이 쓰던 방인데도 그렇다.
자기도 그 상황에 한동안 적응이 안 되어 당황한다.
완전히 역전되었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내게 낯익고 익숙한 것이
내 인생을 다 채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습관으로 인생은 구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전엔 남녀칠세부동석, 남존여비,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가
대세였는데 지금은 이게 낯설어 함부로
입 밖에 내지 못한다.
이젠 그게 안 낯설기 때문이다.
거기에 적응해 가고 있다.
이걸 가만히 봐라.
익숙한 것을 인간은 그냥 하면서(생각 없이) 지낸다.
그게 편하니까.
독재에 물들어 그것에 익숙하면 오히려 “그때가 좋았는데!”
하며 향수에 젖는다.
“그저 저런 새끼는 삼청교육대에 보내고, 남산 대공분실에
끌고 가서 물고문해야 정신을 차리지!”하고 말한다.
그걸 편하게 여기고 심지어 그리워하는 것은
한 가지밖에 없다.
그게 익숙하고 자기 몸에 배서 그렇다.
그게 내 인생을 온통 구성해 지배했기 때문이다.
세뇌(洗腦)되어 가스라이팅된 것이다.
그 세계가 전부이고 심지어 옳은 것이라고 여긴다.
그게 모든 가치의 기준이 된다.
그걸 잣대로 다른 것을, 나쁘고 좋다며 평가한다.
외국에 나가면 자기 나라를 기준으로 생각한다.
그게 익숙하고 습관, 문화, 정서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분단이 길어질수록 남북통일이 어려운 게 이래서 그렇다.
남북이 만나 김정은에 대한 안 좋은 소리를 하면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으면-아마 대판 싸움이 일어날 것이다.
각자 자신에게 익숙한 게 다르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기에게 익숙한 게 맞는 것이다.
이처럼 익숙함과 습관이 결국 인생을 구성하고
그게 편하고 좋은 것이라고 여긴다.
자기가 살아온 환경이 맞는 것이 되었다.
이러니 나쁜 것은 익숙해지기 전에 거기서 벗어나야 하고
민주주의 정착, 성평등, 전쟁 종식, 개성 존중,
소수자 차별 금지, 빈부격차 해소, 기후 위기 극복,
다양성 추구와 같은 좋은 것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 익숙함과 습관이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들고
그게 그 사람의 인생을 다 차지하기 때문이다.
인류가 그것에 익숙할수록 더 좋은 세상이 된다.
좋은 것(정치적 올바름, 인류의 이상(理想))은 점점
익숙해지려고 노력하고, 나쁜 것(이상과 상반되는 것)은
습관과 익숙함이 붙기 전에 떨쳐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걸 선택하는 능력(좋은 것에 익숙해지기)도
자기의 편협한 세계에서 벗어나
(이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왜냐하면 자기 세계가
전부이고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른 세계도 보며
인류가 추구하는 보편적인 가치에 익숙해져야 가능하다.
그런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에 습관이 붙어
진정 자기 것으로 체화(體化)해야 한다.
그래야 희망이 있다.
익숙함
● 익숙함이 편해 거기에 차츰 물들어간다.
● 좋은 것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 그러려면 자기 익숙함에서 나올 능력을 길러야 한다.
작성
게시판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