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자는 코가 안 예쁘다. 그래서 코를 그렇게 많이 수술하나.
언덕 위의 빨간 지붕
D-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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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만 해도 커피숍에서 가방을 놓고 화장실에 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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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친구
나는 우리가 이상으로 품고 있는 관포지교나
지기지우(知己之友)를 말할 생각보다는 현실에서
진정한 우정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이런 사자성어는 인간이 현실을 사는 어려움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고자 그랬으면 하는 것을
겉으로 드러낸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현실에서 그런 걸 찾기 힘드니까, 그것을 이상으로 품고
견디고자 하는 뜻에서 만든 관용구라는 생각이 더 든다.
원래 인간은 현재 부족한 것을 부르짖는다.
전에 세월호 때 의리가 사라져 의리를 그렇게 외친 것이다.
민주주의가 실종되면 독재 타도를 주장하며 길거리로
나와 데모를 한다.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이 끊이지 않는 난세에 배신이
난무하면 부족한 의리와 우정을 찾는 법이다.
지금 그게 부족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금 행복 하려고 너도나도 다투는 세상 같다.
한시도 행복하지 않으면 잘 못 사는 것으로 간주해
너도나도 행복 배틀(Battle)에 뛰어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순간이라도 행복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오히려 불행에 빠진 것 같기도 하다.
행복 강박에 빠졌다는 생각이 든다.
이 시간 행복하지 않으면 남에게 지는 것 같으니까
행복 경쟁에 뛰어들어 오히려 불행해지니까 그렇게나
행복을 끝없이 역으로 찾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원래 삶의 진실은 고해(苦海)라는데도.
부처는 삶이 이렇게 고해인데 번뇌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해탈(解脫)의 경지에 이르는가에 대해 평생을
두고 수행정진(修行精進)했다.
거기서 얻은 게 욕망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면 그나마
평정심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강박과 집착을 내려놓는 삶이다.
이렇게 너무 행복 하려고 집착하게 되면 오히려 행복이
불행으로 바뀔 수 있다는 거다.
그런 악순환 속에서 사람들이 행복 하려다가 오히려
불행에 빠져 모두가 행복 경쟁에 뛰어들며
그렇게 현재 행복을 찾는 건 아닐까.
행복을 찾으려다가 불행에 빠진 격이다.
생의 본질은 그게 아닌데 지금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진정한 우정도 이런 탄생 배경이 있다고 생각해,
너무 현실을 비관하는 것 같아도 현실을, 자기 바람이 아닌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그런 현실이 닥칠 때
충격이 덜하고 덜 비관하게 된다고 본다.
오히려 너무 낙관만 하다가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그러나 너무 낙관이나 비관보단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현실은 낙관이 먹힐 때도 있고 비관이 먹힐 때도 있다.
낙관도 비관도 동시에 존재한다.
그렇지만 사람이 바라는 이상(理想)대로는 세상이
움직이지 않는 것만은 확실하다.
피붙이나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닌 진정한 친구,
우정에 대해 말하면 그건 주어진 환경이나 사람의 타고난
성정(性情)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본다.
남자는 우정보단 이해타산에 따라 만나는 것 같고, 여자는
수다를 떨면서 자기 말을 공감해 주고 상대의 말을 들으면서
거기에 동조하고 같은 편이 되어 적을 같이 욕하는,
그러니까 그게 여자로서 사는 데 꼭 필요해서일 거라고 본다.
대개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인 게 맞아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자라고 꼭 그런다고는 할 수 없지만, 성격이
내향적이고 MBTI가 F보단 T에 가까워 항상 아니라
좀 떨어져 지내다가 가끔 만나는 것을 더
선호하는 유형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남자와 여자의 진정한 친구, 우정은 좀
생래적(生來的)으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원시시대에 남자는 동물 사냥이라는 한 가지 목표만
가지고 질주했다.
그게 최대 목표라 다른 건 생각 안 하고 그것에만 집중했다.
지금 남자들이 자동차에 정말 진심인 것도, 말 타고 또는 뛰는
질주의 본능(한 가지 표적에 집중)이 있어 그런 것 같다.
그래 백화점을 가도 꼼꼼히 살피고 고르는 게 아니라
자기가 점찍은 물건만 사면 그만 바로 나오는 것이다.
즉 혼자, 목적을 위해 그것만 바라보고 가면 되었다.
대신 여자는 집단생활을 했다.
혼자 독불장군으로 있다가는 따돌림, 왕따를 당할 수 있다.
좀 여유가 있을 때 이웃을 도와야 내가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고, 하여간 어려움과 기쁨을 서로
나누는 것에 상대적으로 익숙하다.
혼자 있는 게 아니라 같이 있으니까 서로
대화에 능숙하기도 하고.
커뮤니케이션과 공감 능력이 더 발달한 것이다.
아이를 주도적으로 길러 그게 없으면 또 곤란하기도 하니까.
그래 말싸움에서 여자를 이길 수 없는 것 같다.
그래야만 식용 버섯이 어디 가면 있고 열매와 채소가
어디 가야 모여 있다는 것을, 소식통을 통해 들어야 먹을 것을
확보할 수 있다.
안 그러면 혼자만 모를 수 있다.
그리고 독이 있나, 혹시 상한 것은 아닌가 냄새를
맡아보고 이리저리 해롭지는 않은지 일일이 만져본다.
그래 백화점 가서 눈 쇼핑 자체를 즐기고 물건을 살 때도 가게
주인에게 그냥 사는 게 아니라 이것저것 물어보고
따진 다음에 산다.
물건을 하도 만져서,
“눈으로만 보세요!”라는 팻말이 걸려 있을 정도다.
열매를 따와야 해서 여자들은 그렇게나 가방에
집착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더 친구가 필요한 쪽은 남자보단 여자인 것이다.
남자는 합동으로 짐승을 같이 몰 때나 필요하지, 즉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야 뭉쳐 협력한다.
남녀 간엔 우정에서 이런 차이가 있고, 여자나 남자는
개인적인 기질의 차이로 친구가 더 많이 필요한 사람도 있고
덜 필요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걸 좋다, 나쁘다, 하는 게 아니라 그걸 잘 활용하는 게
좋다고 본다.
이왕 이런 특질, 이를테면 여자로 태어난 것, 내가 소음인이고
혈액형이 A형이고 MBTI가 INTP이고 한 것은
자기 노력으로 그렇게 된 게 아니라 그냥 우연히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다.
즉, 타고난 팔자(八字)다.
그래 친구가 있어야 하고 아무리 우정이 중요하다고 해도
자기는 사람을 만나면 피곤하기만 하고 오히려 스트레스만
쌓이면 남들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게 아니라
안 만나고 가끔 대화가 통하는 사람만 만나면 되는 것이다.
주어진 팔자가 그런 걸 어쩌겠나.
친구를 만나 그것으로 충만해지고 뭔가 후련하고
공감하는 친구가 있어 자기 편이 늘 거기에 있는 것 같아
든든하면 친구와 자주 만나 수다와 술한잔하는 것도
좋은 것이다.
자기에게 맞는 것을 하면 된다고 본다.
성별, 타고난 기질이 그러니 남이 그래야 한다고 해서
따를 필요는 없다.
내게 맞는 것, 편한 것, 행복한 것을 하면 된다.
그러려면 자신을 아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자신을 알아 나는 이런 유형이야, 라는 걸
깨닫고 자기가 하고자 하는 대로 하면
그게 잘 사는 것 같다.
물론 진정한 친구 같아 평생을 같이 즐거우나 슬프나
함께하는 남도 있을 것이다.
그게 유지되면 진정한 친구로서 서로 아끼고 도우며
어려울 때 보살피고 기쁨을 함께하면 된다.
자기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된다.
남에게 좋다고 내게도 좋으란 법은 없다.
나는 슬픔은 함께해도-지금까진 아니 당분간은 쭉-
진정한 기쁨은 자식이 잘될 때 부모만이 같이
그 기쁨을 나눌 수 있다고 본다.
경사엔 참석 안 해도 되지만 애사엔 꼭 참석하라는 말도 있지만,
친구는 어려울 땐 기꺼이 돕는다.
그런데 같이 친하게 지내다가 친구만 잘되고 자기는
아니면 그게 유지될까, 물론 겉으로야 축하한다고 하겠지만
시기와 질투로 아마도 그 관계가 오래가진 못할 것 같다.
절교(絶交)의 수순을 밟을 것 같다.
부모만이 진정한 기쁨을 나누는 관계라고 본다.
인간은 자기 역할이 있다.
페르소나다.
역할에 따라 하는 생각, 말, 행동이 다르다.
가정에서의 아버지와 직장 상사는 같은 사람이지만 다르다.
부모는 진정한 기쁨을 함께하는 관계이고
사랑하는 이성은 같이 있으면 즐겁고 금방 헤어졌지만 또
보고 싶어 막 설레는 관계이고, 직장 동료는 같이 일을 하며
성과에서 일의 보람을 찾고, 취미로 만난 동아리 회원들은
직업이나 사회의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 마치 동심으로
돌아가 놀이로만 뭉친, 같이 좋아하는 것을 순수하게
나누며 즐기는 관계이고, 친구는 늘 같이
있는 것은 아니어도 만나서 회포를 풀고 예전의 추억들을
같이 공유하며 이런저런 얘기와 한잔의 술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관계라고 본다.
그 역할이 다 있는 것이다.
우정만 나누거나 사랑만 하거나 식구들하고만 늘 붙어 있거나
직장에만 매달려 워커홀릭으로 살거나 동호회에 나가
취미 활동만 하거나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일하고 사랑하고 노는 게 균형을 이뤄야 한다.
이런 가운데 진정한 우정도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아니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한가지 요소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친구는 사실, 엄밀히 말해 현실에서 존재하기 힘들며
내가 사는데 위로받고 공감하기 위한 인간으로서의 한 역할,
친구로서의 한 역할만 맡은 사람이라고 본다.
진정한 친구라고 해서 부모, 직장 상사, 애인, 부부,
동호회 멤버의 역할을 다할 수는 없다.
그냥 친구로서의 역할만 할 뿐이고
사람에 따라 그게 좀 두텁고
얇음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진정한 친구라고 해서 다른 사람이 하는 역할까지
내게 전부 할 수는 없다.
그게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만약,
친구가 부모 노릇까지 하려고 들면 당장 거부할 것이다.
부모나 애인에게선 채워지지 않는 부분을 친구에게서
채우려는 것이다.
또 친구가 채우지 못하는 부분을
연인만은 채워줄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친구
● 진정한 친구는 그냥 인간이 만든 이상인 것 같다.
● 생래적으로 남녀에 따라, 사람 기질에 따라 우정의 비중이 다른 것 같다.
● 그러니 사회 통념이 아닌 주어진 기질을 잘 활용하며 사는 게 잘사는 것 같다.
● 인간은 페르소나에 따라 자기 역(役)이 있는데, 우정도 그 역할 중 하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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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심리가 이상하고, 제대로 된 인물이 없다. 잘 되다가도 그게 아닌 게 드러난다. 이런 글을 많이 겪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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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도 전통적으로 남자를 여자보다 중히 여긴다. 아마도 한국보다도 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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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작가라 여자의 있는 것 없는 것 다 쏟아낸다. 남자는 여자의 숨기고 싶은 어두운 면을 많이 알아 좋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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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은 그냥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을 별로 안 좋아한다. 뭔가 핵심이 빠진 사람들이라고 치부하고 만다. 진짜가 아닌 가짜로 둘러싸인 허수아비라고 생각한다. 자기들만이 인간의 순수한 혈통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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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예술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 된 것은 그냥 다른 동물처럼
본능에만 충실해 살아가는 게 아니라 엉뚱한 생각을 해서
그렇게 된 것 같다.
주어진 것만 해나가면 진전(Progression)이 없다.
매일 똑같은 생활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딴 생각을 하게 되어 과학이 발달하고 예술이 발달해서
여기저기 기념물과 건축이 세워진 것이고
인류에게 생각하는 힘이 있어,
즉 그것을 넘은 영적(靈的, Occult)인 것에까지 미쳐
종교가 탄생해 위대한 종교 건축물이
세계 곳곳에 세워진 것이리라.
인간은 이 딴 생각, 즉 생각하는 힘 때문에 다른 동물에서
분파해서 지구상에 인류가 탄생해 위대한
문화와 문명(Civilization)을 낳았다고 생각한다.
매슬로우의 인간 욕구 단계에서도
최종적으로는 자아를 실현하는 게 가장 최상층에 있다.
자기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 자기를 알아 그것을
현실에서 구현하려는 것, 맨 꼭대기에
그것, 창작 예술이 있는 것이다.
자기 욕구의 분출, 창작의 힘이 그곳에 자리하고 있다.
예술은 인간이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생각해 내서
현실에서 구현된 결과물과 앞으로의 계획, 끝없는 자기 욕구
충족의 결과일 것이고 그건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미지(味知)를 개척하려는 욕구가 있다.
인간이 호기심을 놓지 않는 그 끝은 아직도 개척 안 된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창작 예술, 순수 예술은 인간 사고 단계에서
가장 높은 최종점에 있는 것이어서
인간들도 그걸 가장 알아주며 추구한다.
그래서 노벨상의 형태로 그걸 기리며 추앙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순수 예술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살기 힘들다.
인간 욕구에서 맨 밑바닥을 형성하는 게 아무래도
안전과 생존 욕구인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도 결국 동물이기
때문에, 먹고는 살아야 한다.
그래 순수 예술가들의 현실이 고달프다.
그래 예술가인양하고,
베스트셀러나 영화, 음악에서 천만 관객을 동원하고
대중음악만 돈을 버는 것은 그냥 부담 없이 생각할 거리가
별로 없는 가벼운 작품이라 그런 것이리라.
그래 세상에서도 그걸 상업 영화나 통속작품이라고
하면서 순수 예술과는 좀 거리를 둔다.
그렇지만 대중과 쉽게 타협한 예술가만 살고 독립영화나
저예산 영화는 예술적으로 평가할 만한데도
사람들이 외면하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알고 보면 베스트셀러나 천만 영화는 예술적 가치보다는
그것에 관심 없는 사람들까지 단순한 호기심과 입소문만으로
대화에서 소외되지 않으려고 너도나도 보았기에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솔직히 또 그런 면이 현실적으로 없지 않다.
순수 예술처럼 아무나 접근하지 못하고 이해 불가능한
작품이라면 그렇게 흥행에 성공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외부 세계 고려 없이,
자기 세계를 맘껏 펼친 작가주의 작품을
내놓은 예술가라면 오히려 그런 뜻밖의 관심을
반기지 않는 미친, 이상한(Geek) 예술가도 분명 존재한다.
“이상하게 관객이 너무 많아. 내 작품 질이 떨어졌나?”
그것으로(아무나 보기 때문에) 자기 작품이 저평가되고
자기의 예술 세계가 이젠 한물간 것은 아닌지, 초기의
예리하면서 치열했던 순수한 예술적 혼을 망각하고
딴(속물적이고 천박한) 마음에 빠진 건 아닌지 심각하게
고뇌하는 예술가라면 진짜 예술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요즘 시대에 그런 순수한 예술가가 존재할까.
이론에서만 가능한 이상론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런 사람이 있기를 바란다.
그것에 미쳐, 정상이 아니니까(Insane)
먹고살기 힘들어도 순수 예술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게 그의 존재 이유다.
적어도 그가 추구하는 건 예술혼의 한없는 구현이지,
세인(世人)의 관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의 정신세계를 한없이 확장하고 끝없이 판다.
정신이 깊고 넓어야 작품도 그렇게 탄생한다.
이를테면,
흥행 영화는, 물론
입소문과 함께 지인에게 그냥 무난하게
가볍게 추천할 만해서 그렇게 된 면도 없지 않다.
영화는 너무 심각해-이런 건 주로 혼자 보고 남에게 추천도
안 하지만-골치 아프지 않고 그저 콜라, 팝콘 먹으며-권선징악,
해피엔딩 구도를 따르면서-시원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게 성공하기 쉽다.
책이나 음악, 미술, 영화가 너무 예술에만 치우쳐
이해하기 쉽지 않거나 사회에서 용납하기 쉽지 않은
콘텐츠이기에,
“혹시 이 사람 변태 아냐, 뭐 이런 작품을 소개하고 그러냐?”
라는 괜한 오해를 살 우려도 있어서
남, 즉 가까운 사람에게 추천하기 어려워, 입소문이 안 나
흥행에 실패할 수도 있는데, 하여간 이런 사정을 고려해
국가에서 순수 예술 육성 차원에서도 순수 작품을 고루 발굴해
대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 같다.
같은 예술이라도 자기는 창작보단 후배 양성에
더 재능이 있고 흥미가 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하면 된다.
그런데 자기가 순수 예술 창작에 열정과 함께 어떤 끓는 희열
같은 것이 있다면 남의 말만 들어 쉽게 자기 순수 예술이
아닌 다른 길로 가는 건 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자기 재능을 썩히는 일이다.
이들이 순수 예술을 간단(間斷)없이 이끌어가는
주역이기 때문이다.
이런 열정적인 순수 예술가들이 딴생각을 해서
한 분야만 파서 세계적인 예술가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남의 말만 들을 것도 없이, 또 그걸 방지하려면
과연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 스스로 판단할
능력과 의지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자기 생각만 순수하게 80% 들어간 작품은 혁신적인 작품이
될 확률이 높지만, 남의 말과 그저 타협해 자기 생각이
겨우 20%만 들어간 작품은 대개 여기저기서 쉽게 얻을 수
있는 대체 가능한(Fungible) 작품이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국가도 이렇게 금방 성과가 안 나오더라도
열정 넘치는 순수 예술가를 지원하는 제도의 정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사회에서도 진짜 예술, 순수 예술을 하는 사람들을
배려하며 관심과 애정을 가져주어야 한다고 본다.
과학 분야도 너무 돈만 되고 사회적으로
편히 살고 촉망받을 것 같은 의사로만 몰려가서
과학 분야 노벨상이 안 나오는 것이다.
이건 한 개인에게도 문제지만 순수과학이나 순수 예술을 위해
국가에서 대대적이고 근본적인 정책을 힘 있게
추진하지 않은 것에도 문제의 원인이 있다고 본다.
그저 다른 건 걱정 안 하고 예술에만, 순수과학에만
전념해 열정을 바치고 연구하는 그런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본다.
순수 예술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대폭으로 우대하되
간섭은 최대한 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저변 문화를 조성하는데 국가는 힘써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만 K컬처가 세계적으로 더 각광(脚光) 받고
순수 분야 노벨상도 앞으로 더 많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순수 예술
● 누가 뭐래도 인간은 순수 예술을 가장 높게 친다. 그게 인간 욕망 가운데 가장 높은 단계에 속하기 때문이다.
● 그러나 순수 예술가는 돈이 안 되어 사회에서 고전하고 있다. 이들이 중간에 그만두지 않게 국가는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도 현실의 장애가 있더라도 예술적 자부심을 가지고 순수한 예술 열정의 불씨를 꺼뜨려선 안 된다.
● 국가는 금방 성과가 안 나 그래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순수 기반 예술을 발굴해 대폭 지원해서 K컬처와 노벨상 수상에 기여하게 해야 한다. 적어도 그들의 예술적 의지와 열정을 꺾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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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취재하면서 자기도 그런 짓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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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게 발음하는 말일 때 다른 글씨체로 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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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이 되면 정다운 골목이 사리지고 그야말로 자살 충동만 일 것 같은 삭막한 정이 안 드는 아파트만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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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일본은 집들이 다 저층이라 한국보단 백배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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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면 여러 가지 아는 게 많아 말할 때도 계속 말이 이어져 나온다. 한 가지 주제를 갖고 한 시간 이상을 떠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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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넘어지면서 엄청 아플 때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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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종잡을 수 없는 복잡한 마음에 같은 여자조차 피고해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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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우선
누구는 글을, 흐름의 리듬을 살리면서 쓴다고 하는데
나는 내용 전달이 우선이라 그런 걸 잘 신경 안 쓴다.
그래 글의 흐름이 내 글은 좀 거칠 것이다.
하는 수 없는 일이다.
어쩔수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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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그런 걸
페미니스트들은 대들고 항의하겠지만 확실히
여자들이 미신에 더 약하다.
점 같은 걸 더 잘 본다.
아마도 육체적으로 약하고 그러다 보니까 마음도 그래서
어디 큰 힘에 기대려는 게 분명 있기 때문이다.
강하고 의지가 센 것 같고, 돈 잘 벌 것 같고 잘생기고
이세를 위해 머리가 좋을 것 같은 남자에게 의지하는
그것과 같은 것이다.
부정해도 원래 자연이 그런 걸 어 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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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사랑에 목숨을 거는 쪽은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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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어긋나
사랑에 목숨 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이쪽에서 그런 감정이면 저쪽은 아닌 경우거나
다른 쪽을 목숨 걸고 사랑한다.
삶은 원래 이렇게 엇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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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만만하지 않고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말은 기득권이 그만큼 공고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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