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SF소설] 08.솔라리스 - 스타니스와프 렘

D-29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로 <대화>까지 읽었습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계속 책을 펼치게 만드네요. 인간의 인식과 지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솔라리스의 앞에서 압도되며 지켜볼 수 밖에 없던 과학자들의 심리가 종이를 넘어 저에게도 전해졌어요. 아래의 내용을 같이 생각해보겠습니다. 1) 복제된 하레이라는 존재가 캘빈에게 있어 과거의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할 치유의 기회라고 보시나요?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고통이나 저주라고 생각하나요? 2) 스나우트는 캘빈과 하레이의 사랑이 같지 않다고 부정합니다.(p.341) 여러분은 스나우트의 말에 공감하시나요? 3) 스나우트는 캘빈의 결정이 이 곳 솔라리스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합니다.(p.341) 또한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인간의 동기가 있을 수 없다는 얘기도 나오죠.(p.293) 법과 도덕, 윤리와 같은 인간적 가치는 그 자체로 불변의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단지 인간과 사회가 존재하기 때문에 의미가 부여될 뿐일까요?
1) 솔라리스는 복제된 하레이를 보면 캘빈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랐을 것 같아요. 소설에도 나오지만 얼핏 어린아이의 순진한 장난같은 것으로 느껴져요.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달린 문제인데 캘빈은 고통으로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2) 캘빈은 하레이의 정체를 알고, 하레이는 캘빈의 정체를 모르는 상태에서 사랑한다고 상대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같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스나우트 말에 공감합니다. 3) 법, 도덕, 윤리 같은 인간적 가치는 당연히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소설 솔라리스에서도 계속 주장했죠. 지구 위의 같은 인간들이 만든 사회라도 제각각의 법이나 도덕이 있을 정도인데 범우주적으로 볼 땐 더 하겠죠.
1) 새로운 형태의 사랑이지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심지어 하레이를 지구로 데리고 가려고 했는데, 두 번째 하레이의 선택 또한 캘빈에겐 또 다른 고통이었고요. 2) 물론입니다. 3) 작가가 '솔라리스'를 쓴 이유 중 하나가 인간의 잣대를 갖다 대지 말라는 부분도 있는 듯합니다. 특히 뒤에 있는 해설을 읽고, 여러 감독과 작품들에 대해 작가님이 실망해 하는 부분이 그런 부분들이지 않았나 싶네요. 작가님은 인간적이지 않은 솔라리스 본연의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싶었는데, 제가 보기엔 다른 분들은 굳이 인간적으로 바꾸려고 하는 모습에 실망하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법과 도덕, 윤리도 인간이 만들어낸 인간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계에 있는 생명체에게 그것이 필요한지조차 저는 모르겠습니다.
1) 솔라리스의 동기를 독자와 등장인물들은 알 수 없어도, 캘빈에게는 복제된 하레이와의 경험이 새로운 사랑을 얻을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액체 산소> 부분을 읽으면서 생각난 게 초반에 하레이를 로켓에 태워 날려 보내는 사건인데요. 두 사건이 정반대에서 서로 대비되는 느낌이었거든요. 우선 불과 얼음의 대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앞에서는 캘빈이 하레이를 치워버리기 위해 강제로 떠나보내면서 화상을 입는데, 이후에는 하레이가 먼저 캘빈을 떠나며 액체 산소를 마시면서 장기가 전부 동상을 입죠. 두 번째로는 캘빈의 대처의 변화인데 전에는 하레이를 눈에서 안 보이게 없애려다가 이후에는 자살하려는 하레이를 살려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또 대비가 되고요. 캘빈이 처음으로 하레이를 더 이상 이해불가능한 존재가 아닌, '하레이'로 받아들이려는 시도가 화상을 치유해주던 그녀의 손길을 느낄 때라고 봅니다. 자신의 매몰차고 잔인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하레이는 기억하지 못한다는 듯 아랑곳하지 않고 캘빈을 보살폈습니다. 그건 마치 자신의 실언으로 인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진짜 하레이'가 그를 용서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구도였어요. 솔라리스의 바다와 하레이는 그런 것들을 전혀 의도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캘빈 본인만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제가 캘빈이라면 그렇게 느꼈을 것 같네요. 다만 이 때까지의 캘빈은 심적으로는 하레이를 받아들였을지는 몰라도 아직 이성적으론 그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중간단계로 보였습니다. 가끔씩 그녀가 보이는 모방의 흔적을 발견할 때마다 환상에 머물던 의식이 현실로 돌아오며 공포를 느끼죠. 제2의 하레이를 마음으로 사랑하고 싶으면서도, 현재의 상황이 가져다주는 부조화가 계속 그 감정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런데 액체산소 사건을 겪으며 캘빈은 '복제된 하레이'가 진짜 하레이와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그녀를 받아들이게 된 것 같습니다. 자신을 계속 괴롭히던 과거의 하레이는 이미 죽었기에 그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없죠. 캘빈이 괴로운 이유는 오직 자기 자신의 머리 속에 남아있는 망령과도 같은 기억 때문입니다. 반면 지금 눈 앞의 하레이는 솔라리스가 만들어낸 복제물이기에, 원본과 같지 않기에 오히려 고유한 개체성을 유지하게 됩니다. 진짜 하레이였다면 하지 않았을 말들과 행동을 했고, 종종 소름이 돋았어도 그녀와의 사건사고는 과거라면 생각해볼 수도 없는 경험이 되었습니다. 그의 말처럼 지금 이 순간의 하레이는 오직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하려고 하는 반면, 캘빈은 계속해서 과거의 기억을 내려놓지 못하고 주위를 맴돌죠. 하지만 그 과거의 기억은 캘빈 자신의 인식 안에 머물러 있을 뿐, 그 관념은 복제된 하레이의 존재 그 자체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고 봐요. <액체 산소> 사건을 겪으면서 캘빈은 이제 과거의 하레이와 같지만 다른 존재로서 고유성을 가진 새로운 하레이에게서 새로운 사랑을 느낍니다. 과거의 아픈 기억이 망쳐버린 사랑 대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사랑이죠. 오히려 '같은 하레이'가 아니기 때문에 그녀를 사랑할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요? 이전에는 죽음이 그와 그녀의 사이를 갈라 놓았지만, 이제는 죽음조차 갈라 놓을 수 없는 사랑이 되었으니까요.
2) 관념적으로는 스나우트의 지적이 맞는 말일 겁니다. 복제된 하레이는 캘빈의 기억에서 만들어졌기에 자신이 캘빈을 진짜로 사랑하는 건지, 사랑해야 한다고 유도된 생각인 건지 혼란을 느끼기도 하고요. 그래도 저는 둘의 사랑이 같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또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네요.) 결국 감정이란 느끼는 본인이 그렇다고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살다보면 자신의 생각이나 신념, 본심과는 다른 말과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종종 오죠. 기존에 내가 했던 말과 행동 때문에 이제 와서 다른 선택을 내리면 일관성이 없어 보일까봐, 다른 사람들이 전부 맞다고 하는데 나만 아니라고 하기에는 눈치 보이고 튈까봐, 진짜 본심을 말하면 분위기나 상대의 기분을 망칠까봐 등 다양한 이유가 있죠. 나의 진짜 의도와 다른 선택을 하고 행동하면 그걸 괴로워하고 후회하거나, 그 순간을 계속 곱씹기도 하고요. 하지만 자신의 진심과 다른 또는 같은 선택을 내리건 말건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냐라고 봐요. 일관성이 무너지더라도 지금의 상황에서는 신념에 따라 과거의 선택과 반대되는 결정을 내렸다면 그는 일관성 대신 신념이 더 중요하다고 여긴 '본성'에 따라 행동한 거죠. 누군가에게 솔직히 말해서 또는 그러지 않음으로서 상대가 손해를 보지 않고,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어떤 결과이든 선택했다면 그는 내면의 '배려심'을 무시할 수 없어 본성을 따라 행동한 거고요. 캘빈과 복제된 하레이의 사랑에 있어서 중요한 건 그들이 인간이냐 복제물이냐 또는 주입된 생각이냐 아니냐 보다는 그들이 어떤 선택을 내리기로 했냐라고 생각해요. 캘빈은 복제된 하레이를 무시하거나, 그녀를 매번 제거하거나, 아니면 사르토리우스의 실험에 동참해 손님이 찾아오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지만 새로운 사랑을 발견하면서 그녀와 함께 하기로 하죠. 복제된 하레이 또한 자기자신과 자아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 부딪혀 괴로워 했지만 캘빈의 진심을 접하면서 '다른 하레이'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로 세우고 그와 함께 하기로 하죠. 시간과 관념, 물리적 존재를 넘어 오직 순수한 감정의 연결고리만이 모든 것을 초월해 이어질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이 둘의 사랑은 어색하고 이질적일지 몰라도 결국 이어져있는 사랑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적다 보니 뭔가 영화 인터스텔라가 생각나네요.)
저도 오늘 완독했습니다. 끝까지 읽고, 제가 정말 읽고 싶었던 SF 책이 '솔라리스'였다는 걸 깨달았어요. 읽을 때도 감탄했지만, 결말이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들은 어떤 성과를 기대하는 거죠?" "자신들도 잘 몰라. 그게 뭐든, 그저 무슨 일이든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기대하는 거지."
솔라리스 p.352,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사르토리우스는 팔짱을 낀 채로 스나우트를 주시하면서, 이따금 방 안을 둘러보았지만, 하레이의 존재는 일부러 모른 척하는 듯했다.
솔라리스 p.355,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책을 읽다보면 중간중간 저장매체로 필름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오네요. 고전SF들은 읽을 때 이런 부분들도 재밌는 감상 포인트더군요. 요 점은 클라우드 때문에 USB조차 잘 안쓰는 시대니까요. 미래의 가상의 얘기를 말하면서도 과거의 흔적이 담겨있는데, 정작 너무 오래전(?) 얘기라 시간의 감이 안 잡히다보니 미래처럼 멀게만 느껴지네요.
"반면 우리는 우주의 잡초처럼 흔하고 평범한 존재에 불과해. 우리는 자신의 평범함에 자부심을 갖고, 그것이 넓게 통용되고 있다는 점을 과시하며, 우리가 우주의 모든 것을 장악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어. 그래서 대담하고 유쾌하게 이 기나긴 여정을 시작하며 일종의 소식을 만들었지. 이곳은 다른 세계라고! 하지만 다른 세계라는 건 도대체 뭘까?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그들을 정복하든가 그들이 우리를 정복하든가 둘 중 하나일 텐데 말야. 우리의 보잘것 없는 두뇌는 이런 수준의 생각 밖에는 못 하는 거지."
솔라리스 p.353,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그러다 '그라빈수키의 육십 년' 중 마지막 이십오 년 동안에는 과거의 콜로이드-기계 학설의 재림이라고 할 수 있는, '비정신적 바다'의 개념이 각광받게 되었다. 바다의 활동에 자주적인 의지나 내적인 동기가 개입되고 있고, 각 과정마다 목적과 이유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어떻게든 입증해 보려던 과거 세대의 주장은 이제 당대의 학자들에게는 오류로 여겨진다.
솔라리스 p.367,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그러니까 우리가 보는 솔라리스의 바다라는 것은 수천 년 전에 이미 발전의 정점에 다다른 유기체인데, 현재까지 남아있는 형체는 물리적인 통합체의 잔해에 불과하며, 그것도 무의미하고 쓸모없는 형성체로 분해되는 중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가설에 따르면, 솔라리스의 바다가 만들어 내는 부조리한 형성체는 기념비적인 형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수세기에 걸쳐 진행되는 단말마의 고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한 신장체나 미모이드는 종양의 일종으로 여겨졌고, 이 거대한 유동체를 움직이는 일련의 과정은 혼돈과 무질서의 징후로 간주되었다.
솔라리스 p.370~371,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솔라리스의 살아 있는 바다는 결코 우리 인간을 무시하는 게 아니고, 코끼리가 제 등에서 기어 다니는 개미를 인지하지 못하듯, 단지 우리 인간의 존재를 깨닫지 못할 뿐이라고 그는 끈질기게 주장했다.
솔라리스 p.372,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솔라리스의 바다가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으며, '은둔적 존재'라는 주장은 타당성을 잃었다. 바다가 반복되는 감각 기관의 수축으로 인해 외부의 현상이나 대상의 존재를 더는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스스로가 만들어 낸 거대한 의식의 흐름 속에 갇힌 채로 두 태양의 주위를 공전하는 거처, 요람, 창조의 산실에 불과하다는 가설은 이미 무효가 된 것이다.
솔라리스 p.377,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그러므로 이 바다는 단순히 존재할 뿐 아니라, 살아 있고, 생각하며, 행동하는 생명체다. '솔라리스 문제'를 부조리의 차원으로 치부하거나 완전히 제거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영원히 사라졌다. 우리의 상대는 명백한 실체고,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패배 또한 아무리 부인하려 해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의심의 여지 없이 입증된 것이다. 좋든 싫든 인류는 솔라리스라는 이웃을 인식해야만 한다.
솔라리스 p.377~378,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생각하는 거대한 바다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인간은 평화로울 수가 없다. 설사 우리가 은하계를 구석구석 탐사해서 우리 인간과 흡사한 문명을 발견한다 해도, 솔라리스는 인간에게 영원히 수수께끼의 도전장을 내밀 것이다.
솔라리스 p.378,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어제 <사상가들>을 읽었습니다. 솔라리스에 대한 학자와 세간의 인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에 대한 설명 위주인데도 흥미롭네요. 꼭 진짜 지구에서 일어나는 역사나 철학의 변천사처럼 느껴졌습니다. 솔라리스로부터 온갖 기대를 갖고 접근했지만 생각한 반응과 결과가 나오지 않고, 무심한 결과가 반복되면서 점차 학자들이 짜증을 내다가 나중에는 관심을 끊는 흐름이 마치 인간관계 같네요. 연구의 기류나 학풍, 주류 의견이라는 것은 사람의 사고와 의식을 담았다 해도 그 자체로는 생명이 없는 정신일 뿐인데 마치 생명처럼 변화하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어쩌면 솔라리스와 인간이 보기보다 비슷한 점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과학자들이 기대한 '접촉'은 문명과 이성을 가진 존재와의 '인간적 교류'였겠지만 다른 생명과의 접촉은 생각보다 훨씬 스펙트럼이 넓고 유리의 상상과 다를 수 있다고 지적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비인간적인 존재를 탐구하면서도 그 안에서 여전히 인간성을 찾고 싶어 하지만 그건 결국 인간 자신의 환상일 뿐이겠죠. 스케일과 규모가 다를 뿐, 캘빈이 복제된 하레이에게서 죽은 연인을 겹쳐서 보는 기억과 과학자들의 접촉에 대한 갈망이 닮았다고 느꼈어요.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 깃든 인간성이 보이지 않나요?" "저는 차라리 인간에게 깃든 비인간성을 찾겠습니다."
화성 연대기 p.201,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조호근 옮김
화성 연대기SF와 환상문학의 거장 레이 브래드버리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현대문학에서 그의 대표작 『화성 연대기』와 『태양의 황금 사과』가 동시 출간됐다. 이전 한국어 판본들에서 만나지 못했던 두 편의 에피소드 및 작가 에세이가 추가됐으며, 아울러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존 스칼지의 서문을 특별히 함께 실었다.
이전에 읽었던 <화성 연대기>에 비슷한 의미의 문장이 생각나서 적어봤습니다.
오! 저도 이 문장 좋았는데.... 저는 항상 '인간적으로'라는 단어에 의심을 품습니다. '인간적으로'라는 게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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