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오늘 완독했습니다. 끝까지 읽고, 제가 정말 읽고 싶었던 SF 책이 '솔라리스'였다는 걸 깨달았어요. 읽을 때도 감탄했지만, 결말이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함께 읽는 SF소설] 08.솔라리스 - 스타니스와프 렘
D-29

꽃의요정

은화
"저들은 어떤 성과를 기대하는 거죠?"
"자신들도 잘 몰라. 그게 뭐든, 그저 무슨 일이든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기대하는 거지."
『솔라리스』 p.352,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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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사르토리우스는 팔짱을 낀 채로 스나우트를 주시하면서, 이따금 방 안을 둘러보았지만, 하레이의 존재는 일부러 모른 척하는 듯했다.
『솔라리스』 p.355,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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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책을 읽다보면 중간중간 저장매체로 필름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오네요. 고전SF들은 읽을 때 이런 부분들도 재밌는 감상 포인트더군요. 요 점은 클라우드 때문에 USB조차 잘 안쓰는 시대니까요.
미래의 가상의 얘기를 말하면서도 과거의 흔적이 담겨있는데, 정작 너무 오래전(?) 얘기라 시간의 감이 안 잡히다보니 미래처럼 멀게만 느껴지네요.

은화
“ "반면 우리는 우주의 잡초처럼 흔하고 평범한 존재에 불과해. 우리는 자신의 평범함에 자부심을 갖고, 그것이 넓게 통용되고 있다는 점을 과시하며, 우리가 우주의 모든 것을 장악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어. 그래서 대담하고 유쾌하게 이 기나긴 여정을 시작하며 일종의 소식을 만들었지. 이곳은 다른 세계라고! 하지만 다른 세계라는 건 도대체 뭘까?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그들을 정복하든가 그들이 우리를 정복하든가 둘 중 하나일 텐데 말야. 우리의 보잘것 없는 두뇌는 이런 수준의 생각 밖에는 못 하는 거지." ”
『솔라리스』 p.353,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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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 그러다 '그라빈수키의 육십 년' 중 마지막 이십오 년 동안에는 과거의 콜로이드-기계 학설의 재림이라고 할 수 있는, '비정신적 바다'의 개념이 각광받게 되었다. 바다의 활동에 자주적인 의지나 내적인 동기가 개입되고 있고, 각 과정마다 목적과 이유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어떻게든 입증해 보려던 과거 세대의 주장은 이제 당대의 학자들에게는 오류로 여겨진다. ”
『솔라리스』 p.367,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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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 그러니까 우리가 보는 솔라리스의 바다라는 것은 수천 년 전에 이미 발전의 정점에 다다른 유기체인데, 현재까지 남아있는 형체는 물리적인 통합체의 잔해에 불과하며, 그것도 무의미하고 쓸모없는 형성체로 분해되는 중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가설에 따르면, 솔라리스의 바다가 만들어 내는 부조리한 형성체는 기념비적인 형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수세기에 걸쳐 진행되는 단말마의 고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한 신장체나 미모이드는 종양의 일종으로 여겨졌고, 이 거대한 유동체를 움직이는 일련의 과정은 혼돈과 무질서의 징후로 간주되었다. ”
『솔라리스』 p.370~371,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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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 솔라리스의 살아 있는 바다는 결코 우리 인간을 무시하는 게 아니고, 코끼리가 제 등에서 기어 다니는 개미를 인지하지 못하듯, 단지 우리 인간의 존재를 깨닫지 못할 뿐이라고 그는 끈질기게 주장했다. ”
『솔라리스』 p.372,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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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솔라리스의 바다가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으며, '은둔적 존재'라는 주장은 타당성을 잃었다. 바다가 반복되는 감각 기관의 수축으로 인해 외부의 현상이나 대상의 존재를 더는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스스로가 만들어 낸 거대한 의식의 흐름 속에 갇힌 채로 두 태양의 주위를 공전하는 거처, 요람, 창조의 산실에 불과하다는 가설은 이미 무효가 된 것이다. ”
『솔라리스』 p.377,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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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 그러므로 이 바다는 단순히 존재할 뿐 아니라, 살아 있고, 생각하며, 행동하는 생명체다. '솔라리스 문제'를 부조리의 차원으로 치부하거나 완전히 제거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영원히 사라졌다. 우리의 상대는 명백한 실체고,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패배 또한 아무리 부인하려 해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의심의 여지 없이 입증된 것이다. 좋든 싫든 인류는 솔라리스라는 이웃을 인식해야만 한다. ”
『솔라리스』 p.377~378,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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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 생각하는 거대한 바다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인간은 평화로울 수가 없다. 설사 우리가 은하계를 구석구석 탐사해서 우리 인간과 흡사한 문명을 발견한다 해도, 솔라리스는 인간에게 영원히 수수께끼의 도전장을 내밀 것이다. ”
『솔라리스』 p.378,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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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어제 <사상가들>을 읽었습니다. 솔라리스에 대한 학자와 세간의 인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에 대한 설명 위주인데도 흥미롭네요. 꼭 진짜 지구에서 일어나는 역사나 철학의 변천사처럼 느껴졌습니다.
솔라리스로부터 온갖 기대를 갖고 접근했지만 생각한 반응과 결과가 나오지 않고, 무심한 결과가 반복되면서 점차 학자들이 짜증을 내다가 나중에는 관심을 끊는 흐름이 마치 인간관계 같네요.
연구의 기류나 학풍, 주류 의견이라는 것은 사람의 사고와 의식을 담았다 해도 그 자체로는 생명이 없는 정신일 뿐인데 마치 생명처럼 변화하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어쩌면 솔라리스와 인간이 보기보다 비슷한 점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과학자들이 기대한 '접촉'은 문명과 이성을 가진 존재와의 '인간적 교류'였겠지만 다른 생명과의 접촉은 생각보다 훨씬 스펙트럼이 넓고 유리의 상상과 다를 수 있다고 지적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비인간적인 존재를 탐구하면서도 그 안에서 여전히 인간성을 찾고 싶어 하지만 그건 결국 인간 자신의 환상일 뿐이겠죠.
스케일과 규모가 다를 뿐, 캘빈이 복제된 하레이에게서 죽은 연인을 겹쳐서 보는 기억과 과학자들의 접촉에 대한 갈망이 닮았다고 느꼈어요.

은화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 깃든 인간성이 보이지 않나요?"
"저는 차라리 인간에게 깃든 비인간성을 찾겠습니다."
『화성 연대기』 p.201,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조호근 옮김

화성 연대기SF와 환상문학의 거장 레이 브래드버리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현대문학에서 그의 대표작 『화성 연대기』와 『태양의 황금 사과』가 동시 출간됐다. 이전 한국어 판본들에서 만나지 못했던 두 편의 에피소드 및 작가 에세이가 추가됐으며, 아울러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존 스칼지의 서문을 특별히 함께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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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이전에 읽었던 <화성 연대기>에 비슷한 의미의 문장이 생각나서 적어봤습니다.

꽃의요정
오! 저도 이 문장 좋았는데....
저는 항상 '인간적으로'라는 단어에 의심을 품습니다.
'인간적으로'라는 게 뭘까요?
밥심
인간적이란 말에는 인간의 비합리적인 의사결정과 행동, 그리고 감정에 휩쓸려 이성을 잃곤하는 특성도 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이언 매큐언이 쓴 소설 <나 같은 기계들>을 보면 인간의 비합리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공지능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 같은 기계들현대 영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이언 매큐언의 열다섯번째 장편소설이자 그의 유일무이한 SF 소설로, 과학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한 가상의 과거를 배경으로 인류 최초의 인조인간을 손에 넣은 청년의 이야기를 통해 인공지능시대의 윤리를 집요하게 묻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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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이 문장 좋죠 ㅎㅎ 수도사와 화성인들 간의 접촉은 초월적인 느낌이 들긴 해도 여전히 인간적 존재의 요소가 담겨있죠. 외계인이라고 하지만 마치 초탈한 종교인과 대화하는 것만 같은..
반면 솔라리스의 바다는 의사소통은커녕 접촉과 교류가 가능한지도 의심스러운데 과학자들의 입장에서는 벽과 대화하는 느낌이었겠죠. 전 솔라리스 연구사의 끝으로 갈수록 기존의 희망과 기대에 차있던 평가가 실망을 넘어 의도성을 담은 비난처럼 느껴졌어요. 마치 자기가 관심 있거나 좋아하는 상대에게 노력해서 다가갔는데도 호응을 제대로 안 하거나 관심을 주지 않으면 당황하다가 질투하고 나중에는 반감을 갖는 것 처럼요. 과학자들이 솔라리스를 일부러 평가절하 하는 느낌이랄까요?
혐오스럽든 숭고하든, 추잡하고 더럽든 고상하든, 선하든 악하든, 합리적이든 비논리적이든 인간의 감성과 정신을 자극하고 주고받는 존재를 인류는 원했겠죠. 그런데 막상 만난 우주의 이웃이 우리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규칙에 따라(애초에 규칙이 있기는 한지도 의심스러운) 움직일 뿐인 아메바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네요.
과학자들이 불쾌하게 느낀 이유는 자신들이 상위의 입장에서 분석하고 접촉할 기회를 '하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연구의 목적과 접촉의 근원을 뿌리째 뒤흔드는 의심을 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벽에게 말과 물음을 던져봐야 받을 상대가 없기 때문에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죠. 바깥의 대상에만 집중되어 있던 의식과 목적이 자신에게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요. 보통 우리는 빠르고 복잡하게 돌아가는 세상과 주변환경에 휩쓸리느라 자기 자신을 대면할 시간이 많지 않죠. 그래서 오히려 복잡한 수많은 세상은 소식을 쫓으며 따라가도 자기 자신은 잘 알지 못하고요.
어디든 탐구하고 개척할 곳이 넘쳐나는 광활한 우주, 교류할 수 있는 지적인 존재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낼 인류의 운명을 기대했지만 솔라리스의 바다는 그것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듯 영원히 침묵하죠. 그 결과 이 모든 연구와 우주진출의 의미가 무엇인지 회의감을 갖게 만들고 과학자들 스스로도 의심에 빠지게 만들고요.
그런 점에서 보면 인간적이라는 말은 대상이나 사물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받아들이고 싶은 렌즈나 가림막 같은 게 아닐까 싶네요. 인간이 보다 고차원적이거나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고 사물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막는 투명한 벽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은화
오후에 <성공>까지 읽었습니다. <오래된 미모이드>는 일부러 남겨두었어요. 책의 결말에 가까워지면 가장 조용한 시간에 읽는 걸 선호하는데 보통 잠자기 전에 읽곤 합니다. 오늘로 전 완독을 하게 되겠네요.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될지 빨리 확인하고 싶습니다.

은화
오늘부터는 일정상 마지막 장의 결말까지 포함하는 관계로 혹시 책을 아직 읽고 계신 분들은 새로 올라오는 글들을 읽기 전에 유념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이후 남는 일정은 감상의 시간이긴 하나 완독하신 분들은 먼저 느낀 점이나 생각을 자유롭게 올리셔도 됩니다.

은화
“ 이틀째 되던 날 늦은 밤, 우리는 남극 가까운 지점까지 도달했다. 푸른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저물고 있었고, 동시에 반대편 수평선 위로는 구름 주위가 선홍빛으로 물들며, 붉은 태양의 일출을 예고하고 있었다. 광대한 바다 위로 펼쳐진 텅 빈 하늘에서 금속처럼 번쩍이는, 섬뜩한 푸른색과 은은한 진홍빛 불꽃이 맹렬히 충돌하고 있었다. 바다 또한 두 태양 사이의 힘겨루기에 휘말린 듯, 둘로 쪼개어져 한쪽은 수은처럼 반짝였고, 다른 쪽은 선홍빛을 내뿜었다. ”
『솔라리스』 p.386,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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