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SF소설] 08.솔라리스 - 스타니스와프 렘

D-29
당연한 일이지만, 연구의 초기 단계에 과학자들은 이 미모이드가 솔라리스 바다의 중심이자, 그토록 갈망해오던 두 문명 간 접촉이 실현되는 증거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과학자들은 접촉의 가능성이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모이드의 모든 활동은 그저 복제로 시작해서 복제로 끝났다. 그것은 아무 의미도 개연성도 없는 단순한 모방에 지나지 않았다.
솔라리스 p.254,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인간은 한 번에 몇 가지 사실들만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는 그저 지금 이곳,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만을 볼 뿐, 그것이 아무리 통합적이고 상호보완적이라 해도 동시에 일어나는 다양한 과정을 한꺼번에 인식할 수는 없다. 우리의 인지 능력은 상대적으로 단순한 현상을 인식하는 경우에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솔라리스 p.262,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이전 내용이긴 하지만, 이 부분의 단락을 읽을 때 좀 여러 생각이 겹쳐서 떠오르더라고요. 우리는 인간 종으로서의 감각기관을 통해서만 세상을 인지하며, 또한 각자의 이해관계와 자신의 입장에 근거해서 상황을 해석합니다. 우리는 결국 사물이나 사건의 어느 일부 면은 보더라도 절대로 '전체'를 볼 수는 없는 건가 생각이 들었어요. 감각적인 차원에서 보면 인간은 시각을 통해 가시광선밖에 볼 수 없죠. 하지만 곤충이나 어류 등 다른 생물들은 가시광선만이 아닌 다른 기관과 감각을 통해서도 세상을 인지하죠. 심지어 눈이 퇴화한 대신 진동이나 음파를 통해 주변 사물을 인식하기도 하고요. 열적외선이나 X선으로 본 물체는 다르게 보이듯 말이죠. 감각의 측면을 넘어 개인의 생활이나 삶에 있어서도 어떤 사건이나 상황이 심리상태나 타인과의 관계에 따라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경우들도 있죠. 나 자신은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행동이나 말인데 상대는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도 하고, 조직에서 공적인 업무상의 나의 존재와 사생활에서의 나 자신이 다르기도 하고요.
“그러한 실수 자체는 사소할지 몰라도, 스티븐스, 더 큰 의미가 담겨 있다는 걸 분명히 알아야 하네.”
남아 있는 나날 p.85~86,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남아 있는 나날2017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대표작. 대를 이어 집사라는 직업에 헌신해 온 ‘스티븐스’라는 인물을 통해 양차 세계 대전 사이 영국 격변기의 모습과 여행길에서 바라본 1950년대 영국의 사회상을 교차한 작품이다.
얼마 전 오프라인 독서 모임에서 지정도서로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을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위와 같은 문장이 나와요. 작품을 안 읽은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을 드리자면 주인공인 '스티븐스'는 아버지를 이어 집사를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주인을 모시던 어느 날, 스티븐스의 부친은 나이와 육체의 노화를 견디지 못하여 손님들 앞에서 물건을 들고 옮기다 넘어지는 일이 발생합니다. 당시 스티븐스가 모시던 주인은 조만간 아주 중요한 귀빈들이 오는 만찬 일정을 준비하던 입장이었기에 혹여나 행사 당일에 스티븐스의 아버지가 큰 실수를 저지를까 걱정하여 주인공을 불러 위와 같이 말을 해요. 단순히 일회성의 실수로 볼 것이 아니라, 중요한 행사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어떻게 보면 그저 단순한 업무상 실수로 나이가 들면서 당연히 생기는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스티븐스의 주인이 과하게 예민하게 구는 것 아닌가 여길 수도 있을테고, 공과 사를 구분하는 입장이라면 그의 지적에 공감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말 그대로 사소한 실수이지만 그 실수가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사건의 너머'를 보라는 문장이었는데 왠지 솔라리스의 문제와도 겹쳐 보였어요. 이전의 다른 회사에서 신입으로 근무할 당시 제 선배도 비슷한 말을 자주 하곤 했습니다. 일을 할 때 그냥 하지 말고, 방법론적인 해결법만 신경쓰지 말고 '왜 그 일을 하는지, 그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고 일을 하라고 말이죠. 사원일 적에는 그 말의 뜻을 이해를 못해서 별로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 날 하루하루 쌓인 일을 쳐내기에 바쁜데 무슨 일의 의미야 의미는.. 하며 귀찮아 했거든요. 하지만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그때의 선배의 말이 종종 생각나곤 합니다. 똑같거나 비슷한 회사 일을 하면서도 어떤 과업은 열의를 가지고 하게 되지만, 어떤 일은 난이도가 쉽건 어렵건 상관없이 정이 안 붙고 의욕이 안 생기는 일이 있거든요. 생각해 보면 결국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납득하지 못했기에 열심히 할 이유를 못 느꼈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말 그대로 '일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경우들이었죠. 그 자체로 놓고 보면 단순한 사건과 일화와 사물일 뿐이지만 그것을 둘러싼 수많은 의미들이 우리 곁을 무수히 스쳐가고 또 사라지거나 생겨나죠. 감각적으로도 인식적으로도 우리는 우리 주변의 대상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하물며 나 자신 또는 타인, 더 나아가 세계나 우주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미술학원이나 학교 미술시간에는 종종 스케치 연습으로 인물의 두상이나 흉상 또는 정다면체를 보고 그리게 하죠. 하지만 우리가 보고 그리는 정다면체는 내가 앉아 있는 자리에서 본 각도의 물체일 뿐, 다른 각도에서 또는 뒤나 위 대각선에서 본 모습은 또 다릅니다. 사물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모든 각도에서, 안과 밖에서, 모든 빛의 시선에서 바라봐야 하지만 우리는 결코 그렇게 하지 못하죠. 솔라리스를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은 단순히 인식론적인 문제를 넘어 '모든 의미에서' 우리가 결코 다가갈 수 없는 존재라는 지적이 아닐까요.
개개의 대칭체는 유일무이하며, 그 유일무이함의 대부분은 내부에서 일어나는 독자적인 현상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솔라리스 p.267,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이 문장을 읽을 때 사람의 '마음'을 말하는 것처럼 읽혔어요. 모든 대칭체처럼 모든 인간은 그 자체로 고유하며, 그 고유성은 내부에서 기인한다는 점.. 우리를 남들과 같지 않으며 독특한 개체로 유지시키는 근원은 경험, 교육, 본성, 성장과정 같은 다양한 선천적/후천적 요인들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정신세계와 심리에서 나오죠. 어쩌면 이 모든 바다의 현상은 솔라리스가 마음을 그려내고 있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다만 이 또한 책에서 계속 나오는 것처럼 인간 중심적인 오류의 관점이고, 실제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죠. 독자를 포함한 이 책의 모든 인물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모든 현상을 자의적으로 인식하고 싶어하지만 진실은 결코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작가가 중간중간 문장으로 때려서 훈계하는(?) 느낌이 내내 들더군요.
작가가 글을 잘 쓴다고 느낀 점도 이 부분이었어요. 계속 캘빈의 생각을 빌려 우리에게 '인간 중심적 사고로 솔라리스를 이해하지 마라' 라고 지적하는데 이게 자칫 독자에게 감상의 방해나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솔라리스라는 거대하면서도 불분명한 미지의 공간과 배경을 아주 정밀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묘사했기에 독자 자신도 인간 감정의 연장선에서 사건과 인물, 솔라리스를 이해해야 하는지 아니면 거기에 어떤 의미도 없는지 스스로 의식하게 만들죠. 작가가 의도한 지적의 외주화(?)가 참 잘 구성되고 작품의 소재 그 자체에 녹아든 느낌입니다.
'솔라리스'도 굉장히 감탄하며 봤지만, 은화님의 글을 읽으니 솔라리스에 대한 깊이감이 더합니다. 제가 언어화하지 못한 부분을 글로 구체화해 주셔서 감사해요! 게다가 명료하기까지~
그러게 말입니다. @은화 님이 문학 비평을 공부하신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저도 그저 책과 작가 앞에 서있는 평범한 한 명의 독자인데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너무 감사하면서도 왠지 부끄럽네요 ^^;; <솔라리스>를 읽으면서 계속 느낀 게 행성 솔라리스의 분위기처럼 무언가 잡힐듯 말듯 하더라고요. 인간의 의식, 타자와의 관계성, 인식론, 지능과 생각과 꿈 등 여러 철학과 정신의 영역을 넘나들면서도 모든 곳에 발을 전부 걸치고 있달까요. 책과 글이 독자에게 감명을 주려면 분명하고 명확하게 하기 보다는 불분명하고 여지를 남겨야 그 틈을 독자가 채울 수 있다는 내용을 다른 곳에서 봤는데 솔라리스에 딱 어울리는 말 같네요.
솔라리스의 바다를 핵무기로 파괴해아 한다는 청원이 제기된 것은, 솔라리스 연구가 시작된 이래, 그때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복수보다 훨씬 가혹한 방식이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은 모두 파괴해야 한다는 식의 대응책이었기 때문이다.
솔라리스 p.270,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책의 뒷표지에도 써있던 문장이지만 <괴물>을 읽다가 혹시나 솔라리스의 운명이 인간에 의한 멸망인가 싶어서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도 과학자들이 결사반대하여 막아냈군요.
인간이 존재하지도 않는 곳에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동기 따위가 있을 리 없다.
솔라리스 p.293,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놔, 놓으란 말예요. 당신은 나를 끔찍하다고 생각하잖아? 다 알고 있어! 이런 식은 싫어요! 당신은 알잖아, 이게 내가 아니라는 것을. 이것은 내가 아니야, 아니라고……”
솔라리스 p.312,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오늘로 <대화>까지 읽었습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계속 책을 펼치게 만드네요. 인간의 인식과 지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솔라리스의 앞에서 압도되며 지켜볼 수 밖에 없던 과학자들의 심리가 종이를 넘어 저에게도 전해졌어요. 아래의 내용을 같이 생각해보겠습니다. 1) 복제된 하레이라는 존재가 캘빈에게 있어 과거의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할 치유의 기회라고 보시나요?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고통이나 저주라고 생각하나요? 2) 스나우트는 캘빈과 하레이의 사랑이 같지 않다고 부정합니다.(p.341) 여러분은 스나우트의 말에 공감하시나요? 3) 스나우트는 캘빈의 결정이 이 곳 솔라리스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합니다.(p.341) 또한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인간의 동기가 있을 수 없다는 얘기도 나오죠.(p.293) 법과 도덕, 윤리와 같은 인간적 가치는 그 자체로 불변의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단지 인간과 사회가 존재하기 때문에 의미가 부여될 뿐일까요?
1) 솔라리스는 복제된 하레이를 보면 캘빈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랐을 것 같아요. 소설에도 나오지만 얼핏 어린아이의 순진한 장난같은 것으로 느껴져요.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달린 문제인데 캘빈은 고통으로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2) 캘빈은 하레이의 정체를 알고, 하레이는 캘빈의 정체를 모르는 상태에서 사랑한다고 상대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같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스나우트 말에 공감합니다. 3) 법, 도덕, 윤리 같은 인간적 가치는 당연히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소설 솔라리스에서도 계속 주장했죠. 지구 위의 같은 인간들이 만든 사회라도 제각각의 법이나 도덕이 있을 정도인데 범우주적으로 볼 땐 더 하겠죠.
1) 새로운 형태의 사랑이지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심지어 하레이를 지구로 데리고 가려고 했는데, 두 번째 하레이의 선택 또한 캘빈에겐 또 다른 고통이었고요. 2) 물론입니다. 3) 작가가 '솔라리스'를 쓴 이유 중 하나가 인간의 잣대를 갖다 대지 말라는 부분도 있는 듯합니다. 특히 뒤에 있는 해설을 읽고, 여러 감독과 작품들에 대해 작가님이 실망해 하는 부분이 그런 부분들이지 않았나 싶네요. 작가님은 인간적이지 않은 솔라리스 본연의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싶었는데, 제가 보기엔 다른 분들은 굳이 인간적으로 바꾸려고 하는 모습에 실망하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법과 도덕, 윤리도 인간이 만들어낸 인간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계에 있는 생명체에게 그것이 필요한지조차 저는 모르겠습니다.
1) 솔라리스의 동기를 독자와 등장인물들은 알 수 없어도, 캘빈에게는 복제된 하레이와의 경험이 새로운 사랑을 얻을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액체 산소> 부분을 읽으면서 생각난 게 초반에 하레이를 로켓에 태워 날려 보내는 사건인데요. 두 사건이 정반대에서 서로 대비되는 느낌이었거든요. 우선 불과 얼음의 대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앞에서는 캘빈이 하레이를 치워버리기 위해 강제로 떠나보내면서 화상을 입는데, 이후에는 하레이가 먼저 캘빈을 떠나며 액체 산소를 마시면서 장기가 전부 동상을 입죠. 두 번째로는 캘빈의 대처의 변화인데 전에는 하레이를 눈에서 안 보이게 없애려다가 이후에는 자살하려는 하레이를 살려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또 대비가 되고요. 캘빈이 처음으로 하레이를 더 이상 이해불가능한 존재가 아닌, '하레이'로 받아들이려는 시도가 화상을 치유해주던 그녀의 손길을 느낄 때라고 봅니다. 자신의 매몰차고 잔인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하레이는 기억하지 못한다는 듯 아랑곳하지 않고 캘빈을 보살폈습니다. 그건 마치 자신의 실언으로 인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진짜 하레이'가 그를 용서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구도였어요. 솔라리스의 바다와 하레이는 그런 것들을 전혀 의도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캘빈 본인만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제가 캘빈이라면 그렇게 느꼈을 것 같네요. 다만 이 때까지의 캘빈은 심적으로는 하레이를 받아들였을지는 몰라도 아직 이성적으론 그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중간단계로 보였습니다. 가끔씩 그녀가 보이는 모방의 흔적을 발견할 때마다 환상에 머물던 의식이 현실로 돌아오며 공포를 느끼죠. 제2의 하레이를 마음으로 사랑하고 싶으면서도, 현재의 상황이 가져다주는 부조화가 계속 그 감정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런데 액체산소 사건을 겪으며 캘빈은 '복제된 하레이'가 진짜 하레이와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그녀를 받아들이게 된 것 같습니다. 자신을 계속 괴롭히던 과거의 하레이는 이미 죽었기에 그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없죠. 캘빈이 괴로운 이유는 오직 자기 자신의 머리 속에 남아있는 망령과도 같은 기억 때문입니다. 반면 지금 눈 앞의 하레이는 솔라리스가 만들어낸 복제물이기에, 원본과 같지 않기에 오히려 고유한 개체성을 유지하게 됩니다. 진짜 하레이였다면 하지 않았을 말들과 행동을 했고, 종종 소름이 돋았어도 그녀와의 사건사고는 과거라면 생각해볼 수도 없는 경험이 되었습니다. 그의 말처럼 지금 이 순간의 하레이는 오직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하려고 하는 반면, 캘빈은 계속해서 과거의 기억을 내려놓지 못하고 주위를 맴돌죠. 하지만 그 과거의 기억은 캘빈 자신의 인식 안에 머물러 있을 뿐, 그 관념은 복제된 하레이의 존재 그 자체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고 봐요. <액체 산소> 사건을 겪으면서 캘빈은 이제 과거의 하레이와 같지만 다른 존재로서 고유성을 가진 새로운 하레이에게서 새로운 사랑을 느낍니다. 과거의 아픈 기억이 망쳐버린 사랑 대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사랑이죠. 오히려 '같은 하레이'가 아니기 때문에 그녀를 사랑할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요? 이전에는 죽음이 그와 그녀의 사이를 갈라 놓았지만, 이제는 죽음조차 갈라 놓을 수 없는 사랑이 되었으니까요.
2) 관념적으로는 스나우트의 지적이 맞는 말일 겁니다. 복제된 하레이는 캘빈의 기억에서 만들어졌기에 자신이 캘빈을 진짜로 사랑하는 건지, 사랑해야 한다고 유도된 생각인 건지 혼란을 느끼기도 하고요. 그래도 저는 둘의 사랑이 같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또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네요.) 결국 감정이란 느끼는 본인이 그렇다고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살다보면 자신의 생각이나 신념, 본심과는 다른 말과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종종 오죠. 기존에 내가 했던 말과 행동 때문에 이제 와서 다른 선택을 내리면 일관성이 없어 보일까봐, 다른 사람들이 전부 맞다고 하는데 나만 아니라고 하기에는 눈치 보이고 튈까봐, 진짜 본심을 말하면 분위기나 상대의 기분을 망칠까봐 등 다양한 이유가 있죠. 나의 진짜 의도와 다른 선택을 하고 행동하면 그걸 괴로워하고 후회하거나, 그 순간을 계속 곱씹기도 하고요. 하지만 자신의 진심과 다른 또는 같은 선택을 내리건 말건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냐라고 봐요. 일관성이 무너지더라도 지금의 상황에서는 신념에 따라 과거의 선택과 반대되는 결정을 내렸다면 그는 일관성 대신 신념이 더 중요하다고 여긴 '본성'에 따라 행동한 거죠. 누군가에게 솔직히 말해서 또는 그러지 않음으로서 상대가 손해를 보지 않고,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어떤 결과이든 선택했다면 그는 내면의 '배려심'을 무시할 수 없어 본성을 따라 행동한 거고요. 캘빈과 복제된 하레이의 사랑에 있어서 중요한 건 그들이 인간이냐 복제물이냐 또는 주입된 생각이냐 아니냐 보다는 그들이 어떤 선택을 내리기로 했냐라고 생각해요. 캘빈은 복제된 하레이를 무시하거나, 그녀를 매번 제거하거나, 아니면 사르토리우스의 실험에 동참해 손님이 찾아오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지만 새로운 사랑을 발견하면서 그녀와 함께 하기로 하죠. 복제된 하레이 또한 자기자신과 자아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 부딪혀 괴로워 했지만 캘빈의 진심을 접하면서 '다른 하레이'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로 세우고 그와 함께 하기로 하죠. 시간과 관념, 물리적 존재를 넘어 오직 순수한 감정의 연결고리만이 모든 것을 초월해 이어질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이 둘의 사랑은 어색하고 이질적일지 몰라도 결국 이어져있는 사랑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적다 보니 뭔가 영화 인터스텔라가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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