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SF소설] 08.솔라리스 - 스타니스와프 렘

D-29
그러므로 이 바다는 단순히 존재할 뿐 아니라, 살아 있고, 생각하며, 행동하는 생명체다. '솔라리스 문제'를 부조리의 차원으로 치부하거나 완전히 제거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영원히 사라졌다. 우리의 상대는 명백한 실체고,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패배 또한 아무리 부인하려 해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의심의 여지 없이 입증된 것이다. 좋든 싫든 인류는 솔라리스라는 이웃을 인식해야만 한다.
솔라리스 p.377~378,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생각하는 거대한 바다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인간은 평화로울 수가 없다. 설사 우리가 은하계를 구석구석 탐사해서 우리 인간과 흡사한 문명을 발견한다 해도, 솔라리스는 인간에게 영원히 수수께끼의 도전장을 내밀 것이다.
솔라리스 p.378,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어제 <사상가들>을 읽었습니다. 솔라리스에 대한 학자와 세간의 인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에 대한 설명 위주인데도 흥미롭네요. 꼭 진짜 지구에서 일어나는 역사나 철학의 변천사처럼 느껴졌습니다. 솔라리스로부터 온갖 기대를 갖고 접근했지만 생각한 반응과 결과가 나오지 않고, 무심한 결과가 반복되면서 점차 학자들이 짜증을 내다가 나중에는 관심을 끊는 흐름이 마치 인간관계 같네요. 연구의 기류나 학풍, 주류 의견이라는 것은 사람의 사고와 의식을 담았다 해도 그 자체로는 생명이 없는 정신일 뿐인데 마치 생명처럼 변화하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어쩌면 솔라리스와 인간이 보기보다 비슷한 점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과학자들이 기대한 '접촉'은 문명과 이성을 가진 존재와의 '인간적 교류'였겠지만 다른 생명과의 접촉은 생각보다 훨씬 스펙트럼이 넓고 유리의 상상과 다를 수 있다고 지적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비인간적인 존재를 탐구하면서도 그 안에서 여전히 인간성을 찾고 싶어 하지만 그건 결국 인간 자신의 환상일 뿐이겠죠. 스케일과 규모가 다를 뿐, 캘빈이 복제된 하레이에게서 죽은 연인을 겹쳐서 보는 기억과 과학자들의 접촉에 대한 갈망이 닮았다고 느꼈어요.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 깃든 인간성이 보이지 않나요?" "저는 차라리 인간에게 깃든 비인간성을 찾겠습니다."
화성 연대기 p.201,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조호근 옮김
화성 연대기SF와 환상문학의 거장 레이 브래드버리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현대문학에서 그의 대표작 『화성 연대기』와 『태양의 황금 사과』가 동시 출간됐다. 이전 한국어 판본들에서 만나지 못했던 두 편의 에피소드 및 작가 에세이가 추가됐으며, 아울러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존 스칼지의 서문을 특별히 함께 실었다.
이전에 읽었던 <화성 연대기>에 비슷한 의미의 문장이 생각나서 적어봤습니다.
오! 저도 이 문장 좋았는데.... 저는 항상 '인간적으로'라는 단어에 의심을 품습니다. '인간적으로'라는 게 뭘까요?
인간적이란 말에는 인간의 비합리적인 의사결정과 행동, 그리고 감정에 휩쓸려 이성을 잃곤하는 특성도 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이언 매큐언이 쓴 소설 <나 같은 기계들>을 보면 인간의 비합리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공지능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 같은 기계들현대 영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이언 매큐언의 열다섯번째 장편소설이자 그의 유일무이한 SF 소설로, 과학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한 가상의 과거를 배경으로 인류 최초의 인조인간을 손에 넣은 청년의 이야기를 통해 인공지능시대의 윤리를 집요하게 묻는 작품이다.
이 문장 좋죠 ㅎㅎ 수도사와 화성인들 간의 접촉은 초월적인 느낌이 들긴 해도 여전히 인간적 존재의 요소가 담겨있죠. 외계인이라고 하지만 마치 초탈한 종교인과 대화하는 것만 같은.. 반면 솔라리스의 바다는 의사소통은커녕 접촉과 교류가 가능한지도 의심스러운데 과학자들의 입장에서는 벽과 대화하는 느낌이었겠죠. 전 솔라리스 연구사의 끝으로 갈수록 기존의 희망과 기대에 차있던 평가가 실망을 넘어 의도성을 담은 비난처럼 느껴졌어요. 마치 자기가 관심 있거나 좋아하는 상대에게 노력해서 다가갔는데도 호응을 제대로 안 하거나 관심을 주지 않으면 당황하다가 질투하고 나중에는 반감을 갖는 것 처럼요. 과학자들이 솔라리스를 일부러 평가절하 하는 느낌이랄까요? 혐오스럽든 숭고하든, 추잡하고 더럽든 고상하든, 선하든 악하든, 합리적이든 비논리적이든 인간의 감성과 정신을 자극하고 주고받는 존재를 인류는 원했겠죠. 그런데 막상 만난 우주의 이웃이 우리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규칙에 따라(애초에 규칙이 있기는 한지도 의심스러운) 움직일 뿐인 아메바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네요. 과학자들이 불쾌하게 느낀 이유는 자신들이 상위의 입장에서 분석하고 접촉할 기회를 '하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연구의 목적과 접촉의 근원을 뿌리째 뒤흔드는 의심을 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벽에게 말과 물음을 던져봐야 받을 상대가 없기 때문에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죠. 바깥의 대상에만 집중되어 있던 의식과 목적이 자신에게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요. 보통 우리는 빠르고 복잡하게 돌아가는 세상과 주변환경에 휩쓸리느라 자기 자신을 대면할 시간이 많지 않죠. 그래서 오히려 복잡한 수많은 세상은 소식을 쫓으며 따라가도 자기 자신은 잘 알지 못하고요. 어디든 탐구하고 개척할 곳이 넘쳐나는 광활한 우주, 교류할 수 있는 지적인 존재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낼 인류의 운명을 기대했지만 솔라리스의 바다는 그것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듯 영원히 침묵하죠. 그 결과 이 모든 연구와 우주진출의 의미가 무엇인지 회의감을 갖게 만들고 과학자들 스스로도 의심에 빠지게 만들고요. 그런 점에서 보면 인간적이라는 말은 대상이나 사물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받아들이고 싶은 렌즈나 가림막 같은 게 아닐까 싶네요. 인간이 보다 고차원적이거나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고 사물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막는 투명한 벽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후에 <성공>까지 읽었습니다. <오래된 미모이드>는 일부러 남겨두었어요. 책의 결말에 가까워지면 가장 조용한 시간에 읽는 걸 선호하는데 보통 잠자기 전에 읽곤 합니다. 오늘로 전 완독을 하게 되겠네요.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될지 빨리 확인하고 싶습니다.
오늘부터는 일정상 마지막 장의 결말까지 포함하는 관계로 혹시 책을 아직 읽고 계신 분들은 새로 올라오는 글들을 읽기 전에 유념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이후 남는 일정은 감상의 시간이긴 하나 완독하신 분들은 먼저 느낀 점이나 생각을 자유롭게 올리셔도 됩니다.
이틀째 되던 날 늦은 밤, 우리는 남극 가까운 지점까지 도달했다. 푸른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저물고 있었고, 동시에 반대편 수평선 위로는 구름 주위가 선홍빛으로 물들며, 붉은 태양의 일출을 예고하고 있었다. 광대한 바다 위로 펼쳐진 텅 빈 하늘에서 금속처럼 번쩍이는, 섬뜩한 푸른색과 은은한 진홍빛 불꽃이 맹렬히 충돌하고 있었다. 바다 또한 두 태양 사이의 힘겨루기에 휘말린 듯, 둘로 쪼개어져 한쪽은 수은처럼 반짝였고, 다른 쪽은 선홍빛을 내뿜었다.
솔라리스 p.386,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책을 읽으면서 계속 눈에 밟히는 게 바다에 대한 묘사였습니다. 켈빈이 솔라리스에 도착한 이후부터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의 색과 풍경을 종종 언급하죠. 중반 이후에 책에서 바다가 검은색 또는 거의 검정에 가까운 짙은 녹색이라고 묘사하지만 그럼에도 전 종종 머리에서 붉은색의 바다를 떠올리며 읽고 있어요. 켈빈이 정거장에 도착했을 때 내리쬐는 붉은 태양의 빛으로 인해 바다가 피처럼 보여 속이 메스꺼웠다는 묘사가 강렬하게 인식되어 그런 것 같습니다. 여러 상황에서 솔라리스의 바다의 색은 굉장히 다양하게 드러납니다. 백색에 가까운 푸른 태양이 뜨면 그 반사로 인해 마치 금속이나 수은과 같은 색이 되고, 붉은 태양의 경과에 따라 핏빛에서 자줏빛 또는 분홍빛으로도 묘사되죠. 평소에는 검은 색이지만 대칭체와 같은 특이현상이 발생할 때는 밑바닥이 보일 정도로 해수면이 투명해지기도 합니다. 과학은 잘 모르지만 색이란 각 물질이 지닌 특성으로 인해 빛의 파장을 어디까지 흡수하고 반사하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화가 모네는 루앙 대성당의 시간과 날씨에 따른 변화를 그림으로 담아냈죠. 물체와 대상은 변하지 않고 제자리에 있지만 시간과 빛이 우리에게 매번 다른 인상을 남깁니다. 똑같은 성당을 보면서도 동시에 우리는 다른 성당을 보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솔라리스의 바다가 가진 '고유한 본래의 색'은 과연 무엇일까요? 솔라리스는 외계행성이고 대기 구성성분도 지구와 전혀 다르며 태양이 두 개이기에 이곳의 물체와 풍경이 지구에서도 같게 보일 수 없을 겁니다. 바다뿐만 아니라 책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셔터가 열리고 닫히면서 두 개의 태양이 정거장 안의 사람과 선실의 풍경도 바꿔놓죠. 완벽한 어둠 속에서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켈빈, 태양을 가린 채 자신만의 비밀스런 연구를 하는 사르토리우스, 석양을 등지고 서 있던 스나우트.. 정거장의 밋밋하고 삭막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는 숨이 막히지만 반대로 솔라리스의 풍광은 인물과 사건들에게 계속 어떤 활력을 불어넣는 것만 같습니다. 두 개의 태양이 동시에 양 끝에 펼쳐진 바다의 풍경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문장이지만, 어쩌면 작가가 계속 빛과 풍경을 묘사하는 이유가 이런 이유도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림 딱 어울리는 걸로 잘 맞춰 올리셨네요. ㅎㅎ 모네가 그린 루앙 대성당 연작.
우리들 각자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지만 솔라리스의 바다의 색감이 매순간 변하는 걸 묘사하는 문장들이 참 좋더라고요. 작가가 석양이나 일출을 여러번 보고 관찰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ㅎㅎ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그때의 막연한 불안과 좌절감, 그리고 마치 지진이 일어나기 직전처럼 일시적으로 찾아온 휴지기는 당시에 정거장의 갑판과 선실을 구석구석 장악하고 있던,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에 의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존재를 감지할 또 다른 방법은 꿈이었다.
솔라리스 p.390,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최성은 옮김
화제로 지정된 대화
어제 저녁에 <오래된 미모이드>를 읽었습니다.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엔딩이네요. 솔라리스에 찾아온 켈빈의 첫 시작과 대비되는 결말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장이니만큼 책의 감상과 더불어 아래의 물음을 같이 생각해볼까요. 1) <꿈>에서 켈빈이 자신이 기억하는 꿈의 내용을 설명하는 부분이 있습니다.(p.390~393) 여러분은 이 부분을 어떻게 해석하셨나요? 떠오르는 장면을 얘기해도 좋고, 그의 꿈이 켈빈에게 어떤 의미였을지를 생각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2) 책에서는 3층의 실험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구체적인 설명이 없어 독자가 상상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p.398) 3층에서 들려온 비명의 정체는 무엇이고 누구로 생각하며 읽으셨나요? 다음날 갑자기 양복을 차려 입은 스나우트에게는 어떤 일과 사연이 있었을 것 같나요? 3) 이전 장에서 켈빈은 얼핏 사르토리우스의 연구실에 밀짚모자가 걸려있던 걸 화상회의 스크린 너머로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작품의 극후반인 <성공>부터는 사르토리우스가 등장하지 않으며 그에 대한 언급조차 없이 사라집니다. 사르토리우스를 찾아온 손님, 또는 밀짚모자는 누구라고 상상하셨나요? 4) 켈빈은 <오래된 미모이드>에서 솔라리스의 바다에 대한 자신만의 가설을 말합니다. 그의 가설에 동의하시나요? 바다에 대한 여러분만의 해석이나 감상은 무엇이었나요? 그 외에도 책에 대한 전반적인 감상과 느낀 점 등 자유롭게 얘기하고 싶으신 내용을 적어주시면 됩니다.
1) 켈빈의 꿈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느낌을 받았는데 주로 떠오른 건 ① 솔라리스의 바다가 그에게 정신적으로 접근하여 하나가 되는 합일의 과정, ② 하레이처럼 복제를 겪는 간접체험 이었습니다. 그리고 책의 앞 부분에서 나온 베르통의 보고서도 좀 생각이 났고요. 처음에 켈빈은 자신의 몸이 죽은 듯 굳어있고, 덩어리에 둘러싸여 있으며 연분홍색 반점들이 자신들 에워싸고 있었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부분을 읽을 때 첨부 사진처럼 세포가 떠올랐어요. 오밀조밀 빽빽하게 모여 있어 사방 어디로도 움직일 수 없게 감옥처럼 갇혀있는 세포들. 그리고 그 세포들의 한 가운데에 반점처럼 보이는 세포핵 말이죠. 그가 말한 연분홍색 반점들이 아마도 솔라리스의 바다를 구성하는 세포들이지 않을까 상상해봤습니다. 즉 그의 정신이 꿈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솔라리스 바다의 한복판에 서 있는 것으로 이해했어요. 이후 그는 무언가 자신에게 다가오고, 허락과 동의를 요구하지만 거기에 순순히 몸을 맡기면 자신이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는 막연한 느낌을 받습니다. 켈빈이 '나'라는 실체와 자아를 버리고 솔라리스의 무수히 많은 세포들 중 하나가 되면 더 이상 그때는 켈빈이라는 존재도 없게 되죠. 솔라리스의 바다는 무수히 많은 세포들의 집합체의 일부로서 켈빈이 받아들여지는 포용의 체험을 제공하지만 켈빈은 자신이 그 안에 녹아드는 순간 더 이상 그를 구분짓는 개별성이 없어지고 무無의 존재가 될까 봐 두려워 한 것 같아요. 이후 켈빈은 잠깐이나마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을 마주하면서 솔라리스의 바다와 접촉을 하는 듯 합니다. 그건 어쩌면 솔라리스가 켈빈이라는 인간적 존재가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방향으로 자신을 소개한 시도가 아닐까요? 당연히 솔라리스는 인간이 아니므로 얼굴이 없지만, 이곳에 찾아온 방문자들과 그들의 기억 속 인격들을 통해 매순간 변화하는 천의 얼굴로 켈빈 앞에 마주 섰을 겁니다. 그러고는 갑자기 새하얀 알몸이 허우적대고, 소멸하는 듯한 기분 때문에 절규하다가 다시 결합되고 굳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새하얀 알몸이라는 표현에서 베르통의 보고서가 생각 났는데요. 베르통이 보았다고 주장한 바다의 광경에 대한 증언에 거대한 아기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기는 인간의 아이와 매우 닮았지만 흰색에 가까운 밝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하죠. 아마 이 때 켈빈이 뿔뿔이 찢겨나가고 흩어지는 듯 하다가 다시 결합되는 느낌을 받은 건.. 그가 베르통의 보고서에 나오는 아기 또는 복제된 하레이처럼 복제의 경험을 체험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솔라리스가 자신의 세포들을 분열시키고 그것들을 다시 이리저리 뭉쳐 인간을 만들어 냈듯, 켈빈을 구성하던 육체적/정신적 요소를 한 번 해부한 뒤 그를 재조립하여 제2의 복제물을 만들어낸 것이죠. 마지막에 '다른 태양 혹은 다른 세계의 빛 속에서 정점을 맞는다'라는 문장은 어쩌면 하레이처럼 복제된 인간들이 소멸된 뒤에 다시 형성되어 눈을 뜰 때의 광경을 말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생각해보면 복제된 하레이는 켈빈이 머물던 방에서 느닷없이 등장했죠. 그녀는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켈빈의 방에 있는지 기억을 못합니다. 어쩌면 켈빈도 그녀처럼 정거장의 어느 공간에서 갑자기 천장 조명빛 아래에서 깨어나는 체험을 간접 경험을 한 게 아닐까요.
2) 두 가지 모두의 경우를 상상하며 읽었는데 하나는 문맥과 상황상 스나우트가 사르토리우스를 제거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정, 또 하나는 사르토리우스가 그의 손님을 대상으로 어떤 위험한 실험을 한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이었어요. 첫 번째 추정은 이 이후부터 사르토리우스가 등장하지 않고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는 점이 의심스러웠거든요. 특히 스나우트가 평소와 다르게 양복을 차려 입고는 술까지 마시며 횡설수설 하는 걸 보면 그가 전날 밤 어떤 충격을 받았다는 암시로 보이고요. 사르토리우스는 상식을 초월하는 솔라리스의 상황에서 맨정신을 유지하고자 항상 면도를 하고 자기관리를 한다는 묘사가 있죠. 스나우트가 사르토리우스를 살해하며 겪은 충격 또는 트라우마를 잊거나 정신적으로 버텨내기 위해 양복을 입고 술로 고통을 잊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추정은 스나우트가 중간중간 말하는 대사를 볼 때, 사르토리우스가 자신만의 목적을 가지고 때론 연구윤리를 위반하는 실험을 한다는 듯한 암시를 주더라고요. 그의 실험실에 정체불명의 손님이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사르토리우스가 결국에는 스나우트의 말처럼 '바다에 복수하기 위해' 자신의 손님을 대상으로 어떤 위험한 일을 벌이고 있던 것 같기도 하고요.
3) 사르토리우스는 자신의 사적인 얘기를 일체 꺼내지 않을 뿐더러, 다른 인물들과 최소한의 교류도 하지 않는 인물이기에 모든 것이 수수께끼인 존재입니다. 하지만 안개에 가려진 권위적인 인물일 뿐 책을 읽는 내내 그의 개인사나 배경이 궁금하게 느껴지지는 않더라고요. 어쩌면 독자인 우리는 켈빈의 시선과 입장에서 주변인물들을 보기 때문에 캘빈과 마찬가지로 권위적이며, 남들과 일부러 거리를 두려는 그에게 굳이 인간적인 접근이나 관심을 갖고 싶지 않은 심리가 겹쳐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의 실험실에 있는 밀짚모자를 통해 그에게도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는 것, 얼음장 같아 보이는 사르토리우스도 기억의 내면에 강렬히 새겨진 존재가 있다는 점에서 그도 똑같은 인간이자 결함있는 관계와 사연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오히려 어떤 힌트나 단서도 없기 때문에 그의 손님 또는 실험실에 같이 머무는 존재가 누구일지 상상력이 마구 증폭되는데요. 전 왠지 밀짚모자의 정체가 그의 딸이 아닐까 상상했습니다. 해변에서 쓸법한 휴양지의 밀짚모자라면 그와 소중한 경험을 함께 한 존재일 테니까요. 어쩌면 사고나 병으로 먼저 떠나보낸 딸을 되찾기 위해 사르토리우스는 복제된 딸에게서 무언가를 얻어내고자 실험을 거듭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상상도 했어요. 그러지 않고는 그가 하루종일 내내 실험실에만 틀어박혀 바깥의 어떠한 일에도 관심을 갖지 않는 점이 설명되지 않을 것 같고요.
4) 저는 솔라리스가 끊임없이 다양한 창조활동과 모방을 되풀이 하는 이유가 자신의 현재의 상태로부터, 중력의 속박으로부터, 그리고 단일체로서의 고립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으로 보였어요. 마치 소설 데미안에서 말하는 '껍질을 깨고 알에서 나오는 단계'처럼 느꼈습니다. 스스로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자의식이 생기면서, 살아있는 상태를 유지하고 매 순간 존재를 유지하고자 안간힘을 쓰는 모습 말이죠. 신장체나 대칭체, 미모이드 등 각종 변형과 창조 활동은 마치 몸을 가지고 노는 유아 단계처럼, 자기 자신 외에는 인지할 대상이 없고 교류할 수 없는 바다가 스스로의 한계와 능력을 시험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연구원들의 기억에 접근하면서 인간의 정신을 모방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왜냐면 하레이가 작중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초반에는 하레이가 의사소통만 할 수 있다 뿐이지 어떻게 보면 마치 목석이나 인형처럼 보였거든요. 또는 최근의 생성형 AI처럼 외부에서 입력이나 자극이 주어져야만 반응하는 존재로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하레이가 어설픈 방식으로나마 켈빈의 기억과 인간의 행태를 학습하여 모방하고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자기 자신의 기억과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하죠. 하레이는 솔라리스의 바다로부터 모방된 의식과 기억을 주입받았지만 점차 켈빈과 함께하면서 그와의 추억을 쌓아갑니다. 죽은 하레이는 경험해 볼 수 없는 사건과 시간 속에서 복제된 하레이는 자신만의 정체성을 자신도 모르게 확립하고 있던 셈이죠. 모든 것을 모방할 수 있는 특성상 아마 바다도 복제된 하레이를 통해 역으로 개체로서의 인격이나 자아, 정신을 학습하지 않았을까 상상했습니다. 아마 나중에는 인간의 존재와 근원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켈빈에게 꿈이라는 무의식의 문을 통해 접근하여 직접적으로 소통을 시도한 것 같고요. 책 안에서는 사르토리우스나 스나우트의 손님이 누구인지 어떤 교류가 있었을지 언급되지 않지만, 아마도 그들의 대화나 상황을 추정해 볼 때 작중에서 가장 솔라리스에게 '개방적으로 순순히 협조한' 인물은 켈빈이었을 거라고 봅니다. 사르토리우스는 솔라리스를 소통할 대상으로 보기 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성의 결과만을 보고 싶어하는 권위적인 과학자의 느낌이 강하죠. 스나우트는 복합적인 인물이라고 생각되는데 초기의 모습을 보면 바다에 두려움을 갖거나 공격적 또는 수동적이라고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켈빈은 그렇게 바다를 적대하지도, 분석할 연구대상으로만 보지도 않죠. 켈빈은 바다를 둘러싼 연구사와 관점들을 인지하지만 어느 이론에 특별히 치중하지도 않으며 인간중심의 관점을 거부하는 편입니다. 또한 자신에게 접근한 하레이에게 처음에는 두려움을 느끼지만 이후에는 그녀와 교류하며 감정적 관계를 이어가죠. 바다가 켈빈에게 꿈이나 무의식 그리고 하레이로서 접근한 이유도 그가 가장 편견 없이 정신과 마음을 열어 놓았기에 다가간 게 아닐까요? 책 후반부에서 스나우트가 더 이상 손님들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었죠. 단순히 실험의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하레이를 통해 바다가 무언가를 배움으로써 자아와 독립성을 찾아 헤매던 여정이 끝났다는 의미로도 저는 읽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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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문학도서관을 아시나요?
[문풍북클럽] 뒷BOOK읽기(?) : 12월의 책 <엑스>, 도널드 웨스트레이, 오픈하우스[문풍북클럽] 뒷BOOK읽기(?) : 11월의 책 <말뚝들>, 김홍, 한겨레출판[문풍북클럽] 뒷BOOK읽기 : 9월의 책 <옐로페이스>, R.F.쿠앙, 문학사상 [문풍북클럽] 뒷BOOK읽기 : 7월의 책 <혼모노>, 성해나, 창비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나의 인생책을 소개합니다
[인생책 5문5답] 47. 이자연 에디터[인생책 5문5답] 39. 레몬레몬[인생책 5문5답] 18. 윤성훈 클레이하우스 대표[인생책 5문5답] 44. Why I write
한 해의 마지막 달에 만나는 철학자들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9. <미셸 푸코, 1926~1984>[책걸상 함께 읽기] #52.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의 철학자 몽테뉴에게 인생을 묻다>[도서 증정] 순수이성비판 길잡이 <괘씸한 철학 번역> 함께 읽어요![다산북스/책증정]《너를 위해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니체가 말했다》 저자&편집자와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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